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자수첩] 리퍼트 대사 피격, 진영논리를 경계한다

사건의 본질은 ‘경호’, 본질부터 풀어가야

▲주한 외교사절이 괴한의 습격을 받아 피를 흘리는 사건이 벌어졌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 대사가 한 남성 괴한이 휘두른 면도칼에 맞아 피를 흘리고 있다. ⓒJTBC 보도영상 캡쳐

주한 외교사절이 괴한의 습격을 받아 피를 흘리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것도 우리나라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는 미국이 파견한 대사가 말이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 대사는 3월5일(목) 오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했다가 괴한이 휘두른 칼에 맞아 피를 흘렸다. 보도에 따르면 리퍼트 대사는 길이 11cm, 깊이 3cm의 상처를 입었고, 이에 리퍼트 대사는 80여 바늘을 꿰매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범인은 김기종이라는 인물로 서울시민문화단체연석회의 대표로 알려졌다. 

참으로 끔찍한 일이다. 관례상 외교 사절은 절대적인 보호대상이다. 군사 전문지 월간 「플래툰」 발행인 겸 편집장은 이날 온라인 매체 <허핑턴포스트 코리아> 기고문을 통해 “외교관 테러라는 사태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엄청나게 큰 문제”라면서 “외교관에 대한 물리적 공격은 상대국을 사실상 국가적 실체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극도의 혐오를 드러내는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태의 심각성 때문인지 CNN, <워싱턴 포스트>, CBS 등 주요 외신들은 이 사건을 주요 뉴스로 다뤘다.  
사태가 더욱 심각한 건 피해 당사자가 미국의 외교사절이라는 사실이다. 미국은 세계 유일 초강대국인데다가, 특별히 한국의 경우 남북관계는 물론 동북아 정세 전반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라다. 더구나 리퍼트 대사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절친한 관계여서 이번 사태의 파장은 쉽게 가늠할 수 없다. 
여기서 한 번 주한 미 대사란 자리가 한국 정치 전반에 차지하는 비중을 짚어보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주한 미 대사는 미국이 자신들의 정책을 관철시키는 창구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이던 지난 1973년 8월, 박 대통령은 정적인 김대중을 일본에서 납치해 수장시키려 했다. 이러자 당시 주한 미 대사였던 필립 하비브는 이 사건의 배후를 캤고, 이내 중앙정보부의 소행임을 알아냈다. 하비브는 곧장 박정희 정권을 향해 “김대중이 살아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 한·미 관계에 심각한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당시 유신을 선포하고 사실상 종신집권 체제를 구축한 박 대통령으로서도 하비브의 경고를 흘려들을 수 없었고, 결국 김대중을 풀어줬다. 만약 하비브 대사의 기민한 대처가 없었다면, 분명 김대중은 수장 당했을 것이 분명했다. 
한편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주축으로 한 신군부가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을 끌어 내리던 1979년 12월12일, 윌리엄 글라이스틴 당시 주한 미 대사는 존 위컴 주한미군 사령관과 함께 용산의 미8군 기지 벙커에서 이 광경을 숨죽이고 지켜봤다. 일각에서는 글라이스틴 대사의 당시 행적을 근거로 미국이 전두환 사령관의 부상을 사주했다는 음모를 제기하곤 한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자면, 신군부가 거사를 벌이고 미국이 이를 눈감아줬다. 
미국은 19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의 급작스런 서거 이후 초래된 권력 공백사태를 주시했다. 특히 미국은 이른바 ‘서울의 봄’ 바람을 타고 급진 세력이 공백을 메우지 않을까 우려했다. 문제의 핵심은 누가 군을 장악하느냐였다. 박 대통령이 서거했지만 권력은 군부의 손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답은 12월12일 분명하게 드러났다. 사실 미국으로서도 신군부 장성들이 제멋대로 병력을 동원해 육군 참모총장을 끌어내리는 사태를 막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미국은 미국식 학제로 바뀐 육군사관학교의 첫 기수(육사 11기)였고 생도 시절 미국에서 공부해 다소 친미적인 전두환의 부상이 나쁜 선택만은 아니었다. 글라이스틴 대사가 신군부의 권력 찬탈행위를 지켜만 본 건 이런 맥락에서 이해돼야 한다. 글라이스틴은 신군부의 ‘거사’ 바로 다음 날 본국에 덤덤한 어조로 “남한은 사실상 군사 쿠데타가 벌어진 상황이다. 유약한 문민정부가 명목상으로 존재하지만, 실질 권력은 없으며 모든 정황으로 보아 한국군의 핵심 조직들은 전두환 소장이 이끄는 ‘신군부’ 집단의 치밀한 계획하에 완전히 장악당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해 전달했다. 
