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트 이스트우드 작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한 장면. ⓒ스틸컷 |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는 ‘연민’이다. 그가 2000년대 들어 내놓은 작품을 되짚어 보자. <미스틱 리버>, <밀리언 달러 베이비>, 이오지마 2부작 <아버지의 깃발 /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체인질링>, <그랜 토리노>, <히어 애프터>,
이스트우드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는 권투에 열정을 바치는 식당 여종업원 메기 핏제럴드의 불꽃같은 열정에 한없는 연민을 보내더니 <아버지의 깃발>에서는 영웅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우연히 찍힌 사진 한 장 때문에 영웅대접을 받는 세 명의 병사들의 고뇌를 연민어린 시선으로 조명한다. 이제 소개할 그의 2014년 작 <아메리칸 스나이퍼>에서도 연민 가득한 시선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크리스 카일(브래들리 쿠퍼)은 텍사스 출신으로 확연히 보수적인 미국인이다. 어린 시절부터 주먹다짐을 불사했고 자라서는 로데오 선수로 남성성을 과시한다. 9.11테러는 얼핏 순진하기까지 한 크리스의 인생을 뒤흔들어 놓는다. 어린 시절부터 사격에 재능을 보였던 카일은 나라를 지키겠다는 다짐으로 미 해군 특수부대(Navy Seal)에 입대한다. 그리고 이라크 전쟁이 시작되자 최일선에 배치된다.
카일의 순수함과는 달리 전쟁은 자유수호와는 거리가 멀다. 단지 아군을 향해 수류탄을 던지려 했다는 이유만으로 아이와 엄마의 심장에 총탄을 발사해야 한다. 어린 아이의 심장을 향해 총알을 발사하는 오프닝은 카일이 전쟁에서 겪을 끔찍함의 전주곡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본국으로 돌아와 보니 사람들은 너무 태평하다. 자신의 조국이 전쟁을 치르고 있는지 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 와중에 동료들은 적군의 저격수 무스타파에게 계속 희생당한다. 자신과 나란히 입대했던 동생 제프는 이라크가 ‘생지옥’이라면서 넌더리를 낸다. 그럼에도 카일은 전쟁터를 떠나지 못한다. 그는 그곳에서 동료들을 죽게 한 무스타파를 상대로 자신만의 전쟁을 벌인다. 그는 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자 즉각 아내 타야(시에나 밀러)에게 전화를 걸어 집에 가고 싶다는 뜻을 전한다. 이 대목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즉, 감독 이스트우드는 카일의 참전 경험을 통해 이라크 전쟁이 ‘중동 평화’ 따위의 거창한 명분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를 말없이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작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한 장면. ⓒ스틸컷 |
카일의 전쟁은 끝났다. 그러나 미국으로 돌아왔음에도 한동안 가족 품으로는 돌아가지 못한다. 자신이 겪은 전쟁의 기억 때문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연민 가득한 시선은 흡사 이라크의 모래 구덩이에 빠진 듯 끔찍한 전쟁의 기억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카일의 내면을 파고 들어가는데서 빛난다. 이 같은 시선은 2005년작 <아버지의 깃발>에서 온 국민에게 영웅 대접을 받으면서도 이오지마에서의 참혹한 기억을 잊지 못해 술로 날을 지새우던 아이라 헤이즈를 바라보던 시선과 묘하게 겹친다. 카일 역을 맡은 브래들리 쿠퍼의 연기도 나무랄 데 없다. 그는 실제 카일과 똑같이 보이기 위해 몸무게를 불리고, 텍사스 억양을 연습하는 등 엄청난 노력을 쏟아 부었다.
보수와 진보는 관점의 차이일 뿐
이 영화가 주는 또 다른 묘미는 이스트우드의 보수주의 성향이다. 이 같은 성향은 일관되게 진보주의 노선을 걷고 있는 올리버 스톤과 확연히 대비된다.
이스트우드는 <아메리칸 스나이퍼>에서 카일의 내면에 앵글을 맞춘다. 그는 카일을 ‘람보’ 같은 무적 영웅으로 치켜세우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카일의 마지막 가는 길에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그는 영화 마지막 엔딩 크레딧을 카일의 장례식 장면으로 꾸민다. 이 같은 구성은 보수주의자 이스트우드가 정말로 전설이 된 ‘영웅’ 카일에게 바치는 헌사로 읽힌다.
반면 올리버 스톤은 미국의 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으로 주제의식을 발전시켰다. 그는 1989년작 <7월4일생>에서 베트남전 참전 군인이었던 론 코빅의 삶을 들여다 본다. 론 코빅은 여러모로 크리스 카일과 닮은꼴이다. 그는 카일과 마찬가지로 보수성향 강한 미국인이었고, 자유 세계를 수호하기 위해 미 해병대에 자원입대해 베트남으로 갔다. 그러나 이 같은 순수함과는 무관하게 그는 작전 중 동료를 쏴 숨지게 하고, 자신은 불구가 된다. 그는 한 동안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술과 섹스에 탐닉했다. 그러다가 차츰 전쟁의 본질에 눈을 뜨고 반전주의자로 거듭난다. 올리버 스톤은 이 작품 <7월4일생>은 론 코빅의 눈뜸의 과정을 그려 나간다. 보수주의자 이스트우드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작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한 장면. ⓒ스틸컷 |
그럼에도 이스트우드의 면모는 멋있다. <아버지의 깃발> 이후 전쟁영화 연출은 더욱 세련된 느낌이다. 긴박한 전투 와중에서도 크리스 카일이 느끼는 긴장감, 그리고 내면에서 요동치는 갈등을 놓치지 않고 잡아낸다. 더욱 중요한 점은, 보수주의자이고 공화당 지지자임에도 이라크 전쟁을 미사여구로 덧칠하지 않는다. 오히려 은연중에 이라크가 제2의 베트남은 아닌지 되묻는다.
올리버 스톤 역시 멋있다. 그는 실제 베트남 전에 참전해 전쟁의 실상을 생생히 체험했고, 여기서 느낀 문제의식을 <플래툰>, <7월4일생>, 등 일련의 작품에 투영시켰다. <플래툰>의 주인공 크리스 테일러는 올리버 스톤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가 베트남 전을 향해 들이대는 날선 비판의식은 지금 보아도 새롭다.
확실히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올리버 스톤이 아니고, 올리버 스톤 역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아니다. 보수-진보라는 진영논리에 함몰되지 않으면서도 각자가 다루는 주제 - 즉 올리버 스톤의 경우 베트남전, 이스트우드에겐 이라크 전쟁 - 에 대해 각자의 시선을 드러내는 모습은 무척 흥미롭다. 또 대통령이 어떤 영화의 한 장면을 언급하면서 애국심을 강조하는 이 나라의 문화 상황에 비추어 본다면, 한편으로 부러운 모습이기도 하다.
이 작품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미국 현지시각으로 오는 2월22일(일) 열릴 2015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작품상 및 남우주연상(브래들리 쿠퍼) 후보로 올랐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겐 2005년 <밀리언 달러 베이비> 이후 10년만에 다시 작품상을 거머쥘 기회다. 그가 이번에도 또 한 번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쥐며 노익장을 과시할 수 있을 것인지 사뭇 기대감이 솟구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