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혁 목사(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강변교회 원로)는 오는 10월 26일(일) 통영 도산제일교회에서 ‘전도의 비결: 긍휼 용서 사랑’(욘4:10,11, 마14:14)이란 주제로 주일예배 설교를 전한다. 설교자의 동의를 얻어 아래와 같이 설교 전문을 싣는다.
"전도의 비결: 긍휼 용서 사랑” 통영 도산제일교회(2014.10,26)
오늘 통영 도산제일교회에 와서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며 말씀을 전하게 되어서 아주 좋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무슨 설교를 하면 좋겠느냐고 김용진 목사님에게 물었더니 김용진 목사님이 오전 예배 시간에는 “전도”에 대한 설교를 하고 오후 연합 예배 시간에는 “연합”에 대한 설교를 하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오전 예배 시간에는 “전도의 비결”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설교를 시작하기 전에 서론적인 이야기를 잠깐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인 1983년 7월 12일부터 10일 동안 화란 암스텔담에서 “암스텔담 전도대회”가 열렸습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지도아래 세계 132개국으로부터 온 4천여 명의 목회자들과 전도자들이 함께 모여서 전도대회를 가졌는데 은혜와 감동이 충만한 대회였습니다. 암스텔담 대회가 정한 성구가 딤후4:5이었습니다.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딤후4:5). 암스텔담 전도대회 때 빌리 그래함 박사님은 전도는 기술이 아니라 삶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아주 중요한 말입니다. “전도는 기술이 아니라 삶이다.” 빌리 그래함 박사님은 전도자가 전도자로서의 성결한 삶을 잃으면 전도자로서의 삶은 끝장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므로 전도자들이 개인의 생활에서 영적으로 새로워지는 일이 필요하고 전도의 사역에 대한 비전을 받는 일이 필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 그리고 전도자는 무엇보다 성경 말씀을 읽고 연구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저는 그 때 너무 큰 감동과 은혜를 받아서 마루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울면서 회개의 기도를 드리곤 했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전도의 비결”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저는 참된 전도는 죄인들에 대한 “긍휼과 용서와 사랑”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악독이 하늘에까지 상달했던 니느웨 성에 대한 전도와 구원은 성부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와 사랑”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욘4:10,11을 읽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 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 이만 여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욘4:10,11). 여기 “아낀다” 라는 말은 “불쌍히 여긴다” 라는 말이고 “긍휼과 용서와 사랑”을 지닌다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니느웨 성에 대한 전도와 구원은 니느웨 성 사람들과 짐승들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와 사랑”에서 비롯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죄악이 가득한 니느웨 성 사람들을 비롯해서 악독이 가득한 애굽 사람들도,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도, 아람 사람 문둥병자 나아만도 모두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하시고 사랑하시면서 저들에게 전도와 구원의 손길을 펴셨다고 생각합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도 세상에 오셔서 모든 종류의 죄인들과 세리들과 창기들과 병자들과 이방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하시고 사랑하시면서 저들에게 전도와 구원의 손길을 펴셨습니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 주시니라”(마14:14). 예수님께서는 그 당시 저주 받은 사람이라고 간주하고 멸시하던 문둥병자에게도, 이방인 백부장에게도, 간음 현장에서 붙잡힌 창녀에게도, 일곱 귀신 들렸던 막달라 마리아에게도, 십자가에 달려서 죽어가던 강도에게도, 심지어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로마 군인들에게도,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손길을 펴셨습니다. 분노와 증오와 책망을 나타내시지도 않으셨고 진리를 선포하는 전도를 하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늘을 향해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눅23:34). 로마 군인들을 지휘하던 백부장이 예수님께서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는 군인들에게 그리고 강도들에게 분노와 증오와 정죄의 모습을 나타내는 대신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모습을 나타내 보이시는 것을 바라보면서 가슴에 깊은 감동을 받게 되었습니다. 백부장은 예수님께서 의인이심을 고백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누가가 기록했습니다.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눅23:47). 강도는 예수님을 향해서 이렇게 호소했습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눅23:42). 전도가 불가능하게 보였던 악독한 로마 군인들과 백부장에게 그리고 평생 죄만 짓던 강도 한 사람에게 전도가 이루어졌고 구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유창한 설교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진리의 깃발을 휘둘러서 이루어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저들을 향한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마음과 기도가 전도와 구원의 일을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전도의 비결은 “긍휼과 용서와 사랑” 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의 제목을 이렇게 정했습니다. "전도의 비결: 긍휼 용서 사랑.”
