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리히 본회퍼의 에큐메니칼적 지평을 재조명한 키쓰 클레멘츠의 저서 ⓒ사진제공=WCC |
지난 3월4일(수) 스위스 제네바의 에큐메니칼 연구소에서는 디트리히 본회퍼의 에큐메니칼적 지평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는 세계교회협의회(WCC) 출판부 편집장 씨어도어 길 박사의 사회로 『디트리히 본회퍼의 에큐메니즘 모색』(Dietrich Bonhoeffer’s Ecumenical Quest)의 저자 키쓰 클레멘츠가 자신의 책과 관련하여 발제를 한 뒤 진행되었다. 클레멘츠는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신학자이며 유럽교회협의회(Conference of European Churches) 총무로 8년간 봉직했다.
클레멘츠 박사는 본회퍼가 교회에 전한 메시지는 단순히 “교회가 되라는 부름에 응하라”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일부가 되어 세상의 투쟁과 번뇌를 껴안으라’는 것이었다고 운을 뗐다. 그는 본회퍼의 시 “나는 누구인가?”를 거론하면서 “본회퍼는 대부분이 군인들, 탈영병들, 범죄자들인 동료 죄수들을 ‘위해’ 기도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는 그들과 ‘함께’ 기도하면서 그들이 기도해야할 기도제목을 알려주었습니다. ‘우리는 죄를 지었습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우리는 진리를 거슬렀습니다. 우리는 거짓이 고개를 들고서 진리를 거역하는 것을 보았습니다’라고 말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의 시로부터 우리는 우리의 에큐메니칼적 영성을 어떻게 심화시킬 필요성이 있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라고 평가했다.
클레멘츠 박사는 본회퍼가 1935년에 쓴 에세이에서 에큐메니칼 운동을 ‘끊임없이 강화되면서 지속되어야할 그 무엇’으로 규정했다고 소개하면서 본회퍼가 에큐메니칼 운동을 “하나님의 명령이자 약속”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본회퍼는 에큐메니칼 운동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며 헌신했는데 그가 생전에 그 운동에 대해 제기했던 과제는 오늘날에도 에큐메니칼 진영이 전심으로 수행해야할 유산으로 남아있다.
이어진 토론회에서 미국 홀로코스트기념박물관의 ‘윤리, 종교 및 홀로코스트 프로그램’ 담당자인 빅토리아 바넷은 클레멘츠 박사의 저서와 같은 본회퍼 심층연구서가 너무 늦게 나온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그리고 “클레멘츠 박사는 본회퍼 개인의 초상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탁월한 에큐메니칼 지도자의 모습과 당시의 현안들에 대해서도 생생하게 그려냈습니다. 본회퍼는 1920년대를 살았던 독일청년으로서 민족주의에도 잠깐 경도되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학자들이 이 사실을 거의 언급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표면적으로만 보더라도 본회퍼가 민족주의를 이해하고 있었고 민족주의의 장점을 어느 정도까지는 느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그는 그것을 비판할 수 있게 되었고 민족주의와는 매우 다른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지요... 이 때문에 그가 에큐메니칼 운동에 관여하게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라고 설명했다.
바넷은 본회퍼가 에큐메니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나찌 시대 이전이며 그에게 있어서 에큐메니칼 운동과 국가사회주의는 처음부터 명백히 분리된 사안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에큐메니즘의 이상과 나찌즘의 목표가 근본적으로 상응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불만에서 반대로』(Von der Unzufriedenheit zum Widerspruch)의 저자인 스티븐 브라운은 본회퍼가 교회를 “지배하지 않으면서 돕고 섬기는 공동체”로 형상화하면서 “그 형상화를 개념이 아니라 실천을 통해서 구현했기 때문에 무게와 힘을” 갖게 했다고 평가했다. 이어서 그는 본회퍼의 말들이 부산에서 개최된 제10차 WCC총회의 주제인 “정의와 평화의 순례”에 얼마나 상응하는지를 설명했다: “[그에게] 순례는 세상이 무시하지 못하는 권위적인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신에 다른 사람과 함께 걸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과정입니다.”
브라운 박사는 “디트리히 본회퍼에 대한 권위 있는 증언은 교회의 공식적인 기관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의 말에서뿐만 아니라 그가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실질적 증언과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그의 죽음, 정치범으로서의 죽음으로부터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라며 말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