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김명혁 목사, 보은 창성교회서 설교

김명혁 목사(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강변교회 원로)는 오는 3월 22일 오전 11시 보은 창성교회에서 설교를 할 예정이다. 아래는 설교문 전문.

“나의 삶과 나의 목회”
성경본문
시23:1-6, 고전15:10
설교문
오늘 제가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보은 창성교회에 다시 와서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 드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함대붕 목사님과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2008년 1월 13일 강변교회에서 은퇴한 다음 2008년 6월부터 거의 매년 한 번씩 창성교회에 와서 설교를 하는데 오늘 여덟 번째로 와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무슨 제목으로 설교를 하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함대붕 목사님이 “나의 삶과 나의 목회”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해 달라고 부탁을 해서 오늘 “나의 삶과 나의 목회” 라는 제목으로 간증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사실 이와 같은 제목으로 지난 수년 동안 5번 설교를 했는데 오늘 같은 제목으로 여섯 번째 설교를 합니다.  
저의 삶과 목회 사역을 돌아보면서 시편 23편을 본문으로 택했습니다. 제가 대학생 시절 수요일 저녁마다 영락교회에 가서 한경직 목사님께서 하시는 설교 말씀을 듣곤 했는데 어느 수요일 저녁 시23편 말씀을 전하시면서 이란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윗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라고 고백했는데 여러분들도 지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라고 고백하십니까? 여러분들의 어머니의 목자, 아버지의 목자, 목사님의 목자라고 고백하지 않고 ‘나의 목자시니’ 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여러분들은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할 것입니다.” 저는 그 말씀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십니다. 그래서 저는 한 평생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한 평생 두려워하지 않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한 평생 잔이 넘치는 넉넉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고전15:10을 또 하나의 본문으로 택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한 것처럼 저도 그렇게 고백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나의 삶과 나의 목회” 라는 제목으로 저의 삶과 목회에 대한 간증 설교를 합니다. 
먼저 저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저는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인데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로 그리고 귀하고 귀한 신앙의 선배들의 가르침으로 “믿음의 삶”을 살게 되었고 “목회의 사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본래 유전적으로 그리고 자생적으로 이기적이고 탐욕적이고 정욕적이고 비판적이고 위선적이고 나태한 성품을 지니게 된 사람인데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로 “믿음의 길”로 그리고 “목회의 길”로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 과정을 생각해 봅니다.  
첫째로, 저는 어릴 때부터 감옥의 길로 그리고 순교의 길로 걸어가시는 믿음의 아버지와 저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시는 사랑의 어머니로부터 믿음과 사랑을 받아 먹으면서 자라났습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평안과 안일을 버리고 감옥과 순교의 길로 걸어가시는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저도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서 11살 때인 1948년 8월 부모의 품과 평양을 떠나 캄캄한 밤에 38선을 혼자서 넘어서 남쪽을 향해 달려올 수 있는 결단과 용기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맏아들을 떠나 보내는 가슴 저미는 슬픔과 희생을 감수하시는 어머님의 극진한 사랑을 가슴에 지니고 한 평생을 그 사랑의 힘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모든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극복할 수 있는 믿음과 사랑과 위로와 여유를 지닐 수 있게 되었는데, 그 믿음과 사랑이 결국 저를 목회의 길로 인도하는 씨앗의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둘째로, 