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봉 등탑 재건을 두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이영훈 목사, 이하 한기총)와 기독교계 진보단체 간의 갈등이 긴장된 침묵 기간에 들어간 듯하다. 긴장이 감돈다고 표현한 것은 한기총이 “한국교회의 대표성을 상실한 한기총이 등탑 재건으로 체면을 찾으려 한다[는 주장과 표현에 대하여] 강력히 법적 대응에 나설 것”임을 밝힌 가운데, 진보단체들은 “등탑 재건립과 점등이 계속 추진될 경우 ... 이를 저지하기 위해 적극 행동에 적극 나설 것”임을 천명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현재 어떤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양측은 이 외형적 침묵의 기간 동안에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한기총은 등탑 재건을 위해 국민모금운동까지 벌일 계획을 밝혔고 국방부로부터 종교활동 보장의 명목으로 애기봉에 임시성탄트리 설치의 허가를 받은 상태이기 때문에 가시적인 행동을 보여야 할 부담을 안고 있으며 진보단체들에 대한 법적 조처도 검토 중에 있을 것이다. 한편, 진보단체들은 ‘대북 전단살포 및 애기봉 등탑 건설 저지 공동대책위’(이하 공대위)를 결성하고 “애기봉 등탑 점등은 주민 생존권 위협뿐만 아니라 군사적 위기를 고조시키는 매우 위험한 행위”라고 성토하면서 등탑 재건을 저지할 것을 천명한 상태라 한기총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교계의 남남갈등이라고 명명된 이 대치국면은 당사자와 교계뿐만 아니라 일반 언론과 북한도 주시하고 있는 일이 되었다.
기독교계 내부의 집안싸움이 담 너머로 흘러나간 상황인데, 다행히 오는 12월12일(금) 오후 김포시 애기봉 출입신고소에서 한기총, 공대위, 재향군인회 등이 만나 중재안을 논의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린다(12월11일자 본보 기사 “애기봉 성탄트리 논란, 돌파구 열릴까?” 참고). 이 기사를 쓴 지유석 기자는 “애기봉 임시 성탄트리를 둘러싼 찬반 양측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면서도 타협의 여지가 다분해 양측이 중재안을 마련할 수 있을지 결과가 주목된다”는 전향적인 분석을 내놓고 있다. 서로 중재대화를 하기로 합의했으니 “평화의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적그리스도 행위”라든지 “터무니없는 이념적 갈등을 부추기는 것으로 그 가치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등의 자극적인 주장들을 서로 주고받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양측이 믿음의 논리 안에서 정당성을 갖고 있기에 혹시 이 문제를 옳고 그름이나 믿음의 유무와 관련된 사안으로 오인하여 각자의 논리를 설득시키려는 소모적인 노력을 하지 않을까 우려되는 점도 있다.
양측은 모두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자신들의 주장을 개진하고 있다. 한기총은 성탄절의 화평의 정신을 북녘에도 알리고자 하는 것이며 진보단체들은 북한에게 허탄한 도발을 야기하는 빌미를 주어 애기봉 주변지역 주민들의 안위에 위협이 되는 자극을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앙의 관점에서 볼 때 각각 정당성을 가지고 있기에 이는 적어도 옳고 그름이나 믿음이 있고 없음의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만 서로가 염려하는 방향과 의도가 다를 뿐이다.
이처럼 양측이 나름의 옳음을 주장하면서도 상대방의 주장의 가치를 삭제할 수 없을 경우에는 바울의 권고를 되새겨 보는 것이 도움이 될 듯하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음식 문제로 논란을 빚고 있을 때 우선 서로 비판하지 말 것과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할 것(롬14:13)을 제안한다. 당시 로마에서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우상에게 제물로 바친 고기 등의 음식을 시장에서 판매하고 있었고 일반인들은 이 음식을 구입해서 먹는 문화였기에 우상숭배를 거부하는 기독교인이 그 음식을 사 먹어야 하는지의 문제로 인하여 분쟁이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음식 문제는 옳고 그름의 문제나 믿음의 유무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강약과 관련된 문제로 보고 상호비판을 자제하는 것과 동시에 상대방의 논리적 약점을 이용하지 말 것을 가르치고 있다. 바울은 믿음의 동역자들에게 자기를 기쁘게 하는 일보다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유익을 언급하면서 “자기를 기쁘게”(롬15:1) 하려고 상대방에게 날선 비판을 하여 믿음이 약한 자를 실족시키지 말라는 취지로 믿음이 강한 자가 믿음이 약한 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이 이렇게 권면한 것은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 하셨[음]”(롬15:3)에 근거를 둔다. 그는 어떤 문제에 접하여 그리스도인들끼리 논란을 겪을 때는 옳고 그름, 혹은 믿음의 유무가 관건이 아닌 경우 그리스도의 방식으로 논쟁을 해결할 것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 하였듯이 그리스도인들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 한 태도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이]”(롬15:3) 내부로부터의 비방을 초래할 수 있다. 하지만, 성경에도 씌어져 있듯이 그렇게 비방 받는 일은 결국 인내와 위로를 통해 소망을 갖게 만든다: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롬15:4).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 하는 과정과 그 결과로 닥친 비방을 인내하는 일은 성경이 위로할 것이며 결국 사태의 원만한 해결을 소망할 수 있게 한다는 말이다. 이 인내는 바울이 인정하듯이 “믿음이 강한 우리[가]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롬15:1)하려는 신앙적 책임감에서 발로한다.
애기봉 등탑 재건 문제도 바울이 거론한 음식 문제와 성질이 같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문제에 관해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롬15:1-2) 해야 한다. 애기봉 등탑 재건과 관련하여 믿음의 형제들 사이에서 벌어진 논란은 옳고 그름으로 접근하거나 믿음이 있고 없고의 문제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믿음이 약하거나 강함의 문제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지 않는다면, “믿음이 강한 우리”는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 해서 초래한 비방을 견디며 성경의 위로로 힘을 얻어 결실을 맺기까지 인내해야 하는 것이다. 이번 중재대화에서는 양측이 모두 “믿음이 강한 우리”가 되기를 기대한다. 모두가 한 그리스도를 믿는 형제들이며 믿음의 길을 함께 가는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애기봉 등탑 재건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므로 양측이 모두 “믿음이 강한 [자]”로서 접근해야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