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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영성순례기] 까미노에서 대접 받은 ‘냉수 한 그릇’

이대희 목사·강릉선교감리교회 담임

까미노 데 산티아고(30)

▲냉수를 대접해 주신 이로츠Irotz마을의 할아버지
▲못쓰게 되어 버린 이로츠Irotz마을의 우물

죽은 줄로 알았던 아들 요셉을 만나기 위해 이집트에 간 늙은 야곱은 파라오 앞에서 이렇게 증언한다. “이 세상을 떠돌아다닌 햇수가 백 년하고도 삼십 년입니다. 저의 조상들이 세상을 떠돌던 햇수에 비하면 제가 누린 햇수는 얼마 되지 않지만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창47:9)” 
세상 떠돌던 나그네 길이 험악했다는 것인데, 그것은 인생이 무겁고, 힘들고, 짜증이 나며, 악한 일들과 고생과 걱정이 심했다는 것을 말함이다. 많이 틀린 말은 아닌것으로 보여진다. 그런데 우리 인생에 이처럼 험악한 일들만 가득하다면 우리의 나그네 길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하지만 순례의 여정 가운데 우리는 사랑의 천사를 수도 없이 만난다.
이로츠Irotz마을에 이르렀을 때 얼마간 쉬기로 하였다. 잠간 쉴만한 곳을 찾는데, 마을 입구 길 곁에 낡은 샘터가 보인다. 물이 흘러야 할 곳에 초록색 이끼가 짙게 끼어 있고, 얼른 봐도 사람의 손길이 끊어진 폐쇄된 우물인듯 했다. 역시나 샘 곁에 푯말도 있다. “NO AGUA식수금지!” 세빈이와 아내가 ‘이 샘은 사용하지 않는가 보다.’ 
손짓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개짖는 소리가 요란하다. 추레한 옷을 입고, 구겨진 스포츠 모자를 쓰신 배가 불룩한 할아버지께서, 한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한 손에는 이리뛰고 저리뛰는 부산한 강아지 세 마리를 세 가닥 줄로 붙들고 계신다. 그 모습이 재미있고 우스워서 ‘사진을 좀 찍자’ 했더니 흔쾌히 용납하신다. 천상 농부의 모습속에 인자한 웃음으로 ‘그 샘은 사용하지 않는다. 따라오라.’ 하신다.
 
▲이로츠Irotz마을 교회 옆 할아버지의 집
▲그늘이 있는 이로츠Irotz마을 San Pedro 교회

조금 올라간 곳에 작고 오래된 교회Irotz San Pedro가 있다. 마을의 중심이다. 신발과 양말을 벗고 뜨끈해진 발을 식히면서 교회 그늘에 앉아 쉬고 있는데, 교회 옆에 있는 집에서 젊은 청년이 물통을 들고 나온다. 냉장이 잘된 시원한 물이다. 물병 표면에 금세 방울방울 이슬이 맺힌다. 우리가 샘 곁에서 손짓하는 모습을 보았던 할아버지가, 집에 들어가서 아들에게 물병을 가져다 주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물 한통을 우리 물병에 충분히 채워 넣었는데, 아들에게 집에 들어가서 물을 더 가져 오라고 하신다. 우리의 가득찬 물병을 보이면서 여러 번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할아버지는 지나가는 나그네를 헤아릴 수없이 많이 보았을 것이다. 어찌보면 무심해도 될텐데, 혹여 나그네의 물통이 비어 있을까 염려하여, 고마운 사랑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신 것이다. 
‘험악한’ 길에 지친 나그네는, 순박한 시골 할아버지 천사와 복된 ‘교회 그늘’의 사랑을 받아, 마음이 밝아지고, 시원한 기쁨 한자락을 배낭에 챙긴다. ‘냉수 한 그릇(마10:42)’의 상급을 주님께서 잊지 않으시길 기도한다. 이러한 냉수의 섬김에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은총이다. 얼마나 많은 사랑과 섬김과 도움을 받고 있는지, 실제 우리는 까마득하게 잊고 산다.
 
▲이로츠Irotz에서 사발디카Zabaldika 가는 길에 있는 베로나의 로잔 추모십자가
▲사발디카Zabaldika의 골목길

쉬다 일어나면 몸이 가벼워야 하는데, 배낭에 짐을 더 집어 넣은것처럼 천근 만근이다. 얼마간 걸어야 걸음에 속도가 더해진다. 잡초가 우거진 좁다란 오솔길을 지나갈 때, 길 옆에 있는 십자가 표지물이 발걸음을 붙잡는다. 까미노 여정에서 십자가를 종종 만나게 되는데, 이 십자가는 좀 다르다. 어른 키 높이 만큼의 검은 철제 십자가 중앙에, ‘Fin del Camino Rosanna di Verona 2006’ 이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2006년에 이 길을 걷던 베로나의 로잔이란 순례자가 이 곳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로잔’의 곁을 지나던 순례자들이, 십자가 옆에 돌맹이들과 이름모를 분홍색 들꽃으로 수를 놓아 그의 마지막 길을 기억한다. ‘Fin del Camino:길의 끝’ 이라는 단어가 아련하게 가슴으로 파고 들어온다. ‘언젠가는 이 길이 끝나겠지?’ 우리의 이 ‘험악한’ 길도 끝나는 날이 올 것이다. 길의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지만, 사랑의 천사들을 만나고 ‘교회 그늘’의 위로를 맛보며 감사하면서 이 길을 가야 하는 것이다.
노란 화살표 안내를 따라 동네를 벗어나고 아르가 강을 건너 10여분 걸으면, 자그마한 사발디카Zabaldika마을을 만난다. 마을을 지나쳐 들판으로 들어서자 햇빛을 피할 곳이 별로 없다. 쨍쨍한 햇빛이 사나워진다. 마을간 거리가 좁아지고, 여기저기 촌락이 눈에 띄는 것을 보니 팜플로나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모양이다. 머릿속에서 생각이 좀처럼 떠나질 않는다. ‘Fin del Camino’(사진제공= 이대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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