저는 평양 서문밖교회 주일학교 시절 새벽기도와 주일성수와 순교의 신앙을 저의 생각과 마음과 삶에 심어주신 주일학교 선생님들의 믿음과 사랑의 가르침을 가슴에 깊이 새기면서 자라났는데 이인복, 명선성, 최병목 선생님들의 가르침은 저를 “믿음의 길”과 “목회의 길”로 인도하는 등불과 활력소의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남쪽으로 와서 중학생 때는 이성봉 목사님으로부터 고등학생과 대학생 시절에는 김치선 목사님으로부터 깊은 신앙적 감화를 받으면서 자랐고 후에는 "사랑의 원자탄"을 읽으면서 손양원 목사님을 저의 사랑과 존경과 흠모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자랐는데 그것이 부족한 저로 하여금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길로 조금씩 걸어가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이성봉 목사님과 김치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은 박윤선 목사님과 한경직 목사님과 함께 저를 “믿음의 길”과 “목회의 길”을 걸어가게 하는 모델의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셋째로, 제가 어렸을 때 어머니와 아버지를 이별하는 슬픔과 아픔을 지니게 되었고 후에는 사랑하는 어린 아들 철원이를 먼저 천국으로 떠나 보내는 슬픔과 아픔을 지니게 되었는데 제가 지닌 슬픔과 아픔은 강퍅한 저의 마음을 조금은 부드럽게 만드는 역할을 했고, 무정한 저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며 살아가게 하는 역할을 했고, 냉랭한 저로 하여금 십자가의 슬픔과 아픔에 조금씩 다가가게 하는 역할을 했고, 이기적인 저로 하여금 슬픔과 아픔을 당한 수 많은 불쌍한 사람들에게로(아프리카로 방글라데시로 북한으로 중국 연변으로 아프가니스탄으로) 다가가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슬픔과 아픔은 저로 하여금 목회와 선교의 길을 걸어가게 하는 거름과 자양분의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부족한 저를 슬픔과 아픔의 길로 걷게 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넷째로, 하나님께서 저로 하여금 11살 때 혼자서 38선을 넘게 하시므로 모험과 담력의 길로 걷게 하셨는데 그 후부터 저는 한 평생 두려워하지 않고 무엇이든지 새로운 것을 해 보고 싶은 호기심을 품게 되었고,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그것을 꼭 하고야 마는 추진력과 담력을 지니게 되었는데 그것은 저로 하여금 목회와 선교의 길로 걸어가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1962년 8월 단 돈 100불을 가지고 미국으로 가서 12년 동안 공부한 것도 모험심과 담력이었다고 생각하며, 미국에서 귀국한 후 주일성수 문제로 1977년 11월 어느 날 중앙정보부에 붙잡혀 가서 심문을 받으면서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설교 준비까지 한 일도 모험과 담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저로 하여금 근심이나 두려움이나 염려대신 마음에 평안과 여유를 가지고 달려가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최근에 저의 삶을 돌아보면서 『장난꾸러기 김명혁 목사의 막가파 이야기 모임』 이란 제목의 책을 써서 출판하기도 했습니다. 
다섯째로, 하나님께서 저로 하여금 역사를 공부하게 하시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하시므로 폭 넓은 역사적 안목을 지니게 되었는데 그것은 저로 하여금 목회와 선교의 길을 걸어가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한경직 목사님의 조언을 따라 서울대 문리대 사학과에 들어가서 역사를 전공하게 된 것도, 미국에 가서 12년 동안 교회사를 연구하며 성 어거스틴을 전공하게 된 것도 그래서 사고와 삶의 다양성과 양면성을 배우고 지니게 된 것도 너무나 중요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훼이스, 웨스트민스터, 예일, 아퀴나스, 훌러 등 다양한 신학의 전통을 지닌 학교들과 스승들을 만나게 하신 것도 그리고 귀국해서 일본, 인도,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 중국 등 다양한 교회의 지도자들을 만나게 하신 것도 너무너무 중요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여섯째로, 하나님께서는 결국 저로 하여금 다양성을 수용하고 품는 화해와 사랑의 길로 걷게 하셨습니다. 재건파 출신의 김창인 목사님도, 부흥사 이성봉 목사님도, 대신교단을 설립한 김치선 목사님도, 합동측의 박형룡 목사님도, 통합측의 박종렬 목사님도, 성결교의 정진경 목사님도, 기장의 강원용 목사님도, 순복음의 조용기 목사님도 만나게 하시므로 보다 폭 넓은 이해와 시야를 지니게 하셨습니다. 사실 저는 본래 이기적이고 보수적이고 비판적이고 배타적인 사람이었고 반일 반공주의자였는데 조금씩 바꾸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교회와의 화해와 협력을 주도하게 되었고 북한 동포 돕는 일에 앞장을 서게도 되었습니다. 제가 비판하던 강원용 목사님과 조용기 목사님을 존경하게도 되었습니다. 