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고발성 책 『숨바꼭질』 책임 편집자 이진오 목사(더함공동체)를 본지 사무실에서 만났다. ⓒ사진=지유석 기자 |
“우리시대 스타목사 전병욱은 목사라는 권위와 교회라는 조직 뒤에 숨어버렸다. 삼일교회 당회와 성도들은 신앙과 순종 뒤에 숨었다. 합동총회와 평양노회는 교회법과 동료 목사의 의리를 내세우며 시종일관 모르쇠로 숨어있다. 그러난 사이 전목사는 홍대새교회를 개척하고 교회와 교인을 방패삼아 완전히 숨었다. 그렇게 모두 숨바꼭질을 하는 동안 피해자들은 술래가 되어 거리를 헤매지만, 오히려 주변의 손가락질과 질책에 섬겨왔던 교회에서도 또 세상에서 꼭꼭 숨어 버려야 했다.”
- 『숨바꼭질』 머리말 중에서.
전병욱 전 삼일교회 담임목사의 성범죄, 그리고 회개 없는 교회개척을 다룬 『숨바꼭질』이 세간의 화제다. 이 책은 첫 장부터 독자들로 하여금 길을 잃게 만든다.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다. 한국 교회 차세대 목회자이자 저술가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전 목사가 저지른 성범죄가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수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의 목적이 비단 전 목사의 범죄를 악의적으로 발가벗기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사실 이 책은 단순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전 목사의 성범죄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서 전 목사에게 정당한 징계를 내리도록 하자는 목적이었다. 이 아이디어의 근원은 이진오 더함공동체 목사다.
이 목사는 2012년 6월 포털 네이버에 카페 '전병욱 목사 진실을 공개합니다(cafe.naver.com/antijeon)'를 개설하고 전 목사의 성추행 행각을 꾸준히 고발해 왔다. 사실 『숨바꼭질』 출간은 그간 이 목사가 벌였던 활동의 연장선상에 있다.
"처음부터 전 목사 사건에 개입하려 했던 건 아니었다. 그보다 목회활동을 통해 '건강한 작은 교회'의 비전을 구현하려 했다. 전 목사의 범죄와 관련된 소식은 2010년 초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 교회개혁실천연대(이하 실천연대) 등 기독교 시민단체 몇몇이 이미 개입하고 있었다. 또 당시 지역교회 목회를 시작했던 즈음이라 여의치 않았다.
▲전병욱 전 삼일교회 담임목사의 성범죄 행각과 그 이후의 처신 등에 목사로서 "큰 부끄러움을 느꼈다"는 이진오 목사는 전 목사 사건에 개입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사진=지유석 기자 |
2년 뒤인 2012년 5월 전 목사가 홍대새교회를 개척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깜짝 놀랐다. 많은 사람들이 전 목사의 성추행 행각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척에 나섰다는 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던 차 삼일교회 집사들 몇몇이 찾아왔다. 이들은 교회 게시판에 공동요청문을 올려 전 목사의 과거 행적에 대한 진실을 요구했던 그룹들이었다. 이들이 내게 녹취록을 건네줬다. 전 목사가 피해자와 통화한 내용이 담긴 것이었다. 이 녹취록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녹취록에서 전 목사는 피해 여성도를 오히려 다그쳤다. 반면 피해자는 전 목사에게 읍소하고 있었다. 목사로서 부끄럽기만 했다. 교회를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금요 저녁기도회에서 폭탄선언을 했다. 목회를 못하더라도 이 문제에 매달려야 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아예 전 목사 사건에 대해 몰랐다면 어쩔수 없지만, 이미 알게 된 이상 수수방관만 할 수는 없었다. 바로 다음 주 월요일 카페를 개설했다."
이 목사는 카페를 개설하고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드러나지 않은 전 목사의 성추행 사례를 수집하는 한편 전 목사가 개척한 홍대새교회를 찾아가 전 목사의 저술을 반납하는 퍼포먼스도 벌였다. 또 홍대새교회 앞에서 그의 회개를 기원하는 금식 및 촛불기도회를 열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소속 교단인 예장합동 총회와 평양노회를 찾아 그에 대한 징계를 촉구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2년의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러나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물론 의미 있는 성과가 아주 없지 않았다. 무엇보다 자신의 수치를 숨겨야 했던 피해자들이 하나 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차츰 전 목사 문제가 이대로 묻혀서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작 징계권을 가진 평양노회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전 목사는 이틈을 타 야금야금 세를 불려 나갔다. 이 목사는 평양노회에 아쉬운 감정을 드러냈다.
"카페 개설 후 삼일교회 안에서 교회 갱신을 외쳤던 집사들이 큰 용기를 얻었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해줄 통로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숨죽이던 피해자들도 적극 협력하고 나섰다. 카페 개설 후 1~2개월 지나 피해자들이 먼저 연락을 취해 왔다. 책임 있게 활동한다면 적극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이후 피해 여성도들은 여성으로서 큰 수치를 당했음에도 용기를 내어 자신의 일을 고백했다. 한편 카페가 중심이 돼 공동대책위가 결성되는 한편, 홍대새교회가 삼일교회 성도를 흡수하려는 움직임을 차단했다.
