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김명혁 목사, 24일 그레이스선교교회서 설교

김명혁 목사가 오는 24일 그레이스선교교회에서 설교를 할 예정이다. 아래는 설교문 전문. 김 목사의 동의를 얻어 싣는다.   

“믿음으로 막 뚫고 나아가는 막가파 이야기”
그레이스선교교회(2014.8.24)
성경본문
롬8:31-39, 고전15:55-58
설교문 
그레이스 선교교회는 제가 아주 좋아하고 사랑하는 교회이고 제가 제일 자주 와서 설교하는 교회인데 오늘 8월 24일 주일 여기 다시 와서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 드리면서 설교를 하게 되어서 너무 좋습니다. 제가 2012년도에 세 번 와서 설교를 했고, 2013년도에 네 번 와서 설교를 했는데, 2014년도에 세 번째로 와서 설교를 합니다. 마음이 통하고 믿음과 사랑이 통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이 저를 ‘원로 목사’ 라고 불러주어서 오늘 담임 목사님이 남미로 출타했기 때문에 ‘원로 목사’가 와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무슨 설교를 하면 좋을까 생각을 하다가 “믿음으로 막 뚫고 나아가는 막가파 이야기” 라는 제목으로 저에 대한 간증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황은혜 목사님도 좋게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최근에 재미 있고 의미 있는 글을 써서 책으로 출판하게 되었는데 그 책의 제목이 “장난꾸러기 김명혁 목사의 막가파 이야기 모음” 입니다. 이 책에는 “막가파 이야기” 16가지가 실려있고, 아프가니스탄 방글라데시 중국 연변 파키스탄 등 선교지를 돌아본 선교 여행기 6편이 실려있고, 제가 최근에 쓴 고백적인 글과 설교문 5편이 실려있습니다. 이 책이 9월 초인 다음 주에 출판하게 되는데 출판을 위해서 모든 정성을 쏟아바친 뉴스 파워의 김철영 목사님이 이 책과 저를 소개하는 긴 글을 썼는데 김철영 목사님이 쓴 글을 3분의 1로 줄여서 인용하려고 합니다.
『열 한 살 때 마음껏 주일예배를 드리고 싶어서 혈혈 단신으로 월남해 온갖 고난과 연단 속에서도 오직 예수, 오직 믿음으로 신학교에서 후학을 가르치면서, 교회를 목회한 후 은퇴 후에도 한국 교회와 우리 사회의 영적, 정신적 지도자 역할을 감당해 온 김명혁 목사가 자전적 고백을 담은 “장난꾸러기 김명혁 목사의 막가파 이야기 모음” (이레닷컴)을 펴냈다. 김명혁 목사는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면서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기질과 성격을 지니고 즐겁게 살아오면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절대 믿음과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믿음과 삶의 태도로 난관을 즐겁게 극복한 이야기들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그가 오직 신앙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남한에 내려와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고등학교 3학년 때는 토요일과 주일에 전도를 해서 교회를 개척하여 100여명의 교회로 성장시킨 이야기는 큰 감동을 준다. 김 목사는 이 책에서 한경직, 김치선, 이성봉 목사님과의 만남, 100달러만 가지고 미국 유학 길에 오른 이야기, 주일시험 반대 글을 신문에 기고했다가 중앙정보부에 끌려갔다가 거기서도 주눅들지 않고 주일설교 준비를 했던 이야기, 여권, 비자, 비행기표, 여행자수표, 카메라, 성경책, 기행문이 들어있는 가방을 도둑맞고도 당황하지 않고 ‘여유 있게’ 대처한 이야기, 방송 뉴스를 보다가 마음이 이끌려 강원도 감자 1690톤을 북한에 보내는 일을 성사시켰던 이야기, 아프카니스탄 국경을 혼자 넘어갔던 이야기 등 순교자의 피를 이어 받은 믿음의 담력으로 오직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하나님의 손에 이끌림 받은 감동과 은혜의 간증은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김 목사는 “사실 나는 너무 얌전한 것보다는 ‘장난꾸러기’를 좋아하게 되었고, 옳고 그른 것을 너무 철저하게 따지는 것보다는 ‘대강대강’ 사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나는 최근에는 의인으로 살기 보다는 차라리 ‘죄인으로’사는 것이 더 안전하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의인을 부르러 오시지 않고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 9:13). 사도 바울이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고 고백했기 때문이다(롬 5:20).” 라고 고백한다. 