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의 아픔에 참여하는 이 땅의 신학자들’의 긴급 기자회견이 30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렸다. ⓒ사진=지유석 기자 |
오는 11월1일(토)로 세월호 참사 발생 200일을 맞는 가운데 10월30일(목)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는 ‘세월호의 아픔에 참여하는 이 땅의 신학자들’(이하 ‘신학자들’)의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다.
‘신학자들’은 자발적으로 결성된 신학교 교수들의 결사체로 광복절인 지난 8월15일 18명의 학자들이 성명을 발표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러다가 지난 10일(금) 서울 청운동에서 예배를 주관하면서 “우리의 몸과 행동을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알리는 광고 수단으로 삼자”는 취지로 대국민 호소문 마련에 들어갔다. ‘신학자들’은 특히 30일이 종교개혁 497주년임에 착안, 이날 “세월호 사건의 진상규명과 진실과 정직이 존중받는 사회를 위하여”란 제하의 호소문을 발표한 것이다.
성공회대 권진관 교수는 현 시국과 세월호 사건을 바라보는 신학자의 입장에 대해 발언하면서 “이 날은 뜻 깊은 날이다”는 말로 운을 뗐다. 권 교수는 “세월호 사건은 전태일 이후 신학자들을 다시 거리로 부른 사건”이라면서 “박정희 대통령 시절 벌어졌던 사건이 그의 장녀 박근혜 대통령 시절 되풀이 되고 있다는 건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했다. 또 “(현 시국은) 진정한 민주주의가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무엇보다 권력자가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것이 민주주의가 아니다”라면서 “박 대통령을 찍지 않은 49%, 아니 그 수치보다 더 많을지 모를 수의 국민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민주주의인가?”라고 되물었다. 권 교수는 그러면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약자들이 인정하는 사회가 정의롭고 구원받는 사회, 가장 약한 자들의 아픔을 공감하는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다”고 결론지었다.
▲성공회대 권진관 교수는 현 시국과 세월호 사건을 바라보는 신학자의 입장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지유석 기자 |
권 교수의 발언이 끝나자 서울신학대 박찬희 교수가 한국교회와 한국사회에 호소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박 교수는 “한국교회가 신앙을 사사화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박 교수는 “교회는 대사회적인 이슈의 난장 한 가운데 서 있다. 그 속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평화를 증언하고 지향하는 일과 그 관심을 적극적으로 일깨울 사명이 있다”고 전제한 뒤 “사회적 이슈에서 물러서는 것이 교회 본연의 자세라고 말하는 것은 종교적 사기다. 복음의 사사화는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분산시킨다. 신앙의 사사화는 샤머니즘에 불과하며 복음을 오도한다. 신앙의 사사화는 공동체를, 그리고 그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못 박는다. 그러므로 신앙의 사사화는 죄악이다”고 한국교회를 질타했다.
박 교수는 이어 “10월30일 오늘은 종교개혁 497주년 기념일이다. 오늘 한국교회에서 예수님은 어디 가고 교회만 남았는가? 제자직은 어디 가고 목사만 남았나? 십자가는 어디 가고 설교만 남았는가? 예수를 살려내라. 그러기 위해 성서 앞에 정직히 마주서라. 부흥과 성장의 술독에서 나오라. 그리고 이제 예수의 삶, 그의 말씀, 그의 십자가를 생각하고 그 십자가를 지라”고 호소했다.
박 교수는 한국 사회를 향해서도 연대를 당부했다. 박 교수는 “국민 304명이 이유도 모르고, 구조 희망도 없이 죽어갔는데 정부는 무엇을 했는가?”라고 물으면서 “연대하지 않으면 악이 성한다. 진보는 그냥 성취되지 않는다. 말로서 저항해 생명의 가치가 존중되는 민주화를 이뤄야 할 것”이라고 했다.
