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데스크시선] 분노를 권하는 교회

8월24일(일) 저녁 6시경 명동 한복판에서 해프닝이 벌어졌다. 어느 과자 가게에서 한 아가씨가 나오자 뒤이어 중년의 남자가 뛰어나오며 그 아가씨에게 폭언을 퍼붓고는 밀가루를 던졌다. 이 일은 그 아가씨가 과자를 사러 가게에 들어갔다가 흥정을 하던 중 과자를 묶음으로 살 필요가 없어서 가게를 나오자 벌어졌다. 그 아가씨는 미국 생활을 오래해서 우리말이 좀 서툴렀던 듯하다. 나중에 경찰이 와서 중재를 했고 그 남성이 사과를 하는 것으로 그 해프닝은 일단락이 되었다. 이 일을 접하면서 우리 사회의 분노지수가 매우 높음을 느낄 수 있었다. 타인에 대한 배려는 기대할 수 없고 자신을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만드는 일이나 사람에 대해서는 여지없이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는 일이 자주 일어나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온라인리서치패널이 조사한 국민의 슬픔 및 분노지수는 83.8%에 이른다. 돈이 최고의 가치인 경제체제, 정쟁으로 사안의 본질을 호도하는 정치권,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제도 등이 전방위적으로 국민들에게 분노를 가르치고 있는 형국이다. 

국민들의 분노를 자극하는 요인은 또 있다. 요즘 들어 대형교회들이 일간지 광고를 통해서 입장표명을 하는 사례가 부쩍 늘면서 교회에 대한 사회의 비판적 시선이 이제 조롱과 백안시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올해 들어서 눈에 띄는 광고들만으로도 강남순복음교회 부채처리 문제(동아일보 5월3일), 인천순복음교회 C 목사의 세월호 관련 조언(국민일보 7월30일), ‘건강한 교회를 음해하는 세력들’에 대한 명성교회의 경고(기독교연합신문 8월15일), 그리고 사랑의교회가 교회내 갱신위와의 공방을 수차례 공개적으로 주고받은 것 등이 있다. 교회의 분쟁이 언론을 통해서 재생산됨으로써 교회는 가뜩이나 분노에 차 있는 사회에 대해 분노의 완충지대 역할은커녕 오히려 그 분노를 부추기고 있는 상태에 있다. 그 광고들이 교인들의 헌금으로 게시되었다고 생각하면, 교회는 복음을 위한 기관이라기보다 지도부의 권력과 명예를 위해 투쟁하는 이익단체로 전락했다는 인상을 준다.  
특히 명성교회 장로회와 남녀선교회 및 교우들의 명의로 게시된 최근의 경고성 광고는 압권이다. 그 광고는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악의적 행태, 단호히 대처”라는 부제를 내걸고 최근 명성교회와 관련된 발언을 한 언론과 개인을 ‘건강한 교회’를 폄훼하는 세력들로 간주한 뒤 “민ㆍ형사상의 책임을 묻는 등 ... 이들 세력이 혹 기독교를 표방한 안티세력과 이단 사이비 집단과 연계된 것은 아닌지 주시”하겠다는 경고를 발령했다. 단호히 대처하겠다는 부제와, “악의적 행태”를 사회법을 이용하여 척결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그 세력을 종교적으로 재단하겠다는 상세한 지침 속에 그들의 분노를 잔뜩 충전시켜놓고 있다. 그들도 사회의 분노지수에 영향을 받아 “오직 주님을 향한 믿음으로”라는 그들의 고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잊어버린 듯하다.      
“오직 주님을 향한 믿음으로”는 복음을 실천하는 투철한 마음가짐을 반영하는 말인데, 그 이후에 이어지는 광고 문구들 속에는 복음정신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의 주님은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마태5:38-42)라고 가르치고 있다. 설혹 억울하더라도 그 억울함을 인내하며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그분을 향한 믿음이 상대방을 제압하고 척결하겠다는 의기투합으로 공표되고 있으니 그들의 ‘주님’은 누구인지 궁금하다. 이러니 사회는 교회가 복음과 다른 행태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거나 조롱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복음이 미련한 것인 이유는 억울해도 주님을 바라보며 인내하는 모순을 신앙생활의 요체로 삼기 때문이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악한 세력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겠다는 결의를 신문지상에서 공표하고 있으므로 이제는 “빛의 아들들”이 “이 세대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게 여겨진다. 만일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누가16:8)는 말씀을 역전시키게 한 배경에 교회가 가진 돈과 권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이런 경고를 발령할 수 있었을까? 정말 세속적으로 미미한 교회가 재정적인 출혈을 감수하면서 이러한 경고를 발령했다면 그 진지성을 인지할 수는 있어도 초대형교회가 이런 경고를 공개적으로 발령하는 것은 그 교회에 복음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 따름이다. 자신들의 명예를 실추시켰으니 금력과 권력을 동원해서 악의적인 “이 세대의 아들들”을 진압해버리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기 때문에 이런 행태는 “[여호와의 전에 풍요의 신들인] 바알과 아세라와 하늘의 일월성신을 위하여 만든 모든 그릇들”(왕하23:4)이 자리잡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러면 ‘언제 악의 세력에 대해 대적하느냐?’ ‘악을 두고 보라는 말이냐?’는 이의가 제기될 수 있다. 교회가 표방하는 복음의 정신에 따르면, 대적하기 위해 나서는 경우는, 내가 약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해서 악의 세력에 대항해야 하는 경우이다. 지금처럼 금권과 권력을 배경에 두고 악한 세력을 척결하겠다고 운운하는 것은 십자군 전쟁을 하겠다는 발상밖에 안 된다. 오늘날 한국의 보수교회들은 복음정신에 투철히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면서 진보가 너무 정치적인 발언만 내세운다고 비판한다. 복음주의를 표방한다면 적어도 복음이 자신의 희생을 실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또한 스스로 실천해야 하지 않는가? 설혹 알려진 내용이 조작된 것이었다 한들 믿음의 인내를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 복음정신을 실천하는 길이지 않는가? 나를 불편하게 하는 단체나 개인을 적으로 규정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죄하려고 하기 이전에 굴욕을 인내하며 하나님이 신원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증명하려고 결의하는 것이 복음정신에 투철한 일인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입장표명을 빌미로 일간지에 광고를 게시함으로써 교회의 분노를 유통시키며 사회의 분노지수를 높이려할 것이 아니라 억울해도 견디며 사랑의 궁극적 승리를 믿는 모습을 견지함으로써 그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는다는 사실을 증명하려는 일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 만일 광고를 게시한 일이 무지한 성도들의 오판 때문에 저질러진 일이라고 변명할 양이면 한 집단의 영성이 우두머리의 영성대로 형성된다는 말의 의미를 되새겨야 할 것이다. 이제 교회는 밀가루를 던지며 분노를 비산시키는 국민들의 행동을 탓하기 전에 그들을 분노로 내몬 현실 속에서 교회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탓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회가 스스로 국민들에게 분노를 권하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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