교계/교회

“하나님의 뜻이란? 고통받는 이 눈물 닦아주는 것”

NCCK 신학토론회, ‘역사인식과 기독교’ 주제 분야별 전문가 참여

▲19일 오전 서울 연지동 기독교회관 2층 강당에서 NCCK 주최로 ‘역사인식과 기독교’란 주제의 신학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이지수 기자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하나님의 뜻" 발언으로 불거진 기독교 역사인식 문제와 관련해 올바른 역사인식은 무엇이며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 기독교 역사학자와 구약학자, 조직신학자와 역사학자 등 전문가들이 모여 긴급 토론을 벌였다. 

19일 오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이하 NCCK, 총무 김영주 목사)의 주최로 열린 이날 신학토론회는 각자의 전문 영역이 달랐음에도 그 뿌리가 되는 전문적 견해는 서로 간 큰 차이가 없었다는 평가다. 
이들은 무엇보다 문창극 총리 후보 지명자의 발언은 일본 제국주의 사관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며, 약자, 소외자의 처지가 아닌 힘 있는 자, 핍박하는 자들의 편해 서서, 가해자를 구원하는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한 목소리로 지적했다. 
▲윤경로 교수가 토론하고 있다. ⓒ사진=이지수 기자
먼저 근 현대사 연구의 전문가인 윤경로 교수(전 한성대 총장)는 “학식을 가지고, 어느 정도 상식을 가졌을 위치의 분이 저런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놀랍고 한편으론 불쾌하다”며 “(문 후보 지명자의 발언은)일본 제국주의 시대에 일본인들이 말한 식민, 자학 사관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편으론 그 시대 사관을 배운 분이니 그렇다 하더라도, 이미 밝혀진 잘못된 상식, 자신도 알지 못하는 내용을 버젓이 젊은이들에게 강연하지는 말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교수가 말한 바로는 문 후보의 우리 민족에 대한 평가는 서구 선교사들의 시각과 일본 통치를 합리화시키기 위한 일본사학자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 인용한 것뿐이라며, 세계가 인정한 자랑스러운 유산을 만들어낸 조선의 5백 년을 허송세월이라고 한 발언에 대해 역사학자로서 대단히 불쾌했다고 밝혔다.
특히 제주 4.3에 대한 색깔론 운운은 “최근 면밀한 조사를 통해 국가 폭력의 산물이라는 것이 명명백백히 드러났고, 이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도 있었던 사건”이라며 “이런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공산주의 폭동 운운은 내용도 모르는”무지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의 첫 출발부터 잘못되었기에 문 후보와 같은 발언이 나왔다고 생각한다”며 해방 이후 일반화되어 버린 일본 식민 사관의 잔재를 청산하고, 지금이라도 새롭고 바른 역사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사에서 하나님의 뜻이 참으로 한국교회와 기독교인에게 헤프게 쓰였다.”며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어느 것이 하나님의 뜻이지 가려내는 성숙한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양현혜 교수(이화여대, 역사신학)는 “삼일운동 당시 기독교인이 가졌던 기독교 역사관의 바탕에는 공의가 있었다.”며 “공의는 약자가 배제되지 않는 정의로 제국주의를 합리화하는 식민사관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문창극 후보자의 발언 중 이씨 조선이란 말은, 불의한 이씨 조선 왕조는 일본에 넘어가도 좋다는 당시 일본의 주장이며, 약한 자는 강자에게 잡혀먹히는 것이 당연하다는 제국주의 사관, 그대로를 인용하고 있다며 삼일운동 당시의 기독교 사관과도 커다란 간극이 있다고 말했다.
▲양현혜 교수가 토론하고 있다. ⓒ사진=이지수 기자
그러면서 일부 기독교인들이 제국주의적 세계관 혹은 식민사관 등에 경도되는 이유로는 그들이 종교를 통해 "힘을 얻고자 하는 경향이 과도하게 표출된 나머지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일제 식민지와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생존의 위협을 느낀 이들 종교인들이 "더더욱 힘에 집착하게 되었다"면서 그 결과로 파생된 것이 "성장지상주의"라고 했다. 과정 혹은 방법이 어떻든지 간에 성장하면 무죄라는 의식이 종교인들에게 팽배하다는 지적이다.   
