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열 교수의 새 책『잊히지 않는 것과 잊을 수 없는 것』 겉 표지. |
“경쟁에 맡겨버린 교육은 유·초등학교에서부터 창의성을 잃어버렸고, 신자유주의 물결에 휩쓸려버린 젊은이들은 열심히 스펙은 쌓지만 미래의 희망을 볼 수 없어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크게는 자본과 노동이 충돌하고, 취업과 미취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갈라진다. 거기에다 남북 간, 지역 간, 세대 간, 계층 간, 이념 간의 갈등은 심화되고 있다. 공동체는 붕괴되고 극단적인 개인주의가 판을 친다.”- 본문 6~7쪽
한편으로는 부끄럽다. 이 교수는 굴곡진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은 이다. 그렇기에 이제는 현실에서 한 발 물러나 인생의 황혼을 즐기셔야 하는데, 지금 이 나라의 시계는 엄혹했던 과거로 되돌아가고 있어서다. 선학의 과업을 충실히 섭렵하고 이를 시대 변화의 성장동력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 후학의 임무일진데, 오히려 시간은 퇴행을 거듭하고 있으니 이에 대한 전적인 책임은 후학에게 있다.
그러나 노학자의 시대를 향한 외침은 일말의 위안을 준다. 후학들을 꾸짖기보다 후학들에게 다시 한 번 귀한 가르침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가르침은 인생의 예지가 묻어난다.
“이런 세태 속에서 글을 쓴다는 것이 여간 괴롭지 않다. 전문적인 글쟁이도 아니지만, 이 시대를 산다는 것이 너무 부끄러워 허튼소리라도 지르지 않으면 미칠 것 같다. 나잇값을 하라고 핀잔할 수도 있다. 그래서 옛 어른들이 침묵은 금이라고 했을까. 그래도 뒷날 메시아가 나타나기라도 해 역사를 광정한다고 하면, 그 근거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 헛소리로 뒷북치는 것이 시대를 향한 소리를 남기기로 했다. 잊지 않기 위해서다.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본문 7쪽
이 책은 특정한 기획의도 하에 쓰인 책은 아니다. 이 교수는 일간지 및 잡지, 그리고 최근엔 자신이 운영하는 페이스북에 틈틈이 시대적 외침을 전해왔다. 이 책은 그동안 남긴 기록을 한 데 모은 결과물이다. 옛 속담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이곳저곳 흩어진 원고들을 다섯 가지의 주제를 정해 엮어낸 편집자의 역량이 돋보인다.
아쉬운 점이라면, 저자의 글이 쓰이게 된 전후 맥락을 이해하기 쉽도록 해주는 장치가 미흡하다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면 몇몇 원고의 경우 편집자 주 등으로 글이 쓰여진 상황을 적어줬으면 좋았으면 이해가 더 빨랐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란 의미다. 대부분의 원고가 이해하기 쉽고, 쓴 날짜까지 정확히 기록돼 있어 독자들이 맥락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은 없다. 단, 136쪽 ‘상에 얽힌 이야기’처럼 어떤 상황에서 이 같은 글이 나왔는지 쉽사리 인식하기 어려운 원고들이 가끔씩 눈에 띤다.
이런 ‘옥의 티’를 뺀다면 이 책은 반드시 음미하고 기억해야 할 외침으로 가득하다. 무엇보다 글 한 줄 한 줄에 역사학자로서, 기독교인으로서, 그리고 인생의 선배로서 속 깊은 성찰이 배어 있다. 다루는 주제도 참 다양하다. 4대강 사업, 대통령 선거 부정, 남북 갈등, 국정교과서 논란, 한국교회의 신학의 부재, 일본 평화헌법, 소말리아 해적 등 국내외를 막론하고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쟁점들을 망라한다. 또 옥한흠, 방지일, 김교신, 함석헌 등 믿음의 선배들을 기리는 글도 수록돼 있는데, 인물 조명에서도 자신만의 시선을 잃지 않는다.
수많은 주옥같은 가르침 가운데 역사가로서, 시대적 통찰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교수는 이명박 전 정권 시절 밀어붙이다시피 추진됐던 4대강 사업이 북한과 다를 바 없다고 꼬집는다.
4대강 사업, 북한 ‘다락밭 정책’과 닮은 꼴?
북한은 1990년대 식량난을 해결하겠다며 다락밭(계단밭) 정책을 대대적으로 벌였다. 그러나 이 정책은 식량증산은커녕 농지의 사막화와 민둥산을 불러왔고, 결국 이로 인해 식량난만 가중됐다. 다락밭 정책이 불러온 파국에 대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대부분이 산악 지대인 북한에서 농지를 확보하기 위해 개간된 것이 다락밭이다. 원래 다락밭에는 다년생 식물을 심어 바람에 견디도록 하고 토사 유실도 방지해야 하나, 북한은 많은 비료를 필요로 하는 1년 생 옥수수를 재배해왔다. 이에 따라 집중호우 때마다 토사 유실이 발생하고 있다. 최근 연이은 북한 지방의 대홍수도 다락밭 개간으로 산림이 황폐해진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적고 있다.
