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이 묘사하는 이순신은 지략과 용맹을 두루 갖춘 뛰어난 군인이자, 수적 열세에다가 참모들의 항명으로 인해 임무 수행조차 고민해야 하는 인간이다. 그의 감정 동선은 극과 극을 넘나든다. ⓒ영화 <명량> 스틸컷 |
2014년 여름 극장가의 최고 화제작은 <명량>이다. 이순신 장군의 기념비적 승리인 명량대첩을 스크린에 옮긴 이 작품은 8월10일(일) 기준 누적 관객수 1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1위를 질주 중이다. 이 영화의 흥행돌풍은 여러모로 주목할 가치가 있다.
먼저 소재다. 영화의 소재는 우리 역사는 물론 세계 해전사에서도 길이 남을 명승부인 명량해전이다. 사실 우리 역사는 잦은 외침의 역사였기에, 엄청난 규모의 전쟁 사극을 연출할 소재는 넘쳐난다. 더구나 삼면이 바다인 나라에서 벌어진 건곤일척의 해전은 지금 시각으로 보아도 가슴을 설레게 만든다.
영화는 해전을 재현하기 위해 남다른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왜군과 조선 수군의 전투장면은 <글래디에이터>, <브레이브 하트> 같은 헐리웃 전쟁 사극과 견줘도 손색없을 만큼 박진감 넘친다. 아직 <300: 제국의 부활>, 혹은 <캐리비안의 해적> 같은 비주얼을 기대하기는 다소 무리다. 그러나 울돌목의 거센 물살에 감정을 불어 넣은 점은 칭찬을 아끼지 않고 싶다.
영화에서 눈에 띠는 소재는 또 있다. 바로 이순신이다. 이순신은 우리 역사가 배출한 최고의 전쟁 영웅으로 추앙받아 왔다. 그래서 공중파 방송의 드라마나 역사 다큐멘터리는 그를 늘 온갖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나라를 구해낸 초인으로 그렸다. 사실 그의 신격화엔 정치적인 의도도 일정 수준 반영돼 있었다. 특히 박정희 정권은 그에게 신비주의적 아우라를 덧입히는데 남다른 공을 들여왔다. 그러나 이런 신격화는 도리어 그의 인간적인 풍모를 가리는 부작용을 낳았다.
연출자인 김한민 감독은 그동안 이순신에게 덧칠된 신비주의를 과감히 벗겨낸다. 그의 감정 동선은 극과 극을 넘나든다. <명량>이 묘사하는 이순신은 지략과 용맹을 두루 갖춘 뛰어난 군인이자, 수적 열세에다가 참모들의 항명으로 인해 임무 수행조차 고민해야 하는 한 인간이다.
타이틀 롤을 맡은 최민식은 그만의 독특한 카리스마로 ‘이순신’이란 박제에 인간미를 불어 넣는다. 울돌목 앞바다를 새까맣게 뒤덮은 왜적 함선 앞에 홀로 버티며 부하들을 독려하고, 직접 장검을 뽑아 왜적을 섬멸하는 광경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물론 전투 장면은 실제 역사와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말이다.
전장에선 용맹한 그였지만 출정을 앞뒀을 땐 불안으로 마음을 다잡지 못하는 한 인간에 불과했다. 그의 불안감은 꿈속에서 먼저 전사한 자신의 부하들을 마주치면서 극에 달한다. 특히 머리를 산발한 채 꿈과 현실을 오가는 그의 모습은 <올드보이>의 오대수와 묘하게 겹친다. 한 영화에서 강력한 카리스마를 풍기는 캐릭터와 자신이 제어할 수 없는 상황에 내몰려 불안해하는 캐릭터를 동시에 소화해 낼 수 있는 배우는 흔치 않다. 그래서 배우 최민식의 기용은 더할 나위 없는 신의 한 수다.