▲박재형 한신대 교수(좌)와 신익상 성공회대 교수가 호소문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지유석 기자 |
기자회견은 신익상 성공회대 교수와 박재형 한신대 교수가 호소문을 낭독하며 마무리됐다. 신학자들은 호소문을 통해 “사회적 약자가 된 세월호 유족들을 찾아가서 위로하기보다는 그들에게 이젠 잊자고 말해서야 되겠는가? (중략) 불의와 거짓에 파괴되지 않는 ‘진실과 정직의 공간’을 만들지 못한다면 우리는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없고 한국교회는 존재이유를 잃고 말 것”이라고 선언했다. 또한 “세월호 사건은 잊어야 할 과거의 비극이 아니라, 이 사회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가장 큰 기준이 됐다. 지금은 잊을 때가 아니라 정직한 마음으로 진실을 밝혀야 할 때다. 기도와 행동으로 진실을 밝히는데 힘써 달라”고 호소했다. ‘신학자들’은 이날 오후 7시 같은 장소에서 긴급 기도회를 가졌다.
아래는 ‘신학자들’이 발표한 호소문 전문이다.
세월호 사건의 진상규명과 진실과 정직이 존중받는 사회를 위하여
304명의 목숨과 함께 세월호가 침몰한 지 벌써 반년이 지났습니다.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슬픔과 억울함이 더욱 커지고 있는 가운데, 며칠 전에는 단원고 2학년 5반 고 인태범 군의 아버지 인병선 씨가 한 맺힌 죽음으로 생을 마감하는 일마저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일상은 시계의 톱니바퀴처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일상의 삶이란 언젠가는 회복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함께 나누어야 할 아픔과 상처가 채 아물고 치유되기도 전에,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이 그것을 무심하게 뒤덮어버린다면, 그것은 너무 참혹한 현실일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이 사회가 과연 진실의 힘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인가요, 아니면 망각을 조장하는 거짓에 물들어 중독되어 가는 중인가요?
사건이 발생한지 거의 200일이 되었지만, 진상규명을 원하는 유족들의 한 맺힌 절규는 여전합니다. 전국을 찾아다니며 진실을 밝혀달라고 호소하는 유족들은 이제 위로를 받아야 할 사람으로 여겨지기보다는, 무리한 것을 요구하는 이기적인 집단처럼 취급당하며 오욕의 멍에를 뒤집어쓰고 있습니다. 자신보다 소중한 자식들이 왜 그렇게 죽어야만 했는지, 왜 초기에 탈출한 사람들 외에 구출된 사람이 전혀 없었는지, 그 진상을 규명해달라는 호소가 악의적인 왜곡으로 인해 외면당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유족들의 마음은 가족을 잃은 슬픔만이 아니라, 진실과 정직을 포기하고 다시 경제성장의 수치에 몰입해 들어가는 이 사회의 절망적이고 관성적인 태도로 인해 피멍들어가고 있습니다.
세월호의 비극을 이제 그만 잊자고 합니다. 사회적 피로감이 크다는 항변도 들려옵니다. 우리가 잊어야 할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요? 유가족들이 정말로 우리와 이 사회를 피로하게 만드는 분들인가요? 이 사회를 피로감으로 물들이는 사람들은 바로,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는커녕 사회적 피로감을 운운하며 그 사건을 단지 과거의 교통사고 정도로 생각하게끔 사회적 분위기를 조장해가는 비상식적인 세력들입니다. 200일이라는 그 긴 시간 동안 우리 사회가 만일 진실과 정직을 세우기 위해서 노력해왔다면, 어쩌면 세월호의 아픔은 이미 위로와 희망의 상징이 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이 소중한 시기를 놓치고 있습니다. 국민들을 피로감에 지치도록 만든 것은 긴 애도의 기간이 아니라, 참된 애도를 할 수 없도록 만든 거짓의 범람이었습니다. 국민과의 약속을 쉽게 저버리는 정부, 국가적 위기를 흥정의 기회로 삼는 정치권, 진실을 외면하고 왜곡하는 언론, 약자들을 비하하는 사회 지도층, 타인의 아픔을 분열의 빌미로 삼은 세력들에 의해서 그 소중한 시간이 탕진되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 신학자들은 절박한 심정으로 호소합니다.