첫째로, 스데반 집사의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전도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스데반 집사가 긴 설교를 했지만 그 반응은 부정적이었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스데반의 긴 설교를 들은 자들이 회개는커녕 도리어 이를 갈며 발악하였다.” 그런데 스데반 집사의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기도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던 사울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전도의 열매를 맺게 했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자기를 돌로 쳐 죽이는 사울과 그와 함께 한 무리들을 위해서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기도를 했습니다.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행7:59,60). 스데반 집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서 하신 기도와 꼭 같은 기도를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스데반 집사의 기도는 사울의 마음에 평생 깊은 충격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울이 나중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기는 했지만 사울이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오게 된 중요한 계기는 스데반 집사의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기도였다고 생각합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스데반 집사의 기도가 없었다면 우리는 사도 바울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라고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바울의 회개는 스데반의 기도의 열매이다. 어거스틴은 말하기를 ‘스데반의 기도가 아니었다면 기독교회가 바울을 소유하지 못하였을 것이다’고 하였다.” 스데반 집사의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기도가 놀라운 전도의 열매를 맺었다고 생각합니다.
둘째로, 스데반 집사와 비슷한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전도를 한 로버트 저메인 토마스 선교사의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전도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1866년 9월 웨일스로부터 흑암과 사망의 땅이었던 조선에 와서 "예수, 예수, 예수"를 외치고 성경책을 던져주며 구원의 복음을 전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평양 대동강 변에 와서 성경책을 던져주며 구원의 복음을 전하다가 조선 관군에 의해 칼에 찔려 참수의 순교를 당한 로버트 저메인 토마스 목사였습니다. 로버트 저메인 토마스란 청년의 선교적 헌신으로 조선에 복음 전파의 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토마스 선교사는 1866년 8월 9일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에 승선하여 평양으로 향했습니다. 토마스 선교사는 배가 닫는 곳마다 조선 사람들에게 서툰 조선 말을 하면서 성경책을 전해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조선을 사랑하십니다. 자 이걸 받으세요. 성경책입니다." 제너럴 셔먼호가 북상하여 평양 만경대까지 다다르자 조선의 군사들은 총공격을 감행하였습니다. 미국 선장은 조선의 군사들을 향해 대포를 발사했습니다. 선장의 비열한 처사에 화가 난 조선의 군사들이 일제히 횃불을 싣고 제너럴 셔먼호에 접근하여 불화살을 쏘아대었습니다. 배에 떨어진 불화살로 제너럴 셔먼호는 불타기 시작했습니다. 배가 활활 타오르고 있는 와중에서도 토마스 선교사는 한 손에 백기를 들고는 "예수! 예수! 예수!"를 외치면서 성경책을 던졌습니다. 헤엄을 쳐서 뭍으로 나온 그를 목 베이려고 누군가 칼을 쳐 들었을 때, 부교인 박춘권은 그를 생포하도록 명령하였습니다. "당신은 총 한번 쏘지 않고 책만 던지던데." "저희들의 잘못을 용서해 주시오." 평양 감사는 이들에게 국법을 어기고 사교를 전하고 백성들을 살해하였으므로 부교인 박춘권으로 하여금 모두 참수토록 명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대동강 변에서 국법에 따라 한 사람씩 목을 베는 형벌이 실시되었습니다. 선장과 중국인들이 먼저 목 베임을 당하였습니다.