<명량>, 리더십 갈망하는 사회에 단비 뿌려
▲이순신이 탄 대장선이 왜적과의 격전을 치른 후 방향타를 상실해 소용돌이에 휘말려 버리고 말았다. 이에 백성들은 조그만 나룻배를 동원, 대장선을 구해낸다. ⓒ영화 <명량> 스틸컷 |
<명량>은 개봉 초반부터 무서운 속도로 선두를 질주했고, 급기야 대통령까지 관람하기에 이르렀다. 소셜 네트워크(SNS) 타임라인엔 관람 후기가 끊이지 않고 올라온다. 이런 추세라면 1천만 관객 돌파는 시간문제인 듯 보인다. 가히 신드롬으로 불릴만하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소재와 비주얼만으로 영화의 흥행 원인을 분석하기엔 어딘가 부족하다. 이 영화가 <드래곤 길들이기 2>, <군도> 등 비슷한 시기 개봉작에 비해 월등한 스크린수(1,272개)를 확보한 데 힘입은 결과라는 분석에도 선뜻 동의할 수 없다. 물론 지난 7월 <트랜스포머 4: 사라진 시대>가 스크린을 대부분을 차지하며 흥행선두를 달린 사례가 있지만, 물량공세는 일정 시점에 도달하면 한계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영화의 흥행엔 사회적 분위기가 변수로 작용한다. 송강호 주연의 <변호인>이 좋은 사례다. 80년대 대표적인 공안사건인 부림 사건을 그린 이 영화는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전해져 일천만 관객 돌파라는 기염을 토했다.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면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 전직 대통령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고, 80년대 암울했던 사회현실을 회상하며 안타까워했다. 신드롬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무엇보다 관객들은 이 영화를 통해 80년대 횡행했던 공안정국이 30년이 지난 지금 외관만 바뀌었을 뿐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생생히 느꼈다. 바로 이 대목이 신드롬을 일으키며 일천만 관객의 발걸음을 이끈 원동력이었다.
<명량>은 어떨까? 이순신은 왜적의 대공세 앞에 역부족을 느낌에도 불구하고 한 가닥 승산을 놓으려 하지 않는다. 그 한 가닥 승산이란 바로 두려움이다. 그는 아들 회에게 “승리할 수 있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다면 말이다”고 귀띔한다. 그는 왜적의 위세에 눌려 2선 후퇴한 참모들을 다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벌떼처럼 몰려드는 왜적과 온 몸으로 맞서 싸운다. 이러자 왜적은 두려움에 휩싸인다. 반면 조선 병사들은 용기백배한다. 그의 지략이 옳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아들은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병력을 핑계로 임무 수행을 거절할 수 있었고, 또한 조정이 그를 홀대했음을 생생히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들을 점잖게 타이른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건넨다.
“군인에게 있어서 기본은 충(忠)이고 그 충은 백성에게 향해야 한다. 백성이 있고서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임금이 있느니라.”
지금 한국 사회는 말 그대로 리더십 위기다. 세월호 참사, 육군 제28사단 윤 모 일병 사망사건 등 국가의 존립 기반을 뒤흔드는 대형사건이 하루가 멀다 하고 불거졌음에도 어느 누구도 책임은 지려하지 않는 지경이다. 종교지도자들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성추행, 논문표절, 공금횡령 등 온갖 범죄를 저지르고도 태연자약 거리를 활보한다. 이런 맥락에 비추어 볼 때, <명량>은 국민을 위한 리더십을 갈망하는 사회 분위기에 시원한 단비를 뿌려주는 셈이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영화에서 이순신이 탄 대장선은 왜적과의 격전을 치른 후 방향타를 상실해 소용돌이에 휘말려 버린다. 이 때 이순신 이하 전 장병들은 생의 끝을 직감한다. 바로 이 순간, 백성들이 삼삼오오 조그만 나룻배를 몰고 나와 대장선을 구해낸다. 만약 이 나라의 지도층 인사들이 비슷한 위기에 처했을 때, 국민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뛰쳐나와 이들을 구하려 할 것인가? 무엇보다 이 영화를 본 대통령이 앞서 언급한 이순신의 대사, 즉 “백성이 있고서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임금이 있느니라”는 대사를 듣고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