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북 리뷰] 기독교의 영성은 무엇인가?

『임락경의 우리 영성가 이야기』

▲『임락경의 우리 영성가 이야기』 겉표지
오늘날에는 기업에서도 영성(spirituality)의 가치를 강조하는 세미나가 심심찮게 열린다. 영성을 정서적 현상이나 정신적 영향력으로 정의하고서는 경영의 효율을 높이는 도구로 활용하려는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나 아무래도 영성을 말하자면 교회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성령의 운행과 은사를 강조하기 때문에 교회는 영성의 구체적인 현시를 증명해야 하는 책임도 있는 듯하다. 그런데 오늘날 거대한 교회가 곳곳에 들어서고 유려한 설교는 넘쳐나며 기독교서적은 날마다 다른 주제로 편찬되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교회에서 영성을 발견하지 못하겠다고 날선 비난을 해대고 있다. 그러고 보니, 영성은 외형적 수식이 아니라 참 깨달음과 그것의 실천으로만 입증할 수 있는 대상이라 여겨진다.      

한때는 교회에서 말하는 영성이 뉴에이지 운동에서 강조하는 심신수양, 정신도야 등과 등식화되기도 했다. 그 여파로 영성을 불교의 수양과 연계하거나 기독교의 경우에서도 일부 신비체험에 한정된 현상으로 오인되기도 했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물질의 앞잡이라는 암묵적인 선고가 이미 내려져 있음을 반증한다. 왜냐하면 수양과 영적 체험을 추구하는 경향은 물질에 대한 집착을 벗어나려는 노력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이러한 선고가 유효한 상황에서 임락경 목사가 집필한 『임락경의 우리 영성가 이야기』(2014 홍성사)는 자조할 수밖에 없는 한국 기독교의 현실에 대해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를 들려주는 듯하다. 아직 제대로 홍보되지 않아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현실적으로 영향력 있는 단계에 이르지는 못하고 있지만 황량한 벌판에서 듣는 먼 산으로부터의 메아리 역할은 충분히 감당할 듯하다. 그의 책 속에는 영성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는 노력이며 우리나라의 신앙 선배들의 삶 속에서 그 진지한 노력이 구현되기도 했다는 외침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책 속에서 ‘영성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정의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나라의 ‘영성가’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줄 뿐이다. 영성의 의미를 깨닫고 그 개념을 정의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듯하다. 저자가 선택한 ‘영성가’들은 한국교회사의 인물들 중에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사는 그 철저함”이 돋보이는 사람들이다. 그는 유영모, 이세종, 이현필, 최홍종 등과 몇몇 선교사들의 삶에서 그들이 철저하게 말씀을 삶 속에서 실천하려고 했음을 들려준다. 그들의 삶은 기독교의 영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사는 과정에서 빚어지며 빛을 낸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들이 현세의 안락을 극도로 절제하며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 자신의 의지로 실행하는 것이라면 불교의 수행과 다를 바 없지만, 그 지속성과 철저함은 놀라울 정도여서 그 배경에 성령의 추동이 있음을 믿을 수밖에 없게 한다. 결국 저자는 영성이 성령의 추동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게 되는 과정에서 맺게 된 결실이라 말하려고 하는 것 같다.   
‘영성가’는 성령이 활동하도록 빚어진 그릇인 것이다. 성령이 함께 하므로 그들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이세종은 자신이 가진 것으로 가난한 사람을 구제해서 늘 거지 행색으로 다녔으며, 이현필은 곤충까지 살생하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전쟁고아들을 거두었는데, 이들의 행적에는 인간의 의지나 노력을 넘어서는 차원이 느껴지는 것이다. 사도요한은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요한복음3:34). 