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특별강연] 믿음에 이해를 더하여

서광선·이화여대 명예교수

[편집자 주] 본지의 논설주간인 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7월 25일(금) NCCK 교육훈련원이 주관한 기독교사회인문학자문단 <크리스천 후마니타스> 창립식에서 기념메시지를 전했다. 서 교수는 오늘날 변화를 요구받고 있는 “설교자들과 목회자들, 특히 신학자들이 인문학과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현대어를 배워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 이유는 “교회의 사투리와 방언을 세상의 말로 해석하고 통역하지 못하면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서 교수는 칼뱅과 루터가 신학자이기도 했지만 당대의 인문학자들로서 “중세 유럽의 르네상스시대의 신생대학에서 고전을 공부[했으며] 결코 교회 안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아니라 세상과 소통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지적 상상력과 신앙의 열정을 겸비한 개혁자들”이었던 사실을 거론하면서 <크리스천 후마니타스>의 활동을 통해서 “반(反)지성, 반(反)사회, 반(反)역사화해가는 우리 한국의 기독교를 다시 새롭게 하고 세월호와 함께 침몰해 가는 대한민국호를 건지고 바로 세워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람이 사람답게 살게 되는 세상을 만들어 보자”고 권면했다. 아래는 서광선 교수의 메시지 전문이다. 

