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위로는 신앙적 사명”

대한성공회,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주일 공동설교 발표

▲대한성공회의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주일 공동설교 관련 포스터

4월 셋째 주간,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는 가운데 대한성공회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장기용 신부, 이하 정평위)는 4월12일(일) “진실의 증인”이라는 제하의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주일 공동설교를 발표했다.

정평위는 공동설교를 통해 “세월호의 침몰로 인해서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과 유족들을 위로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빨리 이 참사를 잊을 것인가에 이 사회가 주력하고 있는 것에서 더욱 더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의 도덕성과 형제애의 현주소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얼마나 비정한 사회에서 우리의 영혼이 침몰해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고 개탄했다. 이어 “참사를 당하는 것까지는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일은 신앙인의 책무”라면서 “우리가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을 진심으로 위로하는 일과 이들이 위로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이 시대에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회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신앙인으로서 부여된 신앙적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아래는 정평위가 발표한 공동설교 전문이다.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주일> 
진실의 증인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 인간에게 주신 첫 선물은 바로 평화와 성령입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자 겁에 질려 어떤 집에 모여 문을 모두 걸어 잠그고 숨어 있었습니다. 이들이 겁을 내고 두려워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은 우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아우성 치고 재판한 유다인들을 두려워했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하루 밤 사이에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상황을 생각해보면, 예수님의 제자라는 사실만 가지고도 그들은 박해를 받기에 충분한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진정으로 두려워했던 것은 그들 내면에 있는 불안과 죄책감이 아닐까 합니다. 더군다나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하니 예수님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이 얼마나 괴로운 일일까요? 예수님을 배반하고 도망쳤다는 사실은 그들의 양심을 괴롭히는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들에게 못 자국 난 손과 창에 찔린 옆구리를 보여주시면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예수께서는 이들을 질책하거나 심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평화를 주십니다. 제자들은 영혼을 다해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께서 주신 평화는 단순히 갈등과 분쟁이 없는 조용한 상태가 아닙니다. 제자들이 안전하고 편안한 곳에서 안주하는 그런 평화가 아닙니다. 예수께서 안일하고 편안하게 도망쳐서 사는 삶을 축복하실 리가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평화를 아무런 사고나 위험이 없이 편안한 상태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현실을 매우 위험하고 악하니 그곳에서 탈출해서 자기들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을 평화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주신 평화는 제자들의 죄가 용서받고 용기를 얻어 진실의 증인이 되는데 아무런 걱정이 없는 상태를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 주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는 평화가 있기를 기원하시면서 다시 제자들을 보낸다고 하십니다. 비록 유다인들이 서슬이 퍼래서 예수를 박해하고 제자들을 색출하려 한다 하더라도, 그래서 위험과 고난이 앞에 보인다 하더라도 부활의 증인으로서 세상에 나가는데 조금도 두려움이 없는 영적인 평안함이 바로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입니다. 피 흘린 손과 발과 옆구리의 상처를 통해 주신 평화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의문이 많은 토마에게 역시 상처를 보여주시면서 평화를 주십니다.  
출애굽의 역사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었지만 안일하게 배불리 먹고 사는 그런 평화를 얻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약속의 땅으로 가는 여정은 험난한 고난과 싸워야 하는 길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평화를 얻지 못한 백성들은 하느님과 모세에게 대들고 우상을 섬기기도 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진리로 향해 가는 사람들이 얻을 수 있는 영적인 기쁨과 원수들 앞에서도 상을 차려주시는 평화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예수께서는 평화를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평화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 년 전 우리는 지금 살고 있는 모두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비참한 참사를 겪었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참사를 우리가 슬퍼해야 하는 까닭은 단순히 어린 학생들이 죽어서만도 아닙니다. 304명이라는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죽어서도 아닙니다. 선한 사람들이 고난을 받고 불의의 자연재해나 사고로 인해 이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이 죽는 경우는 많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참사를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고 함께 슬퍼해야 하는 까닭은 단순한 교통사고라고 말할 수 없는 우리 사회 공동체가 안고 있는 뿌리 깊은 문제가 한꺼번에 드러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 쓰고 난 노후한 배가 다시 우리의 여객선이 되고 무리하게 짐을 싣고 사람을 태우는 모든 과정이 극단적인 배금주의와 관료들의 부패의 소산이었습니다. 