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대중문화 리뷰] <인터스텔라>를 본 뒤의 어지럼증

크리스토퍼 놀란 신작 <인터스텔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 ⓒ스틸컷

먼저 솔직하게 고백한다. ‘배트맨 리부트 시리즈’의 명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의 신작 <인터스텔라>(원제 : Interstellar)를 보면서 머리가 아파왔다. 영화는 169분의 러닝타임 동안 시간의 상대성 이론, 성간여행(인터스텔라), 웜홀 등등 천체물리학 개념을 쉴 새 없이 쏟아낸다. 그런데 워낙 이 분야에 문외한이라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던 이유가 바로 이런 점 때문이었다. 

사실 그가 이제껏 발표한 모든 영화 역시 이해하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그의 이름을 처음 알린 2000년작 <메멘토>는 바짝 정신 차리지 않으면 이야기의 연결고리를 놓쳐 버린다. 그의 2006년작 <프레스티지>는 전기공학자 테슬라를 이해하지 못하면 길을 잃기 쉽다. 그는 이를 의식했는지 테슬라 역에 팝가수 데이빗 보위를 기용해 신비감을 한껏 높인다. 
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작품은 단연 <배트맨 비긴즈>, <다크 나이트>, <다크 나이트 라이즈> 등 배트맨 리부트 3부작이다. 배트맨 리부트 3부작, 특히 2편 <다크 나이트>는 주제의식이 심오한데다 오락적 요소도 뛰어난 명작으로 손꼽힌다. 
그의 작가적 상상력은 2010년작 <인셉션>부터 보다 심오하게 발전하기 시작한다. <인셉션>의 주제는 꿈이다. 그는 이 영화에서 꿈이 층을 이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의 주제의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꿈 속으로 파고 들어가 인간의 의식을 원하는 방향으로 조작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주인공 아서(조셉 고든 레빗)가 무중력 상태가 된 호텔 회랑에서 무의식과 접전을 벌이는 장면은 실로 압권이다. 
그러나 <다크나이트 라이즈>나 이번에 내놓은 신작 <인터스텔라>는 예전만 못한 느낌이다. 배트맨 리부트 시리즈 완결판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시리즈를 매듭지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역력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 ⓒ스틸컷

<인터스텔라>는 실험정신이 돋보이지만 영화를 감상하는 게 아니라 과학 논문을 읽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한다. 이 영화의 주제는 우주탐험이다. 사실 우주탐험은 SF영화의 오랜 주제다. 그러나 이 영화가 그리는 우주탐험은 단순한 지적 호기심 충족의 차원을 넘어선다. 
가까운 미래, 인류는 식량위기에 직면한다. 모래먼지로 인해 농사가 사실상 어려워졌기 때문이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이런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비밀리에 ‘나자로 프로젝트’를 가동시킨다. 나자로는 성서에서 죽었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축복에 힘입어 다시 산 인물. 즉 나자로의 이름을 딴 프로젝트는 생명의 위기에 처한 인류를 다시 소생시킨다는 절박한 소망을 담은 셈이다. 
주인공 쿠퍼(매튜 매커너히)는 조종사였다가 일선에서 물러난 뒤 딸 머피, 아들 톰과 옥수수 농사를 지으며 평화롭게 산다. 그러다가 NASA의 부름을 받아 나자로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우주여행에 나선다. 이렇듯 이야기의 얼개는 아주 단순하다. 그러나 쿠퍼가 생명이 살 수 있는 행성을 찾아 나서는 과정에서 온갖 천체물리학의 개념들이 동원되면서 영화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영화를 본 느낌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대단하다’. 그러나 ‘재미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해하지는 말아주기 바란다. 작품성을 폄하하고자 하는 의도가 절대 아니다. 무엇보다 그가 웜홀이나 성간여행 등 난해한 천체물리학을 영상언어로 옮기려 한 시도는 찬사를 아끼지 않고 싶다. 실제 과학자들은 이 영화가 이제껏 발표된 SF영화 가운데 상대성 이론과 웜홀을 제대로 구현했다는 평가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또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음에도 부단히 새 지평을 개척하려는 그의 실험정신은 존경 받아 마땅하다. 문제는 영화를 보는 ‘재미’다.  
머리 따로, 가슴 따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 ⓒ스틸컷