박근혜 대통령님,
약속을 지키십시오! “여야와 민간이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특검을 통해서라도 진상을 밝히겠다”고 했던 대국민담화의 약속, “유족들의 여한이 없도록 진상규명을 하겠다”며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했던 유족들과의 약속을 지키십시오. 대통령 후보 시절에 ‘약속을 지키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이제 와서 “대통령 모독발언이 도를 넘고 있다”고 국민들을 협박하면서, 국민들의 정당한 의견과 발언을 검열하고 억압하는 것입니까? 아무리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그 권력은 국민이 부여한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 시대에 다시 유신독재의 망령을 몰고 오지 말고, 자신이 했던 약속을 먼저 지키는 대통령이 되십시오.
정치인 여러분,
여러분의 결정과 행동은 사회적 윤리의 지표가 됩니다. 선거철에만 국민들을 위하는 척하면서, 정작 고통당하는 세월호 유족들의 요구를 외면하는 것은 철면피한 행위요, 불신사회를 조장하는 불의한 일입니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세월호 특별법을 당리당략을 위한 흥정의 소재로 활용하는 행위를 당장 멈추고, 진실 앞에 바로 서기를 바랍니다.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은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면서 사회적 짐이 되어가는 행동을 반성하고, 어려운 사람들의 짐을 져주는 일꾼으로서 재탄생하기를 바랍니다.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현재 여러분들이 협의하고 있는 대로라면, 조사권마저도 제대로 행사될 수 없는 법이 생겨날 것인데, 어떻게 그것을 진실규명이 가능한 특별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세월호 사건의 문제를 가장 깊이 알고 있으며, 가장 진실하게 그 문제에 대처하고 있는 유족들의 간곡한 호소를 정직하게 받아들이기를 바랍니다. 세월호 특별법은 반드시 수사권과 기소권까지 보장돼야 합니다. 우리는 이 문제가 바로 진실을 원하는 세력과 진실을 두려워하는 세력이 갈라지는 기준이라고 믿습니다. 정치인들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마십시오.
한국교회 교우 여러분,
우리 사회가 서로에 대한 신뢰감을 잃어가면서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어둠 속으로 빠져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맛을 잃은 소금처럼 버려져 짓밟히고 있는 실정입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오신 예수님의 삶을 기억하고, 우리 믿음의 진실을 정직한 맘으로 바로 세워야 할 때입니다. 사회적 약자가 된 세월호 유족들을 찾아가서 위로하기보다는, 그들에게 이젠 잊자고 말해서야 되겠습니까? 세월호 사건에 관한 진실이 제대로 밝혀진 것이 거의 없는데, 잊어야 할 것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요? 불의와 거짓에 파괴되지 않는 ‘진실과 정직의 공간’을 만들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없고, 한국교회는 존재 이유를 잃고 말 것입니다. 세월호 사건은 잊어야 할 과거의 비극이 아니라, 이 사회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가장 큰 기준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잊을 때가 아니라 정직한 맘으로 진실을 밝혀야 할 때입니다. 기도와 행동으로 진실을 밝히는데 힘써 주십시오.
우리 신학자들은 약한 사람들의 고통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증언하고자 합니다. 그것이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향한 참된 신앙이라고 믿습니다. 슬픔으로 무너져 주저앉은 세월호 유족들의 외침을 외면하지 않고, 우리 사회와 교회가 정직한 맘으로 진실을 세우는 일에 지치지 않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호소합니다.
