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작전성공이다. 전병욱 전 삼일교회 담임목사의 면직을 다룰 재판국 2차 모임이 열렸던 지난 11월10일(월) 홍대새교회(이하 새교회) 측 성도들이 보여준 일사분란한 움직임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말이다.
바로 이날은 전 목사의 출석이 예고돼 있었다. 현장취재에 어느 정도 어려움이 따르리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 목사와 새교회 측 성도들의 집단행동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잠깐 사회로 눈을 돌려 보자. 재벌그룹 최고 경영자나 거물급 정치인이 비리나 낯 뜨거운 추문에 연루돼 피의자 신분으로 법정에 서는 일은 흔한 일상이 됐다. 그러나 이들은 최소한의 염치는 잃지 않았다. 이들은 법정에 입장하기 전, 벌떼 같이 모여든 취재진 앞에 모습을 드러내준다. 또 일정 수준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는 일도 빼놓지 않는 수순이다.
반면 전 목사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새교회 측 성도들은 전 목사 출두 전 재판국 모임이 열리는 예장합동 평양노회 사무실과 로비에 미리 진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취재진을 알아보고 “절대 사진 찍지 마라”고 엄포를 놨다. 더구나 전담 마크맨을 붙여 기자의 동선을 그림자처럼 마크했다.
노회 사무실 앞은 사실상 새교회 성도들이 점령한 상태나 다름없었다. 이들은 전 목사의 출두 시점, 그리고 재판을 마친 시점에 일제히 인의 장막을 치고 전 목사를 빼돌렸다. 이 과정에서 성도들은 자신들끼리 전화와 문자 메시지를 부지런히 주고받았다. 이런 모습들은 이들이 사전에 치밀하게 작전을 구상하고 현장에 나왔음을 강력히 시사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이라면, 사진 촬영을 포기하자 새교회 측 성도들이 다소 유화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사실이다. 5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남녀 성도 몇몇은 기자의 질문에 자신들의 속내를 드러내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 지면을 빌어 솔직한 속내를 드러내준 몇몇 성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자 한다. 자신들의 집단행동이 언론에 곱게 비칠 수 없음에도 기자에게 속내를 털어 놓은 건 분명 어려운 결단이기 때문이다.
추종자 뒤에 숨은 전 목사
▲성추행 파문이 일기 전인 지난 2010년 6월 특별새벽기도회에서의 전병욱 목사. ⓒ사진=지유석 기자 |
문제는 전 목사다. 전 목사의 성추행 의혹이 불거진 지도 벌써 4년째다. 그런데 이 기간 동안 전 목사가 직접 나서서 자신을 둘러싼 의문점들을 해명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삼일교회 시무 당시 전 목사는 교회를 전면에 내세우고 자신은 뒤로 숨었다. 자신이 성추행했던 피해 여성도와 전화로 통화하는 와중에도 “삼일교회는 한국교회의 중심이야”라면서 자신의 성추행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말 것을 거의 종용하다시피 했다.
전 목사는 결국 2010년 11월 첫 날 교회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게시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그 사과문이 본인이 작성한 것이 아니라는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전 목사는 이후 교회 개척까지 좀처럼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다가 2012년 5월 마침내 홍대새교회를 개척했다. 그러나 전 목사 자신은 설교를 제외하곤 일체의 언론 접촉을 피했다. 한편 그의 교회 개척 소식이 알려지자 여론은 들끓기 시작했다. 그는 이런 와중에도 도무지 입을 열지 않았다. 언론 대응은 그의 대변인격인 남 모 변호사가 도맡다시피 했다.
홍대새교회는 언론사 취재진에게는 무덤이나 다름없었다. 한 번은 모 인터넷 신문 취재기자의 카메라를 빼앗아 두 동강을 내다시피 하더니 또 한 번은 기독교계 방송사 취재진에게 차마 그리스도인이라고 하기에 민망할 정도의 욕설을 퍼부었다. 이 과정에서 취재 여기자는 팔이 꺾이고 카메라 기자는 장비를 탈취당할 뻔한 봉변을 감수해야 했다.
이제 전 목사는 자신이 직접 나서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지난 10월 예장합동 평양노회가 그의 면직을 다룰 재판국을 설치했고 그를 피고인 신분으로 호출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노회 관계자에 따르면 “예장합동 교단법규상 3회 이상 재판국에 출석하지 않으면 재판국은 임의대로 변호인을 선임한 뒤 면직 판결을 내린다”고 했다. 그는 노회 재판국 앞으로 내용증명을 보내 재판연기를 요청했으나 재판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계속 출석을 거부하면 자동 면직되는 처지가 된 셈이다.
그는 놀랍게도 재판국에 출두하는 바로 그 순간에도 자신을 숨겼다. 성도들은 그의 방패막이를 자처했다. 새교회 성도들은 자발적으로 나왔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어느 수준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백보 양보해서 이런 행동이 담임목사에 대한 ‘순수한’ 존경심에서 비롯됐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나 전 목사가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에 대해 일말의 죄책감이라도 가졌다면 이들의 행동을 막아섰어야 할 일이다. 그렇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성도들이 친 인의 장막 뒤에 숨어 유유히 현장을 빠져 나갔다.
이렇게 볼 때 그는 여전히 숨바꼭질 놀이를 즐기는 모양새다. 처음엔 삼일교회를, 새교회 개척 후엔 추종자에 가까운 성도들을 내세워 꼭꼭 숨고 있다.
그에게 진심으로 묻고 싶다. “당신은 하나님을 아느냐?”고. 사람 뒤에 숨을 수는 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선 숨을 곳이 어디에도 없다. 삼일교회 담임목사 시절 그는 당당하다 못해 건방지게 보였다. 예배 집례를 위해 예배당에 입장할 때면 늘 경호원을 앞에 내세웠을 정도였다. 반면 지금 그가 보여주는 행태는 치졸하기 짝이 없다.
그에게 진심으로 권면하고 싶다. 숨바꼭질 그만하라고, 그리고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당신이 욕보인 여성도 앞에 통회자복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 달라고, 그것이 지금 당신이 다시 살 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