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대중문화 에세이] 반쪽짜리 감정이입 능력 유감

뮤지컬 배우 이산 씨의 막말 논란 단상

▲영화 <대부>의 한 장면. ⓒ영화 스틸컷

뛰어난 배우들은 감정이입 능력이 탁월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콜린 퍼스는 <킹스 스피치>에서 뛰어난 리더십을 지녔음에도 말 더듬증으로 왕위 계승을 부담스러워하는 조지 6세의 내면을 연기해 냈다. 마이클 파스밴더는 <노예 12년>에서 악질 백인 농장주 에드윈 앱스 역을 맡아 신들린 듯 연기를 보여준다. 그의 연기는 보는 이로 하여금 과거 미국 남부의 백인 농장주들이 흑인 노예들을 어떻게 다뤘는지 대리체험을 하게 해준다. 특히 그가 흑인 여자노예 팻시를 범하는 장면은 그의 연기의 백미다. 그는 이 장면을 연기할 때 자신의 배역에 몰입한 나머지 실신했다는 후문이다. 

한편 <대부>, <지옥의 묵시록>의 대배우 말론 브란도는 그야말로 명불허전이다. 특히 걸작 <대부>의 타이틀 롤 비토 콜레오네 역을 맡아 보여준 연기는 말 그대로 연기의 교과서다. 사실 이 작품에서 비토의 출연 분량은 알 파치노가 분한 마이클 콜레오네보다 적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등장하는 장면마다 특유의 아우라를 풍기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지옥의 묵시록>도 마찬가지다. 그가 맡은 배역은 커츠 대령. 커츠는 혁혁한 공을 세운 전쟁영웅이었으나 어느 날 베트남의 깊은 정글로 잠적해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한다. 이에 군 당국은 윌라드 대위(마틴 쉰)에게 커츠의 암살을 지시한다.   
그가 출연하는 지점은 영화의 마지막 몇 분이다. 카메라는 커츠의 몸 전체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어둠 속에서 얼굴이 비추일 듯 말 듯 할 뿐이다. 커츠는 선문답 같은 말로 자객 윌라드의 내면을 뒤흔든다. 이 대목에서 배우 말론 브란도와 커츠의 경계선은 사라져 버린다. 말하자면 커츠 대령이란 가상의 캐릭터는 말론 브란도라는 화신을 입고 생명력을 얻은 셈이다.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들은 때론 숨 막히는 연기대결을 펼치기도 한다. 대배우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는 마이클 만 감독의 1995년작 <히트>에서 각각 경찰 빈센트 한나와 은행강도 닐 맥컬리로 출연해 연기력을 뽐낸다. 두 사람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걸작 <대부Ⅱ>에 출연한 적이 있었지만 한 프레임에서 직접 만난 적은 없었다. 최고의 연기파 배우로 꼽히는 두 사람의 만남은 이 작품이 처음이다. 
빈센트 한나는 범죄와의 전쟁에서 선봉을 자처하는 경찰관이다. 반면 너무 일에 몰두한 나머지 가정은 파탄 일보직전이다. 한편 닐 맥컬리는 어둠의 세계에서 맏형임을 자처한다. 언젠가는 은행 강도 일에서 손 털고 아름다운 연인과 행복하게 지낼 날을 꿈꾼다. 그러나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선 자신을 옭죄는 빈센트 한나의 수사망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그래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복수라도 하듯 치열한 접전을 벌인다.  
스토리의 얼개는 얼핏 평범한 갱스터 무비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이런 이야기에 생명력을 불어 넣어주는 건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의 빼어난 연기다. 영화의 끄트머리에서 닐과 빈센트가 두 손을 맞잡는 장면은 두 배우가 왜 그토록 칭송을 받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뛰어난 연기력이 때론 독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자신의 배역에 몰입한 나머지 작품을 마쳤음에도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지 못해 혼란을 겪기 때문이다. 배트맨 리부트 시리즈 <다크나이트>에서 타이틀 롤 배트맨/브루스 웨인 역을 맡았던 크리스천 베일은 시사회가 임박한 시점에서 자신의 누이와 모친을 폭행한 사실이 불거져 곤욕을 치렀다. 그는 이로 인해 연기생명까지 위태로운 지경에 몰렸다. 같은 작품에서 악역 조커를 연기했던 히스 레저는 약물 과용으로 사망해 그를 아끼는 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두 경우 모두 작품에 몰입한 데 따른 결과였다.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은 더욱 참담한 경우다. 그는 지난 2월 급작스럽게 타계했다. 사인은 마약중독. <미션 임파서블 3>, <사중주>, <다우트>, <헝거 게임: 캐칭 파이어> 등 출연하는 작품마다 선과 악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연기력의 깊이를 보여준 그였다. 그가 마약에 손을 댄 이유는 쉽게 추측이 가능하다.
ⓒ이산 페이스북 캡쳐

배우 이산, 인간성으로도 함량 미달 
최근 뮤지컬 배우로 알려진 이산 씨가 격렬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무엇보다 그가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물은 눈을 의심하게 한다. 그는 세월호 특별법 입법을 촉구하며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 중인 ‘유민아빠’ 김영오 씨의 단식 농성장에서 사진을 찍은 뒤 “유민 아빠라는 자야, 그냥 단식하다 죽어라. 그게 당신이 딸을 진정 사랑하는 것이고 전혀 ‘정치적 프로파간다’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는 ‘유일한’ 길이다. 죽어라”는 글을 남겼다. 

그의 막말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교황에게는 ‘이제야 사람대접 받는 거 같다!!!’ 대통령의 위로엔 ‘너 같으면 잠이와?!’ 결론내렸다. 유가족들 사람대접 않기로”라고 적기도 했다. 그의 욕설은 선배 연기자를 향해서도 거침이 없었다. 그런데 그는 현 대통령의 아버지인 고 박정희 대통령을 무척 존경하는 것 같아 보인다. 그는 고 박 대통령의 영정 앞에서 사진을 찍은 뒤 “성지순례 했다”는 글을 남겼으니 말이다. 
그는 대한민국의 시민이고, 그래서 어느 대통령을 존경하든 그건 자유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로 아이를 잃은 부모에게 막말을 퍼부은 행위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 특히 그는 배우다. 보는 이의 내면에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선 따스한 온기가 필요하다. 자신의 배역에 몰입해 또 다른 자신으로 충분히 감정이입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앞서 언급한 대배우들은 이런 감정이입에 능했던 연기자들이었다. 배우란 자가 참사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40일 넘게 단식을 한, 아이 잃은 아빠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고 막말을 했다면 이미 배우로서 자격 상실이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못하는 모습이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영오 씨에게 먼저 사과를 요구했다. “제가 투표한 정치적 신념의 지도자가 전 국민이 보는 TV로 능욕되는 장면을 본 투표권자로서의 모멸감에 대해 사과하라”는 것이다. 아무리 좋게 보아도 그의 감정이입 능력은 반쪽짜리다. 이런 인성을 가진 배우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하루빨리 제대로 된 인성교육 기관에 위탁해 일그러진 심성부터 바로 잡아줘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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