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경동] 믿음의 본질

박종화 목사 ㅣ 2009년 1월 25일


성경본문

열왕기하 5:9-14

나아만은 군마와 병거를 거느리고 와서, 엘리사의 집 문 앞에 멈추어 섰다. 엘리사는 사환을 시켜서 나아만에게, 요단 강으로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면, 장군의 몸이 다시 깨끗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나아만은 이 말을 듣고 화가 나서 발길을 돌렸다. “적어도, 엘리사가 직접 나와서 정중히 나를 맞이하고, 주 그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상처 위에 직접 안수하여, 나병을 고쳐 주어야 도리가 아닌가? 다마스쿠스에 있는 아마나 강이나 바르발 강이, 이스라엘에 있는 강물보다 좋지 않다는 말이냐? 강에서 씻으려면, 거기에서 씻으면 될 것 아닌가? 우리 나라의 강물에서는 씻기지 않기라도 한다는 말이냐?” 하고 불평하였다. 그렇게 불평을 하고 나서, 나아만은 발길을 돌이켜, 분을 참지 못하며 떠나갔다. 그러나 부하들이 그에게 가까이 와서 말하였다. “장군님, 그 예언자가 이보다 더한 일을 하라고 하였다면, 하지 않으셨겠습니까? 다만 몸이나 씻으시라는데, 그러면 깨끗해진다는데, 그것쯤 못할 까닭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리하여 나아만은 하나님의 사람이 시킨 대로, 요단 강으로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었다. 그러자 그의 살결이 어린 아이의 살결처럼 새 살로 돌아와, 깨끗하게 나았다. 아멘.

로마서 1:16-17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이 복음은 유대 사람을 비롯하여 그리스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모든 믿는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복음 속에 나타납니다. 이 일은 오로지 믿음에 근거하여 일어납니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한 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한 것과 같습니다. 아멘.

마태복음서 8:5-13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다가와서, 그에게 간청하여 말하였다. “주님, 내 종이 중풍으로 집에 누워서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가서 고쳐 주마.” 백부장이 대답하였다. “주님, 나는 주님을 내 집으로 모셔들일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마디 말씀만 해주십시오. 그러면 내 종이 나을 것입니다. 나도 상관을 모시는 사람이고, 내 밑에도 병사들이 있어서, 내가 이 사람더러 가라고 하면 가고, 저 사람더러 오라고 하면 옵니다. 또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고 하면 합니다.”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놀랍게 여기셔서,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지금까지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서 아무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동과 서에서 와서, 하늘 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잔치 자리에 앉을 것이다. 그러나 이 나라의 시민들은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서, 거기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가거라, 네가 믿은 대로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바로 그 시각에 그 종이 나았다. 아멘.

 
설교문  
 
찬양감사합니다.
오늘 설날을 앞두고 이렇게 예배를 드리면서 여러분의 마음속에 제가 읽을 수 있는 대목이 하나 있습니다. 잘 말씀들 안 하시지만 우리 오늘은 한번 크게 생각하고 크게 이야기해봅시다. “하나님 복 좀 주세요.” 그 심정이시죠? 경동교회도 복 받아야 하고 교인들도 복을 받으셔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복 받는 이야기 드리려고 합니다.

오늘 성경말씀에 두 군데서 복 받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는 열왕기하에서 읽은 시리아의 장군 나아만의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마태복음서에 있는 로마의 중대장쯤 되는 백부장 이야기입니다. 백 명을 지휘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우리 용어로 백부장인데 당시로 보면 아마 연대장쯤 되지 않았나 생각이 됩니다. 두 사람 다 사령관의 이야기입니다. 그 분들이 병이 낫는 이야기, 그 분들이 지휘하는 부하 한 사람이 낫는 이야기입니다. 병자에게 가장 큰 복은 나음을 받는 것입니다.

먼저 나아만 장군이야기 한 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나아만이라는 분은 시리아의 군 사령관입니다. 시리아는 이스라엘 당시에 우리나라와 중국과의 관계와 비슷해서 항상 시리아의 눈치를 보고 살았고 시리아의 군 사령관은 이스라엘로 보면 거대한 큰 나라의 장군이었기 때문에 늘 권위가 있었고 이스라엘 백성들 눈에 나아만 장군은 자신들을 침략하고 자신들에게 조공을 바치게 하고, 자신들을 못 살게 군, 그러나 엄청난 대국의 군 사령관이었습니다.