그는 자신과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이렇게 고백하며 이야기한다. "앞으로 내가 걸어갈 수도 있는 가난과 고난과 고통과 죽음의 음침한 골짜기도 ‘막가파’의 기질과 ‘모험심’과 ‘담력’을 지니고 ‘막 뚫고 나아가면서’ ‘즐겁고’ ‘기쁘게’ 걸어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욥이 고백한 대로 나의 가는 길을 나는 아무 것도 알 수가 없지만 나의 가는 길을 오직 주님께서 아시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나중에 울면서 고백한 대로 내가 주님을 사랑 할 수 있는지를 나는 알 수 없지만 오직 주님께서 아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므로 그리고 사도 바울을 비롯한 신앙의 선배들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므로 그리고 저들의 회개의 고백과 담력의 신앙 고백을 붙잡고 또 붙잡으므로 우리도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허락하시면 가난과 고난과 고통과 죽음의 골짜기 길도 얼마든지 당당하게 ‘기쁘고’ ‘즐겁게’ ‘막 뚫고 나아갈’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같은 고백과 권면은 김 목사의 삶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김 목사는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사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어릴 때 이별한 일과 그리고 불치의 병으로 고통을 당하다가 세상을 일찍 떠난 어린 아들 철원이를 일찍 이별한 일 때문에 많은 슬픔과 아픔을 경험했다. 그러나 그 슬픔과 아픔이 보석이 되는 것을 발견했다. 내가 경험한 슬픔과 아픔은 나로 하여금 십자가에로 조금씩 가까이 다가가게 만들었고, 슬픔과 아픔을 당하는 사람들에게로 조금씩 가까이 다가가게 만들었으며, 천국을 사모하며 가까이 다가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슬픔과 아픔까지도 아니 핍박과 죽음까지도 감사와 기쁨의 조목이 될 수가 있다." 힘들고, 지치고, 상처 받고, 좌절하며 살아가는 이 땅의 크리스천들에게 이 책은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시며, 우리를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갖고 계시며, 그 계획을 어떻게 성취해 가시는지를 기대하게 만들 것이다. 일독을 권한다.』 이것이 김철영 목사님이 다음 주에 출판할 저의 책을 읽고 쓴 글의 일부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믿음으로 막 뚫고 나아가는 막가파 이야기” 라는 제목으로 제가 하나님을 믿는 단순한 믿음으로 근심 걱정 원망 불편 두려움 없이 한 평생 여러가지 슬픔과 아픔과 고난과 장애물의 길을 “막 뚫고 나아가면서” “즐겁고” “기쁘게” 살아온 16가지 “막가파 이야기”들 중에서 처음 4가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저는 신앙의 색깔에는 어두운 색깔과 밝은 색깔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범한 죄악들을 생각하면서 슬프게 울면서 회개하는 어두운 색깔이 있고 죄 사함과 구원의 은혜와 함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도와주시는 은혜를 생각하면서 기뻐하며 찬양하는 밝은 색깔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저의 죄악 때문에 슬퍼하며 울기도 많이 했지만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혜 때문에 기뻐하며 웃기도 많이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베푸신 은혜 중의 하나는 “모험심”과 “담력”을 지니고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막 뚫고 나아가면서” “즐겁고” “기쁘게” 살게 하신 것입니다. 제가 “막가파 이야기 모음” 이란 글의 서문을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기질이 운명이고 성격이 운명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나는 한 평생 살아오는 동안 비교적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부정적인 사람들과 긍정적인 사람들이 있고, 우울하고 어두운 사람들과 즐겁고 밝은 사람들이 있으며, 융통성이 없는 꽉 막힌 사람들과 융통성이 많은 확 열린 사람들이 있는 것을 발견해오고 있다. 교회에 나와서 오랜 동안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 중에도 심지어 목회자들 중에도 두 가지 종류의 기질과 성격을 각각 지니고 계속해서 각각 그 기질과 성격대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물론 사도 바울의 경우처럼 선천적으로 위선적이고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기질과 성격을 지닌 사람들이 후천적으로 참회적이고 긍정적이고 포용적인 기질과 성격을 지니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와 같은 변화는 거의 불가능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목회자로서 안타까운 마음을 지니고 다음과 같은 말을 토해내게 되었다. "기질이 운명이고 성격이 운명이다."』 이렇게 서문을 쓴 다음 “막가파 이야기” 16 가지를 했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처음 네 가지 이야기만 요약해서 하려고 합니다. 