성령을 한량없이 받은 그들은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살아갔고 그 행실을 ‘사람 앞에’ 드러나게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했다(“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5:13-16).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서 성령이 함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상태가 기독교의 영성을 포착할 수 있는 장인 것이다. 그들이 현세의 안락을 초월하는 모습은 그들이 마치 미래를 당겨서 사는 듯이, 즉 현세에서 천국을 살듯이 기쁘게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실 거기서 영성이 빛난다.      
그런데, 이 책이 영성을 다루고 있다고 해서 엄숙한 필체가 시종일관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저자의 해학과 촌철살인의 통찰력이 우리 영성가들의 삶의 의미를 친근하면서도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이도록 유도한다. 예를 들면, 저자는 어렸을 적 자신의 고향에 왔던 선교사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그리면서 “기독교인을 많이 양성한 선교사들”과 “예수를 잘 믿는 선교사들”을 구분한다. 당시에 마을 사람 절반이 먹을 수 있었던 닭 한 마리를 통째로 받아먹고, 당시 귀했던 사과를 찾아 식후에 설탕을 쳐서 먹으며, 동네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실내 버너에 불을 붙이고 프라이팬에 돼지고기를 세 점 깔아 기름을 내고, 그 기름에 빵을 구워 먹고, 계란 한 개를 익혀 이것저것 음식들과 함께 먹었던 선교사의 모습. 저자는 이 선교사의 행위가 예수 잘 믿으면 이처럼 배불리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한 사명감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꼬집는다. 저자는 이런 선교사를 “기독교인을 많이 양성한 선교사”라고 부른다. 반면에 서서평(1880-1934), 유하례(1893-1995), 고허번(1920-2003) 선교사 등은 이름 없이 이웃사랑을 실천하였는데, 그 중 서서평 선교사는 민중구제사업에 온 몸을 바치고 당시 불치병이었던 나병(한센병) 환자를 돌보았으며, 걸인들을 보면 집에 데려와 밥을 먹이고 옷을 입혀 보내서 자신은 평생 두 벌 옷을 지니지 못하고 살았다. 또한 여성을 위해 학교를 세워 교육을 받게 하고 간호협회와 부인조력회(여전도회)를 조직하여 일제에 저항하며 우리 민족과 아픔을 같이하였다. 저자는 이런 선교사들을 “예수를 잘 믿는 선교사들”이라고 부른다. 저자는 이들 선교사들의 삶의 양태의 특징적인 차이점을 그들이 십자가를 대하는 태도에서 찾는다.         
“십자가를 의지하고 살면 축복된 삶이다. 행복한 삶이다. 기도만 해도 좋은 학교, 좋은 직장, 법관, 정치인, 대통령도 되었다. 명예와 부도 따른다. 즐거운 삶이다. 십자가를 지고 가면 굶주리고, 헐벗고, 집도 없이 가난하다. 핍박도 받고 옥살이도 하고 죽기도 한다. 이들은 이름 없이 빛도 없이 한평생 섬기다 간다. 기쁘게 사는 이들이다. 십자가에 의지하고 살아가신 이들은 명예가 있어 널리 알려져 있다. 십자가를 지고 가신 이들은 이름 없이 사셨기에 널리 알려지지 않아 좀 늦었지만 꼭 알리고 싶은 분들이다.”     
‘십자가를 의지하고 사는 삶’과 ‘십자가를 지고 사는 삶’의 차이는 “기독교인을 많이 양성한 선교사들”과 “예수를 잘 믿는 선교사들”의 사례에서 분명히 구분된다. “예수를 잘 믿는 선교사들”의 우리나라 판본이 바로 저자가 직간접적으로 만난 우리의 영성가들인 것이다. 십자가를 지고서 굶주리고, 헐벗고, 집도 없이 가난했으며 핍박도 받고 옥살이도 하고 죽기도 했지만 이들은 “기쁘게 사는 이들”이었다. 이들은 비록 이름 없고 빛이 없어도 한평생 섬기다 갔다. 영성은 오히려 여기서 빛이 나는 것이다.    
저자는 이처럼 영성의 의미를 이야기를 통해 전하고 있는데 그 자신도 우리 영성가들처럼 “기쁘게 사는” 사람이다. 그의 삶의 이야기도 기독교의 영성을 드러내기에 손색이 없는 것이다. 그는 1945년 순창에서 태어나서 유등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7세에 ‘맨발의 성자’ 이현필 선생의 가르침을 받고자 동광원에 들어가 결핵환자들과 15년을 지냈다. 그 후에는 1980년부터 강원도 화천에서 농사를 지으며 장애인과 ‘안 장애인’이 섞여 사는 시골교회(집)에서 유기농 콩을 심어 된장과 간장을 만들고, 직접 꿀벌을 치며 살고 있다. 그 동안 지은 책으로는 『시골집 이야기』(홍성사), 『돌파리 잔소리』, 『촌놈 임락경의 그 시절, 그 노래, 그 사연』(이상 삼인), 『먹기 싫은 음식이 병을 고친다』(들녘), 『흥부처럼 먹어라 그래야 병 안 난다』(농민신문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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