이 분이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근데 이분이 이스라엘을 침략을 해서 점령을 한 다음에 다시 승전가를 부르면서 고향인 시리아로 돌아오면서 젊은 여자애 하나를 종으로 데려왔습니다. 문둥병에 걸린 주인한테 이 데리고 온 여종이 충고를 합니다. 잘 고치는 명의가 있는데 그 분의 이름은 엘리사라고 하는 이스라엘의 선지자인데 그 분한테 가서 병 고침을 받을 수 있답니다. 그 데려온 여종의 이야기를 듣고, 성경말씀을 보면 나아만 장군이 엄청난 돈을 가지고 엘리사에게 갑니다. 10달란트, 금 6000개, 옷 10벌을 가지고 엘리사에게 갑니다. 이 돈이 얼마나 큰 돈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 달란트가 보통 노동자의 1년간 연봉 총액입니다. 거기다가 금6천개라고 개수만 나와 있지 가격은 잘 모르겠습니다. 옷도 10벌.

엘리사 집에 도착을 했는데 엘리사가 나와 보지도 않고 자기 종을 보내서 옆에 있는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면 나을 거라고 합니다. 이 군 사령관 나아만은 처음부터 기분이 나빴습니다. 대국의 군 사령관이 왔는데 아무리 명의로서니 나와 보지도 않고 종을 통해 가지고 일곱 번 씻으라고 합니다. 신분에 대한 생각이 제일 먼저 났을 겁니다. 그래서 기분이 나빠서 돌아갑니다. 돌아가면서 하는 말은 숨어있는 이야기입니다. “강에서 씻을 거면 우리 시리아의 수도 다메섹에 있는 강도 많은데 왜 조그마한 이스라엘 강에서 씻어야 하느냐? 강에서 씻을 거면 내 나라에 가서 씻겠다. 그리고 이 나라의 명의는 나와 보지도 않고 종을 통해서 처방만 내리고 나보고 씻으라고 한다.” 기분이 나빠서 가려고 하는데 다시 종이 말합니다. “씻는 게 무슨 돈 드는 일 아니지 않습니까? 씻어 보시지요.” 그래서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었더니 다 나았습니다.

이 이야기가 오늘 열왕기하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다 읽지 못했습니다만 뒤에 본문에 보면 너무 고마워서 자기가 가지고 온 선물을 엘리사에게 드리려고 했더니 엘리야가 하는 말입니다. “나는 돈 받고 고치는 의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고쳤을 뿐입니다.” 하고 돌려보냈더니 엘리사의 비서관인 게하시가 마중을 하고 따라 나가면서 돈에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자기 친구가 아프다고 변명을 하고 한 달란트 옷 한 벌만 주십시오, 그랬더니 나아만 장군이 친구 몫, 당신 몫이라고 하면서 두 달란트 주고 옷도 두 벌 줍니다. 그래서 돈을 받아왔습니다. 이 사실을 나중에 엘리사가 알고 비서관 게하시를 혼냅니다. 결국 게하시는 엘리사에게 거짓말을 했죠. 나아만 장군에게 갔다 왔지만 갔다 온 일 없다고 하고, 뇌물을 받았지만 받은 일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 엘리사가 비서관 게하시에게 하는 말입니다. “거짓말 하는 사람은 혼나야 한다.” 그래서 게하시가 나아만이 걸렸던 문둥병을 얻고 병자가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오늘 열왕기하 이야기입니다.

마태복음 이야기로 가겠습니다. 이제 상황은 바뀌어서 시리아 사령관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로마제국의 한 부대의 부대장입니다. 백부장이란 분이 예수님한테 왔습니다. 와서 예수님한테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제가 병 걸린 게 아니고 제가 지휘하는 군인 부하 중에 한 사람이 중풍병에 걸렸는데 듣자하니 당신께서 말씀하시면 제 부하가 살 것 같습니다.” 자세한 설명은 없습니다만 중풍병 걸린 부하를 둔 지휘관 심정이 어땠을까요? 자기가 병 걸린 것보다 훨씬 어려웠을 겁니다. 지휘하기도 어렵고, 그리고 병사가 나아야 군대가 편할 겁니다. 그랬더니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내가 부대로 가겠소.” 엘리사는 온 사람도 마중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는 훨씬 낮은 계급의 백부장이 본인 이야기도 아니고 자기가 지휘하는 병사 이야길 하는데도 예수께서는 내가 가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마 여기에 백부장이 굉장히 감동했을 겁니다. 그런데 백부장이 말합니다. “오실 필요 없습니다. 한 말씀만 하시지요.” 그래서 예수께서 “네 믿음이 그대를 구했노라.” 하고 말씀하신 순간, 백부장의 병사인 사람의 중풍병이 다 나았습니다.