『첫째로, 나는 어릴 때부터 좀 심한 “장난꾸러기”로 살았다. 나는 신의주에서 한 살부터 아홉 살까지의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장난꾸러기” 노릇을 많이 했다. 나는 동네 친구들을 데리고 중국 사람들이 가꾸는 도마도 밭에 가서 주인 몰래 도마도를 따서 먹으면서 좋아하기를 여러 번 했다. 나는 동네 친구들을 데리고 신의주 제이교회 교회당 지붕과 교회당 맨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놀기도 했다. 나의 아버지가 교회의 목사님이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올라갈 수가 있었다. 교회당 맨 꼭대기에서 한참 신나게 놀다가 친구 하나가 똥이 마렵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종이 한 장을 내어 주면서 그 위에 똥을 싸라고 했다. 그 친구는 종이 위에 똥을 쌌다. 그 다음이 문제였다. 나는 똥이 담겨있는 종이를 손으로 들어서 멀리 이웃 집 지붕위로 내 던졌다. 모두들 너무 재미있어했다. 나는 이따금씩 친구들과 함께 길 거리 바닥에 조그만 구덩이를 파고 그 위에 종이와 흙을 덮어서 보이지 않게 한 다음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구덩이에 빠지면 숨어서 손뼉을 치면서 좋아하기도 했다. 좀 심한 장난을 친 것이었다. 나는 10살 11살 때 평양 제 5인민(초등)학교에 다니면서 4학년과 5학년의 소년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가 신의주 제이교회를 떠나 평양 서문밖교회의 목회자로 옮겨왔기 때문이었다. 나는 평양에 와서도 계속해서 장난을 많이 쳤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모란봉으로 대동강으로 이곳 저곳으로 놀러 다니며 짓궂은 장난을 치면서 즐거워했다. 몸을 날려서 남의 집 담장을 넘어 들어가는 기술도 익혔다. 나는 평양에 와서 신앙생활은 더욱 더 열심히 했다. 평양은 최봉석 목사님 주기철 목사님 등이 순교의 피를 흘린 곳이었고,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과 주일학교 선생님들로부터 주일성수의 신앙과 새벽기도의 신앙과 순교신앙을 물려 받았기 때문이었다. 학교에서 일요일마다 학교에 오라고 했지만 나는 일요일 날 학교에 간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결국 월요일마다 학교에서 선생님들로부터 벌을 받았고 때로는 정학까지 당했다. 그러나 나는 조금도 두려워하지도 흔들리지도 않았다. 주일성수 때문에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주일성수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12살 때 38선을 혼자서 뚫고 넘어 남쪽으로 넘어오게 되었다. 나의 “장난꾸러기” 기질과 “막가파” 기질이 다소 영향을 미쳤다고도 생각한다. 지금 돌이켜보아도 11살짜리 어린 소년이 주일 성수의 신앙을 지키기 위한 단 한 가지 이유와 목적 때문에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버지와 동생들을 북에 남겨두고 혼자서 38선을 뛰어넘은 것은 대단한 “모험심”과 “담력”의 결단이었다고 생각한다. 11살 때 혼자서 38선을 넘은 사건은 그 후 나의 한 평생의 삶의 스타일을 결정한 의미 있는 사건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이후 한 평생 현실적으로 분석하거나 계산하지 않고 근심 걱정 두려움 없이 아무 계획 없이 “모험심”과 “담력”을 지니고 “막 뚫고 나아가면서” “막가파”로 “즐겁게” 살아오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둘째로, 주소 하나 가지고 서울에 와서 이모님 집을 찾았고 그래서 이모님 집에서 살게 되었는데 부모님을 이별한 슬픔과 아픔을 지니고 밤마다 남 몰래 울면서도 나는 여전히 “장난꾸러기” 기질과 “막가파” 기질을 지니고 “즐거운” 생활을 했다. 서울시 중구청에 가서 주민 등록을 하게 되었는데 구청 직원이 내 본이 어디냐고 물었다. 나는 내 본이 어딘지 모르고 살아왔기 때문에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얼떨결에 내 본이 “남양” 이라고 대답을 했다. 