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데스크시선] 명분과 독배

최근 10월20일에 서울중앙지법에서 기감의 S 목사 등이 신청한 감독회장의 직무집행정지가처분(2014카합693) 건이 기각된 일이 있었다. 2013년 7월에 치러진 감독회장 선거의 적법성을 두고 벌어진 소송 사태가 총회재판국의 선거무효판결, 사회법정의 2심에서 내려진 무효판결효력정지가처분 결정, 그리고 감독회장 직무집행정지가처분에 관한 결정에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거의 1년여의 시간이 소요되었고 이제는 사회법정의 중재 아래 소송 당사자들이 조정을 받아야 할 단계에 와 있다. 어쨌든 S 목사 등의 처지와 달리 감독회장은 총회재판국의 결정보다 우위에 서서 ‘총수’의 지위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 사태의 추이를 지켜본 사람이면 누구나 이제는 교회법의 고유한 치리영역과 권위가 사회법의 지배를 받게 된 상황과 그것을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과정인 양 인식하는 풍토를 확인할 수 있다. 사회법이 더 보편적인 이성에 기반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그 자체가 함축하고 있는 권위를 더 신뢰하는 현상이 전개되는 것이다. 물론, 이번 사태로 차제에 총회재판국의 위상과 사건처리절차 등에 대해 시간을 두고 인적 쇄신과 더불어 교회법 해석과 적용의 권위를 확보할 체제를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기는 했다. 하지만, 인간사에 재판과 중재가 필요한 일이 없을 수 없기는 해도 교회라는 공간을 지배하는 질서의식이 특수한 점을 의식한다면 이 소송 사태는 매우 비성경적이라는 사실을 성도들은 알고 있다. 
이 소송 사태의 당사자들도 바울과 베드로의 편지에 나타난 훈계의 내용을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바울은 고발 행위 자체부터 허물로 지적하며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다고 훈계한다(고전6:6-8).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고발 당사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베드로의 편지(벧전3:17-18)에서는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나은” 이유가 그것이 그리스도가 불의한 자들을 대신하여 죽임을 당한 과정의 의미를 함축하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물론, 어떤 사실이 부당하며 불의하다는 것을 알면서 그 사실을 용납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간혹 당사자의 명예와 공동체의 유지 문제가 그 사실을 반대할 명분에 연결될 때는 반대 자체가 정의로 치환되기도 한다. 위의 사태와 관련시켜 볼 때 S 목사 등과 감독회장은 자신들의 명예와 스스로 구상한 감리교총회의 미래를 위해 소송전을 치를 결심을 했을 수 있다. 그래서 정의의 명분이 승리할 것이라 믿으며 우여곡절을 견뎠을 것이다. 마침내 이번 서울중앙지법의 판결로 명예회복의 성배가 감독회장에게 주어졌다. 이후 또 다른 소송이 이어질 지는 미지수이지만 현재로서 감독회장은 성배를 차지한 셈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그가 성배를 입수한 데 대한 대가가 어떤 것인지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지는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그 성배는 독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감독회장이 총회재판국의 결정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은 그 공동체의 질서의식에 현저한 모순을 초래한다. 감독회장이 따르지 않는 재판국의 결정을 누구에게 따르라고 명령할 수 있겠는가? 감독회장이 마치 우리나라의 초법적인 재벌총수인 양 비치고 있다. 두 번째로, 소송 당사자들은 사회법의 결정을 교회법의 결정보다 상위에 둠으로써 인간의 이성적 판단을 자기희생의 복음정신보다 더 신뢰하는 속내를 드러냈다. 이제 교회 내의 분쟁도 총회재판국에서 해결하기보다 사회법정에다 먼저 상신하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없게 되었다. 감리교의 전통이 인간의 이성을 중시하지만 그 이성은 하나님의 뜻과 복음정신을 구현하기 위한 목적으로 활용되는 것이어야 하지 않은가? 신앙생활에서 이성적 판단을 더 신뢰하는 결정은 자칫 교회와 복음을 인간의 이성과 혼합시키거나 그 아래로 굴복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소송 당사자들이 선거와 관련하여 소송을 주고받음으로써 교단정치의 지향점을 정의의 구현이 아니라 권력투쟁의 차원으로 폄하시켰다. 게다가 감독회장은 사회법정의 1심에서 선거무효판결효력정지가처분이 패소한 뒤 법조계의 전관들이 버티고 있는 법무법인 K를 통해 2심에서 1심 판결을 뒤집었다. 이러한 과정은 결국 성직의 세속화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가령, 그 소송을 도왔던 변호인들은 욕망의 견지에서 성직자와 일반 의뢰인들을 구별할 수 있겠는가?   
이런 점들은 감리교총회의 미래나 복음정신의 구현에 있어서 독이 되는 것이 분명하다. 이제 그 독배는 소송 당사자들과 같은 신앙의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까지 독을 흩뿌려버린 상황이 전개될 것이라는 말이다. 이 시점에서 다음처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이전투구의 양상이 전개되도록 한 데에는 바울과 베드로의 훈계에 대해 해석상의 차이가 있기 때문인가 아니면 2천 년 전의 그들이 현재의 시대상황상 모르고 있는 다른 의도가 있기 때문인가? 아니면 애초 교계의 정치라는 것이 복음정신과는 배치되는 영역의 활동인 것을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혹시 이전투구의 모습으로 비춰지더라도 고수할 수밖에 없었던 대의명분이 있었을 수도 있겠다. 기존의 총회재판국의 권위를 무시하고서 새롭고 더 확고한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결단이었다면 박수칠 준비를 하면서 지켜볼 일이다. 거룩한 성배가 등장할지도 모르니까.   
한편, 이러한 의문과 우려가 다소 선언적으로 들릴 수 있다. 이미 상황은 그 독배가 지나가길 기대할 수 없는 지경에 도달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울과 베드로의 훈계가 설교 강단에서 그대로 전달될 것임에도 실제 교단정치의 현장에서는 모순된 행동이 벌어지는 데에는 반성과 회개가 요청되어야 한다. 교단의 지도자들이기 이전에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그들에게는 그 어떤 상황논리나 명분을 따르거나 정당화를 추구하기보다 복음정신의 육화와 증인되는 삶을 우선하는 모습이 더 중요하다. 복음정신은 사회의 정의 관념보다 상위의 의미영역이라는 것이 증명될 때에만 그들의 명분이 독배가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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