양극화된 한국교회 안에 화해와 연합을 이루는 일에 심부름을 하게도 되었는데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일곱째로, 하나님께서는 한 평생 저로 하여금 건강과 풍부의 길로 걷게 하시고 그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저는 한 평생을 살아오는 동안 건강 때문에 걱정한 일은 거의 없었고 돈 때문에 걱정한 일도 거의 없었습니다. 저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날 때 단 돈 100불을 가지고 배를 타고 미국으로 가서 12년 동안 공부했는데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귀국 후 지난40여 년 동안 저는 신체적으로 경제적으로 부족을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항상 이곳 저 곳으로 달려가면서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펴면서 살 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2008년 1월 13일 은퇴 후에도 전국에 흩어져 있는 작은 교회들을 돌아보는 순회 목회의 일과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선교사들을 돌아보는 선교의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주로 한 교회만 섬겼는데 이제는 전국에 흩어져 있는 수 많은 작은 하나님의 교회들을 섬기게 된 것이 그리고 지금도 중국 연변 지역에 있는 160여명의 조선족 어린이들과 동포들을 돕는 일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선한 목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저의 한 평생을 가장 선한 길로 걷게 하시고 인도하신 것을 생각할 때 무한한 감사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선한 목자 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대로 따르는 착하고 순한 양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제 멋대로 한 평생을 살아온 것을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불순종의 길로 걸어간 때가 많았고, 정욕의 길로 걸어간 때가 많았고, 위선의 길로 걸어간 때가 많았고, 교만의 길로 걸어간 때가 많았고, 게으름의 길로 걸어간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선한 목자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저를 가장 좋은 길로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가 한 없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부족한 죄인으로 하여금 믿음과 사랑의 길로, 슬픔과 아픔의 길로, 모험심과 담력의 길로, 다양성과 양면성의 길로, 화해와 사랑의 길로, 건강과 풍부의 길로 걷게 하셨고, 앞으로는 천국의 길로 걸어가게 하실 것입니다. 특히 저에게 사랑하고 싶은 마음을 가득가득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고맙고 황송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사랑하고 싶어라. 사랑하고 싶어라.” 라고 중얼거리기도 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나의 목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저는 서울고등학교 3학년 때 토요일과 주일 왕십리 벌판에 나가서 노방전도를 시작했습니다. 이만 팔천여 동네에 가서 우물을 파라고 하신 김치선 목사님의 영향 때문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장년들도 모여들었습니다. 저는 천막을 구해다가 천막을 치고 천막교회를 시작했습니다. 「한양 제일교회」라는 교회 간판을 달았습니다. 주일 아침에는 주일학교를 인도했고 장년예배의 설교까지 했습니다. 서울대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계속해서 교복을 입고 전도한 결과 6십여 명의 어린이들이 교회에 출석했고, 4십 여 명의 장년이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초라한 천막 교회였지만 어떤 여 성도 한 분은 “우리 한양 제일교회가 제일 좋은 교회” 라고 말해서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고3과 대1 시절 2년 동안 개척목회를 했는데 이 모두가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 때문이었고 김치선 목사님으로부터 물려 받은 영적 유산 때문이었습니다.
12년 동안 미국에서 공부한 후 귀국해서 후암교회에서 5년 동안 교육목사로 목회한 일이 있었는데 많은 젊은이들의 삶이 변화되고 저들의 삶을 복음 사역을 위해 헌신하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후암교회에서 조동진 목사님과 함께 목회하면서 선교사역에도 깊이 관여하게 되었습니다. 선교지를 많이 방문하며 선교사역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저는 한국세계선교협의회를 만드는 일에 심부름의 역할을 하게 되었고, 소련선교회를 섬기는 일에 심부름의 역할을 하게 되었고, 한국복음주의협의회는 물론 아시아복음주의협의회를 만드는 일에도 심부름의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영안교회에서 8개월 동안 개척 목회를 한 일도 있었는데 너무 귀중한 목회의 경험을 했습니다. 
