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영 목사 ⓒ베리타스 DB |
두 아이의 부모는 법정 진술에서 “우리 아이는 집에서 학교보다 더 질 좋은 교육을 받았다고 자부한다. 여러 가지 테스트를 통해서 확인해 보았지만 그 또래 학생보다 지적 능력이 뛰어났고, 제도권 방식대로 치른 시험에서도 성적이 우수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재판소는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은 아이 개개인의 특성에 알맞은 교육방법을 선택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할 때 배울 수 있는 사회성이 떨어지고, 의지를 관철시키는 능력이 약화될 뿐만 아니라, 책임감을 배울 수 없다. 고른 인격형성을 위해서는 타인과 어우러지지 않는 교육은 의미가 없으며 당연히 학교와 연계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정상이다”라고 판결했습니다. 이는 이웃과 함께하지 못하는 ‘최고’는 인정하지 않는 독일 교육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인데, 남과 어우러지는 사회성, 인성교육을 뒤로한 성적지상주의는 독일 학교에서는 가장 비난받는 교육의 형태라고 합니다. 능력은 있으나 인격이 모자란 사람이 사회를 이끌어갈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국가 교육 시스템 자체가 이웃과 함께 하지 못하는 최고를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한국의 교육은 어떨까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밝힌 ‘초중고교 경쟁교육실태’(14.10.30. 경향)는 가히 충격적입니다. 경북의 ㄱ초등학교3학년 학급에서는 정기시험성적이 나오는 날마다 급식 받는 순서가 바뀝니다. 시험 점수가 1등인 아이부터 꼴등인 아이까지 줄을 서서 차례로 급식을 받습니다. 성적이 하위권인 9세의 N군은 거의 1년 내내 맨 꼴찌로 밥을 먹습니다. 남녀공학인 경기도 ㄹ고교에는 전교 50등까지만 들어갈 수 있는 ‘유리브스 자습실’이 있습니다. 안에서 공부하는 모습이 그대로 보이고 자습실 책상도 전교 석차순입니다. 학생들을 이 유리브스 안에 들어가는 아이들을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며 ‘유부남(유리브스에서 공부하는 남자)’ ‘유부녀(유리브스에서 공부하는 여자)’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경남의 ㅁ고는 학교 도서관 좌석에 30여명의 이름표를 붙여 지정좌석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기숙사도 성적순 배정이라 집이 멀어도 성적이 안 되면 학교 근처에서 자취하며 학교를 다녀야 합니다. 울산의 ㅂ고는 전교 30등까지만 학교 기숙사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 학교 학부모 ㅅ씨는 “찜통더위일 때 교실엔 에어컨을 안 틀어도 기숙사동에서는 항상 에어컨을 가동했다”며 “기숙사 학생들은 논술학원강사 특강 등 학교가 제공하는 다양한 특혜를 누린다”고 전했습니다.
말이 경쟁이지 이건 사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과연 누구를 위해 어린 학생들을 상대로 이런 경쟁을 시키는가. 학업성취에 보상의 방법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 할지라도 이건 식민지 시대에나 있을 법한 굴종을 강요하는 행위에 다름 아닙니다. 어린 마음에 공부 못하는 것도 상처받을 일인데 밥 먹는 순서까지 차별받는다면 그런 아이들이 장차 커서 세상을 어떻게 살 지 한번이나 생각해 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정부는 무상급식을 ‘공짜밥’이라며 집요하리만치 부정적으로 봐왔던 터라, 경쟁에서 이기기만 하면 가난한 아이들이 눈치밥 먹는 일쯤이야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이겠지요. 오로지 최고가 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고 꿈인 한국. 치열한 경쟁과 서열과 사교육이 번성하는 한국에서 『독일교육 이야기』는 꿈같은 이야기임에 분명합니다.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공부 잘하던 못하던, 가난하던 부유하던 우리 아이들이 밥이라도 평화롭게 먹는 세상이었으면 합니다.
* 이 글은 『햇순』 2014년 12월호(통권226호)에 실렸으며 저자와 출판사의 동의를 얻어 전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