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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우 송창근 6년만의 귀국

<만우 송창근 바로보기8>

송창근이 뉴저지 주의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펜실베니아 주 피츠버그에 있는 웨스턴 신학교로 전학해 간 것은 1928년 9월 초였다. 1928년 가을 학기부터 피츠버그에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피츠버그 시는 역사가 오랜 도시였다. 시의 이름은 식민지 시대에 영국 수상이었던 윌리엄 피트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고 한다. 윌리엄 피트의 고급 부관인 존 포베스 준장이 미국으로 건너와서 프랑스 소유였던 두케즈네를 점령한 뒤, 상관인 윌리엄 피트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그의 이름을 따서 지역 이름을 피츠버그라고 지었다.

웨스턴 신학교의 정식 명칭은 ‘Western Theological Seminary’로서, 1787년에 조셉 스미스 교수에 의해서 처음 문을 연 장로교 신학교였다. 그로부터 세월이 흘러 1929년 가을에는 “기숙사도 좋고, 교수들 신학사상도 학문과 경건을 겸했고, 특히 구약 부분이 강하다”는 평을 듣는 신학교가 되었다.

송창근은 웨스턴 신학교로 옮겨간 지 1년 만인 1929년 가을 학기에 김재준도 웨스턴 신학교로 오도록 주선했다. 그를 위한 3백 불 장학금을 확보해 놓고 부른 것이다. 김재준으로서는 1928년 가을 학기에 미국에 도착하여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공부하기 시작하여 1년이 된 때였다.

그렇게 되어 김재준은 1929년 가을 학기부터는 피츠버그의 웨스턴 신학교에서 송창근과 함께 생활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호사다마라고 새 학기가 시작될 무렵에 사단이 하나 일어났다. 김재준이 돈을 잃어버린 것이다.

김재준은 프린스톤에서 피츠버그로 가기 직전이었던 1929년 여름방학에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었다. 뉴욕 롱아일랜드 피서지에 있는 주택식 고급식당에서 키친 보이로 일해서 삼백불을 번 것이다. 그는 그 돈을 갖고 피츠버그로 온 것인데, 그것을 몽땅 잃었다.

이 일로 인해 송창근과 김재준의 사이는 크게 멀어졌고, 이후 송창근은 김재준을 배려하고 이끌어주던 일을 일체 중단한 듯하다. 김재준의 회고록 <범용기>와 <만우 송창근>에 이 사건이 기록돼 있는데, 조금 다르게 기록된 부분들이 있다.

김재준의 회고록 <범용기>에는, 돈을 잃어버린 후 침대방에서 “만우가 들어와 ‘어디 아프냐?’기에 이야기했더니 입맛이 쓴지 ‘에잇!’하고 나갔다”고 되어 있다. 그런 반면, <만우 송창근>에는 ‘송 청년은 격분하여 ‘야! 분간 못해!’하고 고함을 치더니 보기 좋게 따귀를 때리더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K씨를 붙잡고 엉엉 울었다는 것이다. 내일이 개학날인데 기가 막혔을 것이다. 한참만에 ‘도리 없지’하면서 자기가 준비한 학비를 내주면서 ‘취직이라도 내가 쉽지’하더라는 것이다”라고 기록돼 있다. 그러나 정확한 실상이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문제의 ‘삼백 불 분실 사건’에 주목하게 되는 이유는, 그 사건 때문에 송창근과 김재준 사이의 우정에 큰 금이 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송창근 목사가 박사학위를 받은 콜로라도 주 덴버의 아일리프 신학교.

송창근은 다음 해인 1930년 5월에 웨스턴 신학교를 졸업하면서 신학석사 학위를 받은 뒤, 콜로라도 주 덴버의 아일리프 신학교로 옮겨가서 박사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그는 1931년 6월에 박사학위를 받아 졸업했고, 귀국하는 길에 LA에서 몇 달 머물렀다가 조선으로 돌아갔다.

그러면서 송창근은 김재준이 계속해서 박사학위 과정을 밟을 수 있도록 주선해 주지 않았다. 그래서 김재준은 웨스턴 신학교에서 1932년 5월에 석사학위를 받은 뒤에 그대로 귀국길에 올랐다.

당시 한경직은 1929년 5월에 신학석사학위를 받아 프린스턴 신학교를 졸업했다. 프린스톤 신학교에는 박사과정이 없었기 때문에 예일대학에 가서 교회사를 전공하면서 박사과정을 밟으려고 계획하고 여름방학 동안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런데 계속 감기 기운이 심하면서 약을 먹어도 감기가 도무지 떨어지지 않았다. 병원 검진 결과 ‘폐결핵 3기’였다. 도리 없이 박사과정을 포기하고 요양원에 들어갔다. 1929년 여름부터 1930년 연말까지 입원 치료하여 폐결핵 자체는 겨우 완치 됐다.

1931년 6월 송창근은 아일리프 신학교를 졸업했다. 이로 인해 아일리프 신학교가 있는 덴버에서송창근과 함께 지냈던 김재준과 한경직은 짐을 싸서 귀국길에 올랐다. 한경직은 곧장 귀국했고, 송창근은 LA에 가서 몇 달을 보낸 뒤 1931년 연말에 귀국했다. 이 때의 LA행은 그의 인생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사건이 되었다. 그가 거기서 흥사단에 입단했기 때문이다.