▲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본지 논설주간) ⓒ베리타스 DB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 특강을 해 주실 김경동 교수님을 참으로 오랜 만에 이 자리에서 만나게 되었고, 신문과 텔레비전과 책을 통해서 알고 있는 저명한 교수님들과 학자님들, 기독교를 종교로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기독교 신앙을 학문의 여러 분야에서 해석하고 증언하는 일에 정성을 다하시는 기독교 학자 지성인들을 모시게 되어 반갑고 감사합니다. 특히 지난 5년 동안 한국 NCC의 교육훈련원에서 시작한 <전국목회자인문학독서모임>에서 목회자들에게 문학을 논하고, 역사와 정치와 경제학, 그리고 자연과학에 대해서 눈뜨게 하고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 반성하고 성찰하면서 신학과 신앙을 심화시킬 수 있게 도와주신 데 대하여 신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실, 이 말씀으로 제가 할 일을 다 한 셈입니다. 저는 NCC를 대표하는 사람도 아니고, 교육훈련원의 이사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공부한 것이 철학과 신학이고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기독교 신학의 인문사회과학적 접근과 인문사회과학을 통한 기독교 신앙의 이해를 시도하고 강조해 왔던 은퇴교수라고 해서 감히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이 모임에 저희들을 모이게 한 초대장의 첫 마디에 이렇게 씌어져 있었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에 깊은 아픔을 안겼습니다. 오래전부터 변화를 요구받고 있는 한국교회는 민족공동체의 큰 고통 앞에서 더 깊은 자성을 할 때입니다.” 변화를 요구 받고 있는 한국교회가 세월호 이전과 이후의 한국교회로 달라지기 위해서, 그리고 한국사회의 변화를 위해서, 기독교 지성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한국의 기독교 집단지성이 한국의 정치적 그리고 정신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함께 하자는 부름에 응해 우리는 이렇게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서울대 종교학 교수들이 중심이 되어 있는 한국 종교학 연구소가 온라인으로 보내주는 “종교문화 다시 읽기”라는 소식지에서 읽은 것인데, 지난 7월3일 숙명여대에서 <한국문학과 종교학회>와 <한국종교학회>가 공동학회로 모여서 “문학과 경전, 그리고 종교교양”이란 주제로 15편의 논문을 중심으로 80여명의 학자들이 열띤 토론을 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종교교양”이란 말은 영어로 “Religious Literacy”를 번역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소식에 더하여 이 소식지의 필자인 배재대학교 종교학부 안 신 교수는 지난 5월 네덜란드에서 모인 국제 종교학회에 다녀 온 소식을 전하면서, 이 모임에서 종교교육만이 논의된 것이 아니라 “종교의 정치화” 혹은 “종교의 정치학” (Politics of Religion)이 담론의 중심이 되었다고 합니다. 종교와 과학의 대화뿐 아니라,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소통과 대화가 학문의 토론장에 올랐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종교학을 홀로 할 것이 아니라, 정치인과 경제인에게 그 필요성을 설득하면서 공공의 장에서 시민의 이해와 참여를 구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는 이것을 “종교의 정치학”이라고 불렀습니다. (2014.7.22. 자)
종교학이 종교학자와 신학자의 서재와 강의실로부터 세상으로 나와 공공의 열린 마당에서 정치를 말하고 경제를 배우고 과학을 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교회도 변하고 사회도 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으로 나와서 공공의 열린 마당에서 사회와 소통하기 위해서는 너무도 세상의 언어를 모릅니다. 신약성경의 요한복음의 첫 마디가 “말씀이 이 세상에 성육신했다”는 말씀이 있는데, 우리 교회의 말씀은 교회 안에 갇혀있어서 그 말씀이 세상에 들리지도 않고 성육신의 행동은 더욱 없는 상태입니다. 
말씀이 이 세상에, 열린 마당에, 성육신하기 위해서는 교회가 세상의 말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세상의 말로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면, 말씀은 교회 안에서 죽게 되어있습니다. 교회의 사투리와 방언을 세상의 말로 해석하고 통역하지 못하면 아무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사투리와 방언을 없애야 합니다. 세상의 말로, 모든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해야 합니다. 그래서 설교자들과 목회자들, 특히 신학자들이 인문학과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현대어를 배워야 합니다. 
내가 신학을 하면서 배운 것은, 신약성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생애와 교훈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대단한 인문학자이며 사회과학자이면서 자연과학에 통달한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나이 12살 때 부모님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서는 단독으로 성전에 올라가 유태교 신학자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틀림없이 유태교 법전에서 읽은 문제들과 많은 질문을 가지고 대화했을 것입니다. 질문이 많은 인문학적 상상력을 가진 소년이었을 것입니다. 복음서를 읽으면 읽을수록 예수님의 문학적 상상력은 대단한 것이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은 인문학적, 사회과학적, 나아가서 자연과학적 비유로, 은유로 말씀하셨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 ‘탕자의 비유,’ ‘부자 집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배를 채우던 거지 나사로는 죽어서 천당에 가고, 이 세상에서 떵떵거리며 살던 부자는 죽어서 불타는 지옥에 갔다’는 이야기 등등의 비유와 이야기들은 신학적이라기보다는 문학적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런 것이다”하시면서 교리와 도그마로 말씀하시지 않고 문학적인 이야기로 알아듣기 쉽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대단한 사회과학자였습니다. 당시 로마제국의 정치에 대해서, 유태교 지배체제에 대해서, 그리고 착취당하는 유태 민중, 특히 유태 노동자들의 임금 문제 등에 대해서 탁월한 식견을 가지고, 어려운 경제학 강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의 이야기로 임금 문제를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청년시절, 아버지의 목수일을 도왔다고 하니,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가 깊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날씨와 시대정신과 위기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농사꾼이 밭에 나가서 씨 뿌리는 이야기, 그리고 논밭에 잡초 생기는 이야기로 하늘나라의 이치를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하나님 나라 정치를 설파했다는 이유로 예수님은 로마제국의 정치범으로 몰려 십자가형틀에 달려 피를 흘리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바울은 유태교의 교리를 해체한 해체주의자였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을 가지고 싸우는 것을 보고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내가 이상한 언어로 일만 마디의 말을 하느니보다는 차라리 내 이성으로 다섯 마디의 말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고린도전서 14:19). 그런가 하면 어거스틴은 그리스철학에 기독교를 접목하였습니다. 철학적 신학자 안셀므스는 “신앙에 이해를 더하기 위해서” 신 존재증명을 시도했습니다. 아퀴나스는 서구 기독교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도입한 신학자입니다. 종교개혁자 칼뱅과 루터는 당대의 인문학자들로서 중세 유럽의 르네상스시대의 신생대학에서 고전을 공부한 지성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결코 교회 안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아니라 세상과 소통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지적 상상력과 신앙의 열정을 겸비한 개혁자들이었습니다. 
오늘 여기 우리가 모인 것은 크리스천 후마니타스의 이름으로 반(反)지성, 반(反)사회, 반(反)역사화해가는 우리 한국의 기독교를 다시 새롭게 하고 세월호와 함께 침몰해 가는 대한민국호를 건지고 바로 세워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람이 사람답게 살게 되는 세상을 만들어 보겠다는 다짐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마가복음 2:27). 예수님의 크리스천 후마니타스 선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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