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독교아카데미 제1기 기독교사상학교 기독교사상사과정 제4강)
실존주의의 특성
1)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사회를 지배했던 철학사조
2) 인간에 대한 도덕적인 신념, 낙관주의적 기대, 지보에 대한 소망이 무너지면서 대두됨
3) 불안, 죽음, 무의미성, 절망과 같이 모든 개별적 인간들이 직면하고 경험하는 삶의 문제들을 통하여 실존적 인간의 삶의 상황을 분석하려 함.
4) 모토: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 본질에 대한 사변적, 형이상학적인 기술은 단지 삶의 추상에 불과하다. 설사 본질이 존재하더라도 그것은 실존에 의해서만 파악이 가능하다.
5) 대표성보다는 개별성을, 개관성보다 주체성을 강조함
Ⅰ.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1984-1976)의 실존주의 신학
A. 생애와 사상사적 위치
-1884년 독일 북쪽 뷔펠스테데에서 루터교회 목사의 아들로 출생
-당시 독일의 학업관습에 따라 튀빙엔, 베를린, 마부르크 대학에서 수학함
-마부르크 대학에서 일생의 대부분 가르침 : 불트만의 지성적 고향임
-1930년대 독일의 고백교회운동에 참여함 : 칼바르트를 지지함을 통해 박역한 지우인 마틴 하이데거와의 관계는 냉각됨
-1951년 은퇴한 이후에는 미국, 영국 등을 다니면서 강의하거나, 제자들과의 많은 담론을 하면서 시간을 보냄
-깊은 통찰력을 가진 성서학자로서 칼바르트, 폴틸리히와 함께 20세기 가장 위대한 세 명의 신학자로 평가받음
B. 불트만 신학의 시대적, 사상적 배경 : 역사적 예수 탐구
18세기 후반부터 인간의 합리성과 이성을 억압하는 교리의 횡포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그리스도교의 본질에 대한 관심으로서 역사적 예수에 대한 물음이 표면화됨.
1. 라이마루스(Hermann Samuel Reimarus:1694-1768):역사적 예수탐구의 선구자
함부르크 짐나지움(Gymnasium:독일의 중등교육기관)의 교수 역임
"예수와 그의 제자들의 의도에 관하여" (on the intention of Jesus and his Disciples, 1778)
- 라이마루스의 주된 물음 : "기적은 합리적, 이성적, 경험적 측면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하면 이 기적들을 기록하고 있는 복음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최초의 역사-비평적 방법을 가지고 복음서의 기록들을 해석하며, 전통적인 신-인(God-man)으로서 예수상ㅇ ㅔ도전하여 역사적 예수에 대한 물음을 던짐
- 주요주장 : 예수의 가르침과 그의 제자들의 가르침은 다르다 : 예수의 가르침은 비신비적, 유대교적인 것으로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 겸비, 온유, 자기부인에 대한 것이었으나, 예수의 죽음 이후 제자들은 이 가르침을 신비적이고, 비유대교적인 가르침으로 탈바꿈시킴(성육신, 대속, 부활)
-의의 : 역사적 예수문제를 부각시켰고, 역사적 문서로서의 복음서의 가치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함
-한계 : 충분한 실증적 증거 없이 예수의 삶을 재구성햐였기에 설득력이 떨어짐
2. 슈트라우스(David Friedrich Strauss:1808-1874) : 신화적인 복음해석자
헤겔좌파의 중심인물, 튀빙겐 대학의 신학과 철학 교수.