이 두 이야기를 통해서 복 받을 이야기를 생각해 봅니다. 혹시 질병에 시달리시면 하나님께 간구하십시오. 그러면 질병은 낫습니다. 병이 나은 것은 두 경우 다 똑같습니다. 그러나 돈을 주고 질병을 낳게 할 수는 없습니다. 마음의 질병도 돈을 주고 살 수는 없습니다. 이사야서 55:1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목마른 사람들은 다 내게로 오십시오. 돈 내지 말고 포도주와 젖을 사십시오. 질병에 걸린 사람들은 나한테 다 오십시오. 돈 주고 건강을 사지 못하고 돈 주고 축복을 사지 못합니다. 그냥 가져가십시오.” 엘리사가 나아만 장군한테 하시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것이었을 겁니다. “나한테 가져온 선물 때문에 질병 낫는 게 아니라 나는 질병을 고치는 이 능력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는데 이 능력은 내가 은혜로 받았으므로 이 능력을 그냥 드립니다. 돈 받고 병 고치지는 않겠습니다.” 예수님 말씀도 그렇습니다. “내가 가서 고칠 수 있다고 그랬지만 당신이 가지 말라고 그러니까 가지는 않겠으나 나는 믿음을 보고 질병을 고친다.” 믿음 이야기를 했습니다. 백부장이 아마 고마워서 선물을 줬을 겁니다. 헌물도 헌금도 줬을지 모릅니다.

저는 나아만 장군의 이야기, 또 백부장의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가 진심으로 받을 복은 자기가 아픈 것, 배고픈 것, 고통스러운 것, 있는 것을 다 고해야 합니다. 고하지 않은 채 복받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구체적으로 무슨 복을 원하는 겁니까? 하나님이 뭘 해주길 원합니까? 이 말씀의 진실 속에는 하나님은 문둥병 걸린 장군의 이야기, 중풍병 걸린 부하를 둔 백부장의 이야기 속에서 하나님은 진실을 원하십니다. 있는 그대로 고해 바칩시다. 이것이 복 받는 첫째 비결입니다. 하나님이 진실로 말하는지 몰라서가 아닙니다. 그러면 어느 경우든 하나님께서는 주십니다. 두 번째, 하나님은 은혜를 받은 사람이 혹시 헌금을 바치면 하나님은 고마워하실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뇌물은 받지 않습니다. 오늘 여기 보면 나아만은 사실은 문둥병 고치는 것을 사고 싶었습니다. 상품처럼요. 하나님의 은혜를 돈 주고 살 수 있다면 은혜는 이미 물건 아닙니까? 상품 아닙니까? 제가 다스릴 수 있고 제가 관여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은혜는 상품이 아닙니다. 물건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냥 은혜입니다. 값없이 주시는 은혜입니다. 뭘로 삽니까? 믿음으로만 산답니다.

오늘 예수의 이야기도 보면 로마 백부장 이야기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에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말씀만 하옵소서. 저도 특별히 살 생각이 없습니다. 말씀만 하옵소서.’ 예수님의 답입니다. ‘믿음이 구했다.’ 저와 우리는 은혜를 받으면, 축복을 받으면, 우리는 감사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하는 방법은 여러분이 알아서 판단하십시오.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물건을 파는 게 아니고 다 은혜를 받은 다음에 하나님은 감사를 원하실 뿐입니다. 감사를 원하시는 하나님이 오늘 우리보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나한테 축복을 살 생각을 하지 마라. 미리 무언가를 갖다 주고 나한테 축복 살 생각 하지 말고 그냥 믿고 나에게 의지하면, 그리고 감사하면 나한테 감사하여라.

하나님은 감사를 원하셨지 그 다음에 파는 걸 원하시지 않으십니다. 복을 받고 싶으십니까? 여러분의 믿음과 은혜와 찬양을 드릴 수 있는데 그것이 감사여야지, 그것이 사는 수단이면 안 됩니다. 제가 별로 안 좋은 이야기 하나 드리려고 합니다. 음식점에 가면, 팁을 줘야 되지 않습니까? 누가 그러더라고요. 미리 줘야 한다고. 그래서 팁을 미리 줍니다. 미리 줘서 좀 잘 얻어먹는 것 같아요. 근데 나쁜 맘 같기도 한데 다 끝나고 나서 맛도 없는데 주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미리주고 잘 먹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미리 줍니다. 이 때 주는 팁은 감사라기보다, 저는 보통 감사는 미리하는데, 감사라기보다 제 계산 속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제가 미리 팁을 드리고 ‘하나님, 저 은혜 좀 더 받읍시다.’ 이것은 하나님 방식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하나님 방식은 그냥 주시는 은혜를 간구하는 대로 받고 감사하면 감사를 바칩시다. 하나님의 은혜는 돈으로 살 수가 없습니다.

