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 교회적 운동을 제안한다
머리말
▲복음주의 신학자 김영한 박사 ⓒ베리타스 DB |
11월 셋째 주는 한국교회가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주일이다. 그런데 이미 해마다 반복되는 일로서 모든 추수가 끝난 시기에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것은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않다. 그 이유는 한국교회가 미국교회의 추수감사절을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이다. 필자는 한국교회가 추수감사절을 미국교회의 월력(11월 네째 주)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월력(추석)에 따라서 지킬 것을 제안하는 바이다. 이것이 단지 절기 지킴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가 우리 문화에 뿌리 내리도록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교회 내에서도 민속 절기인 추석 명절을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로 받아들이는 복음의 상황화(contextualization) 시도는 1970년대부터 제기되었고 선견지명이 있는 교회들이 벌써 실천해 왔다.
1. 11월 셋째 주 추수감사절은 미국 청교도의 전통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기독교인들에게 익숙한 ‘추수감사절’이다. 우리의 추석처럼 연례 최대 행사 중 하나로 지켜진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청교도의 신대륙 정착을 기념하는 축제다. 1620년 영국 국교의 종교 박해를 피해 청교도 102명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메이플라워호(The Mayflower)를 타고 60여일의 항해 끝에 같은 해 11월20일 신대륙의 플리머스항에 상륙했다. 그해 혹독한 겨울을 보내면서 그중 절반이 죽었지만 인디언들의 도움으로 살아남은 청교도들(The Puritans) 51명은 이듬해 봄에 씨앗을 뿌려 가을에 곡식을 수확할 수 있었다. 신대륙 미국에 정착한 이들 청교도들이 그 이듬해 1621년 추수를 마치고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린 데서 추수감사절은 유래했다. 청교도 순례자 선조들(The Pilgrim Fathers)은 낯선 이방인인 자신들에게 경작법을 가르쳐 준 인디언들을 초대해 수확한 곡식과 채소, 과일 등을 놓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칠면조 등 음식을 나눠먹었다. 고난 중에 드린 감사의 기도가 오늘날 우리가 지키고 있는 추수감사절의 유래가 된 것이다. 이 풍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1789년에 미국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이 처음으로 추수감사절을 국경일로 지정했으나 3대 대통령 제퍼슨이 추수감사절은 잉글랜드 왕의 관습이라는 이유로 국경일에서 제외시켜 몇 개의 주에서만 추수감사절을 지키게 된다. 그러다가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이 남북전쟁의 조기 종결과 국민 단합을 위해 11월 마지막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정하였다. 그 후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11월의 3번째 목요일로 변경하였다. 한국교회가 지키는 추수감사절은 이러한 미국교회의 전통에서 유래한 것이다.
2. 미국교회 전통에 따라 결정한 한국교회의 추수감사절
장로교는 1904년 제4회 조선예수교 장로회공의회에서 서경조 장로의 제의로 우선 11월 10일을 감사절로 지키기로 결정하였다. 1914년 각 교파 선교부 회의를 통하여 미국 선교사가 처음 한국에 입국한 날을 기념해 11월 셋째 주 수요일을 감사절로 지키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추수감사예배 시 헌금을 거두어 총회선교부의 전도사업에 쓰도록 하였다. 그 후 수요일을 일요일로 변경하여 매년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키기로 하여 오늘에 이른다. 이러한 시도는 추석이라는 민속의 추수감사절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아니한 결정이었다. 당시 미국 선교사들이 한국의 민속적 감사절인 추석(한가위)의 의미를 제대로 알았더라면 바로 추석을 추수감사절로 드릴 수 있었을 것이다.
3. 유럽의 추수감사절은 미국과 시기적으로도 다르다
유럽의 감사절의 기원은 기독교 이전으로 거슬러 유대교 전통으로 올라간다. 유대인들은 ‘수케,’ ‘시케’라는 가을 수확 무렵의 축제를 지냈다. 영국은 미국 청교도의 전통을 이어 추수감사절을 지키나 전통적으로 8월 1일을 추수감사절(Lamas)로 지키고 있다. 그리고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부활절 후 40일, 즉 승천일(목요일) 전 3일간을 추수 감사절로 지키고 있다.