나는 평양에 있을 때 남양 군도에 사는 토인들이 등장하는 만화를 아주 좋아했는데 갑자기 “남양 군도”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김해” 김씨가 아닌 “남양” 김씨로 주민등록을 하게 되었고 평생 “남양” 김씨로 살게 되었다. 나는 서울에 오자마자 방산국민학교 5학년에 입학했다. 부모 없는 외로운 아이였지만 나는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놀기도 잘 하는 행복한 아이로 자랐다. 주눅드는 일이 없었다. 친구들이 나를 아주 좋아했다. 친구들이 내가 행복한 가정에서 사는 것으로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5학년 때 반 친구 하나가 나를 놀렸다. 내가 북한 사투리를 한다고 나를 놀렸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를 데리고 학교 뒤 마당으로 가서 그 친구와 싸움을 하게 되었다. “막가파” 기질이 발동한 것이었다. 많은 친구들이 몰려와서 구경을 했다. 내가 싸워서 그 친구를 넘어뜨렸다. 내가 이겼다. 그래서 내가 더 인기를 얻게 되었다. 그것도 즐겁고 재미있는 일이었다. 서울에 와서 나에게 있어서 가장 기쁘고 즐겁고 감사한 일은 주일성수의 방해를 받지 않고 신앙생활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주일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교회에 가 있었다. 나는 방산국민학교를 다니면서 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국도극장 계림극장 대한극장 등에 들려서 “타잔” 영화나 “백 가면” 영화 등을 자주 보며 신나고 즐거운 시간들을 가지곤 하면서 “모험심”과 “담력”을 키워갔다. 서울 중학교에 들어가서도 나의 “장난꾸러기” 기질은 여전했다. 국어시간에 두 손으로 망원경을 만들어서 선생님을 노려보다가 선생님에게 불려나가서 "은진 미륵 같은 놈이 그게 무슨 짓이냐?" 라고 야단을 맞기도 했다. 
『중학교에 들어가자마자 6.25 전쟁이 일어나서 대구에 가서 3년 동안 살았는데 그 때도 신나고 재미있게 살았다. 공부도 잘하고 놀기도 잘했는데 신앙생활은 제일 열심히 했다. 학교에서도 교회에서도 친구들이 나를 아주 좋아했다. 나는 대구에 있는 동안 신앙생활을 아주 열심히 했는데 주일 아침과 저녁 그리고 수요일 저녁 예배는 물론 새벽기도를 빠진 일이 거의 없었다. 주일 날 공부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 그리고 중학생 시절 3년 동안 대구에서 몇 달에 한 번씩 이 교회 저 교회에서 열리는 이성봉 목사님의 부흥회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면서 너무나 깊은 은혜와 감동을 받았고 이성봉 목사님의 사랑과 기도를 많이 받으면서 너무너무 기쁘고 행복한 시간들을 가졌다. 금요일 철야기도를 하고 토요일 새벽 이성봉 목사님의 안수 기도를 받곤 했는데 기도 제목이 무엇이냐고 물으셨다. "좋은 목사님이 되는 것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나중에는 기도 제목을 묻지도 않으시고 "고 놈 기특하다" 라고 하시면서 좋은 목사님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주셨다.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이성봉 목사님의 회개의 메시지는 나의 삶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었고 은혜 사모의 메시지는 나의 삶을 유지하는 자양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같은 학교에 다니던 친구 하나가 운동은 잘 하면서도 공부는 하지 않고 못된 짓만 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의 어머니가 나보고 자기 아들을 잘 가르쳐달라고 부탁을 해서 잘 가르친 일이 있었다. 결국 그 친구는 공부도 잘 하게 되었고 좀 착하게 되었다. 그 친구 어머니가 나를 너무너무 좋아하면서 나보고 천사 같다는 말을 했다. 