그 다음 강변교회에서 1980년부터 29년 동안 개척 목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1979년 말부터 교회설립 준비 모임을 가졌고 1980년 4월 강변교회를 정식으로 시작하면서 교회의 표어를 다음과 같이 정했습니다. “서로 돌아보고 기쁨으로 섬기면서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적 신앙생활을 힘쓴다.” 그리고 교회의 실천 목표 중의 하나를 “북한동포를 돕고 선교하는 교회”로 정했습니다. “서로 돌아보고”는 “교제”를 힘쓴다는 말이고 “기쁨으로 섬기면서”는 “봉사”를 힘쓴다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교제”와 “봉사”를 힘쓰면서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적 신앙생활을 힘쓰는 것을 교회의 표어로 삼고 29년 동안 목회를 했습니다. 성도들과 친밀하게 교제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데 주력하면서 강변교회는 29년 동안 아름다운 교회로 행복한 교회로 자라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29년 동안 강변교회에 목회하면서 신자들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새 신자들과 친밀하게 교제하고 특히 어린이들과 아주 친하게 지냈습니다. 이웃의 동회와 가깝게 지냈고 구청과 가깝게 지냈고 이웃 학교와 가깝기 지냈고 불우한 사람들이 사는 구룡 마을과도 가깝게 지냈습니다. 그리고 이들 모두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폈습니다. 그래서 저와 강변교회의 성도들은 아주 행복했습니다. 저는 다시 목회를 시작해도 여전히 같은 표어를 가지고 같은 방식으로 목회를 시작할 것입니다. 사실 교회는 설교 위주도 아니고 프로그램이나 행사 위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와 성도들과의 친밀한 교제를 힘쓰는 것이 교회의 본질이고 성도와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면서 봉사하는 것이 교회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사이 한국교회가 프로그램과 행사에 치중하는 것은 교회의 본질에서 벗어난 잘못을 범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2005년 1월에 “나의 목회와 무엇 무엇”이란 제목으로 여러 번 글을 써서 신문에 발표한 일이 있었는데 그 때 써서 발표한 글들을 차례로 소개합니다. 친밀한 교제와 관련된 목회의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에 대한 글들입니다. 2005년 1월 8일 「목회자 신문」에 실렸던 “나의 목회와 성탄 카드” 라는 제목의 글부터 소개합니다. 
『나의 부족한 목회 중 나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채워주는 일들 중의 하나는 강변교회의 어린이들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과 사랑의 편지를 주고 받는 일이다. 나는 지난 성탄절 날 설교를 내가 받은 성탄 카드들을 성도들에게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제일 먼저 소개한 성탄 카드는 6살 난 어린이가 써서 보낸 것이었다. 이레는 아기 때부터 내가 안아주며 예뻐하던 아이였다. 내가 내 방에서 안아주면 내 품에 안겨서 한 시간도 두 시간도 편하게 잠을 자던 아이였다. 그런데 얼마 후에 멀리 이사 갔다. 후에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써서 나에게 보냈다. “목사님께 메리 크리스마스. 목사님 저 어렸을 때 많이 많이 돌봐주시고 기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 항상 챙겨주셔서 고맙습니다. 강변교회 목사님 그리고 또 할 말이 있어요. 저 나중에 크면 놀러 갈께요. ♡♡해요. 이레 올림” 얼마나 예쁜 편진지 모른다. 그 다음 초등학교 4학년의 성혜진이 보낸 글을 소개했다. 아기 때부터 내가 예뻐하고 사랑하는 믿음과 생각이 깊은 어린이다. “목사님 제 꿈이 커졌어요… 목사님 요번 성탄절을 생각하면서 선물을 먼저 떠 올렸지만 설교 말씀을 듣고 나서 깨달았어요. 예수님이 태어 나신 건 좋은 소식이지만 우리 죄를 위해서 돌아가실 분이었기 때문에 슬펐어요. 그래서 요번 성탄절은 선물만 고집할게 아니라 회개하고 예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드리고 싶어요. 목사님 추운 날씨에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사세요. 목사님 뜻 깊은 성탄절 되세요♪” 너무너무 착하고 예쁘고 생각이 깊은 글이었다. 그 다음 감비아에서 선교하던 유병국 선교사 부부가 미국에서 보낸 편지와 러시아 아르쫌의 정득수 선교사 부부와 쌍트뻬쩨르부르그의 김도수 선교사 부부가 보낸 편지들을 소개했다. 