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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교권 패권주의에 물든 신학교

신학교, 벙어리 개가 된 건 아닌지 자문해야

차세대 목회자 양성기관인 신학교가 교권주의로 더럽혀지고 있다. 이 현상을 진단하기에 앞서 먼저 미국 다큐멘터리 영화 <인사이드잡>을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이 영화는 미국은 물론 세계 경제를 순식간에 공황으로 밀어 넣은 금융위기의 원인을 되짚어 나간다. 연출자인 찰스 퍼거슨은 이 영화를 통해 1980년대 당시 레이건 행정부가 금융자본의 고삐를 풀기 시작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를 잉태했다고 꼬집는다. 그런데 이 영화는 단순히 금융위기를 불러온 원인 진단에 그치지 않는다. 
이 영화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위기를 불러온 장본인들이 여전히 현 오바마 행정정부에서 요직을 차지하며 경제정책을 주무르고 있다는 경고 메시지를 보낸다. 이를테면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를 지낸 티모시 가이트너가 오바마 행정부 1기 재무장관에 임명되는가 하면, 조지 부시 대통령 시절 재무장관이었던 래리 서머스를 경제자문으로 임명하는 식이다. 
이 영화는 또 하나의 중요한 경고 메시지를 전한다. 글렌 허바드 콜럼비아대 경영대학원 학장, 프레드릭 미쉬킨 콜롬비아대 경제학 교수 등의 사례를 들며 월스트리트 금융자본이 학계마저 장악해 월스트리트의 논리가 흡사 경제학의 진리인양 설파하고 있다는 것이다. 
몇몇 신학교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미국과 유사한 양상이다. 미국의 경우 월스트리트 금융 자본이 학계를 더럽히고 있다면, 한국에선 교권주의 세력이 신학교를 장악해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현상의 신호탄은 지난 1992년 변선환 당시 감리교신학대 학장에 대한 종교재판이었다. 이때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던 장본인은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였다. 1992년 5월, 금란교회에서는 사상 초유의 종교재판이 열렸다. 이때 재판위원회는 “기독교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변 교수의 말을 문제 삼아 그에 대한 출교 처분을 내렸다. 
감리교 신학자들은 선교 초기부터 한국 문화의 전통을 폭넓게 수용했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그러나 변 학장의 출교를 기점으로 교회의 신학과 리더십은 김홍도로 대표되는 교회 성장론자들이 장악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 손규태 성공회대 명예교수는 그의 저서 『한국교회와 신학적 실존』에서 “부흥회적 교회성장론이 득세하면서 감리교회에서는 토착 신학과 맥을 같이하고 있는 ‘종교신학자들’이 수난을 당한다. 감리교신학대학 학장이었던 변선환 박사의 목사직 박탈과 홍정수 교수가 성장론자들, 즉 부흥사 집단에 의해서 교단과 신학교로부터 추방 당한다”고 적었다. 
지금은 어떨까? 예장통합 계열의 장신대는 교단 내 유력 목회자에게 매수되다시피 했다는 설이 학교 안팎에서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예장합동 교단 직영의 총신대는 길자연 총장의 거취를 두고 말이 많다. 사실 길 총장의 거취는 총장 임명당시부터 제기돼 왔던 문제였다. 이와 관련, 예장합동 총회는 정관개정을 지시해 사실상 사퇴를 권유한 바 있다.
성장주의 패러다임, 민중신학 마저 오염시키나?
그러나 현재 길 총장은 김영우 재단이사장과 함께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다. 이 학교 동문들과 재학생들은 길 총장이 물러나지 않는 이유를 자리 욕심이라고 진단한다. 즉 “교단 내 입지가 줄어드는 길 총장이 상대적으로 교단 통제가 느슨한 총장직을 유지하면서 마지막 정치적 야망을 불태우고 있다”는 설명이다. 
최근 한신대 신학대학원에서는 한 신학생이 채플 기도시간에 ‘민중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린 일로 인해 한 바탕 논란이 불거졌다. 이 신학생은 이로 인해 학교 측으로부터 더 이상 그렇게 기도하지 말라는 압력(?)을 받아야 했다. 
‘민중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일이 과연 타당한지에 대한 신학적 논쟁은 일단 접어두고자 한다. 더구나 해당 학생과 대학원 관계자와 화해의 자리를 가졌기에 더 이상의 언급은 적절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이 언제고 다시 불거질 가능성은 전혀 배제할 수 없다. 이번 사태의 원인이 교권주의에 있다고 보는 시각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민중신학의 요람’이라는 한신대에서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은, 성장주의 패러다임이 한국 기독교장로회에도 깊숙이 파고들어와 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한국 교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는 ‘교회 성장’이다. 교단 내에서 성장을 이뤄낸 목사들의 입김은 교단을 좌지우지할 만큼 강력하다. 더구나 진보 성향의 교단과 교단협의체 마저도 자본의 논리에 눈치를 보는 상황이어서 ‘힘 있는’ 목사들의 패권주의적 행태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신학교가 이런 정치 목사들의 수중에 떨어지는 사태는 한국 교회의 미래를 어둡게 만든다. 그 이유는 신학교가 광야에서 외치는 선지자를 배출하기보다 교권에 길들여진 직업 목회자들을 양산해 낼 것이고, 이에 따른 뒷감당은 고스란히 한국 교회의 몫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스위스의 신학자 칼 바르트는 신학을 “교회를 봉사하는 학문”이라고 일갈했다. 즉, 신학의 역할은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선포하고 성례전을 바로 집행하는 가를 감시, 감독하는 데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신학은 현 한국 교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관철하는 수단으로 전락해 버렸다. 
한국 교회에서 ‘신학하기’란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 신학교 공동체를 이루는 모든 구성원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게 답을 찾아야 할 명제일 것이다. 
“오늘날 한국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에서 이탈된 교회를 향해 짖지 않는 개와 같아서 교회를 감시 감독하지 않고 꿈이나 꾸고 배만 채우고 낮잠만 즐기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한국의 신학자들은 미국식 자본주의의 경제논리에 기초한 ‘교회성장론’과 다단계 판매 전략에 기초한 구역조직과 제자훈련 프로그램으로 채색된 일부 대형교회들을 향해 ‘꿈꾸며 분별력을 잃고 잘 얻어먹고 지내는 벙어리 개’가 된 것은 아닌가? 신학자들은 교회를 집어삼킨 거대한 종교적 레비아단 집단들과 맘몬주의의 파도에 묻혀 침묵함으로써 배불리 얻어먹고 낮잠을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손규태 성공회대 명예교수, 『한국교회와 신학적 실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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