"다음은 영국 야소교 목사 토마스" 하자 북소리가 둥-둥-둥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칼을 잡은 박춘권 부교의 손이 높이 올려진 순간이었다. "잠깐만, 이걸 받아 주십시오. 제가 드리는 마지막 물건입니다." 이 말에 멈칫하고 놀란 박춘권은 토마스 목사가 가슴에서 꺼낸 성경책을 얼떨결에 받아 들었습니다. 그러자 토마스 선교사는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고 말하고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 이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 일로 조선 땅에 뿌린 복음이 열매로 맺게 하여 주옵소서" 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박춘권은 칼을 빼어 토마스 선교사를 찔렀습니다. 1866년 9월 5일 27세의 젊은 나이로 웨일스 출신 선교사 토마스 목사는 대동강의 한사정 백사장에서 순교의 피를 뿌렸습니다. 언더우드와 아펜셀라 선교사가 인천항에 상륙하기 19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토마스 선교사가 전해준 성경책을 읽고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이 상당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를 찔러 죽였던 박춘권은 나중에 회개하고 예수를 믿고 장로가 되었다고 합니다. 토마스 선교사는 조선 땅에 떨어져서 죽은 한 알의 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선의 교회가 세워지는 초석이 되었습니다. 1866년 9월 5일 토마스 선고사의 순교가 없었다면 1882년 조미통상조약도 없었을 것이고 1884년 알렌 의사의 조선 입국도 1885년 언더우드와 아펜실라 선교사의 인천 상륙도 없었을 것입니다. 조선에 구원의 복음이 27세의 꽃다운 나이에 평양 대동강에 와서 “예수, 예수, 예수”를 외치며 순교의 제물이 된 토마스 선교사에 의해서 십자가와 구원의 복음이 조선 땅에 전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순교의 제물이 된 토마스 목사님에게 그리고 선교지에서 외롭게 죽어간 그의 아내 캐롤라인 사모님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그를 조선 땅에 보낸 그의 부모님과 웨일스 사람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보냅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 몇 곳을 찾아서 읽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10:37-39). “너희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셋째로,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진 전도가 예루살렘 교회 신자들의 따뜻한 사랑과 구제의 손길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을 살펴보겠습니다. 사도행전은 예루살렘에 신자들의 숫자가 증가한 전도가 이루어진 배경을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42-47). 예루살렘 교회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는 일에 힘썼고,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는 일에 힘썼고, 기도하는 일에 힘을 썼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길게 나열한 것은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사랑과 구제의 손길”을 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이웃에게 “사랑과 구제의 손길”을 편 것이 예루살렘 교회의 전도와 성장의 비결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전도가 계속해서 이루어졌는데 예루살렘 교회 신자들이 박해 중에서도 기도하면서 “사랑과 구제의 손길”을 편 데 있었음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줌이러라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번역하면 권위자)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행4:32_37). 예루살렘 교회의 전도와 성장의 비결은 말씀과 교제와 기도와 함께 무엇보다 “사랑과 구제의 손길”을 구체적으로 편 것이었습니다.
넷째로, 욥바에서의 전도도 “사랑과 구제의 손길”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행9:42은 욥바에 살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이 주를 믿더라”(행9:42). 그리고 그 배경 이야기를 기록했는데 그 배경 이야기란 다비다 또는 도르가란 여인이 욥바에 살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구제의 손길”을 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뉘우니라 룻다가 욥바에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오라고 간청하니 베드로가 일어나 저희와 함께 가서 이르매 저희가 데리고 다락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의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어 보이거늘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어 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가로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의 산 것을 보이니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이 주를 믿더라”(행9:36-42). 욥바에서 이루어진 전도의 비결도 도르가가 “사랑과 구제의 손길”을 편 데 있었습니다.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행9:36). 결국 전도가 힘있게 이루어졌고 욥바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이 주를 믿더라.”