제일 난감했던 쪽은 평양노회였다. 평양노회는 목사 임명권뿐만 아니라 치리권도 갖고 있다. 그런데 이런 노회가 모르쇠로 일관하니까 힘이 들었다. 예장 합동 총회를 세 번, 노회를 여섯 번 찾아갔다. 그리고 삼일교회 성도들이 먼저 면직 청원을 제기했다. 그러다가 삼일교회에서 신임 송태근 목사가 부임하면서 교회가 면직을 청원했다. 피해자들까지 자신의 사연을 적어 협력의사를 밝혔다. 그럼에도 노회는 '절차가 잘못됐다', 혹은 '당사자가 아니다'는 이유를 들어 번번이 거절했다. 전 목사에게 정당한 징계가 취해지도록 백방으로 애썼는데 할 수 있는게 없었다. 당혹스러웠다."
『숨바꼭질』, 노회 압박용 카드!
▲장로교에서 목사의 치리권은 노회에 속한다. 때문에 전병욱 목사가 속한 노회야말로 해당 목사의 징계 유무를 결정하는 주요 기관이다. 이에 이 목사는 전 목사가 속한 예장합동 평양노회에 줄기차게 전 목사의 징계를 요구해왔다. ⓒ사진=지유석 기자 |
이 목사는 주저 앉지 않았다. 노회를 더욱 강하게 압박할 방안을 고심했다. 이 책 『숨바꼭질』은 바로 이런 고민의 산물이었다.
"노회에 사회적 압력을 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회가 전 목사 징계를 자꾸 미루면 미룰수록 사회에 누가 된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했다는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여전히 삼일교회 성도들도 전 담임목사가 무슨 범죄를 저질렀는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어깨를 만졌다, 가벼운 실수다, 심지어 피해 여성도들이 유혹했다는 식의 정보가 여전히 유통되고 있다. 한 마디로 편한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범죄상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법이다. 제대로 된 정보를 통해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아줘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책을 내기로 결정했다."
약 1년 가까운 작업을 통해 『숨바꼭질』이 세상에 나왔다. 우여곡절도 있었다. 처음 출판하기로 약속한 출판사가 내부 사정을 이유로 출판을 꺼렸다. 다행히 대장간 출판사에서 흔쾌히 출판을 맡아줬다. 그러나 세상에 나오기 직전, 그리고 나오고 난 직후까지 이 책이 미칠 파급효과에 대해선 전망이 다소 엇갈렸다. 그러다가 한 일간지에 책 내용이 소개되면서 사회적으로 반향이 일기 시작했다. 『숨바꼭질』은 한 온라인 도서판매 사이트에서 종교부문 베스트 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그럼에도 평양노회는 꿈쩍하지 않는 모양새다. 노회 고위 관계자는 "정식으로 안건이 상정되면 다루겠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그러나 노회 안팎에서는 이번 노회에서도 '전 목사 면직건이 다뤄지지 않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에 대해 이 목사는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이 목사는 교회 갱신을 위한 노력은 주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 까지 이뤄져야 하는 사명이라고 강조한다.
▲전병욱 목사의 홍대새교회 개척 소식을 전해들은 이진오 목사가 홍대새교회를 찾아 전 목사가 쓴 책들을 반납하는 ‘책 반납 시위’를 하고 있는 장면. ⓒ사진=지유석 기자 |
▲전병욱 목사의 홍대새교회 개척 소식을 전해들은 이진오 목사가 홍대새교회를 찾아 전 목사가 쓴 책들을 반납하는 ‘책 반납 시위’를 하고 있는 장면. ⓒ사진=지유석 기자 |
"1998년과 99년 즈음부터 기독교 사회단체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14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접한 일의 내막을 알고도 어떻게 교회를 다닐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국 교회의 상황은 심각하다.
그러나 지속성, 그리고 운동성은 영성이요 신앙이다. 하나님은 살아 계신 분이다. 만약 세상적 가치를 위한 일이었다면 진즉에 그만뒀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은 포기할 수 없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집이기 때문이다. 만약 교회 사정을 몰랐다면 모르겠다. 그러나 아는 상황이라면 교회는 개혁돼야 한다. 포기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 교회 개혁은 주님계서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돼야 한다. 믿음은 그 원동력이다. 이 모든 과정이 영성이라고 본다.
노회의 처사는 여전히 상식 밖이다. 올해 초 노회가 홍대새교회의 가입신청 안건이 상정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황스러웠다.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었다. 징계는 살림이 목적이다. 즉, 회개할 기회를 주고 참된 신자됨으로 인도하는 과정이란 말이다. 그런데 노회는 주체적으로 징계권을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홍대새교회 가입을 안건으로 올리려 했다.
지난 봄 노회에서 노회장이 교체됐다. 현 노회장은 정당한 절차를 거쳐 면직안이 상정되면 가을 노회에서 다루겠노라고 약속했다. 이번에 삼일교회에서도 당회와 시찰회를 거쳐 면직건을 올린 것으로 안다. 이번 정기 노회에서는 다루리라고 본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노회원들이 미온적으로 인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최소한 사실관계 조사는 해볼 수 있지 않은가? 앞으로도 계속 이 책 『숨바꼭질』을 통해 일정한 사회적 압력을 행사해 나갈 것이다."
* 예장합동 평양노회는 13일(월), 14일(화) 양일간 서울 영등포에 위치한 은석교회(담임목사 김진웅)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