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의 성윤리에 적신호가 켜졌음을 알리는 사건이 연일 불거지고 있다. 특히 지난 9월 국내 굴지 은행인 기업은행 충주연수원의 문 모 원장이 외주업체 여직원 숙소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여직원의 사생활을 촬영했다는 사건이 알려지면서 여론의 공분을 샀다.
경찰에 따르면, 문 원장은 9월26일(금) 충주경찰서에 자진 출두해 조사를 받았다. <충청일보> 등 복수의 지역 일간지들은 문 원장이 경찰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것은 맞지만, 곧바로 철거했다”고 진술했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경찰 조사 결과 문 원장의 행위가 수년에 걸쳐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복수의 지역 언론들은 “경찰은 사건의 심각성을 감안해 지방청에 정밀 카메라 분석을 의뢰했고, 최근 피해여성이 더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중략) 경찰은 몰래 카메라에 찍힌 방 안 TV 화면을 분석한 결과 약 2년 동안 촬영된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과 함께 몰래카메라가 기존에 밝혀진 화장실 뿐 아니라 방안과 복도에도 다수 설치돼 있었다고 밝혔다”고 적었다. 이에 대해 담당부서인 충주경찰서 강력2팀은 비보도 원칙이라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그러나 현지 지역신문 기자들은 경찰이 문 원장의 혐의 내용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문 원장은 지난 2009년 이 은행 중국 현지 법인장을 지내는 등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인사로 몰래카메라 혐의가 드러나자 9월29일(월) 자로 연수원장직에서 물러났다. 해당 은행 측은 문 원장이 계약직으로 근무했고, 그래서 본사와는 관련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문 원장의 부적절한 행위가 언론 보도를 통해 추가로 드러나자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해당 은행 측은 “아직 경찰 수사 결과가 발표되지 않았고, 피해자도 드러나지 않았기에 아직 어떤 입장을 취할 단계는 아니다”며 말을 아꼈다. 지역 언론에 보도된 기사 내용도 공식 발표된 사항은 아니었다.
국내 주요 은행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인사가 수년에 걸쳐 여직원의 사생활을 염탐했다는 혐의는 예사롭게 지나칠 일은 아니다. 따라서 이 인사가 그동안 몸 담았던 은행은 신중한 입장을 취하돼 진실이 드러나면 뼈를 깎는 심정으로 문 원장에 대해 엄정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경찰 수사에도 아쉬움이 남는다. 경찰이 정밀 감식을 통해 문 원장의 행각을 추가로 밝혀낸 것은 분명 칭찬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 대해 ‘비보도 원칙’만 되풀이할 것이 아니라 피해자에게 2차 가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정보를 언론에 공개해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는 한편, 기업인의 성범죄에 경종을 울렸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