독일의 추수감사제는 10월 초에 있다. 이 축제는 중요한 종교적 의식일 뿐만 아니라 북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거대한 저녁식사(대체로 가을에 추수한 곡식)와 행렬을 동반한다. 바바리안 맥주 축제인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는 보통 에언테당크페스트(Erntedankfest) 가까운 날에 개최된다.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는 19세기(1810년) 경마경기로 시작하여 214년의 전통을 가진 민속축제다. 이렇게 각 나라의 민속적인 풍습으로 행해졌던 추수감사제가 교회의 한 절기로서 지켜지게 된 것은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청교도들에 의해 거행되었던 1621년의 추수감사절의 영향 때문이다.
한국교회가 미국교회의 선교를 받기는 했으나 문화적으로 다른 전통을 미국교회로부터 그대로 이어받을 필요는 없다. 영어 성경이 우리에게 맞지 않고, 미국의 회중교회 방식이 유교적 전통의 한국사회에 맞지 않는 것 같이 추수감사를 드리는 시기라는 방법적인 면에서 우리의 문화적 등가어를 찾아서 지킨다는 것은 앞으로 기독교가 한국문화 속에 깊이 뿌리내리게 하는데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4. 추석에 우리는 추수감사의 원형을 보다 문화적으로 느낄 수 있다
첫 추수에 대한 감사의 성경적 근원은 곡물 추수와 관련되어 있다. 성경에 나타난 최초의 감사 제사는 가인과 아벨의 제사(창 4:3,4)이며 구약의 ‘초실절’이다. 이스라엘은 ‘햇곡식을 바치는 축절’이란 의미로 초실절을 지켰다.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추수한 첫 곡식을 하나님께 바치며 감사할 것을 요청했다: “너희에게 줄 땅으로 들어가서 추수를 하거든 추수한 첫 곡식단을 제사장에게 바쳐라”(레 23:10).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첫 단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원형적 의미이다. 맥추절은 보리수확의 첫 단을 하나님께 드린 초실절에서 7주간 뒤 곡물추수가 끝난 시기이기 때문에 칠칠절, 오순절이라고 했다. 유대인들은 맥추감사절을 통해 하나님께 한 해의 수확에 대한 기쁨과 감사의 표시를 했다. 이 맥추절은 유대인의 추수감사절로서 가장 오래된 절기이며, 일반적으로 칠칠절, 오순절 등으로 불려 왔다. 이스라엘 민족은 1년간의 노력과 그에 따른 결실에 감사하는 의미에서 ‘맥추감사예배’를 드렸다. 여기서 찾을 수 있는 원형적인 의미는 첫 곡식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드림’이다. 이 원형적 의미의 “감사와 드림”이야말로 추수감사절의 본질이며 핵심이라 할 수 있다.
한가위는 말 그대로 ‘가을의 한 가운데’란 뜻을 가지고 있으며, 한 해의 농사를 끝내고 오곡을 수확하는 시기여서 우리 명절 가운데 가장 풍성한 시기이다. 추석은 지금까지도 우리 민족의 고유한 명절로 자리 잡고 있어, 추석이 되면 많은 사람이 고향을 찾아간다. 가을 추수를 끝내고 햅쌀과 햇과일로 조상들께 감사의 마음으로 차례(茶禮)를 지내며, 특히 송편은 추석에 먹는 별미로 들 수 있다. 민속의 명절 추석에 햇곡식을 수확하여 천지신명에게 감사드리는 제례는 비록 신관이 다르지만 구약의 초실절의 첫 곡식을 거두고 하나님께 감사드림에 형식적으로 상응하고 있다. 〈신학월보〉에 따르면 ‘기록으로 남아있는’ 한국교회의 첫 추수감사예배는 1902년 10월 5일 여주 큰곰감리교회 감사절 예배로서 10월 첫 주에 드려졌다. 당시 여주 지역에서의 첫 수확이 이 시기에 이뤄진 점을 비춰볼 때, “첫 수확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추수감사절의 원형적 의미가 잘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5. 시기적으로도 추석이 추수 감사 시기다
시기적으로 11월 셋째 주는 이미 수확을 끝내고 11월 초에는 입동에 접어들어 전혀 추수감사와는 계절적으로나 분위기상으로 멀어지는 시기다. 이때 우리가 추수감사를 한다는 것은, 비록 교회의 월력을 따른 것이고 한국교회가 전통적으로 지켜 온 것이기는 하나, 추수감사의 분위기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더욱이 전도를 위해서는 문화적인 접근이 필요한데 그것은 민족의 한가위인 추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추석에 햇곡식을 거두고 먹으면서 이 햇곡식을 우리에게 주신 이가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것을 증거할 수 있다. 그리고 조상들이 풍농제에 감사를 드린 천지신명이 다름 아닌 창조주 하나님이신 것을 증거할 수 있게 된다.
