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혁 목사(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는 오는 4월 19일 그레이스 선교교회에서 ‘복음 삼도의 삶을 사신 한경직 목사님을 기리며’란 주제로 주일설교 말씀을 전한다. 아래는 설교문 전문.
“복음 삼도의 삶을 사신 한경직 목사님을 기리며” 2015.4.19 (그레이스 선교교회 오전 11시)
고전1:23-25, 행10:38
오늘은 특별한 날입니다. 제가 가장 존경하는 믿음의 선배님들 중의 한 분이신 한경직 목사님께서 15년 전인 2000년 4월 19일 9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신 날입니다. 그래서 매년 4월 둘째 주나 셋째 주에 한경직 목사님 기념강좌를 개최합니다. 작년에는 4월 9일 오후 3시부터 숭실대학교에서 기념강좌를 개최했고 금년에는 4월 15일 오후 2시부터 숭실대학교에서 기념강좌를 개최했는데 작년과 금년에 부족한 제가 심부름을 했습니다. 오늘 한경직 목사님 소천 15주년을 맞으면서 내가 사랑하는, 마음과 영이 통하는 그레이스 선교교회에 와서 “복음 삼도의 삶을 사신 한경직 목사님을 기리며”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제가 2013년에도 내 번씩2014년에도 네 번씩 와서 설교한 교회는 그레이스 선교교회밖에 없습니다. 금년 1월 4일 새해 첫 주일 여기 와서 설교를 했는데 오늘 4월 19일 두 번째로 와서 설교를 합니다.
저는 인생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인생은 일곱 가지 길을 걸어가는 “인생 칠도” 라는 말을 하게 되었고, 신앙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신앙은 다섯 가지 길을 걸어가는 “신앙 오도” 라는 말을 하게 되었고, 선교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선교는 일곱 가지 길을 걸어가는 “선교 칠도” 라는 말을 하게 되었고, 복음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복음은 세 가지 길을 걸어가는 “복음 삼도” 라는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십자가의 길로 걸어가는 “복음 삼도의 삶”이 어떤 삶인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십자가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다가 십자가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은 십자가의 길로 걸어가신 주님의 모습과 그리고 십자가 복음에 미쳐서 살다가 죽은 사도 바울의 모습을 묵상하면서 “약함”과 “착함”과 “주변성”의 길로 걸어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약함”과 “착함”과 “주변성”의 길로 걸어가는 “약함”과 “착함”과 “주변성”의 삶과 특성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십자가 복음의 특성은 “약함”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만 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로마 군인들에게 붙잡히시고 십자가에 달려서 조롱을 당하시고 죽임을 당하신 일보다 더 “약해진” 일은 세상과 우주에 없을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은 역설적입니다. 약할 때 강하고 어리석을 때 지혜롭게 되는 것이 십자가 복음의 특성입니다. 영국의 세계적인 기독교 지도자인 존 스토트 박사님은 2000년 7월 영국 케직 사경회에서 “약함을 통한 능력”(Power through weaknesses) 이란 제목으로 설교하면서 이런 말을 한 일이 있습니다. “기독교의 근본적 진리의 하나는 약함과 어리석음에 있다. 십자가의 복음 자체가 약하고 어리석은 것이다.” 예수님처럼 약해지시고 어리석어지신 분은 이 세상과 우주에 없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 복음의 특성을 묘사하면서 사람들의 눈에는 미련한 것이고 약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전1:23,25). 그리고 사도 바울은 십자가 복음을 전할 때 헬라의 지혜로 포장하지 않고 로마의 웅변술로 빛나게 하지 않기로 작정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설교를 너무 지혜롭고 유창하고 멋지게 하지 않기로 작정했다는 말입니다. 순수한 십자가의 복음을 변질시키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약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십자가의 복음만을 바로 알고 순수하게 전하기로 작정했다고 지적했습니다(고전2:1,2).