모두가 하나님의 함께 하시고 도우신 은혜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셋째로, 고등학생과 대학생 시절에는 서울에 와서 창동교회(후에는 대창교회로 이름이 바뀌어졌음)에 다녔는데 한국의 예레미야이셨고 한국교회의 기도운동과 부흥운동의 아버지셨던 김치선 목사님의 가르침과 사랑을 받으면서 기쁘고 행복하게 지냈다. 나는 주일 아침과 저녁과 수요일 저녁은 물론 새벽기도를 빠지지 않고 교회에 나와서 정성껏 예배 드리며 열심히 기도 드렸다. 나는 새벽기도를 마친 다음에 남산에 올라가서 30여분 동안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집으로 내려와서 아침 밥을 먹고 서울 고등학교를 30여분 동안 걸어서 다니곤 했다. 김치선 목사님께서 인도하시는 부흥회는 관악산이든지 삼각산이든지 어디든지 따라다녔는데 대구 주암산 부흥회까지 따라다녔다. 매년 연초 마다 3일씩 금식 기도를 하라고 하셨는데 나는 빠지지 않고 참석하곤 했다. 교회에서는 고등부 총무의 일과 주일학교 교사의 일을 했는데 주일학교 선생님들과 집사님들과 장로님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나는 고등부 총무의 일을 하면서 성탄절 때마다 교회 근처인 남대문 지하에서 노숙하는 노숙자들을 초청해서 초청 잔치를 베풀곤 했다. 김치선 목사님께서 관악산에 기도원을 지을 때 산 아래서 산 위까지 큰 돌 열두 개씩 짊어지고 나르라고 했을 때 일부 신자들은 불평을 했지만 나는 내 몫으로 열두 개를 날랐고 어머니 몫으로 열두 개를 날랐고 아버지 몫으로 열두 개를 나르기도 했다. 순종도 “막가파”식으로 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김치선 목사님을 너무너무 좋아하고 존경하고 사랑했다. 김치선 목사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영혼이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김치선 목사님은 매일 새벽마다 “성령이여 강림하사 나를 감화하시고” 찬송을 부르며 울면서 회개의 기도를 드리셨고 성령의 은혜를 간절하게 사모하셨다. 그리고 2만8천 여 동네에 가서 우물을 파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다. 2만8천 여 동네마다 교회를 세우게 해 달라는 기도였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무조건 왕십리로 갔다. 왕십리에 우물을 파기 위해서였다. “막가파” 기질이 발동했는지도 모른다. 토요일과 주일 왕십리 들판에 나가서 서울고등학교 학생의 교복을 입고 찬송을 부르면서 아이들을 불러모았다. 그리고 설교를 했다. 아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어른들도 모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는 천막을 구해다가 천막을 치고 천막교회를 시작했다. 「한양제일교회」라는 교회 간판을 달았다. 아이들 60여명과 어른들 40여명이 모였다. 내가 주일학교 설교도 하고 주일 아침 예배와 저녁 예배의 설교도 했다. 고등학생이 시작한 보잘것없는 천막 개척교회였다. 그런데 어떤 젊은 엄마 교인이 이런 말을 했다. “우리 한양제일 교회가 제일 좋아요.” 내가 주일 오후 동네에 나가서 전도를 하곤 했는데 어떤 교인이 내가 천사같이 보였다고 말했다. 기분이 아주 좋았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현실적으로 분석하거나 계산하지 않고 근심 걱정 없이 계획 없이 목사님의 말씀만 순종하고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면서 “모험심”과 “담력”을 지니고 “막 뚫고 나아가면서” “막가파”로 교회를 개척하고 철없는 목회를 2년 동안 했다고 생각한다. 사실 고 3때는 공부에 미쳐야 하는데 나에게 있어서 공부는 둘째 셋째였고 신앙생활과 전도 생활이 첫째였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서울대학교에 무난히 합격했다. 대학교 1학년 때도 왕십리에서 전도와 목회를 계속했다.』  
