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이화여대 대학교회 장윤재 담임목사 설교] "그러나 이제"

jangyoonjae
(Photo : ⓒ베리타스)
▲장윤재 교수(이화여대 인문과학대학 기독교학과, 이화여대 대학교회 담임목사)

성경본문

이사야 43:1-7, 데살로니가전서 5:4-8, 마태복음 5:14-16

설교문

오늘의 구약성서 말씀은 하나님 앞에 범죄하여 징계를 받고 있는 이스라엘에 주신 말씀입니다. 멸망한 이스라엘이 아직도 바벨론의 포로로 있을 때 예언자 이사야를 통해 주신 희망의 말씀입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이사야 43:1, 개역개정)

너무 좋아서 많은 사람이 암송하기도 하는 이 구절엔 사실 빠진 번역이 하나 있습니다. 맨 앞 "그러나 이제"(But, now)입니다. "그러나 이제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원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공동번역과 새번역 성서는 이렇게 잘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는 앞의 내용과 뒤의 내용이 다를 때 쓰는 접속사입니다. '이제'는 지금부터 앞으로의 변화를 예고하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은 왜 패망했습니까? 왜 고통 속에 있습니까? 이사야는 그 이유를 오늘의 본문 바로 앞 다섯 구절에 압축해 놓았습니다. "주님은 백성을 구원하셔서, 의를 이루려고 힘쓰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께 죄를 지었다. 우리는 그의 뜻대로 살지 않았고 그의 법에 순종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무서운 분노를 쏟아 격렬한 전쟁을 겪게 하셨다. 여호와의 분노가 불붙듯이 타도 우리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또 그런 것을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이사야 42:21-25, 새번역 & 현대인의 성경)

사람은 살다가 고통을 받을 때 그것이 하나님의 진노로 징계를 받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진노'(震怒)는 존엄한 분이 몹시 노함이라는 뜻입니다. 성서에는 진노라는 단어가 200번이 넘게 나옵니다. "주께서 주의 큰 위엄으로 주를 거스르는 자를 엎으시니이다. 주께서 진노를 발하시니 그 진노가 그들을 지푸라기 같이 사르니이다."(출애굽기 15:7) 했습니다. "이 백성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에게 분향하며 그들의 손의 모든 행위로 나를 격노하게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이곳을 향하여 내린 진노가 꺼지지 아니하리라"(열왕기하 22:17) 하셨습니다. "접신한 자와 박수무당을 음란하게 따르는 자에게는 내가 진노하여 그를 그의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레위기 20:6) 하셨습니다. 성서는 "너희 중에 계신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신즉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진노하사 너를 지면에서 멸절시키실까 두려워하[라]"(신명기 6;15) 했습니다. 구약만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난다]"(로마서 1:18) 했습니다.

하나님은 진노하시고 심판하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오랜 고난 속에서 "이제", 성서의 기자들은 깨닫습니다. "주께서는... 인애를 기뻐하시므로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심]"(미가 7:18)을 깨닫습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자비 때문에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요나 3:9)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나라가 완전히 패망하여 바벨론 제국의 포로로 끌려가 있을 그때 예언자 이사야는 이런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렸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이사야 54:8)

그러므로 "그러나 이제!"라고 이사야는 선언합니다. 분명 이스라엘은 지금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중이고, 지금 그들이 처한 현실은 아무런 미래를 기대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고 절망적입니다. 아무리 보아도 암울한 현실이 도저히 달라질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사야가 선언합니다. "그러나 이제...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리]라. 그는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이사야 43:1-7)

역사의 전환점이 된 이 말씀 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너는 내 것이라"입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지명하여 불렀다'라는 말씀은 '이름으로 불렀다'라는 뜻입니다. 오직 사랑하고 친밀한 관계에서만 이름으로 부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도 당신을 선한 목자라 하시며,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요한 10:3)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해 "너는 내 것"(לי ־ אתה, 리-아타)이라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것이다'라는 말은 '너는 내게 속했다'(You belong to me)라고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속하다'라는 말은 누군가의 정체성을 나타내 주는 말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소속을 잘 알아야 합니다.

언젠가 한국에서 세계 기독교 지도자 모임이 있었습니다. 개신교회와 가톨릭교회 그리고 정교회의 주요 지도자들이 모였습니다. 저도 영광스럽게 초대되어 라운드 테이블 한쪽에 앉았습니다. 개회 예배 이후 사회자가 마이크를 모두에게 돌리며 각자 자기를 소개해달라고 했습니다. 소개가 시작됐습니다. 모두 자기의 이름과 자신이 속한 교단 혹은 기관을 소개했습니다. "My name is 누구누구 and I belong to 어떤 교단." 그리고 인사말을 덧붙였습니다. 제 차례를 기다리며 저는 뭐라고 나를 소개해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마음속에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교파로 갈라진 교회가 하나 되어보자고 만난 모임인데, 제 앞의 50명쯤은 하나같이 자기가 속한 교단이 어떤 교단인지 설명하기에 바빴습니다. 드디어 제 차례가 되었을 때, 저는 일어서서 이렇게 딱 한마디 했습니다. "My name is 장윤재 and I belong to Jesus."