외로움과 고난과 상처 가운데서 살아가는 선교사들이야말로 사랑의 관심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아이들에게 가장 많은 추억거리를 만들어 주신 목사님에게 사랑과 그리움을 사진에 담아 보내드립니다.” “목사님이 옆에 계시다는 것이 저희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열등감 많고 상처 많은 저희를 기억해주시고 사랑하고 기도해주셔서 큰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김삼환 목사님은 “목사님의 사랑을 일생 동안 잊을 수 없습니다. 늘 강건하시길 빕니다.” 란 글을 적어 보냈고 이중표 목사님은 다음과 같은 과찬의 글을 써서 보냈다. “님이 그리워 성탄이 온다. 성탄이 오면 고마운 님이 생각난다. 주님이 님을 찾아 세상에 오시듯 나도 님을 찾아 세상을 나선다. 나에게 님으로 만나주신 목사님께 눈물겹도록 고마운 생각이 든다. 하늘 아래 나의 님으로 계신 목사님이 살아계신 사실로 나는 이 세상을 살 맛이 난다. 님을 생각하면 그 소중함이 하늘에 이르고 아끼는 마음은 땅끝에 이르니 아 이 신비한 만남이요 우정이로다. 성탄에 주의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사랑의 마음을 주고 받으며 나눌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 일인지 모른다. 목회는 사랑의 마음을 주고 받으며 나누면서 기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다음 2005년 1월 22일 「목회자 신문」에 실렸던 “나의 목회와 새 신자 반” 이라는 제목의 글을 요약해서 소개합니다. 『나의 부족한 목회 중 나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채워주는 일들 중의 하나는 새 신자들과 대화와 교제를 나누는 일이다. 주일 예배를 마친 다음 간단한 점심을 한 후 나는 내 방에서 20여명의 새 신자들과 만나 한 시간 반 정도 대화와 교제를 나눈다. 이 만남과 나눔의 시간들을 통해 새 신자들은 담임 목사와 가까워지고 교회에 쉽게 정착하며 신앙이 성장한다. 새 신자들의 고백들을 여기 적어본다. 지난 1월 2일 주일 새 신자 반에서 박 모 신자는 이런 말을 했다. “지난 한 해는 저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행복한 한 해였습니다. 강변교회에 오게 된 것이 행복이었고 믿음이 성장하고 가치관이 바뀌게 된 것이 행복이었고 ‘일인 치하’의 가정이 ‘민주적인’ 가정으로 바뀌어 진 것이 행복이었고 직장에서 직원들에 대한 태도가 바뀌어진 것이 행복이었습니다.” 자기는 50을 바라보는 남자로 ‘행복’이란 단어를 쓰는 것이 쑥스러웠지만 지금은 떳떳하게 2004년이 가장 행복한 해였다고 다시 말했을 때 참석자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함께 앉았던 이 모 신자 부부도 공감의 뜻을 표했다. 자기는 교회에 나오기 전에는 주말에 등산이나 골프로 시간을 보냈는데 이제는 주일을 보람차게 보내면서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게 되었고 죄가 무엇인지 알게 되면서 죄책감을 느끼며 죄를 슬퍼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사랑을 느낄 줄 알고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란 사실도 배우게 되었다고 고백하며 자기 부부는 교회와 담임 목사를 너무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김 모 신자는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1월 1일 감사의 글을 교회 홈 페이지에 올렸다. 그 일부를 여기 적는다. “멋쟁이 김명혁 목사님, 강변교회에서 2004년 한 해 동안 참 행복하고 즐거웠습니다. 잊혀지지 않는 강변교회에 대한 그림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가장 감동적인 그림은 예배였습니다. 어머니의 품 속에서부터 물려받은 신앙이었지만, 이토록 가슴 저리며 예배를 드려본 적이 없었습니다. 예배 시간에 2004년만큼 눈물을 흘려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지난 1년간 강변교회에서 제가 누린 예배의 감격은 너무도 소중합니다. 목사님, 마음 깊이 존경할 수 있는 목회자가 있다는 것에 저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목회자는 이와 같은 새 신자들과의 만남을 통한 기쁨을 누리기 때문에 오늘도 목회를 계속하는지 모른다.』 