예수의 생애 비판적 고찰 (The Life of Jesus Critically Ezamined, 1835)
- 주요주장
* 슈트라우스는 너무나 억지스러운 해석을 강요하는 초자연적인(supernaturalistic)성경관과 초자연적인 것을 부인하거나 역사적인 것으로 환원시키는 합리적인(ratoinalistic) 성경관에 반대하여 신화적인(mystical) 성경해석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 신화는 사유의 원초적인 방식을 대표하는 것이며 공동체적인 상상력의 인물이다. 물론 실증주의적 역사관에 비추어 볼 때 신화는 역사라는 개념과 반대되는 것이지만, 종교적인 관념 또는 진리들을 담고 있다. 다시 말하여, 신화는 역사적인 사실의 측면에서는 가상의 것이지만 분명 그 안에는 고유하고 절대적인 진리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복음서의 진정하 가치는 그것이 표현하는 역사적인 사실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표성하는 종교적인 관념에 놓여있다. 따라서 신화는 제거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재해석 되어야 한다.
* 슈트라우스는 복음서의 대부분의 기록들이 신화적 전승의 산물임을 밝히고, 복음서에 예수의 생을 재구성할만한 충분한 역사적 자료들이 부족함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복음서가 예수의 신화를 통하여 전해주는 신학적인 중요성은 모든 인류의 삶에 적용될 수 있는 심오한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슈트라우스의 사실과 의미의 구분은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의 분리가능성을 최초로 시도한 것이었다.
- 의의
역사적 탐구의 필요성을 제시함
신앙의 그리스도와 역사적 예수의 구분 가능성을 보여줌
-한계
복음서외의 다른 자료들에 대하여 관심 갖지 못했다
너무 편협한 실증주의적 역사관을 가지고 있었다(당시의 모든 역사 연구가들의 한계)
신화에 너무 과도한 중요성을 부여함으로써 다른 전승들(가르침, 행함)을 약화시켰다.
슈트라우스 이후에 수많은 예수전들이 기록되었다. 예를 들어 르탕(Renan), 쉰켈(Shenkel), 바이쯔젝커(Weizacker), 홀츠만(Holzmann), 카임(Keim)등은 각기 나름대로의 예수전을 기록하였다. 공통적으로 그들은 인간 예수를 강조하였으나, 그들이 바라본 예수의 이미지들은 너무나 상이한 것이었다. 르낭과 같은 낭만주의자가 기록한 예수는 낭만주의자인 예수였으며, 합리주의자들은 예수를 도덕설교가로 묘사하고, 이상주의자들은 인도주의의 화신으로 묘사하며, 심미주의자들은 예수를 화술의 천재로 묘사했으며, 사회주의자들은 정치 혁명가이자 사회개혁자로, 그 외에도 '예수의 생애'를 기록하는 많은 신학자들은 각기 자신들이 원하는 소설적 예수상을 만들어 내었다. 이처럼 우후죽순처럼 광범위하게 전파되었던 역사적 예수를 찾고자 하던 그들의 노력은 오래지 않아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3. 브레데(William Wrede:1859-1906) : 회의론적 비판
브레슬라우스(Breslau)대학의 교수
복음서들의 메시아적 비밀(The Messianic Secret in Gospels, 1901)
- 주요주장 : 브레데 이전의 예수전을 기록하려는 대부분의 시도들은 복음서의 역사성, 특히 마가복음의 역사성에 근거하여 행해졌다. 그러나 브레데의 마가복음을 통하여 역사적 예수를 재건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임을 박혔다. 마가복음으 더 이상 역사적이 문서가 아니라 의도를 가진 신학적인 문서이며, 그 작가는 역사적 기술가가 아니라 교리가라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역사적 예수를 재건하려는 시도는 불가능한 것이다. 복음섣르은 역사적인 기록들이 아니라 예수의 메시아성을 변증하기 위하여 쓰뎌진 초대교회의 창작물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4. 바이스 (Johanness Weiss:1863-1914)와 슈바이처(Albert Schweizer:1875-1965) : 종말론적 비판
바이스 : 괴팅겐(Gottingen), 마부르크(Margurg), 하이델베르그(Heidel berg) 대학교수 역임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예수의 선포(Jesus's Proclamation of the Kingdom of God, 1892)
