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가 최고로 여기는 미덕은 단연 ‘순종’이다. 목사들은 교회 크기와 관계없이 신도들에게 순종의 미덕을 공공연히 설파한다. 신도들 사이에서도 자발적으로 목사들의 영적 권위를 인정하고, 순종하려는 경향이 농후하다. 이런 경향은 세속의 정치권력에 대한 순종으로까지 확장된다. 단, 세속 권력에의 순종은 보수정권에 한해 선택적으로 이뤄지는 일이지만 말이다.
성직자들은 특별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께 인생을 맡긴 사람들이다. 따라서 평신도로 신앙생활을 영위할 때 성직자들의 권면을 따라야 함은 성도의 의무이다. 그런데 문제는 성직자들이 자신들의 권위를 잘못 사용했을 때이다. 목사들이 설교권을 남용해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성도들을 거명해 공격하거나,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여성도를 성추행하거나, 교회 공금을 횡령했을 때에도 성도들이 이들의 권위에 순종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한국교회엔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편견이 만연해 있다. 따라서 목회자가 성추행을 저질러도, 아내가 아닌 여성과 불륜을 저질러도, 교회 공금을 빼돌려도 성도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들을 비호하고 나서는 경우가 흔하다. 과연 이런 일들이 하나님의 뜻에 합한 것일까? 과연 성경은 이런 일에 대해 어떻게 증거하고 있을까?
마태복음 21장 23절부터 32절은 예수와 대제사장들과 원로 사이에 오고간 논쟁을 기록해 놓고 있다. 이 대목에서 예수와 대제사장·원로들은 ‘권위’를 놓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인다. 먼저 시비를 건 쪽은 대제사장과 원로들이다. 이들은 예수가 성전에서 가르치고 있을 때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들을 합니까? 누가 이런 권한을 주었습니까?”라고 묻는다. 예수께서는 답변 대신 “나도 한 가지 물어보겠다.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 일을 하는지 말하겠다. 요한은 누구에게서 권한을 받아 세례를 베풀었느냐? 하늘이 준 것이냐? 사람이 준 것이냐?”는 질문으로 되받아 친다.
궁극의 권위를 깨우친 예수
이러자 대제사장들과 원로들은 혼란에 빠진다. 만약 하늘이 줬다고 답하면 예수로부터 “왜 그를 믿지 않았느냐?”고 공격당할 것이고, 사람이 줬다고 답하면 군중이 들고 일어 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에 이들은 “모르겠다”고 답했다. 이러자 예수는 자신도 답하지 않겠다고 한다. 논쟁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예수는 재차 문제를 제기한다.
“또 이런 것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을 두었는데 먼저 맏아들에게 가서 ‘얘야, 너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여라’하고 일렀다. 맏아들은 처음에는 싫다고 하였지만 나중에 뉘우치고 일하러 갔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에게 가서도 같은 말을 하였다. 둘째 아들은 가겠다는 대답만 하고 가지는 않았다. 이 둘 중에 아버지의 뜻을 받든 아들은 누구이겠느냐?” (마태복음 21:28~31, 공동번역)
답은 쉬웠다. 대제사장들과 원로들도 쉽게 맏아들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들을 향해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발한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있다.” (마태복음 21:31, 공동번역)
예수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창기와 세리가 대제사장들과 원로보다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요한이 너희를 찾아와서 올바른 길을 가르쳐줄 때에” 세리와 창기는 그의 말을 믿었지만 대제사장과 원로들은 “그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치지 않고 그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예수의 경고 메시지는 사회적 지위를 비교해 볼 때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대제사장과 원로는 지배계급이었던 반면 세리와 창기는 사회에서도 천시당하는 약자였다. 즉, 한 쪽은 권위를 행사하는 쪽이었던데 비해 다른 한 쪽은 권위에 순종해야 하는 처지였다는 말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약자의 손을 들어줬다. 세리와 창기들이 세속의 그것이 아닌 궁극적인 권위, 즉 하나님께 순종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대목은 21세기 한국 교회의 신도들이 어떤 권위에 순종해야 하는지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성직자에 대한 순종은 성도의 미덕이다. 그러나 이런 미덕은 성직자들이 자신의 사명을 제대로 행했을 때에만 한정될 뿐이다. 만약 성직자들이 자신의 직위를 잘못 사용했다면,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에게 범죄를 저질렀다면, 이는 하나님의 권위를 거스른 것이고 따라서 성도의 순종 의무 역시 사라져 버린다.
최근 한국교회를 들여다보면 영적 권위를 상실한 목사들이 많이 눈에 띤다. 심지어 몇몇은 사회법정에 구속돼 실형을 선고받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너무나도 당당하다. “반공의 보루인 교회를 탄압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법집행을 가로막는가 하면, 시련 운운하면서 옥살이 와중에서도 버젓이 목회활동(?)을 계속하기도 한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일은 성도들이 순종의 미덕을 내세워 이들을 비호하고 나서는 광경이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하자. 목사에 대한 무조건적인 순종은 결코 성경적이지 않으며, 성도가 순종해야 할 궁극적인 권위는 목사가 아닌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