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대중문화 에세이] 진정한 강함의 미덕이란?

롭 라이너 감독의 1992년작 <어 퓨 굿맨>

군은 강함을 모토로 하는 조직이다. 만약 불과 몇 걸음 앞에 적이 있다면 강함은 생존과도 직결된다. 따라서 규율은 상당히 강력하고 이를 어긴 병사에 대한 처벌도 가혹할 수밖에 없다. 롭 라이너 감독의 1992년작 <어 퓨 굿맨>(원제: A Few Goodman)은 군이 생명과도 같이 여기는 ‘강함’이라는 모토에 대해 성찰적 의문을 제기하는 작품이다. 

영화의 배경은 쿠바 관타나모 소재 미 해병대 기지다. 어느 날 이곳에서 산티아고라는 이름을 가진 한 병사가 죽임을 당한다. 가해자는 해럴드 도슨 상병, 그리고 로든 다우니 일병이다. 해병대 사령부는 이 사건을 해군에게 넘기고, 해군 측은 군 법무관인 조앤 갤로웨이 소령(데미 무어)과 스탠리 캐피 중위(톰 크루즈)에게 변론을 맡긴다. 
▲영화 <어퓨 굿맨>의 한 장면. ⓒ영화 스틸컷

산티아고 일병의 사망원인은 이른바 ‘코드 레드’라고 하는 얼차려 행위에 따른 결과였다. 그러나 가해자인 두 병사는 무죄를 주장한다. 자신들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게 이유다. 그러나 캐피 중위는 이들의 입장엔 관심이 없다. 오히려 해병대 검찰측과 타협을 시도한다. [이렇게 미국 법체계에서 검찰과 변호인측 사이에 형량을 조정하는 행위를 플리 바게닝(Plea Bargaining)이라고 한다] 
사실 이 대목은 군 당국의 의도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해병대 사령부가 사건 변론을 해군 법무관측에 맡긴 주된 이유는 적당한 타협을 통해 사건을 덮으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로지 경력에만 관심 있었던 캐피 중위는 이런 군의 기대에 충실히 부응했다. 그러나 두 병사들은 완강하다. 상관인 갤로웨이 소령도 진실 규명을 촉구한다. 
캐피 중위의 내면은 이때부터 요동치기 시작한다. 그가 사건에 미온적인 태도를 취했던 이유는 비단 경력만이 아니었다. 진상 규명을 하려면 기지 총 사령관인 제셉 대령(잭 니콜슨)을 법정에 소환해야 한다. 그러나 제셉 대령은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군 당국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정치적 영향력도 막강하다. 산티아고 일병의 사망에 그가 개입했다는 증거를 확보하기 너무 어려웠고, 자칫 잘못 건드렸다간 캐피 중위 자신이 파멸할 위험도 높았다. 
영화는 이때부터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헐리웃 미남 스타 톰 크루즈와 <사랑과 영혼>의 데미 무어, 대배우 잭 니콜슨의 연기대결도 흥미롭다. 또한 군 조직에서 흔히 벌어지는 병사들의 얼차려 행위를 법정으로 끌고 나와 팽팽한 법리공방의 소재로 만든 연출자의 솜씨도 무척 뛰어나다. 무엇보다 군 조직이 최고 덕목으로 여기는 ‘강함’이란 덕목이 어떻게 실천돼야 하는지에 대해 진지한 의문을 제기하는 대목은 이 영화의 백미다. 
자신을 위해 싸우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싸워라
▲영화 <어퓨 굿맨>의 한 장면. ⓒ영화 스틸컷

산티아고 일병은 군 생활 적응에 애를 먹었다. 본인도 이를 알았는지 상부에 전출을 요청했다. 그러나 이 요청은 제셉 대령에 의해 번번이 막혔다. 그는 오히려 산티아고 일병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가하라고 명령한다. 이에 두 명의 병사들이 그에게 얼차려를 가했고 이런 행위가 산티아고를 사망으로 몰고 간 것이다. 두 병사들의 증언도 제셉 대령이 배후임을 지목하고 있었다. 군 조직의 생리상 정황은 충분했다. 
그러나 문제는 제셉 대령이 구체적으로 명령을 가했는지의 여부였다. 명확한 증거 없이 정황만으로 살인혐의를 씌울 수는 없다. 더구나 군 관행상 합리적 증거 없이 근무성적이 우수한 장교를 법정에 소환했을 때 따르는 후폭풍은 감당하기 어려웠다. 
캐피 중위를 정점으로 한 변호인단은 진실규명에 애를 먹는다. 제셉 대령의 혐의를 입증해 줄 내부 제보자가 등장해 변호인단은 잠시 자신감을 갖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자신감은 오래 가지 못했다. 이 제보자는 조직의 내부규율을 발설했고, 이로 인해 해병대 전체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자괴감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캐피 중위는 좌절한다. 그를 독려하던 조앤 갤로웨이 소령도 이때만큼은 망연자실해한다. 그러나 결연한 의지로 다시금 사건에 매달려 끝내 결정적 증거를 찾아내는데 성공한다. 
제셉 대령은 흡사 자신이 초법적인 존재인양 행동한다. 그의 변론에 따르면 “적군을 지척에 대면하고 있는 내가 목숨 걸고 지켜 선물한 평화의 담요를 깔고 자는 너희들이 감히 나를 심판할 권리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명령이 정당했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재판부는 그에 대해 구속을 명령한다. 얼핏 결말은 뻔해 보인다. 그러나 영화는 작은 반전을 준비해 놓고 있다.  
재판부는 구속된 두 병사에 대해선 무죄 및 불명예제대를 명령한다. 이에 대해 앳된 모습의 다우니 일병은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흑인인 도슨 상병은 잘못을 인정한다. 그는 부하인 다우니에게 이렇게 설득한다.
“자기 자신을 위해 싸울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는 싸웠어야 해. 우리는 산티아고를 위해 싸워야 했어”
최근 강원도 고성에 위치한 부대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졌다. 범인은 전역을 눈앞에 둔 고참 사병이었다. 군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그가 집단 따돌림을 당했고, 이 점이 범행동기로 작용했다고 한다. 
적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군 내부규율은 더욱 엄격할 수밖에 없고, 이에 조직 적응에 애를 먹는 이른바 ‘관심사병’에 대해선 가혹한 린치가 가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진정한 ‘강함’이란 자기 자신을 위해 싸울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싸우는데서 드러나는 법이다. 그래서 새삼 오래 전 봤던 <어 퓨 굿맨>의 메시지가 다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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