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를 만났다. 그는 최근에 산문집 『잊히지 않는 것과 잊을 수 없는 것』을 펴내 자신의 역사 읽기 방식을 보여줬다. ⓒ사진=지유석 기자 |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어둠에 휩싸인 한국교회를 밝혀주는 한 줄기 빛이다. 이 교수는 역사학자이자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소명을 다하고 있다. 여기서 지식인에 대한 의미부터 명확히 규정하고자 한다. 흔히 학식이 높은 이들을 지식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같은 의미규정은 지성인의 의미를 축쇄하는 것이다.
지식인이란 자신의 지성을 통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소명을 다 하는 이들이다. 한국 교회는 물론 사회 전반이 퇴행하고 있다는 우려가 날로 커진다. 이런 현상이 더욱 심각한 건, 사회의 퇴행에 제동을 걸어줄 지식인이 눈에 잘 띠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교수의 존재감은 더욱 빛난다. 일간신문과 잡지, 강연, 그리고 요사이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어둠이 깊어가는 교회와 사회에 경종을 울려주기 때문이다. 최근엔 그동안 발표했던 글들을 모아 산문집 『잊히지 않는 것과 잊을 수 없는 것』(포이에마 간)도 펴냈다.
이 교수와의 만남에서 역사, 그리고 역사관에 관한 질문을 처음으로 던졌다.
“역사관을 물어올 때 곤혹스럽기만 하다. 그런데 특별한 역사관 같은 것은 갖고 있지 않다. 또 역사가 어떻게 흐르는지는 일반적으로 다 아는 상식이기에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단지 역사학자는 ‘어떻게 보느냐?’ 보다 ‘어떤 인격과 가치관을 갖느냐?’다. 하나의 지식으로서가 아니라 신념으로서 체화하고 있느냐의 문제라는 것이다. 만약 신념이 확고하다면 분명한 가치관을 가지고 시대를 조명할 수 있다. 즉, 시대를 바라보고 목소리를 내고, 또 이런 목소리가 단순히 개인적인 이해관계가 아니라 객관성을 가진, 보편적인 가치관에 입각하게 된다는 말이다. 난세든 태평성대이든, 그리고 역사학도이든 아니든 자신만의 가치관 함양은 필요하다. 특히 기독교인이라면 성서에 바탕을 둔 기독교적 가치관을 갖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교수는 가치관을 언급하면서 한 가지 중요한 지적을 했다. 바로 진영논리다. 이 교수는 진영논리의 함정에 깊은 경계심을 드러냈다.
“내가 가장 경계하는 건 진영논리에 빠지는 일이다. 현 정권을 보자. 내가 보기에 현 정권은 무능한데다 비전이나 식견, 경륜 같은 덕목은 찾아볼 수 없다. 무엇보다 남북관계, 그리고 서민 정책에서 정권 담당자로서의 식견이 드러나야 하는 데, 이런 식견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임기만 채우고 나가려 한다.
이토록 식견도 없고 무능한 정권을 세운 일등공신이 바로 경상도다. 경상도민들이 심각하게 반성해야 한다. 나 자신 현재 서울에 살고는 있지만 경상도 출신(경상남도 함안)으로서 반성해 나간다. 이런 반성은 어떤 의미에서는 진영논리를 벗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경상도 출신으로서 정권을 감싸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비판적으로 나갈 수 있지 않은가?
▲고신교단 출신 이만열 교수의 신앙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사진=지유석 기자 |
진영논리는 기독교에도 해당된다. 기독교를 갖고 진영논리에 서게 되면 십자가가 아니라 십자군적인 입장에 서게 된다. 한 마디로 교회만 위하게 된다는 말이다. 기독교인들이라면 ‘예수 믿는 사람들이 무언가를 하니까 좋다’는 식의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기독교적 가치관으로 현상과 교회를 볼 줄 알아야 한다. 교회의 관행적 가르침 가운데 물론 훌륭한 덕목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도 많다. 그런데 기독교인이 진영논리에 서서 교회를 바라보다간 교회가 어디로 가는지도 못보고 결국 하나님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가게 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분
이 교수는 고신교단 출신이다. 고신교단은 신앙의 순수성과 생활의 절제를 강조한다. 얼핏 진보색채가 강한 이 교수의 성향과 괴리감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 교수는 크게 어려움은 없다고 했다.
“고신교단은 삶에서 진리를 드러냈다. 고신교단에서 신앙생활을 한 탓에 주일엔 버스도 타지 못했다. 대학시절 사학과에서는 한 학기 한 번씩 고적답사를 갔었다. 그런데 답사 일정이 주일을 끼고 있었기 때문에 한 번도 가지 못했다. 폐쇄적이고 바리사이파 사람들처럼 생활한 셈이다.
