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영한 칼럼] 이슬람교도 레자 아슬란의 예수론 비판(I)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샬롬나비 대표/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예수는 정치 혁명가?           

목차
머리말
〇 아슬란이 그려낸 역사적 예수 전기란 빈농 출신의 정치 혁명가 일대기
I. 방법론적 오류: 신앙의 그리스도와 역사적 예수의 분리
  1. 역사의 예수를 복음서의 예수와 분리
  2. “젤롯”의 시각으로 교회적인 예수의 이미지를 변형 
II. 신약성경의 고유한 텍스트 세계를 인정하지 아니함
III. 역사적 예수를 정치 이데올로기적으로 해석  
IV. 혁명가 예수는 복음서 예수상과 전혀 다른, 낯선, 날조(捏造)된 인물   
총결론  
머리말 
▲복음주의 신학자 김영한 박사 ⓒ베리타스 DB
올해 2014년에 들어와 정치 혁명가로서의 나사렛 예수 전기(傳記)가 논픽션 형식으로 출판되어 화제가 되었다. 미국 아마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집계 1위를 휩쓸고 영국, 중국, 독일 등 25개국 이상에 수출된 화제작으로 소개되고 있다. 다시 유대 독립운동가, 사회혁명가로서의 나사렛 예수에 대한 논란을 일으켰다.   
화제의 책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 리버사이드대 교수 레자 아슬란(Reza Aslan)이 저술한  『젤롯』(Zealot)(Reza Aslan,  Zealot: The Life and Times of Jesus [Thorndike Press, 2014], 민경식 역, 『젤롯』 [서울: 와이즈베리, 2014])이다. 그는 이 저서에서 예수를 로마 체제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킨 혁명가로 그리고 있다. 이란 출신의 이슬람교도가 ‘나사렛 예수’에 관해 연구한 작품을 발표했다는 데에 대하여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 미디어인 폭스 TV가 저자 아슬란을 불러놓고 왜 이슬람교도가 예수에 대해서 썼느냐고 공격적인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이것이 오히려 반이슬람 감정에 대한 반성과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논쟁의 기회를 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책은 베스트셀러 톱에 랭크되었다( cafe.naver.com/sdfstptkd/2074182).   
〇 아슬란이 그려낸 역사적 예수 전기란 빈농 출신의 정치 혁명가 일대기  
아슬란은 예수의 진정한 모습을 추적하기 위해 20년간 학문적으로 연구하면서 주요 복음서를 분석하고, 당시 로마 문헌에도 널리 알려진 유대인 역사학자 요세푸스의 『유대고대사』를 중심으로 타키투스, 요르게네스 등이 집필한 고대 문헌들 및 존 P. 마이어, 리처드 A. 호슬리, 존 핸슨, 마틴 헹엘 등 저명한 학자들의 수백 건에 달하는 저작들을 근거로 예수가 그 당시 사회에 널리 퍼졌던 ‘젤롯’의 신념을 간직한 정치적 혁명가라고 주장한다.   
아슬란에 의하면 이 책은 20년 이상의 역사적 고증을 통해 완성한 예수의 전기로 교회의 틀에 갇혀 신적인 존재로서만 알려진 ‘예수 그리스도’를 벗어나 유대의 독립과 민중을 위해 싸운 혁명가 ‘나사렛 예수’로서의 면모를 제시하고 있는 논픽션(non-fiction)이다. 그는 이란 출신으로 미국에 이주해서 살면서 한 때 복음주의 기독교인이었다가 다시 자기 민족의 이슬람교로 되돌아왔다고 한다. 아슬란은 이미 1960년대 기독교 신학에서 해방신학자들이 그려놓은 예수상을 종교사회학적 맥락에서 로마 시대의 정치적 혁명가 모습으로 다시 그려내고 있다. 그에 의하면 예수가 대외적으로는 로마의 제국주의와 맞서 싸운 빈농(貧農) 출신의 독립운동가이며 내부적으로는 친(親)로마 보수주의자들과 싸운 사회혁명가라는 것이다.
대학에서 종교학 외에도 문예창작을 가르치는 이력에서 발휘된 탁월한 스토리텔링 기법을 활용하여 아슬란은 전통교회가 복음서에 입각하여 믿고 신앙고백한 신약 복음서의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논픽션적 혁명가상(像)으로 왜곡하고 있다. 아슬란은 대제사장의 살인으로 시작되는 1장의 첫 구절이라든지 예수의 자취를 더듬어가는 주요 에피소드에서는 종종 소설적인 기법을 끌어와 몰입도를 높인다.   