『넷째로, 나는 대학생 시절 군대에 가서 군 생활을 했는데 군대 생활도 “막가파”의 기질을 지니고 “즐겁고” “기쁘게” 했다. 군 생활이 힘 들어서 군대에 가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논산에서 훈련을 받을 때 밧줄을 타고 높은 곳을 올라갔다가 내려오고 밧줄을 타고 타잔처럼 공중으로 날아가는 훈련이 있었는데 그것이 너무나 재미가 있어서, 어떤 사람들은 무서워서 몰래 빠지려고 하는 데, 나는 한 번 하고 다시 돌아와서 두 번씩 하곤 했다. 총 쏘는 것도 너무 좋아서 다시 돌아와서 두 번씩 총을 쏘곤 했다. 총알이 위로 날아가는데 엎드려서 기어가는 포복 훈련도 재미가 있었고 수류탄 던지는 일도 재미가 있었다. 결국 나는 논산에서 훈련 받는 것도 그리고 7 사단에 가서 군 생활을 하는 것도 “즐겁고” “기쁘게” 했다. 이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하는 것은 군법에 저촉되는 것이지만 조용히 한다. 7 사단에서 군 생활을 하는 동안 사병들이 즐거워하는 시간 중의 하나는 저녁에 누군가가 부대 밖으로 나가서 동네 가게에서 과자와 빵을 사가지고 와서 함께 먹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사병들은 저녁에 부대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장교만이 나갈 수가 있었다. 나는 가까이 지내던 군종 장교에게 장교님 군복과 모자를 좀 빌려달라고 했다. 그 군종 장교는 나처럼 장난끼가 있는 장교여서 나에게 군복과 모자를 빌려주었다. 나는 장교의 군복을 입고 모자를 쓰고 부대 밖으로 나가서 맛있는 것들을 사 가지고 들어오곤 했다. 부대를 지키고 있는 사병들이 나에게 깍듯이 경례를 하면 나는 모자를 눌러 쓰고 점잖게 답례를 하곤 했다. 좀 지나친 “장난꾸러기” 행위였지만 아주 재미가 있었다. 군에서 있었던 재미 있는 이야기는 여기서 줄인다.
『나는 대학생 시절 4. 19 이후 사회가 혼란할 때 서울대 문리대 학생들을 중심으로 "새 생활 운동"을 일으킨 일이 있었다. 그 때 손봉호, 김상복, 이형기 친구들과 함께 검소하고 바르게 살자고 하는 "새 생활 운동"을 일으킨 것이었다. 서울대 문리대 학생 수백 명이 한 달 동안 아침부터 저녁까지 서울 시내와 외곽 지역의 다방과 극장과 요정과 댄스 홀 등을 찾아 다니면서 커피와 양담배를 마시거나 피우지 말자고 호소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며 커피를 마시지 않겠다고 말했고 양담배를 건네 주면서 피지 않겠다고 응답했다. 요정이나 댄스 홀 출입을 삼가자고 호소했을 때 부끄러워하면서 거부하는 반응을 나타내 보이지는 않았다. 국회의원들은 불법으로 타고 다니는 자동차를 타지 말자고 호소했다. 국회 앞으로 가서 국회의원들의 불법 자동차들을 강제로 빼앗아 시청 앞에 수 십대를 모아놓기도 했다. 행인들로부터 수거한 양담배 더미를 광화문 네 거리까지 메고 가서 거기 쌓아놓고 불 태우며 애국가를 부르기도 했다. 순수한 마음과 “막가 파”의 기질을 지니고 “막 뚫고 나아갈 때” 어려워 보이는 일도 아주 잘 되는 것을 우리는 눈으로 목격을 한 것이었다.』 
그 다음 12가지 이야기는 아주 간단간단히 줄여서 소개합니다. 『다섯째로, 나는 12년 동안의 미국 유학 생활도 “막가파”의 기질을 지니고 “즐겁고” “기쁘게” 했다. 나는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혜로 훼이스 신학교와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와 예일대학교 신학원과 아이오와 대학교와 아퀴니스 신학원에서 공부하면서 신학사, 신학석사, 신학석사, 철학박사 등의 학위를 아무런 어려움 없이 받게 되었고 예일대학교 신학원을 졸업할 때는 상장과 함께 상금까지 받게 되었다. 여섯째로, 나는 12년 동안의 미국 유학생활을 하면서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 즉 노동을 했는데 노동하는 것도 힘들고 귀찮게 생각하면 힘들고 귀찮지만 재미 있고 즐겁게 생각하면 “재미 있고” “즐거웠다.” 마루 청소, 화장실 청소, 인쇄소 일, 도금 공장의 일, 접시 닦기, 판매원 일, 페인트 칠하기, 정원 가꾸기 등등 여러 가지 일들을 했는데 “막가파”의 기질을 지니고 적극적으로 접근하면 모든 길이 열리는 것을 발견했다. 일곱째로, 내가 십 일년 동안 미국에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세 개의 학위와 함께 박사 학위까지 받았는데 그 후에 내가 어디에 가서 무슨 일을 하여야 할지를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 걱정도 하지 않았다. 