"저의 이름은 장윤재입니다. 저는 예수님께 속했습니다!" 참가자 모두가 웃음과 함께 탄성을 질렀습니다. 그리고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제 앞에서 자기를 소개한 사람들은 '아, 내가 저 말을 했어야 했다'라고 아쉬워했고, 제 뒤에서 자기를 소개하는 사람들은 '나도 저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라고들 했습니다. 우리 속담에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라고 했는데, 저는 그때 그 말 한마디로 그 회의에서 주목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I belong to Jesus!" 너무도 당연한 말 아닙니까! 우리는 지금 이렇게 갈라져 있지만 우리는 모두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에게 속한 사람들이 아닙니까!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로마서 14:8)라고 했습니다. "We belong to the Lord!"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마가 9:41)입니다. 다른 말로 "그리스도의 사람"(로마서 8:9)입니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다]"(요한1서 4:4)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밤이나 어둠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낮에 속한 사람"(데살로니가전서 5:5,8, 공동번역)이라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다]"(요한 15:20) 하셨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어디에 속하였는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속한 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선택하여 가려낸 사람들입니다.

130여 년 전, 선교 초기에 조선에 온 선교사들이 보니 양반들은 모두 머리에 갓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하도 신기하여 한 양반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 머리에 쓴 것이 무엇이오?" "갓이오." "아니 갓이라니! 갓(God)이면 하나님인데, 조선 사람들은 머리에 하나님을 모시고 다닌다는 말이 아닌가!" 놀란 선교사가 또 물었습니다. "그러면 이 나라의 이름은 무엇이오?" 그 양반은 한자를 써서 보여주며 답했습니다. "조선이오! 아침 '조'(朝), 깨끗한 '선'(鮮), 이렇게 씁니다." 선교사는 더욱 깜짝 놀라, "깨끗한 아침의 나라, Morning calm의 나라라는 말이 맞구나!" 하면서 '조선'의 한자를 풀어달라고 했습니다.

"아침 '조'(朝) 자는 먼저 열 십(十) 자를 쓰고, 그 밑에 낮을 뜻하는 날 일(日) 자를 쓰고, 그 아래 열 십(十) 자를 다시 쓰고, 그 옆에 밤을 뜻하는 달 월(月) 자를 씁니다. 이렇게요." 한자에 까막눈인 선교사가 보니 십자가[十] 더하기 날일[日]에 또 십자가[十] 더하기 달월[月]이었습니다. "아니 낮[日]에도 십자가[十], 밤[月]에도 십자가[十], 그러니까 하루 종일 십자가라는 뜻이구나!" 완전히 감탄한 선교사가 이번에는 조선의 '선'(鮮) 자를 풀어달라 했습니다.

"'선'(鮮)은 물고기 '어'(魚) 옆에 양 '양'(羊) 자를 씁니다." 급기야 선교사는 탄성을 질렀습니다. "아니 물고기는 초대교회의 상징인 '익투스'로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고백이 아닌가! 그리고 양은 '하나님의 어린양'이 아닌가! 조선의 '선'(鮮) 자는 완전한 기독교 신앙고백의 글자로구나! 조선은 하나님께서 예비하고 선택하신 복음의 나라로구나!"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이 나라를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감탄에 감탄을 반복하던 선교사는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더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조선 사람을 영어로는 어떻게 씁니까?" "Chosen People이라고 씁니다!" 선교사는 기절하기 직전이었습니다. "와우! 선택된(Chosen) 사람들(People)이라니, 조선 사람은 과연 동방의 선민(選民)입니다!" 누가 쓴 글인지는 모르지만, 김영철 교우님이 한 블로그의 글을 저에게 전해주셨습니다.

주님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셔서 의를 이루려고 힘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그의 뜻대로 살지 않았고, 그의 법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우리에게 무서운 분노를 쏟아 이 고통과 환난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분노가 불붙듯이 타도 우리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또 그것을 염두에 두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있고,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은 아무런 미래를 기대할 수 없을 만큼 절망적입니다. 아무리 보아도 지금의 현실이 달라질 것 같지 않습니다. 우리는 공포와 불안에 휩싸인 백성입니다. "그러나 이제" 이 두려움 한가운데서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러나 이제...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너를] 지었고... 내가 [너를] 만들었느니라."(이사야 43:1-7)

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분은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 "너를 지으신 이"입니다. 아십니까? 성서는 결코 사람을 주어로 '창조하다'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창조란 없는 것을 있게 하고 완전히 파괴된 것이라도 새롭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배반의 과거와 그로 인한 고통 속에 있지만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미래를 열어주십니다. 우리의 기대와 예상을 넘어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지으십니다.

경애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려지는 자' 곧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입니다.(이사야 43:7) 여러분은 '하나님의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하나님이 사랑한 자'(이사야 43:4)입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하셨습니다. "너는 나에게 속하였다" 하셨습니다. "우리는 주의 것입니다"(We belong to the Lord) 우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오히려 세상에서 가려낸 사람들"(요한 15:18, 공동번역), 곧 '선택된 사람들'(Chosen People)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태복음 5:14) 하셨습니다. 우리는 밤이나 어둠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빛의 아들[딸]이요 낮의 아들[딸]"(데살로니가전서 5:5)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어둡게 시작한 2025년 을사년(乙巳年)이지만 이 새해에도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태 5:16)는 주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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