최근에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선서를 했습니다. 이분이 늘 얘기하는 중에 자기는 링컨을 닮고 싶다고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오늘 두 군인 이야기가 나오는데, 링컨이 남북전쟁 때 북군에 승리했다는 기도의 이야기가 지금도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습니다. 한 번 인용해 보겠습니다. 분명히 링컨은 남북전쟁에서 승리하기를 원했습니다. 최고의 군사령관이시죠. 자기 휘하의 장군들과 참모회의를 하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북군의 승리가 중요한 게 아니고 노예도 해방해야 되겠고 그래야 미국 전체가 살겠는데 하나님, 우리 승리하게 해 주십시오.” 같이 기도를 했습니다. 마지막 부분은 부하, 장군들이 한 게 아니라 본인이 했는데 이런 기도입니다. “하나님, 하나님 보고 제가 우리 편이 되어 달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편이 되게 해 주십시오.” 이 기도는 유명한 기도로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전장에 나가서 “하나님, 우리 편 돼서 이기게 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는 게 당연한데 오히려 “제가 하나님 편이 되겠습니다.” 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이 링컨의 기도가 신학의 이야기, 교회 설교 이야기, 또 일반 윤리의 이야기 속에 굉장히 전설처럼 우리한테 나와 있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드리면서 오바마 대통령도 이런 선서를 했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놓고 선서를 했고, 우리 모두도 새해에 이런 선서하기를 바랍니다. 은혜를 주신 하나님이 내 편이 되기를 바라면 제가 하나님의 은혜를, 하나님의 은총을 내 것으로 삼고 싶은 것이 제 소원입니다. 그렇게 기도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제가 사는 것과 같습니다. 거꾸로 제가 축복받기 위해서는 하나님 것을 제 소유물로 삼기보다 제가 하나님의 은혜의 바다 속에 풍덩 빠지겠습니다. 하나님은 저만의 하나님이 아니고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만민을 다 구원하시려는 그 은총 속에 제가 동참하게 해 주십시오. 저는 그래야 하나님이 들으실 것 같습니다. ‘모든 분들을 위한 사랑과 구원 속에 제가 어떻게 하면 공헌하여 저도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그 말이 옳지, 제 생각과 제 사고방식이 나쁨에도 불구하고 저를 좀 정당화시켜 주십시오, 하고 기도를 하게 되면 의로우신 하나님이 들으실 것 같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복 받는 방법 단 하나입니다.

“하나님, 저에게 오셔서 하나님이 지평이 되어 주십시오. 제 판단 모든 것은 제가 중심이지만 하나님이 오셔서 저를 정당화시켜주시고 제 편을 들어주시고 제 모든 일상을 주관해 주십시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모시고 살겠습니다. 이 기도보다는, 제가 은혜를 받겠지만 하나님의 은혜 속에 매일매일 거하게 해 주십시오. 제가 하나님 속에 들어가서 그 속에서 일하겠습니다.” 아마 이런 기도를 링컨이 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오늘 새해를 맞아서 복 받고 싶은 우리 모두, 진실로 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고 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은혜 속에 한 번 들어가 보십시다. 하나님을 내 편 삼기보다 내가 하나님 편 되겠다고 결단하고 하나님께 드립시다. 그것이 감사입니다. 많이 받았다고 지불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가겠습니다. 하나님이 주관해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은혜 속에 제가 들어가겠습니다.’ 하고 사는 것이 감사입니다. 예수님 말씀은 “그것이 믿음이다.” 하셨습니다.

그러면, 제가 “하나님께 들어가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감사하잖습니까? 감사를 어떻게 표현합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사랑이라면, 하나님의 사랑을 풍족하게 받았는데 그 사랑에 제가 어떻게 감사합니까?” 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러 갔더니 하나님 말씀입니다. “은혜는 값없이 베풀어 주었으므로, 내 사랑을 값없이 베풀어 주었으므로, 나한테 감사하고 싶으면” 예수님을 통해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어려운 네 이웃을 사랑하라. 나한테 진실로 감사할 게 있으면 내가 필요 없는 감사를 내가 받을 수가 없다. 돈으로 줘도 물건으로 줘도 나는 받을 수 없다. 받았으면 하나님 사랑을 이웃 사랑으로 갚아라.”

