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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선 칼럼] 예수의 “가라지” 비유와 헌재 판결

▲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본지 논설주간) ⓒ베리타스 DB

신약성경의 복음서들을 읽으면 예수는 많은 것을 비유로 말하고 가르쳤다. 예수의 제자들은 너무나 신기하기도 하고 그 까닭이 궁금해서 물었다. 예수의 대답은 옛날 선지자 이사야가 한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너희는 듣고 또 들어도 알아듣지 못하고,
보고 또 보고도 알아보지 못하리라.
이 백성이 마음의 문을 닫고
귀를 막고 눈을 감은 탓이니,(마태복음 13:14-15a, 이사야 6:9-10)    
예수의 제자들의 질문은 예수가 농사꾼들의 씨 뿌리는 비유를 말했을 때 한 것이었다. 그중의 하나가 “가라지의 비유”(마태 13:24-30)였다. 공동번역으로 인용한다.   
“하늘나라는 어떤 사람이 밭에 좋은 씨를 뿌린 것에 비길 수 있다. 사람들이 잠을 자고 있는 동안에 원수가 와서 밀밭에 가라지를 뿌리고 갔다. 밀이 자라서 이삭이 팼을 때 가라지도 드러났다. 종들이 주인에게 와서 ‘주인님, 밭에 뿌리신 것은 좋은 씨가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하고 묻자 주인의 대답이 ‘원수가 그랬구나!’하였다. ‘그러면 저희가 가서 그것을 뽑아 버릴까요?’하고 종들이 다시 묻자 주인은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밀까지 뽑으면 어떻게 하겠느냐? 추수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에게 일러서 가라지를 먼저 뽑아서 단으로 묶어 불에 태워 버리게 하고 밀은 내 곳간에 거두어들이게 하겠다’고 대답하였다.”    

제자들은 이 비유의 뜻이 무엇인지, 왜 이런 비유를 말씀하시는지 알 수가 없었던지 다시 물었다. 그러나 예수의 대답은 새로운 것을 제시하지 않았고, 가라지 비유를 확대한 것뿐이었다. 제자들이 이 비유의 뜻을 되물은 것은 혹시 제자들 사이에 배신자가 생긴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예수는 이미 제자들 중에 가룟 유다가 선생님을 배신할 것을 미리 알고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을 할 만했을 것 같기도 하다.    
2014년 12월 19일 대한민국 헌법재판소 판사 9인 중 8인이 내린 통합진보당의 위헌 판결을 접하면서 떠오른 것이 이 가라지의 비유이다. 헌재 판사 중 8인의 판결문은 이 예수의 가라지 비유를 바로 우리 상황에 적용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통합진보당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라는 “밀” 밭에 “원수”가 어두운 밤에 몰래 심은 “가라지”가 자란 것이라 할 수 있다. 더 자라기 전에 통합진보당이라는 “가라지”를 발본색원(拔本塞源), 뽑아 버리라는 것이 판결문의 주지였다.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농토는 “순수”해야 하고, 이 밭에 심은 좋은 씨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종북”이라는 “가라지”는 용납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그런데 비유 속 농토의 주인은 생각이 달랐다. “가만 두어라”였다. 가라지를 뽑지 말고 가만 두어라. 자라게 내 버려두라는 말이었다. 그 이유는 가라지를 섣불리 뽑는다고 서두르다가 밀 까지도 상하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밀밭을 보호하기 위하여 “가라지” 통합진보당의 뿌리를 뽑는다는 것은 자칫 자유민주주의 자체를 해칠 수 있다는 경고로 들린다.    
예수의 비유가 오늘날의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다양성을 옹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정치에 있어서 관용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하는데도 무리가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가라지”는 원수가 야밤에 몰래, 밀밭을 해칠 목적으로, 그야말로 “악의(惡意)”로 뿌린 것이라고 했고, 결국에 가서는 이 세상 “종말”의 날에 가라지는 모두 불에 태워버리겠다는 심판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의 “가라지 비유”와 헌재의 판결문을 읽으면서 보다 깊이 생각할 문제는 과연 누가, 어느 쪽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라는 옥토의 “가라지”인가 하는 것이다. 헌재는 물론, 헌재의 판결을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로 환호하는 8대1 대다수 쪽에서는 통합진보당이 이 사회의 “가라지”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통합진보당과 이 나라의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통합진보당이 “가라지”가 아니라 오히려 헌재가 “가라지”라고 단정하고 당장 헌재를 해체해야 한다고 한다.  
예수가 오늘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 예수의 비유를 오늘 우리의 상황에 적용하고 깊이 생각하게 하는 것은 “가만 두라”라는 밀밭 주인의 말이다. 통합진보당의 해체를 넘어서 통합진보당 국회의원들의 의원직을 박탈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지자체 의원직까지 뺏은 뒤, 통합진보당 당원 전원을 “원수”로 몰아서 “가라지” 뽑듯이 뽑아 버리는 “만행”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가라지”를 그대로 두고 역사의 심판을 받게 하자는 것이다. 통합진보당의 강령과 행동이 정말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해칠 것인가는 헌재나 집권 여당이나 권력자가 아니라 성숙한 자유 대한민국 국민들의 현명한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애국 애족의 자주 독립 투쟁을 쟁취하고 6.25 전쟁에서 자유를 지키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억압한 군사 유신 독재를 물리치고 민주화를 만들어 낸 대한민국 국민들은 “가라지”를 극복하고 씩씩하게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켜 낼만한 내공이 있고 힘이 있고 자신만만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가만 두어라.” “누가 진짜 ‘가라지’인지 밝혀 질 것이다.” “지금 성급하게 가라지를 뽑아 버리자는 ‘숨은 뜻’이 무엇인가?” “모든 것이 분명하게 밝혀지는 ‘종말’의 그날까지 큰 눈 뜨고 지켜보자.” 그렇게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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