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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갈피 못 잡는 한기총

애기봉 등탑 논란, 정치 행보가 근본 원인

▲지난 11월 14일 애기봉 현지에서 한기총이 주최한 <애기봉 등탑 건립을 위한 기도회> 전경. ⓒ사진제공= 공동취재단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 이영훈 목사)가 갈피를 못 잡는 모습이다. 한기총이 추진하던 김포 애기봉 등탑 재건축이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출발은 야심찼다. 한기총은 지난 10월 홍재철 전 대표회장을 애기봉등탑건립위원장에 임명한데 이어 11월14일(금) 오후 애기봉 현지에서 <국가와 민족을 위한 기도회>를 열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은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먼저 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기사련)과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목정평)는 한기총이 기도회를 열기로 한 바로 그날, 기자회견을 열고 한기총의 움직임을 거세게 비판했다. 기사련과 목정평은 성명을 통해 “애기봉 등탑은 본질적으로 성탄트리가 아니다. 애기봉 등탑을 그 무슨 성탄절 트리라고 강변하고 있는 한기총은 사실관계조차 왜곡하여 순진한 성도와 한국교회를 기만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한기총의 <국가와 민족을 위한 기도회> 진행도 여의치 않았다. 한기총은 ‘대북 전단살포 및 애기봉 등탑 건설 저지 공동대책위’(이하 공대위)의 저지에 막혀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러자 한기총은 11월17일(월)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등탑을 재건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한기총의 의지는 현실로 나타나는 듯 했다. 국방부가 12월2일(화)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임시 성탄트리 설치를 허용한다고 밝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기총은 김포시의 반대에 부딪혔다. 유영록 김포시장은 지난 12일(금) 애기봉 출입신고소에서 열렸던 중재안 마련을 위한 대책회의에 직접 나와 ‘등탑 재설치를 반대한다’고 못 박았다.   
예정대로라면 오는 23일(화) 애기봉에서 임시 성탄트리 점등식이 열려야 한다. 그러나 한기총은 김포시의 반대 입장에 대해 “논의 중”이라고만 밝혔을 뿐, 아무런 대응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기총이 선뜻 대응을 못하고 있는 이유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애초부터 분명한 명분을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 근본적으로 한기총은 현지 지역주민들의 정서를 무시한 채 애기봉 대체등탑을 건립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따라서 애기봉 등탑 재건립에 대한 반발은 예고된 수순이었다.   
한기총은 애기봉 등탑이 ‘통일염원과 사랑의 상징’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지 지역주민들의 정서는 다르다. 애기봉 현지에 자리한 민통선평화교회의 이적 목사와 성도들은 지난 11월 <애기봉 등탑은 성탄트리가 아니라 전쟁 트리입니다>라는 제하의 호소문을 통해 “애기봉 등탑에 불을 켠 순간 접경지역 마을 주민들은 지하대피소에 숨어야 했고 등탑에 불이 켜져 있던 10여 일 동안 손에 땀을 쥐며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는 심경을 토로했다. 공대위가 한기총의 기도회를 저지한 이유도 이 같은 정서 때문이었다.   
공대위가 지역주민들을 제대로 대표하는지 되물을 수 있다. 이에 대해 이적 목사는 “공대위는 진보 기독교 단체는 물론 현지 주민, 그리고 김포지역 시민단체 전체를 아우른다”고 밝혔다. 사실상 한기총은 지역주민들의 반대에 막힌 셈이다. 그렇다면 한기총은 왜 새삼 애기봉 등탑을 들고 나와 지역주민들의 반발을 자초했을까?
애기봉 임시 성탄트리, 대통령 심기 챙기기?  
애초에 애기봉 등탑은 2012년 김포시와 정부가 평화공원을 조성하기로 협약을 맺으면서 철거가 예정돼 있었다. 더구나 기존 철탑은 시설 노후화에 따른 안전문제가 꾸준히 제기됐었고, 이에 군이 안전성을 이유로 지난 10월 철거한 것이다. 그러나 애기봉 등탑은 대통령이 ‘호통’을 쳤다는 언론보도가 나오면서 급반전됐다. <한국일보>는 10월30일(목)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대통령이 “왜 등탑을 없앴느냐, 도대체 누가 결정했느냐”고 호통을 쳤다고 보도했다. 
한기총은 재빨리 반응했다. 한기총은 바로 다음날인 10월31일(금) 성명을 내고 “기독교계와 사전에 어떠한 합의도 없이, 안전상의 이유로 갑작스럽게 국방부가 등탑을 철거한 것에 대해 대단히 유감으로 생각한다”는 입장을 표시했다. 
저간의 상황을 되짚어 보면 한기총이 대통령의 심기를 의식해 애기봉을 정치쟁점화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한기총 스스로도 성명에서 “최근 대통령이 등탑을 철거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사후에 관련자들을 강력하게 추궁했다는 사실을 언론보도를 통해 접했다”고 밝혀 이 같은 지적에 무게를 실어줬다. 더구나 등탑건립추진위원장(이하 위원장)으로 홍재철 전 대표회장을 임명한 것도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홍 전 대표회장은 대표적인 친박 인사로 손꼽힌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는 신천지와의 유착 의혹으로 궁지에 몰렸다. 이러자 홍 전 대표회장은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해 박 후보와 신천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해명했다. 한기총이 어떤 취지에서 홍 전 대표회장을 위원장에 임명했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물론 고심 끝에 홍 전 대표회장에게 중책을 맡겼을 것이다. 그러나 오얏나무 아래에선 갓 끈을 고쳐 매지 말아야 하는 법이다. 홍 전 대표회장의 전력을 볼 때, 그를 위원장으로 세운 건 오해의 소지가 충분했다.    
한기총이 임시 성탄트리 점등을 강행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지역주민의 반대정서가 만만치 않은데다 김포시마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공대위 측은 한기총이 행여 트리 점등을 강행할 경우 막아서겠다는 각오다. 한기총으로서는 난감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이대로 물러서자니 요즘 유행하는 말로 ‘모양이 빠지고,’ 예정대로 추진하자니 김포시민의 반대정서를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기총의 딜레마는 분명한 명분 없이 지역주민 정서를 무시한 채 대통령 심기만 챙기려 해서 비롯된 결과다.  
예수의 영성은 현장의 영성이었다. 즉 예수께서는 가난한 자, 목마른 자, 상한 자에게 직접 다가가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주고, 그들의 아픔에 함께 공감하고 슬퍼해 하셨다는 의미다. 애기봉 등탑을 둘러싼 한기총의 행보는 이들이 현장과 얼마나 괴리되었는가를 여실히 드러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가장 먼저 김포시, 그 가운데서도 애기봉으로 달려가 그곳에서 살고 있는, 아니 살아가야 하는 주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라. 그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후속 행보에 대한 가닥이 잡힐 것이다. 그리고 부디 잃어버린 현장의 영성을 되찾기 위해 기도하고 고민할 것을 주문한다. 또 하나, 권력자의 심기를 챙기는 모습은 더 이상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란다. 목회자들이 시선을 돌려야 할 곳은 가난한 자, 상한 자들의 아픈 마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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