또한 자질이 부족한 선원들이 수 백 명의 목숨과 소중한 재산들을 싣고 운항을 할 수 있었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이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관계기관의 부패와 무능은 국민 모두를 절망케 했습니다. 배가 기울고 침몰하는 상황이 전 국민에게 보여지는 상황에서도 고기잡이 어선들의 구조 활동과 자원하는 잠수사의 구조 활동도 해경에서 계약한 회사의 구조를 기다리기 위해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자발적으로 배에서 나온 사람들 말고는 한 사람도 국가에 의해 구조된 사람은 없었습니다. 여기에 온 국민이 분노하고 절망하고 비통한 마음을 금치 못했습니다. 혹시 국가가 국민을 버린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에서 우리는 작년 가장 슬픈 부활절을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을 더욱 아프고 슬프게 만드는 상황은 세월호 사태가 발생하고 일 년 동안 지내면서 일어났습니다. 국가가 국민을 버린 것처럼 보이는 이 기가 막힌 사태에 유족들은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요구했고 대통령은 이를 적극적으로 수행하리라고 약속했습니다. 유족들은 보상금이나 배상금에 대한 요구, 의사상자 지정, 단원고 학생들의 특례 입학 등을 요구해 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언론과 사람들은 유족들의 마음에 심한 상처를 내는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슬퍼하며 진상을 밝혀달라는 유족들의 간절한 요청에는 응답이 없고 배상금, 보상금이 얼마라는 말부터 하고 있습니다. 국가의 세금은 들어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가입한 보험금까지도 포함시켜서 누가 얼마를 받느니 하는 보도를 공공연히 하고 있습니다. 유족들이 돈만 밝히는 사람들처럼 보이게 되었습니다. 유족들이 원하는 진상규명은 정치 쟁점이 되었고 이 과정에서 국민은 반으로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침몰한 배를 인양하는데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고 인양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과연 세월호가 보물선이라면 그렇게 말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세월호의 침몰로 인해서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과 유족들을 위로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빨리 이 참사를 잊을 것인가에 이 사회가 주력하고 있는 것에서 더욱 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의 도덕성과 형제애의 현주소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얼마나 비정한 사회에서 우리의 영혼이 침몰해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죽음의 권세는 우리로 하여금 쉽게 잊으라고 합니다. 진실을 덮어서 드러나지 않게 합니다. 그리고 영원히 지배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지난해에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 세월호 참사, 임 병장, 윤일병 사건을 경험했습니다. 또한 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임을 확인했습니다. 지금도 자살하는 사람들의 소식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습니다. 죽음의 권세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이 잇따른 참변 속에서 깨달음을 얻지 못했습니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 고통 받고 신음하는 사람들이 존재함을 애써 잊으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성체를 받으면서 ‘우리는 서로 다르나 한 몸을 이룹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서로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고 배려하고 용납하는 공동체 문화와 정신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죽음의 권세가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부활의 복음을 증거합니다. 예수께서 죽음을 이겨내시고 부활하셔서 역사와 삶의 주인이 되심을 선포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사실 그대로 보여주셨습니다. 못 자국 나고 창에 찔린 상처를 그대로 보여주셨습니다. 부활의 진실을 똑똑히 보라고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증언하라고 하십니다. 평화로운 마음으로 서로 용서하면서 증인이 되라고 명령하십니다. 죽음의 권세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결국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셨음을 확신하기에 우리는 다시 우리의 도덕성과 형제애를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 윤리를 세워나가야 합니다.    
참사를 당하는 것까지는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일은 신앙인의 책무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고 부활의 복음을 증언하는 증인들로서 우리는 진실이 가려지고 왜곡되고 억울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을 위로해야 합니다.  
어떤 어머니는 벚꽃 피는 것 보기 싫다고 합니다. 단원고 학생들 모두가 환하게 핀 벚꽃나무 밑에서 기념촬영을 했기 때문입니다. 일반인들에게는 꽃들이 만발한 찬란한 봄날이지만 이들에게는 가장 슬픈 봄날이 아닐 수 없습니다.  
9명의 실종자 가족들은 하루 속히 시신을 찾아서 유가족이 되는 게 소원이라고 합니다. 침몰하는 배에서 학생 20명을 구조했던 화물차 기사 김동수씨는 극심한 가난과 병 때문에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생존자들과 그 가족들은 세월호에서 자기만 살아왔다는 죄책감에 빠져서 시달린다고 합니다. 물론 주변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과 말이 이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을 진심으로 위로하는 일과 이들이 위로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이 시대에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회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신앙인으로서 부여된 신앙적 사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부활의 증인입니다. 진실의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세월호 사건뿐만 아니라 눈물 흘리고 고통 받는 백성들의 편에서 진실을 알리고 정의로운 세상을 이루어 가는데 조금도 두려움이 없어야 합니다.  
유태인들의 홀로 코스트 기념관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고 합니다. “망각은 우리를 노예의 길로 인도하고, 기억은 구원의 신비이다.”  
작년 우리가 잊지 않겠다고 한 약속들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숨결이 우리 모두에게 특히 희생자 가족들의 가슴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여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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