아일리프 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송창근 목사.

LA는 도산 안창호 선생이 독립운동단체인 흥사단을 조직한 곳이다. 그는 1913년 12월 20일에 창립위원회를 구성하고 단우 확보에 나섰다. 그가 흥사단에 건 기대와 쏟은 노력은 대단했다. 1919년 이래 상해에 가서 임시정부에서 활약하고 있을 때도 그는 흥사단의 상해 지부를 결성하고 조직의 활성화를 위하여 매우 노심초사했다. 흥사단은 안창호의 독립운동 방략의 기본이 되는 단체였기 때문이다. 그런 기대에 부응하여 흥사단원들은 안창호의 독립운동 활동을 극력 뒷받침했다.

나중에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구속된 송창근에 대한 판결문에 의하면, “1931년 9월 하순 경에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흥사단 본부에서 김병연의 권유를 받고 입단했고, 1932년 1월 2일경 위의 본부에서 송종익 외 약 50명에 대하여 ‘유다야이즘’이라는 연제 아래 ‘기독교에는 실생활에 중점을 두는 유다야이즘과 신비를 주장하는 포올이즘이 있다. 나는 유다야이즘에 찬성한다. 이는 흥사단의 무실역행의 주장과 서로 합치하므로 우리 흥사단원도 또한 기독교도와 연락을 취하여 소기의 목적을 수행하기에 매진하여야 한다’는 취지를 역설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송창근은 연말이 다가오자 태평양을 건넜다. 그가 일본을 거쳐서 서울에 도착한 날은 1932년 1월 5일이었다. 당시 산정현교회를 담임하고 잇는 목사는 강규찬 목사였다. 그는 1917년부터 산정현교회의 목사로 시무하기 시작하여 14년째 산정현교회에서 목회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사임하기도 전에 당회에서 그의 후임 목회자로 미국에 있는 송창근을 모시기로 결정해 놓은 것이다. 아마도 ‘새로운 목회’에 대한 갈망이 있어서 그랬을 것이다.

주목할 점은 송창근은 귀국하기도 전에 평양에서 유명인이었고, 그가 평양에 와서 할 일이 모두 확정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산정혀교회에서의 목회와 숭실학교 성경 교사, <신학지남>의 편집이 그것이었다.

1932년 1월 초순, 드디어 서울에 도착한 송창근은 곧장 평양으로 가지 않았다. 서울에서 사람들을 만난 뒤에 함경도 고향에 가서 근친을 하고 다시 서울에 가서 친지들을 만나는 등의 일로 여러 달을 보냈다. 그가 평양으로 간 때는 1932년 4월 상순이었다.

그는 고향에 있는 가족들을 모두 이끌고 평양에 부임했다. 함경북도 웅기에서 평양으로 가려면 기차를 타고 함경선과 경원선을 갈아타면서 서울로 가서 거기서 다시 경의선 기차로 갈아타고 평양역에 가서 내려야 했다.

그런데 이때 평양에 도착한 송창근의 가족들 모습이 두고두고 화제가 되어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고 한다. 송 박사가 가족들과 평양역에 내려서 교회 사택으로 가는 동안 내내, 송 박사의 부인이 손으로 송 박사의 혁대를 꼭 움켜쥐고 송 박사 옆에 붙어서 걸어가더라는 것이다. 다시 워낙 많은 사람들이 환영을 나왔기에 인파가 아주 대단했는데, 그걸 본 소심한 부인이 혹시라도 인파 속에서 남편을 잃어버릴까봐 남편의 혁대를 꼭 붙잡고 걸었던 것이다. 그런데 송 박사는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부인에게 혁대를 잡힌 채로 흔연하게 걸어가더라는 것이다.

송창근 목사의 부인 김재권 사모.

여기서 부인관 관련된 흥미로운 일화를 하나 더 적고 가야겠다. 송창근이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하자 이내 여러 이야기들이 나왔는데, 그 중 하나가 “송 박사가 곧 이혼할 것”이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송창근의 부인 김재권 씨는 작은 체구에 외모나 성품이나 성격에 모두 매우 평범하고 교육도 받지 못한 시골 여인인데다가 6년이나 연상이었다. 그래서 주위에서는 모두들 “이제 머나먼 선진국 미국에 가서 박사까지 따온 분의 눈으로 보면 부인이 도저히 성에 차지 않아서 곧 이혼하게 되리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런 소문이 평양에 떠도는 가운데, 송창근이 평양으로 부임하는 길에 가족들과 함께 숙소에 묵고 있을 때였으리라. 하루는 송 박사가 모두들 보란 듯이 부인을 데리고 화신백화점에 가서 같이 팔짱을 끼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면서 부인에게 백화점 구경을 시켜주었다. 그 이후로 “송 박사가 곧 이혼할 것이다”라는 소문이 아예 영영 사라졌다고 한다.

당시 화신백화점이라 하면 서울 시내에서 가장 사치스럽고 최고로 번화한 장소에 있던 건물이었다. 그런데 그런 곳을 택하여 부인과 팔짱을 끼고 구경 다니는 모습을 연출해 보임으로써 세간에 일고 있는 ‘송 박사의 이혼’에 대한 소문을 일거에 불식해 버린 것이다. 송창근이 지녔던 ‘처세’에 대한 뛰어난 감각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일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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