“자객은 군중 틈을 비집고 들어가 대제사장 요나단에게 바싹 다가갔다. 몰래 손을 내밀어 대제사장의 성스러운 예복을 움켜쥐고는, 그를 휙 잡아채 성전 경비병에게서 떼어놓았다. 그러고는 그를 꼼짝달싹 못하게 꽉 붙잡고, 순식간에 단검을 빼 그의 목을 그었다. 또 다른 종류의 희생 제의인 셈이다. 대제사장의 피가 성전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대제사장이 주저앉는 것을 경비병들이 느끼기도 전에,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누군가가 눈치 채기도 전에, 자객은 군중 사이로 유유히 사라졌다. 이 자객이 ‘살인이다!’라는 말을 가장 먼저 외쳤다 하더라도 이상할 게 전혀 없었다.”(『젤롯』, 1부 프롤로그 중에서).   
카리스마 있는 리더로서의 예수는 물론, 단도를 들고 다니며 폭력적인 혁명 활동을 벌인 시카리(sicari, 단도단)와 같은 독특한 집단이나 가야바, 안나스와 같은 비열한 대제사장들의 캐릭터가 실감나게 그려져 마치 역사 소설을 읽는 듯하다. 이렇게 20년간 탐구를 통해서 복원한 혁명가로서의 예수의 모습은 마태복음에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마 10:34)에 가장 잘 나타나 있다고 본다.  
아슬란은 나사렛 예수에 대하여 역사적으로 확증할 수 있는 두 가지 사실을 우선적으로 거론한다. 하나는 유대 민중 운동을 일으킨 열심을 품은 예수요 다른 하나는 그가 십자가에 처형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두 가지 사실을 유대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의 『유대고대사』(Antiquities) 등 역사실증학의 자료들과 결합시킨다면 정치 혁명가 예수상을 복원할 수 있다고 본다.   
“결국 나사렛 예수에 대한 보도 가운데 확실하게 신뢰할 수 있는 실증적 역사적 사건은 두 가지뿐이다. 첫째는 예수가 기원후 1세기 전반에 팔레스타인에서 유대 민중운동을 일으킨 유대인이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 두 가지 사실만으로는 2천 년 전에 살았던 인물의 생애를 완벽하게 재현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사실을 예수가 살던 격동시대에 대한 우리의 모든 지식과 결합한다면(로마인들 덕택에 우리는 실제로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이는 복음서의 보도에 따른 예수의 초상보다 역사적으로 훨씬 더 정확한 나사렛 예수의 초상을 그리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실재로 이러한 역사적 재구성을 통해 그 모습을 드러낸 예수(그 시대 모든 유대인들이 그러했듯이 1세기 팔레스타인의 종교적 정치적 혼란에 휩싸인 열광적인 혁명가들로서의 예수)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만들어낸 순한 목자의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젤롯』, 26-27.)  
아슬란은 인터넷 서점 아마존과의 인터뷰에서 다음 같이 말한다.  
“나는 이 책이 예수가 살았던 세계의 완전한 감각을 제공하길 바란다. 그 시대의 종교 역사적 문맥을 떼어 놓고는 예수의 말씀을 진실로 이해할 수 없다. 당신이 예수를 선지자, 스승, 신의 대리자로 생각하는 것과 별개로 그가 진공 속에서 살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는 어쨌든 의문의 여지없이 그 시대의 사람이었다. 우리 모두에게는 이것이 진실이다. 예수가 누구였는지 무엇을 의미했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그가 살았던 시대의 이해 하에 두는 것이 열쇠다. 이 책은 그것을 담았다. 당신을 예수의 세계 한 가운데 떨어뜨리고 설교에서 벗어나 그 문맥을 이해하는 것을 도울 것이다.”(인터넷 서점 ‘아마존’과의 인터뷰 중에서, 2014.)  
필자는 아슬란의 역사적 예수 전기(傳記)가 갖는 문제점을 네 가지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논의하고자 한다.   
I. 방법론적 오류: 신앙의 그리스도와 역사적 예수의 분리
1. 역사의 예수를 복음서의 예수와 분리  
아슬란은 역사적 교회가 경전으로 읽는 복음서의 예수상(像)은 본래적 예수상이 아니라 복음서 필자들에 의하여 각색한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신앙의 그리스도와 역사적 예수 사이를 방법론적으로 분리시키고자 한다. 