나는 1974년 가을 귀국하여 후암교회의 교육목사로 목회 사역을 하면서 나의 젊은 정열을 다 쏟아 부었고 1975년 봄부터 총신에서 강사로 그 후에는 조교수로 부교수로 5년 동안 교회사와 선교학을 강의하는 교수 사역을 겸하게 되었다. 여덟째로, 내가 1974년 가을에 귀국해서 목회와 교수 사역에 전념하고 있을 때 주일성수 문제에 부딪혔다. 나는 정부 방침에 반대하면서 크리스천신문에 정부 방침을 비판하는 글을 실었다. 결국 나는 1977년 11월 20일 아침 남산 중앙정보부의 지하실로 붙잡혀 가서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심문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단 한 번도 불안하거나 두려워한 일이 없었다. 오히려 심문하는 두 사람을 책망하기도 했고 충고하기도 하고 권면하기도 했다. 아홉째로, 도둑맞는 일도 유익하고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행을 하면서 두 번 도둑을 맞고도 걱정이나 당황을 하지 않았다. 1983년 7월 20일 아침 암스텔담에서 열린 빌리 그래함 국제전도대회를 마치고 미국과 캐나다를 향해서 떠나려고 하던 때 암스텔담 기차역에서 2인조 도둑에 의해서 조그만 손가방을 도둑맞았다. 여권, 비자, 비행기표, 여행자수표, 카메라, 성경책, 기행문이 들어있는 가방을 도둑맞았다. 나는 순간 놀랐지만 당황하거나 걱정하지는 않았다. 하루 이틀 안에 거의 모든 것을 다시 만들 수 있었다. 열째로, 하와이 바람 산에서 내가 하늘을 날려고 했던 이야기를 한다. 나는 한평생 하늘을 날아가는 꿈을 꾸면서 살아오고 있는데 하와이의 바람 산에 올라갔는데 바람이 아주 강하게 불어왔다. 그런데 꿈도 아닌데 내가 정말 하늘을 날려고 했던 일도 있었다. 나는 정말 “영 몰라 통 몰라”이고 “막가파”인 것 같다. 
『열 한째로, 이태리 베니스에서 마피아 일당에게 붙잡혀 갔다가 도망쳐 나온 일도 재미 있는 일이었다. 그 때 쓴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을 그대로 인용한다. “우리는 일층으로 빨리 내려와서 바닷가를 향해서 죽을 힘을 다해 도망을 쳤다. 바닷가에 배가 있었다. 우리는 배 삯을 주고 배를 타고 베니스까지 무사히 돌아 올 수가 있었다. 약간 두렵기도 했지만 스릴 만점인 도망침이었다. ‘막가파’의 기질을 지니고 ‘막 달려갈 때’ 길이 잘 열리는 것을 또 다시 발견한 것이었다. 모든 경험은 유익하고 재미 있다.” 열 두째로, 우리가 1988년 봄과 여름 평생 처음과 마지막으로 학교와 교회로부터 “안식년”을 얻어서 8개월 동안 미국 휘튼 대학교 빌리 그래함 쎈터에 가서 “안식년”을 지낸 일이 있었는데 그 때 아무 준비도 없이 갔지만 좋은 집 한 채를 무료로 얻어서 살게 되었고 헌 자동차를 무료로 얻어서 사용하면서 연구도 하고 한인세계선교대회 준비하는 일도 하고 아프리카 부르키나 파소에 가서 우물 15개 이상 파 주기도 하면서 즐겁고 유익하게 지냈다. 열 셋째로, 내가 1999년 1월 19일부터 26일까지 북한을 방문했을 때 “소신껏” 말하고 “소신껏” 행동한 일들도 의미 있는 일이었다. 내가 가는 곳마다 말을 많이 하고 비판도 많이 하고 질문도 많이 하니까 나를 반동적인 요주의 인물로 간주하는 것같이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북 조선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런 말을 한다고 했다. 열 넷째로, 내가 2005년 12월 15일 밤 아프간 쿤두즈 무라취드에 세워준 학교 준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1,400만원 상당의 선물 보따리를 가지고 꽉 막힌 타직 국경과 아프간 국경을 “막가파”의 기질과 “모험심”과 “담력”의 기질을 지니고 “막 뚫고” 들어간 일이 있었는데 너무 멋지고 감사하고 즐거운 일이었다. 열 다섯째로, 2010년 8월 27일 5개 종단의 대표들 9명이 25톤의 대형 트럭 13대가 실은 밀가루 300톤을 가지고 북한 개성으로 달려 갈 때도 정부의 폐쇄정책을 강력하고 비판하면서 “막가파”의 기질과 “모험심”과 “담력”의 기질을 지니고 “막 뚫고” 달려갔다고 생각한다. 열 여섯째로, 내가 북한 동포 돕는 일을 계속해서 해 오는 동안 잊을 수 없는 한가지는 1997년 3월 31일 강원도 평창에서 1,690톤의 감자를 사서 99대의 대형 트럭에 실어 4월 3일 인천에서 선적하여 북한으로 보낸 일이었는데 그것도 “막가파”의 기질이 발동해서 이루어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열 일곱째로, 앞으로 내가 걸어갈 수도 있는 가난과 고난과 고통과 죽음의 음침한 골짜기도 “막가파”의 기질과 “모험심”과 “담력”을 지니고 “막 뚫고 나아가면서” “즐겁고” “기쁘게” 걸어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저는 저의 “막가파 이야기 모음”을 다음과 같이 마무리 했습니다. 