2014년 10월 30일
종교개혁 497주년을 맞아
세월호의 아픔에 참여하는 이 땅의 신학자들
서명자 명단: 강성열(호남신대), 강신환(이화여대), 강응섭(예일신대), 강원돈(한신대), 고유식(감신대), 고재길(장신대), 곽호철(명지대), 구미정(숭실대), 권명수(한신대), 권수영(연세대), 권진관(성공회대), 권진숙(이화여대), 김경재(한신대), 김기석(성공회대), 김기철(배재대), 김동선(호남신대), 김동혁(감신대), 김동환(연세대), 김명배(숭실대), 김명실(장신대), 김명희(성공회대), 김상기(한신대), 김석주(장신대), 김성은(서울신대), 김성호(서울신대), 김수연(이화여대), 김영철(생명평화마당), 김영택(성결대), 김용복(침례신대), 김용복(한일장신대), 김운용(장신대), 김은규(성공회대), 김은수(전주대), 김은혜(장신대), 김장생(연세대), 김정숙(감신대), 김주한(한신대), 김준우(한국기독교연구소), 김진(예수나무공동체), 김진아(한신대), 김진영(호남신대), 김진호(제3시대그리스도연구소), 김창락(한신대), 김충연(감신대), 김충환(감신대), 김태연(이화여대), 김판임(세종대), 김학철(연세대), 김현욱(한국디아코니아), 김혜령(이화여대), 김형민(호남신대), 김화영(연세대), 김효숙(장신대), 김흡영(한신대), 김희헌(성공회대), 노정선(연세대), 류장현(한신대), 류태선(장신대), 민경식(연세대), 박경미(이화여대), 박경수(장신대), 박경철(한신대), 박도웅(감신대), 박득훈(기독연구원 느헤미야), 박만(부산장신대), 박명철(연세대), 박삼경(서울신대), 박성수(감신대), 박성호(감신대), 박숭인(협성대), 박영식(서울신대), 박우영(감신대), 박인갑(감신대), 박일연(호남신대), 박일준(감신대), 박종균(부산장신대), 박지은(이화여대), 박진경(감신대), 박재형(한신대), 박찬희(서울신대), 박창현(감신대), 박형국(한림대 생사학연구소), 박해정(감신대), 백상훈(한일장신대), 백소영(이화여대), 서광선(이화여대), 서종원(감신대), 서창원(감신대), 성석환(장신대), 성신형(숭실대), 손규태(성공회대), 손성현(감신대), 손영진(부산장신대), 손원영(서울기독대), 손은실(장신대), 손호현(연세대), 송순재(감신대), 송용섭(연세대), 송인동(호남신대), 신경림(웨슬리신대원, 워싱턴), 신익상(성공회대), 신재식(호남신대), 심광섭(감신대), 안택윤(서울장신), 양재훈(협성대), 오성현(서울신대), 오현선(호남신대), 우진성(한신대), 유경동(감신대), 유연희(감신대), 윤소정(이화여대), 윤영훈(빅퍼즐문화연구소), 이덕주(감신대), 이동춘(장신대), 이병학(한신대), 이봉석(감신대), 이상직(호서대), 이상철(한신대), 이성덕(배재대), 이세형(협성대), 이숙진(성공회대), 이승갑(한일장신대) 이영미(한신대), 이용주(숭실대), 이은선(세종대), 이은경(감신대), 이인경(계명대), 이원규(감신대), 이장섭, 이정배(감신대), 이정순(한신대), 이지성(루터대), 이진경(협성대), 이찬석(협성대), 이찬수(서울대), 이충범(협성대), 이한영(감신대), 이형기(장신대), 임희국(장신대), 임희모(한일장신대), 장신근(장신대), 장윤재(이화여대), 전현식(연세대), 전창희(협성대), 전철(한신대), 정경숙(나사렛대), 정경일(새길기독교사회문화원), 정경호(영남신대), 정승우(연세대), 정원범(대전신대), 정종훈(연세대), 정지석(성공회대), 정푸름(한신대), 조경철(감신대), 조남신(예일신대), 조한상(부산장신대), 채수일(한신대), 최광선(호남신대), 최대광(감신대), 최순양(감신대), 최영현(한일장신대), 최주혜(감신대), 최중화(부산장신대), 최형묵(한신대), 최태관(감신대), 하태혁(한남대), 한국일(장신대), 한인철(연세대), 허우정(한국디아코니아), 허호익(대전신대), 홍주민(한국디아코니아). 홍지훈(호남신대), 황병배(협성대), 황성규(한신대), 황승룡(호남신대), 황홍렬(부산장신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