“불신자들이 던지는 의혹에 네 복음서가 증언하는 예수의 모습과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예수의 모습 사이의 괴리가 커졌다. 그러니까 신앙의 대상인 예수 그리스도와 역사적 인물, 나사렛 예수의 거리감이 커져만 갔던 것이다.”(『젤롯』, 16.)    
이러한 방법론적 접근은 이미 19세기의 자유주의적인 역사적 예수상 논구와 20세기 “예수 세미나”의 영지주의적 예수상 탐구의 방법론적 접근과 다른 것이 없다. 아슬란 자신은 기독교인이 아니라 이슬람교도이다. 그는 1972년 이란에서 태어나 1979년 이란혁명 때 미국으로 건너와서 한 때 복음주의 기독교에 심취했다가 다시 가족의 종교인 이슬람교로 개종하였다. 이러한 이슬람적인 시각에서 보는 역사적 예수는 복음서 필자들이 제시하는 역사적 예수의 모습을 제대로 그려내지 못한다. 그는 신적 존재로 그려져 교회의 틀에 갇혀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교적인 베일을 자신의 예수 전기(傳記)로써 벗기고자 하며, 역사적 예수를 유대의 독립과 민중들을 위해 싸운 혁명가로서 제시하고 있다. 그는 혁명가인 나사렛 예수상을 제시함으로써 교회가 2천년 역사와 전통을 통해서 경배해온 신앙적 예수 그리스도상에 도전하고 있다.   
아슬란은 미국 보수 언론 폭스 TV의 공격적인 질문에 다음같이 대답하였다: “나는 고대 헬라어에 능숙하고 신약학 및 4개의 학위가 있는 종교학자”로서 “앵커가 보여준 이런 편견이 없는 진실을 추구하고자 한다.” 그는 이 대답으로 오히려 반이슬람 감정에 대한 반성과 종교 다원주의에 대한 논쟁의 기회를 열기는 했다. 그러나 역사적 예수의 진정한 모습을 탐구하는데 고대 헬라어에 능숙하고 신약학과 중동의 종교사회학에 학위를 가졌다는 것은 하나의 외부적인 조건이 될 수 있으나 내면적이고 충분한 필수불가결한 조건이 될 수는 없다. 필자가 강조하는 것은 연구자가 역사적 예수에 대한 인격적 신앙의 관계에 있지 않으면, 복음서 필자들의 기록들이 모두 후대의 왜곡 내지 종교적 왜곡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 “젤롯”의 시각으로 교회적인 예수의 이미지를 변형
 아슬란은 방법적으로 교회의 베일 속에 있는 신앙의 그리스도라는 베일을 벗기고 역사적 사실의 예수를 그려내고자 한다. 아슬란은 종교적 믿음이 아니라 실증적 사실을 바탕으로 신적 존재가 아닌 인간적 존재인 예수에 접근하고자 하는 것이다. 아슬란은 미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다음 같이 말했다.  
“예수가 살았던 시대를 통해 그를 정의하고 이해하는 게 최상의 방법이라고 본다. 예수가 다윗의 왕국을 복원할 메시아였는지 하나님의 아들인지 하나님 그 자신인지 어느 쪽이건 예수는 그의 시대의 산물이다. 당시 사람들은 메시아를 고대했다. 수많은 사람이 스스로 메시아라 주장했다. 우리는 1세기 유대의 그 많은 메시아들 중에서 오로지 예수만을 기억한다.”(뉴욕 중앙일보, “‘예수 전쟁’ 부른 책 『젤롯』의 필자 레자 아슬란,” 2014년 4월 15일 중앙일보 미주판 25면). 
그러나 이는 방법론적으로 일면적인 것이다. 필자의 견해에 의하면 단지 시대사적 접근으로는 나사렛 예수의 실재성을 밝힐 수 있으나 그의 내면적 세계와 그의 존재의 정체성은 드러낼 수 없기 때문이다. 신앙의 그리스도 없는 순수한 역사적 사실로서의 예수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미 19세기 독일 괴팅겐의 신학자 마르틴 켈러(Matin Kähler)가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이른바 사실적 예수’(so called historic Jesus)는 ‘성경적이고 역사적인 그리스도’(biblical historical Christ)와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성경적 예수는 신앙고백의 그리스도라고 결정적으로 통찰한 바 있다. 필자도 역사적 예수를 파악하는 데 있어서 신앙과 사실의 불가결한 연결을 강조한다. 이것이 바로 해석학적 실재론(hermeneutic realism)이다. 신약 복음서 저자들(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복음서는 사실적으로 존재했던 역사적 예수로부터 신앙적 감화를 받았고, 이러한 신앙적 감화 자체가 역사적 예수를 보게 하는 중요한 신앙적 관점이 된 것이다. 이러한 신앙적 관점을 떠난 중립적 순수 사실로서의 역사적 실재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해석학적 실재론이란 실재가 해석자의 관점 안에서 ‘해석되어’ 존재한다는 관점이다.     