이제 기독교가 한국사회의 제도종교의 하나가 된 이상 우리 사회의 문화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추수감사절을 민속의 명절인 추석과 일치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추석과 기독교의 추수감사절이 역사는 다르지만 인간 삶에 결실과 수확을 주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아직도 믿지 않는 가족과 이웃과 사회에 알리는 운동이 필요하다. 추수감사절을 추석으로 앞당겨 지키는 운동을 전개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교회가 추석명절을 기독교의 추수감사절기로 받아들이는 실천을 해야 한다. 이것은 민족 복음화를 위한 문화적 접근의 길이다. 미국교회의 관습에 따른 추수감사절은 이미 추수가 끝나고 겨울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로서 추수감사의 분위기가 사라진 때이다. 추수감사절 시기를 추석의 시기에 맞추면 계절적으로도 우리의 추수 시기에 맞아서 추수감사의 분위기를 체감할 수도 있을 것이다.
6. 추수감사절과 추석의 공통점과 차이점
중추절은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땀을 흘려 길쌈을 매고 노력하여 가꾼 농작물들의 결실을 주신 천지신명에 대한 추수감사제다. 이러한 중추절은 창조주를 알지 못하던 시절에는 우리 선조들과 동아시아 민족들이 천지신명에게 드리는 감사제였다. 우리의 선조들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천지신명에게 감사를 드렸다.
사실 추석은 기독교 신앙의 관점에서 보면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선조들의 추수감사절’ 내지 자연종교에서 드린 ‘익명의 추수감사절’이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에서 한가위는 고대사회의 자연종교의 풍농제(豐農祭)에서 시작했다. 풍농제는 한 해의 농사를 끝내고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자연종교의 풍습이었다. 이러한 전통이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유교사상과 혼합되어 제사의 대상이 하늘에서 조상(祖上)으로 바뀌게 되었다. 결국 한가위에 지내는 차례(茶禮)는 조상에 대한 제사가 유교적인 ‘효’ 사상과 결합되어 나타난 풍습이라 할 수 있다. 추석과 추수감사절의 공통점은 농부들의 땀과 노력에 결실을 가져다 준 초월적인 존재인 천지신명(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린다는 것이다.
감사드리는 방식에는 처음에는 하늘에 제사를 드리다가 유교에 와서 조상들에게 제사를 드리는 방식이 되었다. 그러나 제사 자체를 우상숭배로 보는 기독교인들에게 효(孝, filial reverence and devotion) 사상은 공감할 수 있어도 제사 참석은 신앙적인 양심에 갈등을 야기시킨다. 유교제사에서는 선조의 영이 귀신(鬼神)이 되어 와서 제사음식을 먹는다고 믿는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이를 강력히 부인한다. 이는 조상 존경이 아니라 귀신숭배가 된다고 보는 것이다. 제사 참여를 거부하는 교인들에 대해 불신 가족들은 ‘조상에 대한 존경을 표하지 않는 불효한 후손’이란 인식을 갖게 되고, 이로 인해 가족 간의 갈등 상황이 전개된다.
기독교에서는 이러한 조상에 대한 효를 십계명의 제 6계명이 있는 대로 중요시하기 때문에 유교의 조상 존경 사상과 근본적으로 공통점이 있다. 단지 조상에게 감사드리는 방식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기독교에서는 유교제사를 추도식으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발전시켰다. 여기에는 조상에 대한 존경이 포함되어 있으며, 단지 조상을 귀신으로 보는 것만이 제거되어 있다.
7. 추석의 천지신명을 추수감사절의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상황화 신학으로 변혁
우리 선조들도 아덴인들처럼 ‘알지 못하는 신(神)’인 천지신명에게 봄에 씨를 뿌림, 여름에 길쌈을 맴, 가을에 결실과 추수를 주심에 대한 감사를 드렸다. 아덴인들이나 우리 선조들이나 동일한 종교성이 있다. 추석이란 인간이 오곡백과를 주신 창조주 하나님에게 나아갈 수 있는 하나의 신앙적 계기가 될 수 있다. 추석절기에 우리 선조들은 풍농제를 통하여 농부들의 땀흘림에 대해 추수의 결실을 허락하신 천지신명에게 감사를 드렸다.