다섯째로, 가이사랴에서의 전도도 “사랑과 구제의 손길”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가이사랴에 복음이 전해진 배경의 이야기는 고넬료라는 로마 군인 백부장이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항상 기도를 힘썼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가 경건하여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행10:2). 그런데 고넬료의 구제와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었고 그 결과로 하나님께서 고넬료에게 천사를 보내시고 베드로를 보내셔서 전도의 사역을 이루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사랑과 구제의 손길”을 펴는 것이 전도의 필수 조건임을 암시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방인 전도와 선교에 있어서는 더욱 더 그렇습니다. 고넬료는 또한 인간관계가 원만한 친절한 사람이었습니다. 전도는 인간관계가 원만한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종졸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베드로에게 보낸 후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자기 집에 다 불러 모으고 베드로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고넬료가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행10:24). 고넬료는 참으로 인격과 성품이 아주 좋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관계가 원만한 친절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도 들었고 하인들과 일가와 친구들과 이웃들의 마음에도 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이 전도를 하게 됩니다.
베드로는 처음에는 가이사랴에 가는 것을 싫어하며 완강하게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께서 강제로 베드로로 하여금 가이사랴의 고넬료의 집에 가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결국 베드로는 항복하고 가이사랴로 달려 갔습니다. 고넬료 집에 모여있던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곳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이미 마음이 열려 있었을 것입니다. 백부장 고넬료의 친절한 초대와 따뜻한 대접에 저들의 마음이 많이 열려 있었을 것입니다. 복음의 씨앗은 열려 있는 마음에 뿌려집니다. 성령은 열려 있는 마음에 임하십니다. 베드로가 입을 열어 복음을 전했습니다. “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그를 저희가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우리를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거하게 하셨고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행10:34-43). 베드로가 이렇게 복음을 전했을 때 성령께서 모든 사람 위에 임하셨다고 했습니다. 결국 그곳에 모여있던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가이사랴에 구원의 역사가 임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가이사랴에 전도가 이루어졌습니다. 고넬료라는 로마 군인 백부장의 “사랑과 구제와 친절의 손길”에 의해서 그리고 베드로의 설교에 의해서 전도가 이루어졌습니다. 전도는 “사랑과 구제의 손길”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부드럽고 친절한 인간관계”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여섯째로, 안디옥에서 이루어진 전도도 스데반 집사의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삶과 기도와 순교의 죽음과 함께 바나바의 “착한 손길”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안디옥에 십자가의 복음이 전파되고 전도가 이루어진 근본적인 배경에는 스데반 집사의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삶과 기도와 순교의 죽음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성경이 이렇게 지적하기 때문입니다.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행11:19-21). 그 다음에 착한 사람 바나바가 안디옥으로 달려가서 전도하며 교회를 튼튼하게 세우고 선교의 기지로 만들었습니다. 안디옥에서의 전도는 진리의 횃불을 높이 드는 방식이 아닌 “착한 손길”을 펴는 방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이 이렇게 지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행11:24). 안디옥교회가 계속해서 힘쓴 것도 “사랑과 도움과 구제의 착한 손길”을 펴는 일이었습니다.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행11:29,30).
일곱째로, 스데반의 일로 회개하고 착한 사람 바나바의 권면으로 목회와 선교의 길로 달려가게 된 사도 바울은 결국 진리의 횃불을 높이 드는 것 보다는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손길”을 펴는데 최선을 다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은 결국 십자가의 약함과 어리석음을 예찬하는 사람이 되었고 십자가와 순교의 죽음에 나타난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비밀”을 예찬하며 실천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긍휼과 용서와 사랑”을 지니지 못한 믿음이나 진리나 이적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선언하면서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삶을 살라고 권면하고 또 권면했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13:1-3). “그러므로 너희는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골3:12-14).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롬12:13,20).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죄인들에게 십자가 복음을 전하면서 죄인들을 살리는 길은 진리의 횃불을 높이 드는 길이 아니었고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손길”을 펴는 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함으로 재물을 허비하고 또 내 자신까지 허비하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덜 사랑을 받겠느냐”(고후12:15).