아슬란은 전통적 기독교의 예수상을 기독교인들이 허구적으로 그려낸 것이라고 하여 이를 제거하고 예수를 정치적 혁명가로 그리고 있다. 아슬란은 기독교 신자들 머릿속에 각인된 예수의 이미지를 하나하나 지우기 시작한다. 그는 교회가 가르치는 예수, 즉 절대자와 동일시되는 천상적인 존재로서 놀라운 기적을 일으켰고 온 인류를 위해 무조건적인 사랑과 평화를 가르친 선한 목자로 익숙해진 이미지, 현대인에게는 여전히 미스터리하게만 느껴지는 ‘예수’라는 존재가 행했다는 기적과 부활의 메시지 등 모든 것이 “꾸며낸 황당한 이야기”이거나 “완전한 날조”요 거짓이라고 본다.  
그래서 아슬란은 예수라는 존재 앞에 드리워 있던 기독교적 장막들을 하나하나 걷고 그의 실체를 목격하고자 한다. 그는 기독교 신약학을 전공했으나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 이슬람교도로서 여태까지 기독교 전통신자들이 가져왔던 교회적인 예수의 이미지를 변형시키고자 하는 반기독교적인 시각(an anti-Christian view)을 가지고 있다. 아슬란은 다음같이 피력한다. 
“일반적으로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고 다른 쪽 뺨마저 내어 주는 평화주의자로 묘사되는데, 이러한 습관적 이해는 그 당시의 정치적으로 불안한 세계에 대해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비정치적인 설교자라는 예수의 초상에 뿌리를 둔다. 이러한 예수의 모습이 완전히 날조(a complete fabrication)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살펴보았다.... 분명히 예수는 무저항 비폭력주의자는 아니었다.”(『젤롯』, 185.)   
그리하여 아슬란은 역사적 예수를 오늘날 이슬람의 원리주의자 같이 로마지배 체제를 전복시키는 독립운동가 내지 사회혁명가로 그리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종교적 베일 걷어내는 학문적, 실증적 접근이라고 하지만 그의 탐구의 이면에는 신적 존재인 예수를 잠재적으로 비하하고자 하는 이슬람교도의 반기독교적 정서가 도사리고 있다. 비록 이슬람이 예수를 선지자로 인정하고 있고 자신은 예수에게 좀더 친밀하게 다가가기 위해 예수 전기(傳記)를 저술했다고 하더라도, 그는 이러한 방법론적 제한성에 사로잡혀 있다.   
맺음말   
아슬란이 그려낸 역사적 예수론의 결정적인 오류는 그가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시도한 역사적 예수 탐구(일반적으로 제1탐구라고 함)의 관점을 반복하여, 역사적 예수와 신앙적 그리스도를 분리하여 역사적 예수를 기독교적 복음서의 관점이 아닌 이슬람의 전사(戰士)의 관점에서 보려고 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복음서 자료들 가운데 아슬란 자신의 관점에 맞지 않는 것을 역사적 예수의 본래의 모습에서 제거해 버리고 이슬람의 투쟁적 전사에 맞는 부분을 가지고 역사적 예수를 재구성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그러니 아슬란에 의하여 그려진 역사적 예수란 성경적 하나님의 아들이기보다는 팔레스타인의 사회적으로 로마체제에 대항하여 일어난 민중으로서 정치적 혁명가였다.    
이러한 예수상은 오늘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영토 분쟁 속에서 그리고 특히 이스라엘에 의하여 사회적으로 고립당하고 살아가는 민중 팔레스타인들에게 하나의 혁명가적 비전을 불어 놓는 인물일 수는 있으나 신약 4복음서와 역사적 교회가 가르쳐주는 인류의 구속자와는 전혀 다른 인물인 것이다. 더욱이 성경이 가르치는 역사적 예수는 원수를 대항하고 죽이는 혁명가적 투사가 아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요 15:13)고 가르치고 심지어는 원수를 사랑하고 너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고(마 5: 44) 사랑하라고 가르친  사랑의 교사로서의 역사적 예수와도 너무나 거리가 먼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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