이에 반해서 기독교의 추수감사절은 창조주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린다. 그러므로 추수감사절을 추석절기로 앞당긴다는 것은 추석절기가 지닌 천지신명의 신관에 기독교적으로 세례를 주는 것을 말한다. 천지신명이 요단강에서 장사되고 삼위일체 하나님이 새로운 신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구약의 감사 절기들이 기독교에서 추수감사절로 이어진 것처럼 한국교회는 추석 명절도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절기로 만들어서 전도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리려면 지역교회가 무엇보다도 먼저 추수감사절을 추석에 지키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교인들로 하여금 추석이 바로 한국 선조들의 토착적 추수감사절이었다는 것을 알도록 해야 한다. 추수감사절을 한국인들이 절기로 지키고 즐길 수 있는 문화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추석에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것이다. 그리하면 교인들이 추석 때 가족 모임이나 가문 모임에 참석해서 이 사실을 가족들과 친지들에게 전하게 된다.
8. 기독교는 이제 우리 문화 속에 자리 잡아야 한다: 복음의 상황화 요청
그런데 한국교회가 추수감사절을 우리 조상과는 상관없이 미국 청교도들이 지켜온 11월 추수감사절의 전통에 따라 지키고자 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상황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들에게 있는 자연신학적 접촉점을 스스로 포기해버리는 결과와 같다. 기독교 신앙의 형식은 서구 선교사들로부터 왔으나 그 신앙의 자연신학적 접촉점은 천지신명이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증언하는 일이다.
자연신학적 접촉점은 복음적 상황화를 통하여 명료화되어야 한다. 민속의 절기인 추석이야말로 기독교의 추수감사절의 문화적 등가어(cultural equivalent)이다. 4세기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기독교는 성탄절을 정하는데 새로운 날짜로 정하지 않고 당시 로마의 민속종교가 관습적으로 지켜왔던 태양절의 형식(동지가 지나면 태양절은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는 날이기 때문에 로마인들에게 중요시)을 받아들였다. 로마의 기독교는 로마종교의 태양절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그 내용을 그리스도의 탄신일로 채웠던 것이다. 태양절의 이방신화를 제거하고 아기 예수의 탄생일로 채운 것이다. 문화적 변혁을 일으킨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민속절기와 기독교 절기 사이의 갈등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해주고 있으며, 기독교가 한국문화 속으로 토착화(土着化)해 들어간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우리 민속 절기 추석이야말로 너무나 문화적으로 한국민에게 선교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문화적 소재이다.
우리 민족 고유의 감사절이라 할 수 있는 한가위와 한국교회의 추수감사절은 그 본질적 의미에서 상통하다. 기독교의 추수감사절은 하나님께 첫 수확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드리고, 이웃과 풍성함을 누리는 시기이다. 이러한 전통문화와 결합된 토착예배는 우리 민족의 특수성을 반영하고 있어, 추수감사절의 의미를 더욱 부각시킬 수도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제 한국교회는 추수감사절에 대한 원형적 의미(첫 수확을 하나님께 드린다)를 되새기며, 추수감사절의 시기를 추석과 일치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신 그 의미를 오늘날 한국교회가 오늘날의 문화적 차원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더불어 추수감사절의 본질인 감사가 일 년 내내 실천되는 문화와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맺음말
우리의 추석(중추절)은 농사를 지은 후 기쁨의 행사로 음력 8월 한가위를 맞이하여 행하는 한민족의 명절이다. 한국인들은 종교 의식을 가미해서 행하게 됐고 조상들의 은덕을 감사하며 조상들에게 성묘를 하며 제사를 지내고 있다. 이제 한국교회는 뒤늦은 감이 있으나 추수감사절을 추석으로 앞당겨 지킴으로써 추석을 한국민족의 추수감사절로 만들어가는 시민운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이미 목회자들의 의식이 앞선 교회에서는 이런 방식이 이미 1970년대 실행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복음의 상황화 시도는 한국교회 전체에 파급되지 못했다. 다른 종교들이 반대하니까 이를 법제화까지는 할 필요는 없다. 한국교회가 자연스럽게 문화적으로 추석(한민족의 한가위)에 전 국민이 하나님에게 추수를 감사하는 운동을 벌이자는 것이다. 햇곡식을 거두는 초가을 추석절기에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것은 신앙과 삶의 일치를 이루는 것이다. 그리하여 추석에 추수감사절을 지킴으로써 자연스럽게 우리 신자들의 생활 자체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운동이 우리 사회 온 누리에 퍼져나갈 수 있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