사도 바울은 그 다음 복음 전도자의 특성도 자신의 “약함”과 “어리석음”을 깊이 인식하고 인정하고 지니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파벌을 만들어 분쟁하던 고린도 교회가 지도자들을 지나치게 높이며 우상화 하려고 했을 때 참된 지도자 사도 바울은 그와 같은 시도를 단호하게 거부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자신을 비하했습니다. "바울은 무슨 물건이며 아볼로는 무슨 물건이냐?"(고전3:5). 바울은 자기 자신을 지칭하는 명사를 남성명사 대신 중성명사를 쓴 것이었습니다. 몇 줄 다음에는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단어로 "아무 물건도 아니라"(고전 3:7)는 멸시적인 말까지 썼습니다. 영어로는 nothing 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을 표현하며 "나는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고전2:3) 라고 까지 했습니다. 조금 더 내려가서는 "나는 만물의 찌끼"(고전4:13) 즉 시궁창에 내버리는 음식물의 찌꺼기 같은 존재라고 까지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도다”(고전 4:13). 그리고 고린도 후서에서는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나는 나에 대해서 약한 것들과 부족한 것들을 자랑하노라 그 이유는 내가 약할 때에만 강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약할 때에만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와 함께 하기 때문이다"(고후12:5,10). 존 스토트 박사님은 오늘날 세계 곳곳을 다녀보아도 사도 바울처럼 자기의 약함과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진정한 기독교의 지도자들을 찾아보기가 너무나 어렵다고 고백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 지도자들은 모두 너무 강하고 너무 지혜롭고 너무 부요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수많은 교회가 "나는 부자라" 라고 자랑했던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다음 복음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의 자격도 “약함”과 “어리석음”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6-29). 저는 총신과 합신에서 설교할 때 설교하기 전에 언제나 이 말씀을 읽곤 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 초기의 한국교회는 참으로 약했고 가난했고 어리석었고 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겸손히 땅에 엎드려 하늘을 바라보며 하나님만 의지한 적이 있었습니다. 초기 선교사 중의 한 사람인 블레어 박사가 지적한 대로 그 당시 한국교회는 절망 가운데서 하늘만을 바라보며 이렇게 울부짖었습니다. "선교사님, 한국 사람들처럼 불행하고 불쌍하고 소망이 없는 민족이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적으로 약하고 가난하고 어리석고 힘이 없고 소망이 없는 한국 교회와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시고 부흥과 축복의 손길을 펴신 것이었습니다. 한국교회는 급속한 성장을 이루게 되었고 민족과 나라까지 큰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한국교회는 너무 커지고 너무 강해지고 너무 지혜로워졌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너무 위대해져서 거의 우상화 하게 되었습니다. 이민교회 지도자 한 분이 오래 전에 저에게 이런 말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한국의 목회자들은 너무 크고 높아서 쳐다보면 머리가 어지럽다고 했습니다. 한국교회는 너무 크고 강하고 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 복음의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고 사회로부터 실망과 불신을 받기에 이르렀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한국교회가 사회에 공헌한 것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교회가 사회 발전과 세계 선교에 크게 공헌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한국교회는 비판의 소리를 겸허히 수용하며 자신을 돌아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는 바울처럼 약해져야 하고 어리석어져야 한다고 생각해 봅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께서 “약해 지셨고” “가난해 지셨고” “비천해 지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사53:3). 저는 고등학생과 대학생 때 헨델의 메시야를 감상하면서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He was despised and rejected) 라는 가사의 음악을 들으면서 깊은 감동과 충격을 받곤 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대신 멸시를 받으시고 싫어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너무너무 약해지셨고 너무너무 멸시를 받으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약함에 처할 때 약함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예수님께서는 사도 바울에게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그래서 사도 바울은 약함을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고후12:9).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가 약해질 때에 우리와 함께 하시고 주님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머물게 하신다고 말씀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사6:5) 라고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여금 메시야의 탄생과 고난을 예언하는 가장 위대한 선지자로 만드셨습니다. 십자가 복음의 특성은 “약함”입니다. 이제 우리들도 약함을 통해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체험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도 어리석음을 통해 역사하는 하나님의 은혜와 지혜를 체험하여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이 우리들의 고백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12:10). 십자가 복음의 첫째 특성은 “약함”입니다.
