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대중문화 에세이] 우리사회는 어디에 서 있는가?

‘쿼바디스’, ‘다이빙벨’ 등 잇따른 외압 논란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 포스터.

올해 들어 벌써 세 번째다. 연초 <또 하나의 약속>이 상영관 확보에 어려움을 겪더니 한 달 사이 <쿼바디스>, <다이빙 벨>이 잇달아 외압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보다 앞서 지난 해 9월엔 <천안함 프로젝트> 역시 비슷한 논란에 시달렸다. 

이 네 작품들은 천안함 침몰(<천안함 프로젝트>), 삼성 반도체 노동자의 잇따른 죽음(<또 하나의 약속>), 대형교회의 부조리(<쿼바디스>), 세월호 참사(<다이빙 벨>) 등 한국 사회를 뒤흔들 민감한 주제를 다뤘다. 한편, 이 영화들은 보는 각도에 따라선 정부 비판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잠깐 외국의 사례를 살펴보자. 반항적 다큐멘터리 제작자로 잘 알려진 미국의 마이클 무어는 2002년작 <볼링 포 콜롬바인>(원제: Bowling For Columbine)을 통해 총기 사고가 끊이지 않는 미국 사회의 이면을 통렬히 고발했다. 그는 이 영화에서 미국의 지배권력이 언론을 동원해 끊임없이 ‘충격과 공포’를 조장하고 있으며, 총기 사고의 빈발은 지배권력의 농간에 따른 결과라고 꼬집었다. 그래서 그 결과는? 그는 이 영화로 2003년 아카데미 다큐멘터리 부문 작품상을 받았다.   
그는 시상식장에서도 거침이 없었다. 이 시기는 마침 부시 행정부가 각종 첨단무기를 동원해 이라크를 맹폭하던 시점이었다. 그는 수상 소감을 전하는 자리에서 “부끄러운 줄 아시오! (Mr. Bush. Shame on You!)”라면서 이라크를 침공한 부시 대통령에게 강력한 펀치를 날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후속작 <화씨/911>(원제: Fahrenheit 9/11)을 통해 이라크 침공의 허구성을 파헤치는 한편 <식코>(원제: Sicko)에선 가난하면 의료 서비스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미국 의료보건 제도의 맹점을 맹렬히 비판했다.   
또 다른 다큐멘터리 감독 찰스 퍼거슨은 <인사이드 잡>(원제: Inside Job)을 통해 2008년 미국 금융위기를 부른 원인을 찾아 나선다. 이 영화는 월스트리트 태동 초기 미국 금융권은 고객들의 예금을 투자 상품으로 개발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했다는 사실을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그러던 것이 금융자본의 힘이 커지면서 정치권에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고, 특히 80년대 레이건 행정부가 신자유주의를 내세워 규제의 고삐를 풀어버렸다. 이 영화는 미국 정부의 끊임없는 규제완화, 그리고 월스트리트 금융가 출신 인사의 정부 요직 진출이 금융위기의 근본 원인이었음을 꼬집는다.   
이 영화는 말미에 충격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금융위기를 부른 주범들은 처벌을 받기는커녕 천문학적 액수의 퇴직금을 챙기는가 하면, 정책 담당자들은 현 오바마 정부에서도 요직을 차지하면서 경제정책을 쥐락펴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는 오바마 행정부를 향해 거침없이 ‘월스트리트 정부’라고 직격탄을 날린다. 그래서 그 결과는? 이 영화 역시 아카데미 다큐멘터리 작품상을 수상했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의 한 장면. ⓒ스틸컷

외국은 정권 비판에 찬사, 우리는 홀대
 
영국 출신의 거장 켄 로치 감독은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원제: The Wind That Shakes the Barley)을 통해 아일랜드의 비극을 들여다본다. 친형제인 테디와 데이미언은 독립운동을 하면서 의기투합하지만 독립 이후 노선이 엇갈리면서 서로에게 총부리를 들이대고야 만다. 켄 로치는 이 영화를 통해 영국의 억압적이고 교묘한 식민정책이 아일랜드의 비극을 잉태했음을 간접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현실 정치에 대해서도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 해 4월 마가렛 대처 전 영국총리의 부고가 전해지자 영국 가디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장례식을 민영화하자. 경쟁 입찰에 맡겨 가장 싼 업체를 받아들이자. 그는 그런 걸 원했을 것”이라고 했다. 대처 전 총리가 집권 당시 신자유주의라는 명분하에 민영화, 구조조정, 대량해고 등을 밀어붙인 것을 꼬집은 발언이었다.   
이에 대해 그 어느 누구도 그를 반애국자, 혹은 좌파라며 돌을 던지지 않았다. 오히려 세계적 권위의 칸 영화제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게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안겨줬다.     
언론인 출신의 폴 그린그래스는 다큐멘터리 터치로 1972년 북아일랜드 데리시에서 벌어졌던 유혈 사태를 그려낸다. 그 작품이 바로 <피의 일요일>(원제: Bloody Sunday)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영국 진압군, 아일랜드 시민 및 시위대, 급진 정치조직 IRA 등 사건에 관계된 모든 당사자들의 시선을 담아낸다. 그리고 이를 통해 데리시의 비극에 대한 총체적인 재조명을 시도한다. 그는 핸드헬드 카메라의 흔들림으로 현장감 및 당시 현장에 있던 모든 이들의 심리적 불안감을 살려내는데 성공한다. 헐리웃은 그를 눈여겨봤고, 이에 첩보 액션 시리즈 <본 슈프리머시>, <본 얼티메이텀>의 연출을 맡겼다.   
▲영화 <쿼바디스>의 포스터.