주요주장 ;브레데와는 다르게 바이스는 공관복음서가 상당한 역사적인 가치와 기록들을 가진 역사적이 문서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가 가르친 하나님의 나라의 사상은 그대의 사상과는 전혀 다른 종말론적인 것이었다 예수가 생각한 하나님의 나라는 결코 주관적이거나, 내적이거나 또는 영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다가올 하나의 영토나 땅 또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보화로서 형상되는 객관적이고, 초월적인 메시아적인 왕국이었다. 이처럼 바이스는 역사적 예수는 현재까지 자유주의적으로 해석되어온-근대적으로 해석되어진- 예수의 상들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밝히고, 예수의 가르침은 현재 교회에서 행해지는 가르침과 전혀 다른 생소하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슈파이처 : 의사, 음악가, 루터교회목사, 신학자
역사적 예수의 탐구(The Quest of the Historical Jesus, 1906)
주요주장 : 슈바이처는 브레데의 신학적인 예수상이나 바이스의 종말론적인 예수상을 더욱 철저하게 발전시켰다. 슈바이처 역시 브레데처럼 마가복음이 신학적인 저술이라는 것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브레데와는 다르게 예수의 메시아이ㅡ식은 복음서를 낳게 한 초대 그리스도교 전통에 귀속되는 것, 즉 부활후에 제자들에의하여 만들어진 것이라기보다는 예수 본인에게 귀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또한 슈바이처는 바이스처럼 예수의 가르침의 핵심은 하나님의 나라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바이스와는 다르게 예수의 하나님의 나라의 가르침만이 조말론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예수의 모든 공생애 사역이 종말론적인 세계관에 의하여 행하여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슈바이처는 우리가 역사적 예수에 대하여 알 수 있는 것은 극히 제한적인 것에 불과할 따름이며, 역사적 예수는 묵시적이고 종말론적인 예수이며, 이 예수는 윌에게 너무나 낯선 존재임을 지적한다. 우리의 신앙이 기초하고 있는 예수상은 역사적 예수가 아니라 신앙의 그리스도임을 분명히 밝혀 역사적 예수 연구가 우리의 영적 생활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의 신앙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5. 켈러(Martin Kahler) : 성경주의적 비판
할레(Halle)대학의 교수 역임
소위 역사적인 예수와 역사적이고 성경적인 그리스도(The so-called Historical Jesus the Historic Biblical Christ, 1892)
주요주장
-켈러는 19세기 예수전의 저자들이 발견한 예수는 본래의 역사적인 예수가 아니라 그들 안에 있는 예수상(상상력과 편견의 투사물), 소위 역사적인 예수(the co-called historical Jesus)임을 지적하였다.
-켈러에 따르면 'der historiche jesus'는 역사적 비평의 대상이 되는 예수를 의미하고, 'der geschichtliche Christus'란 우리에게 실존적인 의미가 되는 신앙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그리고 켈러는 그리스도교 신앙은 역사적 예수가 아니라 역사적(신앙의) 그리스도에게 근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켈러는 역사비평 방법 그 자체를 비판하기보다 이 방법의 오용적인 사용을 비판하였다. 복음서의 그리스도는 이미 사도들에 의하여 선포된 교리적 그리스도이다. 이 그리스도를 넘어서 역사적 예수를 재구성할 만큼 우리는 역사적인 자료들을 가지고 있지 않다. 진정한 예수는 관념화된 예수도 아니요, 역사적(historich)인 예수도 아니요, 역사적(geschichtlich)이며 성경적인 그리스도이다. 그리고 이처럼 선포된 그리스도가 신앙의 긜스도이다. 예수가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고 부활하신 것이 복음의 핵심이며 이것으로 충분하다.
-역사적 성경적 그리스도(the historic, biblical chirst)는 신앙의 주관주의(심리학적이고 관념론적인 예수 연구)와 객관주의(역사실증주의적 예수연구)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2부에서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