둘째로, 십자가 복음의 특성은 “착함”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본래는 말씀이시고 하나님이셨었지만 우리들을 위해서 “착함”의 사람이 되셨습니다(요 1:1.14). “착함”이란 자기를 위한 삶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한 삶을 말합니다. 자기의 유익을 추구하는 삶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추구하는 삶을 말합니다. 천사들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이렇게 전했습니다.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2:11). “너희를 위하여” 라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죄인을 위하여 죄인의 모습을 지닌 사람이 되셨습니다. 이 보다 놀라운 “착함”은 이 세상과 우주에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인들을 위하여 구유에 탄생하셨는데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롬8:3) 세상에 오셨다고 지적했습니다. 거룩 거룩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위하여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세상에 오신 일 보다 놀라운 “착함”은 이 세상과 우주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죄인들과 함께 사시면서(요1:14) 문둥병자들을 어루만지시며 병을 고쳐주셨고, 돌에 맞아 죽어 마땅한 간음 현장에서 집힌 죄인에게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손길을 펴셨습니다.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즉시 그의 문둥병이 깨끗하여 진지라”(마 8:3).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 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요8:11). 거룩 거룩 거룩하신 예수님께서 저주받아 마땅한 우리 죄인들과 병자들의 몸을 만져주시면서 죄를 사하시고 병을 고쳐주신 일 보다 더 놀라운 “착함”은 이 세상과 우주에 없을 것입니다. 결국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의 사역을 소개하면서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행10:38) 라고 지적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산상 설교에서 제자들더러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라고 말씀하시면서 그것은 “착한” 행실을 세상에 나타내 보이는 삶이라고 지적하시면서 “착함”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서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로마 군인들을 위해서 기도까지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눅23:34). 이 보다 놀라운 “착함”은 이 세상과 우주에 없을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의 특성은 “착함”입니다.
성경은 “착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또 강조합니다. 사도 행전은 사도들을 통해서 십자가의 복음이 세상에 전파된 것을 기록하지만 사실 그 길을 미리 예비한 것은 “착한” 사람들의 “착한” 삶이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도르가의 “착한” 행실을 통해서 복음 전파의 준비가 욥바에 마련되었고, 고넬료의 “착한” 행실을 통해서 복음 전파의 준비가 가이사랴에 마련되었습니다. 도르가의 “착한” 행실과 고넬료의 “착한” 행실이 하나님 앞에 상달된 제사가 되었습니다. 바나바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전에 “착한” 사람이었다고 지적했습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행11:24). 디모데는 목회자 이전에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후에 디모데를 칭찬하면서 디모데만큼 다른 사람들의 사정을 깊이 생각할 인정과 사랑이 많은 “착한”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습니다(빌 2:20). 바울은 마지막 편지 마지막 장에서 착하고 선하고 인정과 사랑이 많은 디모데를 보고 싶어 했습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딤후4:9). “겨울 전에 너는 어서 속히 오라”(딤후4:21).