이에 비해 우리의 경우는 참담하기 그지없다. <천안함 프로젝트>는 상영 전부터 군 당국이 압력을 넣기 시작했다. 국방부가 상영 5개월 전인 시점에 “천안함 폭침사건의 원인을 좌초 또는 충돌이라는 식으로 주장하는 것은 국민에게 혼란만 초래한다”고 밝힌데 이어 개봉이 임박하자 이번엔 해군 장교들과 천안함 유족들이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또 개봉 이후 한 상영관은 보수단체의 위협을 이유로 상영을 중단했다.   
<또 하나의 약속>은 개봉이 임박했음에도 상영관을 잡지 못해 애를 먹는가 하면 당초 15개를 확보했던 상영관이 상영관수를 3개로 줄이기도 했다. <쿼바디스>는 애초에 진행하기로 했던 시사회가 취소됐다가 번복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상영관측은 ‘본사와 지점간 소통 혼선’이라고 해명했지만 뒷맛은 개운치 않다.   
<다이빙 벨>은 지난 달 열린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와이드앵글-다큐멘터리 쇼케이스 부문 초청작으로 선정됐다. 그러나 조직위원장인 서병수 부산시장이 ‘정치적 중립 훼손’을 이유로 상영을 반대했다.   
제작자 입장에선 서운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이 영화들에 대한 평가를 아주 박하게 내려 보고자 한다. <천안함 프로젝트>는 그저 ‘소통’의 화두를 꺼낼 뿐이다. 즉 ‘천안함 폭침은 북한 소행이다’는 정부발표가 과연 타당한지 의문을 제기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또 하나의 약속>은 일방적으로 삼성을 악덕기업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영화는 딸을 잃은 평범한 아버지의 투쟁을 통해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데 많은 비중이 할애돼 있다. <다이빙벨>은 세월호 참사와 뒤이은 정부대응의 난맥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또한 ‘다이빙벨’이란 구조장비가 정말로 무용지물이었는지를 관객들에게 되묻는다. ‘다이빙벨’은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여러 의혹 가운데 작은 조각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영화 <다이빙벨>을 보고 있노라면 이런 작은 조각에도 해경 등 관계 기관이 조직적으로 은폐를 시도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영화 <다이빙벨> 시사회 현장. ⓒ베리타스 DB

백보 양보해서 이 영화들이 진실을 편향되게 그렸을 수도 있다. 또 세간의 의혹대로 우리 사회의 지배권력이 영화의 메시지를 불편하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압력을 넣어 영화 상영 자체를 막는다는 건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결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외국은 정권 비판까지 아우르는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으며, 뛰어난 작품성을 겸비했다면 보상을 아끼지 않는다.    
거창하게 ‘표현의 자유’를 들먹일 것도 없다. 최종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관객에게 맡기면 된다. 무엇보다 영화 상영을 막는 보이지 않는 손들이 과연 영화를 보고서 그런 행동을 취하는지 의문이다.   
『닥터 지바고』의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지난 1958년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됐다. 그러나 당시 소련 공산당은 이를 불편하게 여겨 조직적인 압력을 행사했다. 관계 당국이 압력을 가해 노벨상 수상을 고사하게끔 하는가 하면 소련 작가회의는 그를 제명하고 그의 작품에 대해 발매금지 조치를 취했다. 『닥터 지바고』가 볼셰비키 혁명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였다.  
공산당 서기장을 지낸 니키타 흐루시초프가 이 일에 적극 개입했다. 그런데 그는 말년에 폭탄선언을 했다. “이 책(『닥터 지바고』)을 발매금지했던 것을 후회한다.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이 책을 읽지 않았던 것이다”고 고백한 것이다.   
과연 지금 우리 사회는 어디에 서 있는가? 우리 사회가 검열과 인민재판이 횡행하던 옛 소비에트 공산당 치하와 다르다고 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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