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와 묵상] 국수가 먹고 싶다

이인기 목사(반포소망교회)

국수가 먹고 싶다

                                                                                                                                              이상국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

삶의 모서리에서 마음을 다치고

길거리에 나서면

고향 장거리 길로

소 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 싶다

세상은 큰 잔칫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마음의 문들은 닫히고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눈물 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들과

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

시인(1946- )은 "사는 일"의 일상적인 틀을 벗어나고 싶어 한다. 물론, 근원적인 일탈이나 파격을 의도하고 있지는 않다. 마치 늘 밥을 먹다가 가끔 국수가 먹고 싶을 때가 있는 것처럼 관행적인 일상 속에 "때로는" 기분전환을 하고 싶은 욕구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비록 밥과 국수가 친숙하게 들리기는 해도, 밥 대신 국수를 먹으려는 의도에는 "사는 일"의 진부하고 무력한 관행에 생명력을 부여하고 싶은 소망도 실려 있다. 이를 암시하기 위해 그는 그 국수를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로 한정한다. 어머니는 생명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생명력이 "사는 일"의 동력이자 토대인 반면에, "사는 일"은 지속적이어서 관행을 만들어내고 그 스스로를 형식화한다. 그 일의 일상성이 틀을 만들고 그 틀이 다시 일상이 되는 무한회귀의 과정을 따른다.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 기계와 같다. 그 과정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시인은 물렸다. 그래서 "때로는" 그 과정의 생명성을 확인하려는 욕구에 자극을 받는다. 그 욕구는 일상성의 편안한 옷을 벗고 불편하게도 "허름한" 환경에로의 진입을 시도하게 한다. "때로는"은 비일상성의 순간, 즉 일상성의 단절을 가리키므로 엄중한 결단조차 암시한다. 그 비일상적인 환경이 "어머니 같은 여자가 [국수를] 끓여주는" 자리이다.

특히, "삶의 모서리에서 마음을 다치고[도]" 일상적 관행에 휩쓸려 그 마음조차 추스를 수 없을 때는 그 관행의 지배를 벗어나 "길거리로 나서[서]" 자신의 상처에 공감해줄 사람을 찾게 된다. 그 마음은 "고향 장거리 길로/ 소 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의 마음이다. 가족 같은 소를 팔고 돌아오는 사람의 마음이 일상적일 수 없듯이 그 허전함은 "삶의 모서리에서" 다친 상처를 연상시킨다. 그렇게 상처가 있는 사람은 울고 싶다. 그 울음은 일차적으로 자기가 자신과 공감하는 표시이다. 그 공감이 상처를 회복시키므로, "울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 "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는 것은 그들이 서로의 처지를 공감하며 함께 울고자 하는 의중을 알린다. 그들에게서 바로 자기의 모습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세상은 일상적인 관행 아래 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모든 일이 활기차게 움직이는 "큰 잔칫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그 관행의 관성이 지배하는 일상에서는 사람들의 "마음의 문들은 닫히고" 만다. 그러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저녁은 "울고 싶은 사람들"의 시간이다. 그들에게 "어둠"이 마치 허기처럼 닥칠 때 그들의 "눈물 자국 때문에/ [그들은]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들"이 된다. "눈물 자국 때문에" 그들이 "울고 싶은 사람들"이었음이 훤히 드러났기에 "삶의 모서리에서 마음을 다[쳤던]" 화자는 그들과 "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 상처받은 사람들끼리는 비록 서로 말하지는 않더라도 따뜻한 공감의 유대를 이루게 된다.

상처가 비일상성을 암시하는 대로 "허름한 식당에서,"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에 관행적인 일상의 진행은 중지된다. 눈물이 그러한 중지의 표시다. 눈물이 일상의 형식적 이면을 걷어내고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게]" 만들었으므로 함께 운 사람은 서로 진심 어린 위로를 나누게 된다. 진심은 이처럼 상처에 대한 공감을 토대로 형성된다. 이 동병상련(同病相憐)은 서로에 대한 연민에 그치지 않고 서로에게 치유의 효과를 발휘한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로마서 12:15)고 권면했다. 우는 자들과, 심지어 즐거워하는 자들과도 공감할 수 있게 되는 순간은 서로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때이다. 그때 서로의 마음의 상처와 인생의 허기를 확인하게 되기 때문에 그렇게 진실이 상통하는 순간에 서로에게 생명력이 공급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어머니가 되어 국수를 끓여줌으로써 슬픔이 즐거움이 되는 순간이다.

이러한 공감의 본보기는 하나님께서 먼저 보이셨다. 그것의 최고의 증거는 그분이 인간이 되신 일이다. 그분은 "삶의 모서리에서 마음을 다[친]" 자가 되었고 그런 인간을 대신하여 죽으셨다. 그분은 죄가 죽음의 고통을 초래하는 사실을 체험하심으로써 그러한 존재론적인 상처 때문에 우는 인간을 치유하셨다. 그로써 십자가의 식탁에서 인간과 "따뜻한 국수"를 먹으셨다. 그 일이 "상처 입은 치유자"(a wounded healer)의 면모이다. 그분은 우리와 함께 울고 웃으셨다. 이는 화자가 "삶의 모서리에서 마음을 다[쳤기에]" 세상의 일상적 관행 아래서 "울고 싶은 사람들," 즉 "속히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들"과 "따뜻한" 순간을 공유하고 싶었던 마음과 평행적이다. 그 마음에 공감한다면 우리도 하나님이 죄 때문에 고통스럽게 죽으셨음을 인식하고 우리의 죄성을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그분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길이다. 그 길에서 우리는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따뜻한 국수"를 먹는 사람들은 눈물을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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