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멸 감독의 독립 영화 <지슬>의 한 장면. ⓒ스틸컷 |
제주 4.3사건은 한국전쟁의 전주곡과도 같은 사건이었다. 또한 이슬람국가(IS)처럼 종교적 신념을 내세운 인명살상이 횡행했던 현장이기도 했다. 오멸 감독의 독립 영화 <지슬>은 양민학살과 반대자에 대한 조직적 제거행위가 이 땅에서 횡행했음을 드러내주는 작품이다.
제주 방언으로 감자를 뜻하는 말인 <지슬>은 무엇보다 영상미가 돋보인다. 흑백으로 처리된 화면은 마치 한 폭의 산수화를 방불케 한다. 화면 곳곳에 드러나는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은 또 다른 볼거리다. 미술학도였던 오멸 감독의 예술적 감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카메라는 폭도로 몰려 쫓기는 신세가 된 주민과 폭도를 토벌하기 위해 섬에 온 군인들을 번갈아 가며 비춘다. 주민들은 돼지를 치고 감자로 끼니를 이어가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군인들을 피해 동굴에 은신한다.
반면 군인들은 주민들을 무자비하게 살해한다. 특히 북한 말투를 쓰는 군인은 피에 굶주린 듯 살인을 즐긴다. 그는 빨갱이에 대한 적대감에 사로잡혀 있고, 이런 적대감은 살육으로 분출된다. 뭍에서 온 군인들의 무차별 살육은 흡사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이 자행했던 양민학살을 떠올리게 한다. 군인의 칼에 무참하게 살해당한 한 노파는 자신을 찌른 군인에게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남기고 눈을 감는다.
“빨갱이가 뭐길래”
▲오멸 감독의 독립 영화 <지슬>의 한 장면. ⓒ스틸컷 |
영화는 군인들의 잔혹행위를 직접적으로 보여주지는 않는다. 또 사건이 벌어진 정치적 배경을 설명하지도 않는다. 사건은 대부분 간접화법으로 처리된다. 연기 자욱한 동굴에서 군인들이 총을 발사하는 장면에서는 몽환적인 느낌마저 든다. 그러나 이런 간접화법은 오히려 사건의 잔혹함을 강렬하게 부각시킨다. 영화를 보는 내내 동족에 의한 잔혹한 학살행위가 이 땅에서, 멀지 않은 과거에 벌어졌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영화는 4.3의 비극이 왜 일어났는지 직접적으로 묻지는 않는다. 그러나 보는 이에게 “왜 이런 살육이 횡행했을까?”라는 의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4.3사건, 기독교는 가해자
그럼에도 전반적인 구성은 많이 아쉽다. 4.3사건을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는 요소가 죄다 잘려 나간 느낌이 들어서다. 제주 출신의 연출자는 자라면서 비극을 몸소 겪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4.3사건의 전후맥락을 알 수 있게 하는 장면을 배치했다면 더 큰 공감과 반향을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 영화의 진정한 의도는 희생자들에 대한 위로로 보인다. 이야기의 흐름을 제사용어인 ‘신위(神位),’ ‘신묘(神廟),’ ‘음복(飮福),’ ‘소지(燒紙)’ 등 네 단락으로 나눈 점이 특히 그렇다.
▲오멸 감독의 독립 영화 <지슬>의 한 장면. ⓒ스틸컷 |
초입에서 적었듯 제주 4.3사건은 한국전쟁의 전주곡이나 다름없었다. 특히 ‘서북청년단’으로 불린 서북지역(평안도와 황해도) 출신의 열혈 기독교 신봉자 집단은 ‘빨갱이’에 대해 거리낌 없이 잔혹행위를 일삼았다. 이들의 잔혹행위는 오늘날 IS의 참수행각에 준하거나 훨씬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최근 극우 성향을 띤 어느 기독교인이 서북청년단을 재건하겠다고 나섰다. 이 기독교인은 아주 확신에 찬 어조로 “서북청년단 때문에 대한민국 현대사가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참으로 어리석고 안타까운 일이다.
더욱 안타까운 건, 4.3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이 이른바 보수-진보의 이념노선에 따라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이 사건은 2014년 국가기념일로 지정됐음에도 대통령은 지난해와 올해 연거푸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진영논리를 들이대기 전, 이런 의문을 던져보고 싶다. 휴전선에서 한참 멀리 떨어진 외딴 섬에서 벌어진 불안상황이 남한, 더 나아가 한반도 정세에 얼마나 큰 파급효과를 미쳤을까? 또 사회혼란을 일으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3만에 이르는 민간인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한 행위가 과연 정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 같은 질문에 대해 답을 해야 하는 것은 남은 우리들의 몫이다. 특히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 중인 가해자들이 반드시 답해야 할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