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천국을 꿈꾸며 예수를 찾아온다. 예수의 십자가 보혈로 죄 사함을 받았기에,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이 의심할 나위 없는 당연한 일이라고 믿는다. 구원이 너무나 간단해진 요즘, 많은 기독교인들이 심판 앞에 무뎌져 있다. 그런 그들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700년 전에 단테가 삶, 죽음, 죄, 심판 등에 대하여 치열하게 고뇌하며 적어내려 간 서사시가 연극이라는 장르를 통하여 바로 여기, 서울에서 부활하였다.
단테는 삶의 한 가운데서 길을 잃고, 평소 존경하던 시인 베르길리우스를 만난다. 그는 일평생 사랑했던 여인 베아트리체를 만나기 위하여 베르길리우스와 함께 지옥과 연옥을 넘나드는 여정을 펼친다. 지옥의 문이 열리자 온갖 죄들의 썩은 내와 심판의 참혹한 풍경이 펼쳐진다. 그는 형벌을 받고 있는 많은 이들의 사연을 들으며 과연 인간이란 무엇이고, 신은 도대체 왜 존재하는지에 대해 고민한다. 그리고 지옥의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그동안 그 누구의 심판의 대상도 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는 결국 자신이 유한한 인간임을 고백하고,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살아서 지옥을 견디겠노라’ 선언한다. 그리고 지옥을 떠나 연옥에 향하게 된다. 연옥은 지옥에도, 천국에도 가지 못한 자들이 구원을 소망하며 참회하는 공간이다. 그 곳에서 단테는 연옥산을 올라갈 의지가 없는 게으른 영혼, 남의 불행을 자신의 행복보다 반가워했던 영혼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연옥을 지나 드디어 천국에 도착한 단테는 그토록 그리워했던 베아트리체와 재회하게 되고 그녀의 곁에 머무르려 하지만, 그녀는 그에게 용기를 가지고 현실 세계로 돌아갈 것을 요구한다. 쉬이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던 그의 앞에 세월이 흘러 늙은 단테가 나타나 손을 내밀고, 마침내 그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기꺼이 내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삶으로 가겠다’고 외치며 세상으로 나아간다.
지옥에 있는 이들의 죄의 무게는 각기 다르다. 반인륜적이고 극악무도한 죄를 저질러서 지옥에 갇힌 자들도 있는가 하면, 도대체 왜 지옥에 왔는지 판단이 잘 서지 않는 이들도 있다. 불의를 외면하고 침묵한 죄로 지옥의 형벌을 받는 자들, 그리고 연옥산에서 참회하는 영혼들의 모습은 현실 속의 우리와 너무나 닮아서 등골을 서늘하게 한다. 과연 우리가 구원받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세월이 지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천국의 문이 만만하게 열릴 것이라고 어느 누구도 속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연옥의 영혼들은 ‘내 죄를 내가 압니다’라고 울부짖는다. 누가 감히 그들을 동정할 수 있으랴. 그들은 7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인간의 영혼 곳곳에서 만년설마냥 녹지 않고 있는 죄들을 떨쳐내지 못하는 우리의 그림자이다. 단테는 타성에 젖어있는 우리에게 엄중하고 날카로운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미처 눈치 채기도 전에 지옥 문 앞에서 우리를 향해 손짓하고 있는 죄들을 직시하라고 말이다. 그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 삶의 한가운데서 길을 잃기 전에 인정하고, 고백해야 한다.
“내 죄를 내가 압니다... 내가 죄인임을 압니다...”
글/ 백결(연세대 신과대 2학년)·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