주한 미 대사, 미국의 정책 창구 
주한 미 대사의 영향력이 현대사의 특정한 국면에 국한된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7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자 알렉산더 버쉬바우 주한 미 대사는 치밀한 <한국 대통령 당선자에 개입하기 위한 게임플랜>(이하 게임플랜)이란 제하의 새정부 길들이기 전략을 마련했다.  게임플랜엔 “우리는 모든 레벨에서 신중하게 그들(이명박 정부)에게 개입해야 한다. 그러나 항상 한국 내 정치적 맥락과 민감성들을 고려해야 한다. 나(알렉산더 버쉬바우 대사)는 우리 대사관이 이명박 당선자와 그의 인수위 팀을 정기적으로 접촉함으로써 이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적혀 있다. 당시 미국은 껄끄러운 진보 정권보다 친미성향의 보수정권의 출범을 반겼고, 이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쇠고기 개방, 이라크 자이툰 부대 파병기간 연장 등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한 것이다. 
저간의 사정을 감안해 볼 때 리퍼트 대사 피습사건은 한·미 관계에 두고두고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선 이번 사건으로 인해 향후 한미 관계에서 한국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문제는 문제해결의 문제다. 무엇보다 먼저, 주한 미 대사가 왜 이토록 위험에 쉽게 노출됐는지 원인을 철저하게 규명해야 한다. 관련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범인인 김기종은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돌출행동을 일삼았고, 경찰 정보과에서도 그를 예의주시해 왔다고 한다. 이런 인물이 우리에게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우리의 전략적 이익을 위해서라도 세심하게 경호해야 할 주한 미 대사에게 접근해 심각한 부상을 입혔는지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 
또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진영논리도 경계해야 한다. 진보-보수를 떠나 외교사절에 대한 위해는 일차적으로 범죄이며 궁극적으로 우리나라의 외교 이익에 큰 위해를 가하는 심각한 행위다. 따라서 보수-진보 할 것 없이 진상규명에 한 목소리를 내야한다. 특히 사건 수사를 빌미로 특정 세력, 이번 사건의 경우엔 미국에 비판적인 시민사회 단체에 대한 탄압은 금물이다. 
사실 한국만큼 미국에 좋은 감정을 가진 나라는 없다. 주요 외신들이 이번 사건을 비중 있게 다루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미국에 호의적인 한국에서 미국 외교사절을 겨냥한 테러가 벌어졌다는 데 있다. 우리 사회의 반미감정은 기실 우리나라의 지배세력, 특히 보수 정치세력이 지나치게 미국에 의존해온데다, 미국 역시 지나칠 만치 자국의 이익을 동맹국인 한국에 강요하는데서 비롯됐다. 
리퍼트 대사는 부임 이후 한국인과 소통을 중요시해왔다. 한국 생활을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나 소셜 네트워크(SNS)에 공개하는 모습도 보였다. 물론 이런 외적인 모습이 대사로서 공무수행과는 별개의 문제이지만 말이다. 모쪼록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바란다. 그리고 정부는 미국과의 전략적 관계가 걸린 사안이니 만큼 결연한 의지를 갖고 이 사건을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이 과정에서 특정 시민사회단체를 배후세력으로 찍어 탄압하는 일은 결코 없기 바란다. 동시에 보수-진보진영 공히 이 사건을 이념논쟁의 도구로 사용해서도 안 된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경호’다. 즉 주한 미 대사라는 주요인물이 일그러진 민족주의자의 테러에 무방비로 노출된 데 있다는 뜻이다. 사건의 본질만 잘 풀어나간다면, 원하는 것 이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 단계 성숙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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