『우리가 한 평생을 살아 가는 동안 여러 가지 불행한 일들을 만나게도 된다. 병에 걸리는 일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일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일찍 죽는 일도 있다. 가난과 고난과 고통과 죽음을 당하는 일도 있다. 우리는 그럴 때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절망하며 원망하게도 된다. 그러나 성경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한다. 욥의 인내를 배우라고 말씀한다(약5:11). 모든 염려를 다 하나님께 맡기라고 말씀한다(벧전5:7).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고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고 분부한다(시37:5,55:22). 주님을 인해서 핍박을 받는 것이 기쁘고 즐거운 일이라고 말씀한다(마5:11,12). 나는 사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어릴 때 이별한 일과 그리고 불치의 병으로 고통을 당하다가 4살 때 세상을 떠난 어린 아들 철원이를 일찍 이별한 일 때문에 많은 슬픔과 아픔을 경험했다. 그러나 그 슬픔과 아픔이 보석이 되는 것을 발견했다. 슬픔과 아픔까지도 아니 핍박과 죽음까지도 감사와 기쁨의 조목이 될 수가 있다. 그래서 성 프랜시스는 살았을 때는 “가난은 나의 애처이고 고난은 나의 스승” 이란 고백을 했고 죽을 때는 “나의 자매 죽음이여!” 라는 고백을 했다. 손양원 목사님도 꼭 같은 길을 걸으며 꼭 같은 고백을 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베푸시는 망극하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를 죄인 중의 괴수인 나에게 베푸신다면 나도 주님과 누군가를 위해서 가난과 고난과 고통과 죽음의 음침한 골짜기도 “막가파”의 기질과 “모험심”과 “담력”을 지니고 “막 뚫고 나아가면서” “즐겁고” “기쁘게” 걸어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어지이다 아멘”(딤전1:15,17).』
이것으로 “믿음으로 막 뚫고 나아가는 막가파 이야기”를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과 저에게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아무것도 염려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하고 싶은 마음을 지니고 “사망아 네까짓 것이 무엇이냐?” 라고 외치면서 “모험심”과 “담력”을 지니고 “막가파”의 기질을 지니고 당당하게 뚫고 나아가는 멋지고 아름다운 십자가의 삶을 살다가 십자가의 죽음을 죽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저와 여러분들도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이나 세상의 유행을 사랑하지도 따르지도 말고 오직 십자가의 주님만 사랑하고 따르면서 살아가십시다. 성경말씀 두 곳을 읽으면서 설교를 마무리합니다. “말세에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다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돌아서라"(딤후3: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2:15-17). 그레이스교회 성도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축복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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