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현장스케치] 살벌함 가운데 맞는 세월호 1주년

세월호 1주기 <기억하라 행동하라> 집회 단상

▲지난 11일(토)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억하라 행동하라 행사 및 정부시행령 폐기 총력 행동> 집회가 열린 가운데 집회를 마친 세월호 유가족들이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청와대로 행진하고 있다. ⓒ사진=지유석 기자

지난 4월11일(토)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세월호 가족협의회와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등으로 이뤄진 ‘4월16일의 약속 국민연대’ 주최로 <기억하라 행동하라 행사 및 정부시행령 폐기 총력 행동> 집회가 열렸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 및 일반시민을 합해 약 8,000여 명이 참가한 이번 집회에서 참가자들은 한 목소리로 정부가 지난 3월 말 입법예고한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법 시행령안’(이하 시행령)의 폐기 및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외쳤다. 집회에 이어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행진이 이어졌다. 유가족들이 선봉에 섰다. 그 뒤로 시민들의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  
그러나 경찰은 차량과 방어막을 동원해 행진을 저지했다. 이러자 시민들과 경찰 사이에 충돌이 벌어졌다. 시민들은 물리력을 동원한 경찰을 거세게 비난했다. 그럼에도 경찰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러자 시민들은 종로, 을지로 일대를 행진하며 ‘시행령 폐지,’ ‘세월호 선체인양,’ ‘진상규명’을 외쳤다.  
▲지난 11일(토)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세월호 가족협의회와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등으로 이뤄진 ‘4월16일의 약속 국민연대’ 주최로 <기억하라 행동하라 행사 및 정부시행령 폐기 총력 행동> 집회가 열렸다. ⓒ사진=지유석 기자

행진을 마친 시민들은 다시 광화문 광장에 모였다. 결국 불상사가 벌어졌다. 유가족 등 시민들이 경찰 방어막을 뚫으려 시도하자 경찰이 이들을 향해 캡사이신을 발사한 것이다. 경찰은 유가족 3명과 17명의 시민을 연행했다. 이 가운데 유가족 전원과 시민 1명은 12일(일) 오전 풀려났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즈음해 벌어지는 광경은 이토록 살벌하기 그지없다. 특히 유가족들의 정부에 대한 불신은 위험수위를 넘어선 상황이다. 행진을 막아서는 경찰을 돌파하려는 모습 역시 이 같은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불신은 사실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불신 자초한 대통령·정부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둘러싸고 큰 진통을 겪었다. 그러다가 10월 ‘세월호 특별법 합의안’이 가까스로 마련됐고, 12월엔 여야 추천인사 10명으로 구성된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꾸려졌다. 그러나 정부가 3월 말 시행령을 발표하면서 유가족들을 자극했다. 
▲지난 11일(토)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억하라 행동하라 행사 및 정부시행령 폐기 총력 행동> 집회가 열린 가운데 시민들이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사진=지유석 기자

대통령의 거짓말은 더욱 심각하다. 지난 해 5월 대통령은 유가족들을 청와대로 불러 면담을 가졌다. 그리고 “정말 4월 16일 그 사고가 있기 전과 그 후의 대한민국은 완전히 다른 나라로 태어날 수 있도록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후 사태 전개과정은 대통령의 말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 또 올해 3월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해서는 “양떼를 돌보는 목자의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대한민국에 희망의 새 시대를 열어가는 데 혼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지난 해 10월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찾았을 때 세월호 유가족들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또 이제까지 유가족들의 면담 요구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으며, 경찰 병력을 동원해 청와대 진입마저 막아 세우고 있다. 더구나 참사 1주년 당일인 4월16일(목)에는 콜롬비아 등 남미 4개국 순방을 떠날 계획이다. 유가족뿐만 아니라 시민들 사이에서 대통령에 대한 불신이 싹트는 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이런 감정은 집회 현장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전명선 세월호가족대책위 운영위원장은 “진상 규명 않고 선체 인양 선언이 없는 이상 우린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다. 차라리 우리 국적을 바꿔달라”고 했다. 이태호 세월호국민대책위 공동운영위원장도 “애초 이번 주를 추모 기간으로 하려고 했지만 세월호 가족들이 지금은 추모할 때가 아니라 행동할 때라면서 거부했다. 4월 16일에 외국 나간다는 데 이런 대통령에게 진심이나 진정성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11일(토)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세월호 가족협의회와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등으로 이뤄진 ‘4월16일의 약속 국민연대’ 주최로 <기억하라 행동하라 행사 및 정부시행령 폐기 총력 행동> 집회가 열렸다. ⓒ사진=지유석 기자

이번 주는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는 주간이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추모보다는 시행령 폐기와 진상규명 요구를 계속해 나갈 방침이다. ‘예은 엄마’ 박은희 씨는 “실종자수습도 다 안됐고, 진상규명도 시작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추도식을 할 수 있겠는가? 대신 16일 저녁 시청광장집회에 오셔서 예은이를 비롯한 304명을 제대로 추모할 수 있는 날이 오도록 시행령폐기와 인양선언을 외쳐 달라”고 당부했다. 
세월호 참사를 해상사고로 치부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그러나 세월호라는 선박 자체가 부실덩어리였고, 이런 부실덩어리가 운항할 수 있었던 건 부패한 제도 덕분이었음은 진즉에 드러났다. 또한 가라앉는 배에 탄 304명의 희생자들이 간절히 구조를 요구했음에도 관계 당국은 수수방관하다시피 방치했다. 이 와중에 국가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은 7시간 동안 종적을 감추고 있었다. 이런 시스템이 계속 유지된다면, 언제 어디서 이 같은 사고가 불거질지 예측불허다. 그리고 우리 국민들은 이런 시스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아직 진정한 추모의 시간은 오지 않았다. 아니, 현 사회상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진정한 추모의 시간을 가지려면 304명보다 더 큰 희생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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