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명의 꽃다운 젊은이가 목숨을 잃었다. 육군 제28사단에서 선임 병사들의 구타와 가혹행위로 숨진 윤 모 일병이 그 주인공이다. 그의 부고를 접해듣고 그저 놀랄 뿐이다.
윤 모 일병 사망사건이 충격을 주는 이유는 먼저 적폐로만 여겨졌던 선임 병사들의 구타와 가혹행위가 보다 정교한 형태로 진화했음이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기자도 현역으로 군 복무를 했고, 그때에도 선임 병사들의 가혹행위는 횡행했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가해 병사들이 가한 폭력의 정도는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다.
이번 사건의 충격파는 가해 병사들이 윤 모 일병 사망 이후 보여준 행태로 인해 더욱 증폭됐다. 가해 병사들은 수사에 임하기 전 조직적으로 말을 맞추는가 하면 사망한 윤 모 일병의 메모를 찢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군 복무 중인 병사들의 연령대가 20대 초중반이라는 점을 감안해 본다면 이들의 행태는 경악 그 자체였다.
일반 언론에서는 가해 병사들에게 주저 없이 ‘악마’ 딱지를 붙인다. 그런데 각도를 달리해서 바라보자. 우리 사회가 이들에게 악마 딱지를 붙일 만큼 도덕적인가? 또 교회 언론의 시각에서, 이들에게 엄정한 법 집행을 촉구하기에 앞서 교회는 그 책임에서 자유로운가?
한국 교회는 젊은이들의 군 복무를 신성한 사역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이름난 대형 교회 목사들은 보수 반공 이데올로기를 복음인양 설파했고, 이들의 교의는 군 복무에 신비주의를 불어 넣었다. 이들에겐 조직 적응에 어려움을 느끼는 병사들의 눈물은 ‘요즘 젊은이’들의 나약함에 불과했다.
군, 한국 교회의 신성장 동력?
최근 들어 한국 교회는 군에 새로운 전략적 가치를 부여했다. 지난 5월 국방부 육군회관에서는 군선교 전문 사역기관인 미래군선교네트워크(대표회장 김경원 목사) 주최로 제1회 군선교사 초청 군선교세미나가 열렸다. 이날 강사로 초빙된 최윤식 한국뉴욕주립대 미래연구원장은 “한국교회의 성장동력은 멈췄고, 더구나 유초등부나 청년대학부의 교회 이탈은 생각보다 심각한 지경”이라고 운을 뗐다. 최 원장은 이어 “향후 30년 후 한국교회는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교회와 교인 수가 감소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위기 중에서도 군선교가 전략적으로 이뤄진다면 침체의 흐름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요약하면 군이 성장이 멈춰버린 한국 교회의 신성장 동력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교회가 군에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만큼 병사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권에는 무관심해 보인다. 사실 건군 이래 지금까지 군 병영 내 인권유린 사태는 대물림처럼 이어져 왔다. 그럼에도 기성 교회는 이런 일에 무감각했다. 행여 조직 적응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기독 병사(?)들에겐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련이라는 조언으로 위로하는 선에 그쳤다. 더욱 심각한 점은 장로 대통령이 젊은이들에게 잘못된 귀감을 남겼다는 사실이다. 윤 모 일병을 죽음으로 몰고 간 가해 병사들이 조직적인 증거인멸을 시도한 정황은 장로 대통령이 재임 기간 동안 비리를 은폐하기 위해 사용한 수법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기독교의 근본정신은 인간 존중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숨결을 불어 넣어 인간을 창조했다. 그렇기에 인간은 너나 할 것 없이 하나님의 숨결이 깃든 존재들이다. 이런 귀한 존재들이 계급적 위계질서에 갇혀 선임 병사의 가혹행위를 묵묵히 감내해야 하는 게 이 나라 병영문화의 민낯이다. 그리고 교회는 반성경적인 군사 문화를 기독교로 포장해왔다. 교회가 군 선교에 새로운 전략적 가치를 부여했지만 그 이면엔 한국 사회만의 특수한 상황에 내몰린 젊은이들의 나약함을 파고들어 세를 불리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교회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먼저 세를 불리려는 욕심을 과감히 버리고, 병영에 인간 존중의 가치를 심는데 앞장서야 한다. 또 북한에 대한 적대감을 공공연히 조장하고 고취하는 설교를 즉각 중단하는 한편, 분단 현실을 항구적인 평화체제로 전환시킬 성경적 메시지를 탐구하는데 매진해야 한다.
생명과 평화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윤 모 일병 사망사건도 따지고 보면 교회가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외면한데서 비롯된 비극적인 결과다. 교회가 이 두 가치를 회복할 때 이런 비극적인 일이 또 다시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