여덟째로, 이기풍 목사님과 관련된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손길”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제주도 땅을 고치고 많은 사람들은 살린 것도 진리의 횃불을 높이 든 것이라기 보다는 이기풍 목사님과 윤함애 사모님께서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손길”을 편 데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기풍 목사님은 13년 동안의 제주도 사역을 통해 제주도 땅에서 사탄 마귀의 어두움의 세력을 몰아내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을 비추게 했습니다. 30여 개의 교회를 설립했습니다. 이기풍 목사님의 성공적인 제주도 사역 뒤에는 윤함애 사모님의 기도와 함께 “사랑과 봉사의 수고”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항상 머리맡에 약 상자와 성경책을 두고 자다가도 부르면 벌떡 일어나 제주도민들을 돌봐주었다고 합니다. 그는 교인들 중 누가 운명하면 항상 달려가서 시체를 목욕시키고 얼굴에 화장을 해 준 다음 손수 만든 수의를 입히고 밤새 유가족을 위로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또한 그늘진 곳에서 울고 있는 영혼들을 사랑으로 돌보았다고 합니다. 그의 집은 항상 아침에는 거지 떼들로 낮에는 나병 환자들로 가득 찼다고 합니다. 손이 떨어진 나환자에게는 손수 밥을 떠서 먹여주었다고 합니다. 이기풍 목사님 자신도 강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을 자기의 생명을 바쳐 구한 일도 있었고, 산 속 동굴 안 구렁이 신에게 제물로 바쳐진 소녀를 구하기 위해 동굴 속으로 들어가서 구렁이를 때려 눕힌 일도 있었습니다. 이기풍 목사님과 윤함애 사모님은 제주도 땅을 고치고 제주도의 어두운 밤 하늘을 밝힌 두 개의 새벽 별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홉째로, 주기철 목사님과 관련된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손길”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일제의 만행으로 무자비하게 짓밟힌 조선 땅을 고치고 상처 입은 수많은 사람들을 치유한 것도 진리의 횃불을 높이 든 것 보다는 주기철 목사님께서 모든 종류의 사람들에게 편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손길” 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하나님께 대한 일사각오의 신앙에는 사자같이 강했으나 성도들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비단결같이 부드러운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마음과 손길을 펴면서 살았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평양경찰서와 형무소에서 옥중 생활을 할 때 같은 방의 동료들에게는 물론 자기를 고문하던 일본 형사들에게까지 온유한 사랑으로 대하므로 그들에게 깊은 감화를 주곤 했습니다. 공산당 주영하도 주 목사님만은 존경했다고 합니다. 어느 분의 증언입니다. “주 목사는 주먹밥 한 개도 반만 먹고 배고프다는 같은 감방에 있는 자에게 나눠주는 것은 보통으로 하는 일이었다. 주 목사, 그의 옥중 생활은 그냥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가 제자들의 발을 씻긴 겸손과 통한 것이었다.” 해방 후 일본 경찰의 고위 간부들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조선에 진짜 목사 한 사람이 있었다. 주기철 목사다.” 주기철 목사님이야말로 무자비하게 짓밟힌 조선 땅을 고치고 상처 입은 수많은 사람들을 치유한 피 묻은 주님의 손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열째로, 손양원 목사님과 관련된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손길”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분노와 증오와 멸시와 천대를 받던 많은 사람들을 치유한 것도 진리의 횃불을 높이 든 것 보다는 손양원 목사님께서 편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손길” 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믿음은 나환자 사랑과 원수 사랑으로 나타났습니다. 한번은 박옥선이란 여 환자가 발 밑에 난 종기 때문에 다리를 절단해야만 했습니다. 손 목사님은 입으로 악취 나는 환부의 피고름을 입으로 빨아 주었습니다. 나병의 환부에는 사람의 침이 좋은 약이 된다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나환자들에게 모든 사랑과 정성을 다 쏟아 부은 한국의 프랜시스였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이렇게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기도했습니다. “주여 나로 하여금 애양원을 사랑하게 하여 주옵소서. 나의 부모와 형제와 처자보다 더 사랑하게 하여 주옵소서. 