그러나 대학 시절, 생각을 넓히고 성경을 다시 보게 되면서 ‘사람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신 예수의 말씀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기독교의 제도가 사람을 위해 주신 것이지 사람으로 하여금 얽매이도록 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하나님에 대한 생각도 변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다고 했는데, 그런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일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우리가 모든 일을 할 적에 불꽃같은 눈으로 보시면서 죄를 범하는지 안하는지 감찰하는 분이다고 생각하니까 눈이 크고 무서웠던 아버님이 떠올랐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자유케 하시고, 은총과 힘을 주시는 분이심을 대학생활을 통해 깨달았다. 큰 깨달음이 아닐 수 없었다.
어릴 적 고신의 체질을 이해했기에 지금 와서 이것이 잘못됐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안에 갇혀 있는 건 분명 잘못이라고 본다. 나 스스로 교파적 제한을 벗어나려 노력했다. 신학교를 마친 후 할렐루야 교회에서 5년 간 대학생들을 지도한 적이 있었다. 그때 학생들이 지금도 연락하는데, 전도사님이라고 부른다. 그게 제일 좋다.”
지난 2013년 구글의 에릭 슈미트 사장이 북한과 남한을 차례로 방문한 뒤 “북한은 얼어붙은 나라, 남한은 경직된 나라”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남한의 기독교계도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교수는 이런 경직성으로 인해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이 교수는 그때 일을 이렇게 회고했다.
▲단군 신화와 관련해 많은 글을 썼던 이만열 교수. 그는 여전히 우리 민족에게 단군의 역사화라는 과제가 숙제로 남아있음을 확인했다. 단군의 우상화는 절대로 부정하더라도 일제 식민지 지배 하에 훼손된 역사를 복원하는 차원에서 단군 연구는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사진=지유석 기자 |
“일전에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을 지냈을 때 일이다. 10월3일 개천절에 ‘단군은 우리 조상’이라고 했는데, 고신 총회에서 이를 문제 삼았다. 시골 교회의 어느 목사는 지금도 이걸 물고 늘어진다.
보편적으로 고려 말이래 많은 역사책에서 단군을 시조로 이야기하고 있다.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이를 부정할 수는 없다. 많은 목회자들로부터 존경 받는 손양원 목사(산돌 손양원 기념사업회 이사장)도 단군을 성조, 즉 거룩한 조상이라고 했다. 단군을 신화라고 주장하는 목사들에게 ‘단군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를 되물으면 답을 못한다. 이런 논쟁에서도 벗어날 줄 알아야 하는데, 보편적인 주장을 수용할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다. 이것 아니면 저것을 구분하는 사회라 어려움이 많다.”
사실 수많은 목회자들이 단군 설화를 신화라고, 심지어 단군을 무당이라고 설교한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역사학자로서 분명한 시각을 제시한다. 이 교수의 시각에서 얼핏 경직된 한국교회에 대한 안타까움이 엿보인다.
“단군 신화와 관련해 많은 글을 썼다. 사실 단군을 내세우는 쪽도 잘못이 있다. 단군상을 세우고 주체적 역사교육을 시키겠다고 해놓고선 단군이 세운 나라가 7000년이 넘는다고 동상에 적어 놓았다. 역사교육이 목적이라면 학계에서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학설을 적어야 하는데 학계에서 수용할 수 없는, 오로지 자신들만의 주장을 적은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접근방식이 단군상의 목을 자르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된다.
결론부터 말하면, 단군의 역사화는 열심히 매진해야 한다. 그러나 우상화에 대해선 목숨을 걸고 반대해야 한다. 단군 연구는 분명 이뤄져야 하지만 종교화는 안 될 말이라는 것이다. 왜 이 점을 강조 하냐면, 일본식민지 지배 하에서 우리 역사가 많이 훼손됐기 때문이다. 단군 신화도 그 가운데 하나다.
일제는 주체성을 없애기 위해 한국이 중국의 아류로서 중국에서 온 사람들이 조선을 세웠다는 식으로 역사를 왜곡했다. 이른바 기자조선, 위만조선 등의 주장이 그런 것이다. 그러나 단군은 이보다 시점이 앞선다. 『삼국유사』에 그렇게 기록돼 있다. 그래서 일본은 이를 신화로 폄하했고 파괴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시도는 일정 정도 먹혀들어갔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단군 신화를 부정한 건 일제가 한국 역사를 훼손한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다.
이에 단군 연구는 기독교인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우상화하는 일은 피를 흘려서 반대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럼에도 알아듣지 못한다.”
※ 2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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