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박영돈 칼럼] 교황 방문에 즈음하여

박영돈·고려신학대학원 교의학 교수

[편집자 주]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을 앞두고 개신교계엔 환영과 두려움이 교차한다. 특히 근본주의 성향의 목사들은 벌써부터 가톨릭의 실체 운운하며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박영돈 고려신학대학원 교수는 8월 9일(토) 자신의 페이스북에 “교황방문에 즈음하여”라는 글을 남겼다. 박 교수는 이 글을 통해 한국 개신교계가 개혁대상이 됐다고 꼬집는 한편 이번 교황 방한을 계기로 교계가 각성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박 교수의 동의를 얻어 전문을 싣는다.  

교황 방문에 즈음하여 
▲박영돈 교수(고려신학대학원)
“개신교 일부에서 가톨릭을 이단시하거나 폭력적 행동을 하더라도, 그것이 개신교에 대한 가톨릭의 일치와 존중의 정신을 축소하는 것으로 이어지면 안 되겠다.”    
가톨릭 평신도 신학자 김근수 님의 글이다. 우리 개신교 신자들도 이런 너그러운 마음을 가질 수는 없을까? 진리를 수호하는 방법은 항상 편협하고 독선적이며 공격적이어야 하며 너그러움과 온유함은 진리를 타협하는 것인가? 나는 개신교 신학자로서 개혁교회의 가르침이 가톨릭 신학보다 훨씬 더 성경적이라는 믿음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을 조금도 양보할 용의가 없다. 개신교 신자들이 가톨릭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도 이런 확신과 자부심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더 온전한 진리를 소유했다는 확고한 신념과 그에 대한 열정이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는 부패성, 즉 우월의식과 교만과 정죄의식과 맞물려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형태로 표출될 수 있다는 점이 무서운 일이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진리에 대해 헌신하며 충성하는 길이라는 거룩한 명분으로 정당화되고 강화된다. 결국 진리의 이름으로 진리와 성령을 거스르는 교만한 스피릿에 사로잡혀 우리 안의 소망과 확신을 온유함과 겸손함으로 증거해야 하는 크리스천의 기본자세를 잃어버린다.      
이번 교황방문을 앞두고 개신교 일각에서 교황과 가톨릭에 대해 네거티브 공세를 펼치는 것은 부패한 정치판의 행태를 재현하는 것 같이 치졸하고 조잡하기 그지없는 행동이다. 교황의 방문이 탐탁지 않더라도 좀 잠잠히 있을 수는 없는가? 교황방문으로 가톨릭의 위상이 높아지고 상대적으로 개신교가 위축될까 위협을 느끼기 때문이라면 우리가 그만큼 자신감이 없다는 것이며 우리가 가졌다는 진리에 대한 자부심도 헛것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교황이 잠깐 방문하는 것으로 개신교가 휘청거린다면 우리가 얼마나 허약한 기반 위에 서있는지를 스스로 증명하는 꼴이 될 것이다. 개혁교회가 세워진 진리의 기초는 일개 인간인 교황의 반짝 방문으로 조금이라도 흔들릴 수 없는 견고한 것임을 우리의 여유 있고 의연한 모습을 통해 보여줄 수는 없는가? 교황을 우상시하는 것이 못마땅하다면 하나님을 신뢰하는 이들이 우상을 왜 그렇게 두려워할 필요가 있는가?       
지금 우리는 16세기 종교개혁 시와 같이, 중세 로마 가톨릭의 절대적 교권의 횡포와 핍박 속에서 겨우 움트기 시작한 개신교의 생명을 보존해야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개신교의 입장을 필사적으로 변호하고 방어해야 했던 상황에 처해있지 않다. 이미 치열한 교리논쟁은 일단락되었고 서로 입장정리가 된 바탕위에서 각자의 길을 걸어왔다. 지금은 개신교가 더 막강한 교세를 가지고 있으며 가톨릭의 공격 앞에 개신교의 서바이벌을 위해 결사적으로 투쟁해야 할 처지가 아니다.     
아직도 개신교와 가톨릭의 교리적인 간격은 해소되지 않았고 미묘한 갈등관계가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노골적인 전투가 아니라 새로운 차원의 경쟁과 견제의 시대로 진입하였다. 개신교와 가톨릭이 각자의 입장에서 끊임없는 자체개혁과 변신을 통해 서로의 전통을 얼마나 잘 꽃피워 가는가로 전투의 성과가 판가름 난다. 물론 가톨릭의 가르침에 여전히 비성경적인 부분이 많이 잔재해 있다고 본다. 나는 교황제도 자체가 비성경적이라고 본다. 그러나 면죄부를 찍어내는 등 온갖 비리와 부패로 가득했던 중세 가톨릭에 비해 오늘날의 가톨릭은 많이 쇄신되었다. 그에 반해 개신교, 특별히 한국개신교는 순수했던 종교개혁의 정신을 잘 계승하고 발전시키기보다 오히려 역행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교황방문으로 인한 개신교의 우려는 그 바탕인 종교개혁의 정신과 신앙과 경건에서 너무도 멀리 떠나온 데서 비롯된다고 본다. 지금은 한국개신교가 더 시급한 개혁의 대상이 되었으니 개혁적인 모습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교황의 방문에 지레 겁먹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지 모른다. 바른 교리를 가졌다고 하면서 횡령과 세습과 성추행과 온갖 비리에 연루되어 한국교회의 얼굴에 먹칠하는 한국교회 지도급에 있는 유명한 목사들과 청빈과 정의와 진실함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가톨릭의 수장은 너무도 달라 보인다.    
개신교 지도자들이 사람들을 선동하여 교황을 폄하하는데 열을 올리기보다 오히려 이번 계기로 스스로 각성해야 할 것이다. 더 성경적인 진리를 따른다는 자들이 더 거짓되게 살 때 아무리 바른 교리를 가졌다고 우겨도 그런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된다. 더 올바른 교리를 가졌다는 자들이 더 거짓되고 부패하게 사는 것은 하나님 앞에 더 큰 악을 범하는 것이며 진리를 죄의 라이선스로 남용하고 더럽히는 최악의 불의를 범하는 것이다. 이렇게 부패한 자들일수록 자신이 마치 진리의 수호자인 것처럼 교리적인 오류를 물고 늘어지며 문제를 부풀리고 확대하여 사람들을 선동함으로써 자신의 거짓됨과 위선을 교묘히 위장한다.   
개신교가 이 사회의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상황에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개혁하는 자성의 모습은 없이 독선과 우월의식에 사로잡혀 가톨릭과 교황에 대해 네거티브 공세를 취하는 꼴불견을 보인다면 그렇지 않아도 형편없이 망가진 개신교의 이미지는 완전히 짓밟힐 것이며 전도의 문은 더 막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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