오 주여 내가 이들을 사랑한다 하오나 인위적 사랑, 인간적 사랑이 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주보다는 더 사랑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그의 사랑의 극치는 1948년 10월 여수 순천 반란사건 때 나타나 보였습니다. 자기가 그렇게도 사랑하던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충만하던 두 아들 동인군과 동신군이 총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교회당에 들어가서 밤을 새워 통곡하고 기도하고 교회를 나오면서 이렇게 중얼겨렸습니다. "저 영혼이 불쌍해서 어쩌나, 내 아들들은 죽어서 천국에 갔지만, 안재선은 죽으면 지옥 갈텐데, 저 영혼이 불쌍해서 어쩌나." 결국 손양원 목사의 마음에는 커다란 사랑의 폭풍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를 살려야 한다. 그를 용서해야 한다. 그를 사랑해야 한다.” 결국 원수 같은 안재선에게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손길”을 펴게 되었고 그를 자기의 양자로 삼았습니다. 전도의 폭탄이 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랑의 원자탄에 맞아서 죄 사함과 구원의 놀라운 축복을 받은 안재선이 나중에 손양원 목사님에게 보낸 편지를 읽으면서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편지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아버님전 상서 천부님의 은혜 가운데 아버님 어머님 기체 만강하심을 비옵니다. 소자는 객지서 하나님의 진리의 힘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피 공로를 믿음으로 구원 받음을 감사합니다. 이 죄인은 아버님의 사랑을 받아 하나님 앞에서 죄값을 회개하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믿음으로 중생하였습니다. 중생하였으나 소자는 인간인고로 때때로 죄를 범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죄인을 버리지 않으시고 사랑하여 주심을 진실로 감사하며 죄를 회개합니다. 주의 피로 쌓인 진리로 된 부산 고려고등 성경 학교에서 여러 주님의 귀하신 주님의 종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며 12사도의 교훈과 진리를 배우게 해주신 은혜와 사랑은 말할 수 없이 감사합니다. 중생하고 보니 하나님께 몸 받쳐야 되겠습니다. 나의 있는 것 모든 것 다 받쳐야 되겠습니다. 우리 신자는 다 순교할 의무가 당연히 있다고 나는 주장합니다….우리가 죽도록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여야 하겠습니다…. 아버님 어머님의 기도의 덕인줄로 믿습니다. 믿음으로 십자가의 피 공로로 중생하였으니 손양원 목사님의 장남 될 자격으로 중생의 양식을 언제나 잊지 않고 빽빽이 채우겠습니다. 아버님 모든 것 용서해 주시옵소서. 아버님의 사랑이 하나님이 주신 사랑이니 사도 바울의 뒷길을 따라가고자 한걸음 두 걸음 걷고 있습니다. 두 형님의 뒤를 따를 것을 하나님 앞에 맹세하나이다. 1949년 9월 15일 편지 받아본 즉시 저녁 안재선 상서.” 안재선은 완전이 변화된 새 사람이 되었고 안재선의 아들은 나중에 목사가 되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께서 펴신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손길”은 너무나 놀라운 아름다운 전도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전도는 가장 중요하고 가장 보람된 일들 중의 하나입니다. 생명을 구원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소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전도할 때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께서 우리들과 함께 하시고 우리들을 사용하심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기쁨과 확신이 넘치게 됩니다. 전도는 말이나 기술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변화된 삶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손길”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마지막 편지 마지막 장에서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전도인의 일을 다하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냥 보통 부탁한 것이 아니라 엄하게 명령을 했습니다.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4:1,2). 한가지 기억할 것은 전도하는 일에는 어려움과 고난이 따른다는 사실입니다.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딤후4:5). 사실 전도와 선교는 고난을 통해서 핍박을 통해서 또는 순교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전도인은 세상에서 평안과 칭찬을 기대하기 보다는 어려움과 고난을 각오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날에 별과 같이 빛나는 하늘의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