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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정식 한일장신대 교수 |
그럭저럭 사는가 싶더니 우환이 찾아왔다. 3남매를 키웠는데 큰 딸이 중학교를 다니다가 태워주겠다는 불량배의 꾐에 넘어가 강간당한 뒤 사체로 발견된 것이다. 함께 하교하던 동무들이 자동차 번호라도 유심히 봐두었더라면... 사태를 속히 파악하여 그 부근 다니던 교회 목사한테라도 속히 알려주었었더라면... 때늦은 탄식이 길게 이어졌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이 일찍 병사하여 20년 전 40대 중반에 과부가 된 이 집 여주인은 어느날 갑자기 이 집을 황급히 떠났다. 그 이주를 전후하여 옆 집에 살던 늙은 시어머니는 농약을 먹고 자살하여 그 집도 흉가로 남게 되었다.
집을 떠날 때 얼마나 황급히 떠났는지 방안에 이불과 구식 티브이, 부엌의 밥그릇 등속이 녹슨 퇴물이 되어 20년 세월의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뒷집의 90대 노파는 이 집에 등나무 덩쿨이 번성하여 횡액에 못볼 꼴을 많이 본 거라며 수근거렸다.
이 폐가는 어제 철거되었다. 짓느라 꽤 수고했을 텐데 허무는 데는 1시간이 채 안 걸렸다. 이 집의 모든 흔적이 사라지면서 그 애달픈 전설도 사람들 기억에서 차차 잊혀져 갈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 전설을 다 듣고 의문을 표할는지 모른다. 왜 그 독실한 권사님이 딸과 남편에 대하여 그런 비운의 짐을 져야 했는지... 억울하게 죽은 그 어린 딸은 범인이 잡히지 못한 상태에서 어떻게 그 원한을 풀 수 있는지... 말이다.
의문을 품고 질문을 던질 수 있다고 해서 그 모든 것이 적실한 답을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여기에 감히 '하나님의 뜻' 운운하면서 판관 노릇을 하지 않는 것이 인지상정이리라. 모르는 것들 중에는 끝까지 모르게 될 것도 많을 터이기 때문이다.
오늘 이 폐가의 흉흉한 전설을 떠올리며 집과 마당이 사라진 이 땅을 일구고 고랑을 타서 온종일 고구마를 심었다. 누가 지나다 이 밭의 고구마를 보면서 20여년 전 피어보지도 못한 채 서럽게 세상을 뜬 어린 소녀를 기억해줄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