그리고 끝으로 2006년 10월 14일 「기독교개혁신보」에 실렸던 “나의 목회와 어린이들” 라는 제목의 글 하나를 더 소개합니다. 『나는 어린이들을 아주 많이 좋아한다. 어린이들도 나를 아주 많이 좋아한다. 주일 마다 내가 주일 학교 각 부서에 들어가는데 유아부 유치부 어린이들은 나에게 달려 들어 안기고 업힌다. 유치부 어린이들 몇 명은 빙빙 돌려달라고 조른다. 그래서 나는 어린이들의 두 손을 붙잡고 빙빙 돌린다. 유년부 어린이들 몇 명은 나에게 꼭 안겨서 그 대로 안겨 있기를 원한다. 주일 저녁 예배 시간에는 유아부 유치부 유년부 어린이들 10여명이 나와서 성경 암송도 하고 노래도 부르곤 하는데 얼마나 예쁘고 귀여운지 모른다. 성경 암송과 노래 후 내가 스티커를 한 장씩 주곤 하는데 너무너무 좋아한다. 은우 라는 3살 난 아이는 주일 날 교회에 오면 꼭 목사님 방에 가자고 한다. 스티커 한 장을 받기 위해서이다. 지난 여름 유년부 어린이들이 양평으로 수련회를 떠났다. 내가 버스에 올라가서 어린이들을 배웅하며 기도를 해주었다. 그 때 어린이들이 “목사님도 함께 가자!”고 졸라댔다. 그래서 나는 짐도 싸지 않았는데 어떻게 갈 수 있느냐고 말했다. 그 때 어린이들은 나보고 빨리 집에 가서 짐을 싸 가지고 오라고 했다. 나는 어물, 어물 말하며 어린이들을 떠나 보냈다. 나는 한 참 생각하다가 몇 시간 후 김종군 목사님과 함께 양평으로 달려갔다. 유년부 어린이들이 함께 모여있는 방으로 들어가자 어린이들은 소리를 질렀다. “야, 목사님이 약속을 지켰다!” 나는 어린이들과 물 놀이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얼마 후 내가 떠나려고 하자 어린이들은 가지 말라고 했다. 자고 가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어디서 자겠느냐”고 하자 은정이와 하림이가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 우리 둘 사이에서 자면 되잖아요.” 그 말을 들은 선생님들이 너무너무 재미있어 했다. 어린이들은 너무너무 예쁘고 귀엽다.』
지금까지 부족하고 부족한 사람의 “삶과 목회”에 대한 간증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이지만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로 그리고 수 많은 귀하고 귀한 신앙의 선배들의 가르침과 사랑으로 믿음의 삶을 살게 되었고 목회와 선교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게 목회와 선교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아니 지금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순회 목회와 순회 선교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작년에도 금년에도 선교지를 2,3개월에 한 번씩 방문하기도 합니다. 저는 목회할 때 친밀하고 진솔한 교제와 사랑과 함께 기쁨의 봉사에 주력하면서 행복하게 목회했습니다. 어머니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가 주력했던 것들은 기도와 회개와 말씀과 함께 교제와 봉사에 전력을 다했습니다. 그 결과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고 하나님의 기뻐하심과 축복을 받았고 전도는 저절로 이루어졌고 부흥은 저절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점점 세속화되어가는, 세상 유행을 따라가는, 프로그램과 행사 에 치중하는 한국교회를 불쌍히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새벽기도에 최선을 다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일 성수에 최선을 다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울면서 회개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의 가르침을 순수하게 받아드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모든 종류의 사람들과 친밀하고 진솔한 교제를 이룰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주변과 멀리 있는 도움이 필요한 가난하고 병들고 굶주리고 죽어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순수한 사랑과 도움과 봉사의 손길을 조건 없이 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축복하시는 아름다운 한국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사회로부터 그리고 주변 나라들로부터 신뢰와 사랑과 존경을 받는 교회다운 한국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무한한 영광을 오직 하나님께 돌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보은 창성교회가 이와 같은 아름다운 교회로 자라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로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의 길과 복음 사역의 길로 걸어가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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