이 교수는 이 같은 정책이 아무런 제동 없이 실시된 이유를 북한 체제의 특성에서 찾았다.
“아마도 북한의 전문가들은 다락밭 정책이 가져올 이 같은 참혹한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중략) 그러나 수령과 당의 명령으로 시행되는 ‘정책’ 앞에서 어느 전문가도 제대로 자기 의견을 제시하지 못했다. 한 마디의 비판도 용납되지 않은 사회니까, 비판과 만류는 목숨을 내놓는 것이나 다름없다. 결국 다락밭이 집중호우 때 토사유실과 하천 범람, 산림 황폐와 민둥산의 원인이 되었던 것은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였던 것이다.”- 본문 55쪽
기막힌 건 4대강 사업이 다락밭 정책과 비슷한 양상으로 추진됐다는 사실이다. 알려진 대로 이 전 대통령은 4대강에 정권의 명운을 걸었고, 이에 그 어떤 반대의견도 용납하지 않았다. 이 교수는 남한이 북한과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데 서글픈 감정을 드러낸다.
“‘제왕적 대통령’의 영도하에 초고속으로 질주하면서 전문가의 말에도 좌고우면하지 않는 4대강 사업은, 수령이 밀어붙이면 그 누구도 반대하지 못하고 그 회복에 수십 년의 세월과 경국(傾國)의 재원을 쏟아 부어야 할 북한의 다락밭 정책과 닮아가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남북이 이런 데서 닮아야 하는 것이 정말 서글프다.”- 본문 56쪽
한국 교회 위기 근본원인은 ‘자기신학’ 부재
무엇보다 이 책 속엔 한국 교회가 반드시 곱씹고 실천해야 할 과제가 넘쳐난다. 최근 한국 교회는 위기상황이다. 신도수는 감소세로 돌아선지 오래고, 종교인과 비종교인 사이의 간극 보다 개신교인과 비개신교인의 간극이 현저하다. 신도들은 헌금과 예배에 열심이지만 교회는 부패와 성추문으로 얼룩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기독교에 대한 호감도는 급전직하했다. 이 교수 역시 기독교인으로서 “한국교회가 왜 이렇게 혼란스럽고 부패하는가?”는 문제를 던진다.
이에 대한 답은 여러 가지일 수 있다. 복음에 대한 오해, 왜곡된 신학, 천박성 등등. 이 교수는 여기에 더해 ‘자기 신학’의 부재를 근본 원인으로 지목한다.
“세계선교사상 유례없는 성장과 발전을 했다고 하지만 그 성장에 비해서 종교적 영성은 고사하고 윤리적·도덕적 영향력도 제대로 미치지 못하는 것은 왜 그럴까? 세계적 바울 신학자로 알려진 김세윤 박사는 한국 교회의 현 위기의 근본 원인을 ‘아무래도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오해, 또는 신학의 왜곡과 천박성을 그 첫째로 꼽’겠다고 했지만, 나는 거기에 덧붙여 한국 교회가 신학화에 대한 고민과 진통을 제대로 겪은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과거 ‘토착화’를 고민할 때에는 타종교와의 유사성과 상이점을 천착하여 그리스도교적 주체성을 확립하려고 노력했지만, 그런 노력이 없는 지금은 ‘복음의 샤머니즘화’가 광신적으로 진전되고 있어도 이를 분간할 영성과 지성을 다 잃어버렸다.”- 본문 284쪽
이 교수는 이 시대를 『삼국사기』에 기록된 충신 성충의 고사를 들어 “감히 말하지 못한 시대”가 되었노라고 규정한다. 그러면서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는 예레미야의 외침으로 이 시대의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인 언론과 정치가들, 종교인들을 꾸짖는다. 특히 한국 교회를 향한 질타는 너무 매서워 눈물이 찔끔 날 정도다.
“한국 교회가 ‘예’와 ‘아니오’를 분명히 하고 자기 신념을 행동화하면서 거기에 생명을 걸어본 적이 있을까요? 있습니다. 신사참배 반대투쟁 때와 1960~70년대의 인권·민주화운동 때입니다. (중략) 그러나 지금은 한국 교회의 그 같은 전통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아니오’의 열매로 주어진 인권과 민주화를 누리기는 하지만 더 이상 ‘아니오’를 외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보수화된 체질로 역사의 가로진전을 막고 있습니다. 특히 교회의 시장화는 한국 그리스도교의 ‘아니오’의 전통을 갉아 먹으면서, 하나님나라의 진전마저 가로막고 있습니다.”- 본문 414쪽
이 교수는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와 함께 한국 교회가 두고두고 귀감 삼아야 할 얼마 되지 않는 원로 가운데 한 명이다. 그의 인생 전체를 통해 숙성된 가르침을 소중히 기억하고 간직하자. 특히 한국 교회가 그의 가르침이 불편하다고 눈을 질끈 감고 귀를 막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 바란다. 이 같은 행태는 고서 가득한 도서관을 불태우는 일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