매튜 매커너히, 앤 해서웨이, 제시카 체스테인, 마이클 케인 등 출연 배우들은 각자의 배역을 소화해 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특히 타이틀 롤 쿠퍼 역을 맡은 매튜 매커너히의 연기는 나무랄 데 없다. 앤 해서웨이의 연기도 <다크나이트 라이즈>, <레미제라블> 등에 출연하면서 한 층 농익은 느낌이다. 그의 영화에 거의 빠짐없이 출연한 마이클 케인의 연기는 더 말 할 나위 없다. 그러나 보는 이의 마음을 뒤흔들 결정적 한 방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후반부에 깜짝 출연한 맷 데이먼의 존재감도 큰 인상을 주지 못한다. 
영화의 줄거리도 보는 이들에게 감동을 전하기에 다소 부족하고 본다. 쿠퍼는 언제 돌아올지 모를 우주 탐험을 떠났다가 5차원 공간에 갇히고야 만다. 이런 상황임에도 그는 포기할 줄 모른다. 그는 아주 고전적인 방법, 즉 모스 부호를 통해 딸과 교신하면서 끝내 자신을 구해내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시간의 상대성은 둘 사이를 갈라놓는다.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딸은 자기보다 훨씬 나이 들어 이제는 임종을 맞이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에 새로운 사랑을 찾아 또 다시 성간여행(인터스텔라)을 떠난다. 이렇게 음울하면서 장중하게 전개되는 이야기의 흐름은 천체물리와 좀처럼 섞이지 못한다. 마치 머리와 가슴이 따로 노는 모양새다. 
단, 다시 한 번 언급하지만 그의 실험정신, 그리고 기술적 완성도는 노벨상 수상감이다. 특히 IMAX 카메라로 구현한 우주공간은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와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그는 그동안 작품을 연출하면서 IMAX 카메라를 즐겨 사용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다크 나이트>의 오프닝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광대로 위장한 조커 일당이 시카고 고층건물에서 외줄타기로 은행 옥상에 잠입하는데, 그는 이 장면을 IMAX 카메라로 찍어 아찔한 느낌을 자아내게 했다. 그는 <인터스텔라>를 찍으면서도 상당 분량을 IMAX 카메라로 촬영했다고 한다. 따라서 영화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IMAX 영화관에서 관람하기를 적극 권한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 ⓒ스틸컷

그의 문학적 감수성도 빼놓을 수 없다. 모래먼지로 인해 더 이상 먹을거리를 얻을 수 없어 우주로 눈을 돌린다는 설정은 존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원제 : The Grapes of Wrath)의 모티브와 비슷하다. 1930년대 미국 오클라호마를 배경을 한 『분노의 포도』에서 주인공 조드 일가는 모래먼지와 경제 대공황으로 인해 생계 위기에 처한다. 이런 위기는 비단 조드 일가뿐만 아니라 다른 농민들에게도 똑같이 다가왔다. 이에 조드 일가를 비롯한 많은 오클라호마 농민들이 땅과 일자리, 그리고 먹을거리를 찾기 위해 캘리포니아로 이주한다. 
그가 『분노의 포도』를 읽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가 영국의 명문학교인 런던 대학 영문학과 출신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스타인벡의 소설은 현대 영미소설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이기에 영문학을 공부하면서 한 번 쯤은 접했으리라고 본다. 
이 대목 외에도 영화 곳곳에 문학적 감수성이 묻어난다. 나자로 프로젝트의 총괄 책임자인 브랜드 박사(마이클 케인)는 쿠퍼를 우주에 보내면서 시 한 편을 낭독해준다.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말라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말라
노년은 날이 저물어감에 열 내고 몸부림쳐야 한다
빛이 꺼져감에 분노하고 또 분노하라
지혜로운 자들은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어둠이 지당함을 알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더 이상 번개처럼 번쩍이지 않기에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말라
선한 자들은 마지막 파도가 지난 후 그 덧없는 행적들이
푸른 바닷가에서 얼마나 빛나게 춤추었을지 한탄하며
빛이 꺼져감에 분노하고 또 분노하라
달아나는 해를 붙잡고 노래한 사나운 자들은
섭섭히 해를 보내준 걸 뒤늦게 알고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말라
죽음이 가까운 심각한 이들은
눈멀게 하는 시각으로,
멀은 눈도 유성처럼 불타고 명랑할 수 있음을 깨닫고
빛이 꺼져감에 분노하고 또 분노하라
그리고 당신, 저 슬픔의 높이에 있는 내 아버지
이제 당신의 성난 눈물로 나를 저주하고 축복하길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말라
빛이 꺼져감에 분노하고 또 분노하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 ⓒ스틸컷

이 시는 영국의 대표시인인 딜런 토머스(1914~1953)가 지은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라>(원제 :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다. 이 시는 이 영화의 주제의식, 즉 인류가 봉착한 위기 상황을 타개하고자 노력하는 인간 존재의 투쟁과 절묘하게 맞물린다. 쿠퍼는 이 시에 화답하듯 어려움에 봉착할 때 마다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라며 자신과 동료들을 격려한다. 
이제 글을 마무리 할 차례다. 시간은 직선으로 흐른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시간은 직선으로 흐른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런 고정관념을 과감히 깨뜨린다. 곧장 흐른다고 생각했던 시간이 그의 손을 거쳐 나가면 과거와 현재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때론 무한 팽창하기까지 한다. 
그는 <메멘토>에서 <인터스텔라>까지 일관되게 시간을 자유자재로 이어 붙이며 새로운 상상의 지평을 펼쳐 나갔다. 그러나 지나치면 모자란 것 보다 못하기 마련이다. 전작 <다크나이트 라이즈>와 신작 <인터스텔라>는 작가적 의욕이 다소 넘친 나머지 대중이 흥미를 느낄 만한 ‘재미’를 간과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는 머리는 조금 줄이고 가슴을 넓히는 연출을 기대해 본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그럴 역량이 충분한, 우리 시대의 거장이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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