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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선 칼럼] 美교포 목사 이승만과 국제시장의 덕수

▲영화 <국제시장>의 덕수. ⓒ스틸컷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 들었거든예...” 최근 1,000만 관객을 돌파한 한국 영화 “국제시장”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 영화의 주인공 덕수의 마지막 말이다. 북한 함흥 부두에서 딸아이를 찾으려고 피난민을 태운 미국 LST에서 내린 아버지, 그 아버지를 잃고 70 평생을 힘들게 살아 온 덕수의 독백이다.   
이 영화의 피난민 덕수의 한숨 섞인 독백이 지난 주 미국에서 살던 나의 친구 이승만 목사의 부음과 함께 내 머리와 가슴에 메아리치고 있다. 웬 일일까? 미국 남부 도시 애틀랜타에서 아내와 아이들 품에 안겨 영면한 이승만 목사의 마지막 말 역시 “내 약속 잘 지켰지요? 이만하면 잘 살았지요? 그런데 참 힘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였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물론 영화 “국제시장”의 덕수의 아버지와 이승만 목사의 아버지는 다르다. 덕수의 아버지는 함흥 사람이고, 이 목사의 아버지는 평양 사람이었다. 덕수의 아버지는 공장의 직공이었지만, 이 목사의 아버지는 평양의 이름 있는 교회 목사였다. 덕수의 아버지는 함흥 부두에서 행방불명이 됐지만, 이 목사의 아버지는 6.25 전쟁 당시 반공 목사로 지목되어 1950년 10월 인민군에게 총살당해 순교자의 반열에 올랐다. 영화 속 덕수는 부산 국제시장 한 복판에서 구두닦이로 일을 시작했지만, 이승만은 해병대에 자원입대함으로써 피난 생활을 피했다. 그리고 덕수는 부산 피난지의 야외 교실에서 겨우 한글을 뗐지만, 이승만은 군대에서 미국 유학의 길을 텄다. 덕수는 동생의 대학 진학을 뒷바라지하려고 학비를 구하기 위해 독일 탄광에서 고된 노동을 하면서 잔뼈가 굳었다. 이승만은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사가 되었고, 대학에서 교목이자 교수로, 그리고 교회에서 최고의 지위를 누렸다.   
덕수는 국제시장에서 피나는 노력으로 능력 있는 장사꾼이 되었지만, 월남전에서 일확천금을 꿈꾸다가 참혹한 이념전쟁 속에서 겨우 생명만을 부지한다. 목사 이승만은 1960년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주도한 미국의 흑인 민권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함으로써 인종 문제와 다문화 사회에 대해서 눈을 뜨고 행동했다. 그러나 덕수는 오늘의 한국 거리에서 흔히 부딪치는 인종문제와 다문화 사회 문제에 대해서 홀몸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승만 목사는 미국의 개신교 기독교회에서 많은 이들의 지지와 칭송을 받았다. 그래서 외롭지 않았다. 덕수는 1990년대에 있었던 “이산가족 찾기” 캠페인에서 그야말로 40년 만에 함흥 부두에서 잃었던 여동생을 찾는다. 여동생은 미국에 입양되어 잘 살고 있었다. 우리말을 잃은 재미교포로 한국의 어머니와 오빠를 만나러 온다. 이승만은 미국에서 공부하고 미국 국적을 갖고 미국 시민으로 활동한다. 그러나 “국제시장”의 덕수는 아주 외로운 외톨이 늙은이다. 덕수는 “잔소리 꾼 할아버지, 화 잘 내는 영감, 모든 게 맘에 안 드는 늙은이”가 되었다.
▲미국 교포 이승만 목사. 그는 재미 통일운동과 흑인민권운동에 일평생을 바쳤다. ⓒ사진제공= PCUSA 홈페이지
영화 “국제시장”을 관람하면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새삼스럽게 그러나 집요하게 나를 괴롭혔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보다는 “역사란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이었다. 군주시대의 역사는 군주의 역사, 임금님이 어떻게 권좌에 오르고 어떻게 나라를 다스렸으며 외우내환에 어떻게 대처해 나갔는가, 그리고 그의 업적이 무엇이며, 그의 통치 이념은 무엇이었는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써내려간 역사, 이를테면 “왕조사(王朝史)” 즉 왕의 입장에서 왕의 시각에서 기록된 역사일 것이다. 다른 한편에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백성의 입장에서, 혹은 민의 입장에서 민중의 삶과 희로애락을 담은 역사가 있다. 민중이 어떻게 살았고 인생을 유지하며 무슨 일을 하면서 밥을 먹고 아이들을 기르면서 생존해 왔는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써내려간 역사이다. “왕조사”가 있다면 “민중사(民衆史)”가 있는 것이다. 민중사는 문자로 기록된 것도 있지만, 구술로 혹은 구전으로 입에서 입으로 전달된 민중의 이야기로 전달되는 것이 많다. 많은 민담이 민중의 역사에서 나온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국제시장”은 1950년에서 2015년까지 65년에 걸친 한국 민중사의 토막들이다. 한국의 힘없는 민중들이 전쟁의 지옥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았으며 어떤 생의 의미를 추구하며 살아 왔는가를 생생하게 말하는 “민중의 이야기”이다. 이 영화에서는 어느 “왕조,” 어느 “정권”의 통치와 정책을 보도하지도 않거니와 찬양하지도 비판하지도 않는다. 어떤 정치적 비전이나 정책에 의해서 살아온 것이 아니라, 그저 주어진 대로, 현실에 맞추어서 생존을 위해서 살아온 이야기가 전부이다. 그래서 정치적이 아니면서 가장 정치적인 영화이다. 민중의 생존의 정치를 다루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의 밑바닥 사람들, 전쟁 피난민들이 국제시장 장바닥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민중적 이야기이기에 정치적인 것이다. 그래서 “이만하면 잘 살았지예...근데 내 진짜 힘 들었거든예...”라는 덕수의 독백에 우리 모두는 눈물을 흘린다. 잘 살게 되었지만, 참 힘들게 살아 왔기 때문에.     
