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대중문화 리뷰] 스파이 영화에 보내는 러브레터

매튜 본 감독,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영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스틸컷

매튜 본의 영화는 유쾌하다. 어딘가 모르게 비꼬는 어투 같으면서도 존경심은 잊지 않는다. 그의 2010년 작 <킥 애스: 영웅의 탄생>이 그랬다. 수퍼 히어로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를 비꼬는 듯 하면서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다음 해 연출한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는 아주 진지했다. 그는 <엑스맨> 3편부터 점차 내리막길로 치닫던 <엑스맨> 시리즈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그는 이번에 신작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로 내면에서 일렁이는 ‘끼’를 마음껏 뿜어낸다. 

영화의 이야기 공식은 007 시리즈와 닮은꼴이다. 007 제임스 본드처럼 <킹스맨>에 등장하는 첩보요원 해리 하트(콜린 퍼스 분)는 고급 양복을 입고 우아한 영국식 액센트를 구사한다. 또 제임스 본드가 비밀 조직 퀀텀과 맞서 싸운다면 <킹스맨> 요원들은 거부이자 야심가인 리치몬드 발렌타인(새뮤얼 L. 잭슨 분)의 음모를 저지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러나 영화는 기존 첩보 액션 영화의 공식을 유쾌하게 비튼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비밀 정보요원 해리 하트는 자신을 조롱하는 뒷골목 깡패들을 흠씬 패주는가 하면, 3분 44초 동안 쉴 새 없이 난투극을 벌이고 난 뒤 허망하게 죽음을 당한다. 특히 미국의 한 교회에서 벌어지는 난투극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에서 영감을 받은 이 장면에서 해리 하트는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때리고 죽인다. 불손함마저 느껴지는 이 장면은 스파이를 냉철하고 근엄한 이미지로 그렸던 기존 첩보영화의 문법을 여지없이 해체해 버린다. 매튜 본 스스로 “약간 불손하고 유머러스하다. 60년대와 70년대 유행했던 고전 스파이 영화를 현대적으로 재미있게 표현하고 싶었다”는 심경을 밝혔고, 이런 심경은 교회 난투극 장면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그럼에도 영화는 품격을 잃지 않는다. 우선 시나리오가 그렇다. ‘킹스맨’은 정부 산하 비밀첩보 기관이 아니다. 원래 재단사들의 커뮤니티였다가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귀한 손님들을 상당수 잃었다. 이에 재단사들은 그동안 축적한 부를 이용해 선한 일을 하기로 의기투합했고, 이렇게 해서 ‘킹스맨’이라는 비밀 결사를 조직한 것이다. 무엇보다 ‘킹스맨’은 정부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활동이 자유롭고 신분도 숨기기 쉽다. 또 정부 간 타협에 따른 이면합의에 구애 받지 않아도 되기에 킹스맨 요원들은 순수한 목적의 첩보활동에 전념할 수 있다.  
재미있는 대목은 킹스맨 요원들이 아서왕 전설에 등장하는 기사들의 이름을 암호명으로 쓰고 있다는 점이다. 킹스맨을 지휘하는 최고 지휘관은 아서고, 그 아래 활동하는 요원들은 랜슬럿, 갤러해드, 멀린이다. 랜슬럿은 프랑스 출신으로 아서왕 휘하의 기사 가운데 가장 용맹했던 기사였고, 갤러해드는 아서왕 전설 가운데 백미인 성배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그리고 멀린은 아서왕의 자문역을 맡았던 마법사였다. 킹스맨 요원들의 암호명은 영국적 전통을 잘 보여주는 코드다.   
‘말더듬이 왕’ 콜린 퍼스, 이번엔 액션 연기 도전 
▲영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스틸컷

배우들의 연기는 영화의 품격을 높여주는 또 하나의 축이다. <러브 액츄얼리>, <브리짓 존스의 일기>, <맘마미아>, <킹스 스피치>에서 중후한 연기를 보여줬던 배우 콜린 퍼스가 이 영화에서는 해리 하트(암호명 갤러해드) 요원을 맡아 생애 처음 액션연기를 보여준다. 그런데 그의 액션 연기는 하나도 어색하지 않다. 런던의 한 바에서 뒷골목 깡패를 제압하는 장면은 웃음과 동시에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확실히 연기를 잘하는 배우는 액션 연기도 잘하기 마련임을 콜린 퍼스를 통해 알게 된다.   
그의 상대역인 애그시 프라이스 역의 태런 애거튼의 연기도 칭찬할 만 하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새로운 액션 스타로 등극하리라고 본다. 악역 리치몬드 발렌타인 역의 새뮤얼 L. 잭슨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리치몬드 발렌타인은 인간의 폭력성을 자극해 인류의 절반을 없애려 한다. 힙합 모자를 쓰고 특유의 어눌한 말투로 음모를 꾸미는 발렌타인의 모습은 악당이라기보다 악동이다.   
사실 새뮤얼 L. 잭슨만큼 연기의 폭이 다양한 배우도 없을 것이다. 때론 주연으로, 때론 조연으로 등장하면서 다양한 역할을 맡으면서도 한 번도 똑같은 인상을 준 적이 없다. 브루스 윌리스와 함께 출연한 <다이하드3>에서는 백인에게 반감을 가진 전기공 제우스 역, <장고: 분노의 추적자>에서 같은 흑인인 브룸힐다와 장고를 곤경에 빠뜨리는 흑인 노예 스티븐, <어벤져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에서 수퍼 히어로를 총괄 지휘하는 닉 퓨리 등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영화에 출연해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며, 연기하는 역할에 강한 개성을 심어준 그의 연기력엔 그 어떤 찬사도 아끼고 싶지 않다.   
이 밖에도 <배트맨 리부트 시리즈>, <인터스텔라>로 친숙한 마이클 케인, <킥 애스>에 이어 매튜 본 감독과 또 한 번 호흡을 맞춘 마크 스트롱 등등 배우들의 존재감은 관객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기에 충분하다.  
매튜 본의 재치를 엿볼 수 있는 장면 하나를 소개하고 끝맺으려 한다. 해리 하트의 집무실 벽은 타블로이드 신문으로 가득하다. 사실 그 신문 기사들은 해리의 활약이 숨겨진 사건들을 보도한 기사들이었다. 애그시는 이 신문들을 보고 해리의 활약상에 놀란다. 해리는 이렇게 놀라워하는 애그시에게 자랑 삼아 “대처 총리의 암살을 내가 막았지”라고 이야기를 건넨다. 그러자 애그시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모든 사람들이 만족하지는 않았겠군요”라고 받아친다. 2013년 타계한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를 살짝 비꼬는 대목이다. 이 장면 말고도 그의 톡톡 튀는 끼를 엿볼 수 있는 장면들은 많다. 모처럼 유쾌하게 시간 보낼 수 있는 영화다. 
“이 영화는 지금까지 만들어진 모든 스파이 영화에 보내는 러브레터다.” (매튜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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