양현혜 교수는 "다른 나라의 피해 당사자가 아우슈비츠의 학살, 미국의 노예 해방 등에 대해 심각하게 성찰한 만큼,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등에 대한 한국교회의 성찰과 응답은 기계적인 것 같다"며 (문 후보의 발언을 통해 알 수 있지만) "스스로의 신앙적 응답은 별로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녀는 "문 총리 후보자를 통해 한국교회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났다"며 "믿음이 좋은 신자와 좋은 시민 사이의 괴리를 어떻게 좁혀야 할지, 성장 중심의 교회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고 예언자를 통해 하나님 자진의 꿈과 이상을 이뤄나갔던 교회의 예언자적 기능과 복음의 공속성을 어떻게 접목할 것인지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신학 교육의 부재 현실을 지적한 그녀는 인문학적 토양 위에서 신학 교육의 전문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막말 논란을 빚고 있는 목회자의 언행의 지표가 목회자의 인격이라는 점에서 교육의 중요성을 새삼 확인한 것이다.  
구약의 입장에서 분석한 김은규 교수(성공회대, 구약학)는 "성경은 동전의 양면처럼 반제국적 사상과 신권 중심의 역사관이 함께 공존한다"면서도 "로마에 의해 희생당한 예수님의 사상과 연결된 성경의 전반적인 역사관은 약자들의 편에선 반제국주의 사상이 기본 인식"이라고 말했다.
▲성공회대 구약학자 김은규 교수가 토론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이지수 기자
그는 "구약만 놓고 보더라도 성서 안에서 좋은 평을 받은 왕들은 모두 제국의 종교에 반대하고,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역사관 위에 서 있던 이들"이라며 "(문 후보자의 발언처럼)그런 숙명론이 아니었다. 문 후보의 역사 인식은 자의적”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문 후보자의 사관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사퇴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밝혔다.
정경일 원장(새길기독사회문화원)은 문창극 후보의 발언이 신정론의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 것임을 재삼 밝혔다. 정 원장은 "모든 것을 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는 순간, 신정론은 그리스도교 이성의 무덤이 된다"며 "신정론은 많은 논의가 이뤄졌지만, 현재까지 교리화 된 적이 없을 만큼 결론이 나지 않고 오늘까지도 계속 연구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정 원장은 “전통적으로 인간의 잘못에 대한 징벌과 훈육을 위한 것으로 신정론은 사용됐지만, 이 같은 인식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포기하는 것”이라며 “(신정론을 대신한 약한 하나님인) 서구 신학이 말하는 십자가에 달린 하나님, 민중 신학이 말하는 고통받는 하나님에 동의할 수 없더라도, 적어도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비록 신정론을 자신의 신앙으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고통받는 이들에게 폭력적인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며 “문창극 후보 지명자나 대형교회가 고통받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하고 하나님을 변호하기 급급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신정론은 가해자를 정당화하는 것으로밖에 나올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경일 새길기독사회문화원 원장이 토론하고 있다. ⓒ사진=이지수 기자
정경일 원장은 “세월호가 비참하게 침몰하면서 한국교회의 오래된 적폐도 함께 떠올랐다.”며 “지방 선거를 앞두고 6월 1일 개최된 <세월호 참사 위로와 회복을 위한 한국교회 연합기도회〉에서, 유가족이 아닌 박 대통령이라는 초대 되었다는 점에서 기도회 자체가 고통받는 자가 아닌 권력자들의 눈물을 닦는 권력자들을 위한 적폐였다”고 비판했다.
특히 “한기총 임원회가 조광작 목사의 ‘가난한 집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경주 불국사로 가면 될 일이지’라는 발언이 있었던 그날 긴급 임원회는, 박근혜 정부의 경제활성화 대책에 부응하기 위한 전통시장 방문행사를 안산에서 가질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탐욕의 경제가 세월호를 침몰시켰는데, 교회가 경제활성화의 지원자 역할을 하고 나선 것은 권력과 탐욕의 적폐가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원장은 끝으로 "문 후보자의 역사인식의 문제점은 신학적으로 단순하면서도 복잡하다. 단순하게는 고통당하는 자의 관점에서 역사를 보지 않기 때문에 시민들의 가슴을 후벼 파는 막말을 한 것이다. 그런데 신앙인식과 역사인식의 관계를 보면 복잡하다. 한국교회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님의 뜻에 대한 이해가 문 후보자의 이해와 정말 다른 것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섭리 밖의 일은 없다며 세월호 참사도, 일제강점도, 한국전쟁도 하나님의 선한 섭리로 이야기 하는 것에 대한 신학적 성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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