이승만 목사의 부음에 접하면서 영화 “국제시장”의 덕수와 한국 민중을 연상하게 되는 것은, 이승만 목사 역시 전쟁 피란민의 한 사람인 한국의 민중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의 밑바닥 피난민 민중의 처지로부터 군대와 미국 교육의 덕분으로 “신분상승”을 한 셈이지만, 미국 사회에서 그는 소수 유색민족으로서 살았던 미국의 민중이었다. 그리고 그는 민중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미국의 흑인 민중과 함께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나란히 손에 손 잡고 흑인 민권운동과 흑인 해방을 위해서 행진했다. 이승만 목사는 미국에서 민중 목사였고, 민중으로서 민중을 위해 일했다. 그리고 모국 한국 민중의 한 사람으로 한국 민중을 위하여, 한국 민중의 인권을 위하여, 민중이 주인되는 민주주의를 위해서, 그리고 민중이 전쟁의 질곡에서 해방되는 평화와 통일을 위해 헌신한 것이다.   
이승만 목사는 미국 시민의 자격으로, 그리고 미국 기독교의 이름으로 남한에 사는 우리보다 먼저 북한을 방문할 수 있었다. 북에 두고 온 여동생들과도 만나고 북한의 교회에서 예배도 드리고 북한 가정교회에서 교인들과 만나기도 했다. 평양 방문 후 미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리 남한의 교회 친구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 소식을 전하기도 하였다. 평양의 한 아파트에서 드린 가정 예배에서 교인들이 모여 앉아 부른 찬송가가 “울어도 못하네...”였다고 하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다정다감한 이승만 목사의 모습이 새삼스럽다. 그러면서도 자기는 미국여권을 가지고 북한을 방문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 매우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가진 특권을 부끄러워하였다. “서 박사도 평양에 어서 가서 아버지 묘지를 찾아 봐야 할 텐데...”하며 내 손을 잡고 나의 젖은 눈을 응시하던 이승만 목사의 손길이 그립다.   
이글을 쓰는 동안, 1999년 9월 18일자로 되어 있는 평양의 여동생 경옥의 편지가 생각난다.  
“... 이 세상에 많고 많은 오빠들이 있지만 두 분(이승만 목사와 그의 남동생인 대전 대덕교회 이승규 장로)의 오빠들처럼 동생들을 사랑하고 위해주시는 오빠들은 그 어디에도 없어요... 저는 비록 여기서 교회에는 나가지 못하지만 항상 큰오빠가 저에게 주신 찬송가와 성경책을 읽고 찬송가를 부르며 저의 생활을 믿음으로 하고 있어요... 성경말씀에 있는 것처럼 사랑으로 모든 것을 참고 견디어내면 모든 것이 잘 이루어진다는 것을 실생활을 통하여 그 진리를 깨닫고 있어요... 1999년 9월 18일, 평양에서 오빠의 사랑하는 동생 경옥 올림.”  
이승만 목사의 친동생인 대전 대덕교회 이승규 원로장로가 2014년 6월 27일 한국중앙교회에서 한국교회순교자기념사업회 주최로 열린 순교자 추모예배에서 소개한 여동생의 편지이다. 
이승만 목사의 유골의 일부를 평양에 묻는다고 한다. 통일된 한국 땅을 살아생전에 밟지 못하고, 죽어 한 줌의 재가 되어 분단 한국의 남과 북에 묻히게 되는 이승만 목사의 한이 내 몸에 사무치는 것 같다. 우리는 “분단의 한”을 품고 힘들게 힘들게 살아오지 않았던가?    
2015년 광복 70주년과 함께 분단 70년을 뼈아프게 기억하는 남과 북의 민중들이 분단의 한을 풀고, 분단의 철책을 넘어, 남과 북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왕래하고 원수들이 화해하고 서로 돕고 힘을 합해가면서 평화를 만들어나가고 통일을 향해 한반도 한민족의 새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우리의 여정에 밑거름이 되어주신 이승만 목사의 명복을 비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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