진실로 복 받고 싶으시면, 하나님께서 주신 복에 감사하고 싶으시면, 감사하는 만큼 하나님의 아들과 딸인 힘들고 어려운 이웃을 사랑합시다. 이웃을 도웁시다.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은 이웃을 위한 사랑이고, 저 자신을 위한 사랑이고, 모두를 위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방식은 축복은 가볍게 주는데 감사는 이웃사랑으로 표출하는 것입니다. 우리 한 해 동안 복 많이 받으십시다. 많이 받는데 하나님의 사랑 속에 들어가고, 그리고 감사하고 싶으시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수많은 사람들, 울부짖는 사람들,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감사로 되갚는 일, 이것이 축복받는 유일한 비결입니다.

나아만 장군이 축복을 받을 때, 요단강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백부장의 부하인 사람이 중풍병을 나을 때, 로마 백부장한테는 가버나움 갈릴리 바다가 있었습니다. 백부장의 종은 목욕은 안 했지만 말씀으로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요단강이 있었습니다. 요단강, 가버나움, 이 모든 것은 일종의 디자인입니다. 어디에 있든지 간에 우린 디자인이 좋아야 합니다. 요즘 서울의 디자인이 바뀐다고 해서 너무 좋습니다. 밖을 여행하다 보면 서울도 바뀌었으면, 아름다운 도시가 되었으면, 디자인이 바뀌었으면, 제발 좋게 바꾸어지길 진실로 바라는 마음입니다. 우리의 얼굴도 우리의 몸가짐도 우리의 옷매무새도 다 디자인입니다. 디자인이 바뀌면 얼마나 좋습니까? 좀 더 아름답고 좀 더 높은 문화로 바뀐다는 것, 중요한 게 아니겠습니까?

요단강, 갈릴리, 백부장, 장군, 이 모든 디자인 속에 또 다른 디자인이 있습니다. 이런 모든 디자인 속에 담긴 가장 아름다운 깊이 있는 디자인이 뭘까요? 한강이 아름다운 게 아니라 한강 속에 담긴 깊은 뜻은 뭘까?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목욕한 깊은 뜻은 뭘까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엘리사를 통해서 예수를 통해서 주신 말씀 자체가 디자인 속에 담긴 ‘그랜드 디자인’입니다. 말이 되지요. 세상에 있는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 집, 역사, 국가, 세계 모든 것이 하나님의 디자인인데 그 디자인 속에 담긴 가장 기본적인 큰 힘은 뭘까요? ‘그랜드 디잔인’은 뭘까? 오늘 로마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 ‘그랜드 디자인’을 복음이라고 이름하면 됩니다. 축복의 원천은 뭡니까? 축복의 원천은 복음입니다. 복음이라는 것이 뭡니까? 모든 인간을 구원해 내는 하나님의 능력을 복음이라고 하십시오. 세상에서 우리가 많은 문명을 쌓을 수 있고, 집을 지을 수 있지만 이 모든 것의 가장 큰 근본 뜻은 뭡니까? 하나님이 구원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인, 하나님의 의인, 이것이 속에 숨어 있어야 우리가 행하는 모든 디자인이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데 받는 비결은 우리가 믿음을 드리는 겁니다. 구원은 합작품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의 믿음, 하나님은 은혜를 주시고 저희들은 믿음을 드리고, 받는 게 아닙니다. 믿음을 드리고 하나님은 은혜를 주시고 양쪽에서 주심이 만나는 것이 구원입니다. 구원이 우리말로 축복입니다. 축복받고 싶으시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에 감사하여 우리는 믿음을 드립시다. 은혜를 받기보다 믿음을 드리면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의 믿음이 합하여 구원을 이루어 주신답니다. 그래서 로마서 말씀이 의인은, 복 받는 사람은 믿음으로 삽니다. 그 말은,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의 믿음이 합하면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한 해 부탁을 드립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바다 속에 풍덩 담겨 봅시다. 우리 주변에 요단강 많죠. 한 번 담겨 보십시다. 물 떠다 세수하지 마시고 강 속에 한 번 담겨 보십시다. 하나님의 진실 속에 한번 들어가 보십시다. 하나님의 사랑 속에 들어가 보십시다. 하나님이 만드신 거대한 ‘그랜드 디자인’ 속에 우리 자신을 한번 담가 보십시다. 그리고 같이 감사하십시다. 주님의 축복을 빌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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