지금 한국교회에 필요한 것은 유창한 설교보다 정통 신학보다 뜨거운 체험보다 화려한 프로그램보다 상처 입은 자를 품을 수 있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인정과 사랑을 지닌 “착함”의 목회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옛날에는 “착함”을 강조하는 것은 인본주의요 자유주의라고 무식하게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착하신 분이셨습니다. 장기려 박사님이 죽었을 때 한국교회와 사회는 작은 예수가 죽었다고 칭송했고 한경직 목사님이 돌아가셨을 때 고훈 목사님은 참 목자를 잃은 텅 빈 세상이 되었다고 슬퍼했습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지식을 나타내 보여주기 전에 예수님 닮은 “착한” 삶을 우리들에게 나타내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2002년과 2003년 강변교회에서 예수님 닮은 “착함”의 삶을 나타내 보여준 우리 신앙의 선배들의 삶을 더듬어 살피면서 주일마다 설교를 했습니다. 프랜시스, 브레이너드, 길선주, 이기풍, 최권능, 조만식, 이승훈, 유관순, 주기철, 손양원, 장기려, 한경직, 송명희 등등 우리들에게 주신 신앙의 선배들의 “착한” 삶을 더듬어 살피며 주일마다 설교를 하면서 저는 얼마나 깊은 감동과 도전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십자가 복음의 둘째 특성은 “착함” 입니다.
우리는 종교개혁의 전통에 따라 “오직 말씀” “오직 믿음” “오직 은혜”를 강조해왔습니다. 세 가지 모토가 기독교 복음의 중심과 기초가 되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세가지 모토에 약점이 포함되어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오직 말씀만을 강조한 나머지 말과 지식에 치우치게 되었고, 오직 믿음만을 강조한 나머지 행함을 등한시 하게 되었고, 오직 은혜만을 강조한 나머지 인간의 책임을 소홀이 하며 감정만 강조하게 된 것이 사실입니다. 한국교회에 설교와 신학과 은혜 체험이 풍성하게 된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설교가 너무 풍성하고 신학이 너무 풍성하고 은혜 체험이 너무 풍성한 나머지 말만 잘 하게 되었고 감정만이 풍부하게 되었고 비판만 잘 하는 무정하고 독선적인 이기주의자들이 된 것도 사실입니다. 저는 한동안 은혜로운 설교를 너무 사모해왔고 깊은 신학을 너무 동경해왔고 은혜체험을 너무 사모해왔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저는 설교는 은이고 신학은 동이고 체험은 철이고 프로그램은 흙이고 주님 닮으려는 “착한” 삶만이 금이란 말을 중얼거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 프랜시스와 이기풍 목사님과 윤함애 사모님을 존경하게 되었고 손양원 목사님과 정양순 사모님을 존경하게 되었고 한경직 목사님과 장기려 박사님을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십자가 복음의 둘째 특성은 “착함” 입니다.
셋째로, 십자가 복음의 특성은 “주변성”이라는 것입니다. 기독교 복음의 특성 중의 하나는 자기 중심 종족 중심 국가 중심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런데 한국 민족은 한 반도라는 지형적 특성과 유교라는 사회 문화 종교적 전통의 영향을 받아 개인 중심적이고 가문 중심적이고 지역 중심적이고 민족 중심적이고 국가중심적인 특성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한반도 안에 있는 한국 민족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이나 카나다에 이민 간 한국 민족도 종족 중심적인 삶의 스타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즉 자기들끼리 모이는 social club의 성격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게토화의 현상까지 나타내고 있는 것이 이민들과 한인교회들의 문제점이라고 산타 클라라 연합감리교회의 김택규 목사가 지적한 일이 있습니다. 인간과 민족의 특성은 자기 중심적이고 민족 중심적이고 국가 중심적인데 비해 기독교 복음의 특성은 “주변 지향적”이고 “이방 지향적”입니다. 여기 “주변 지향적” 이라는 말은 사회의 중심에서 떠나 주변이나 변두리에서 자기들끼리 모여 소외된 게토를 이루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고, 어디를 가든지 그 사회 안에 깊숙이 파고 들어가 그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일치와 동화의 삶” 즉 “성육의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약의 복음은 이미 “주변 지향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축복하실 때 그의 관심을 자기 본토나 아비 집에 두지 않고 “땅의 모든 족속”(창12:3)에게 두도록 했습니다. 이사야에게 사명을 맡기실 때 그의 사명을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는 이스라엘 회복에 머물지 않고 “이방의 빛을 삼아 구원을 땅 끝까지 이르게”(사49:6) 하는데 두도록 했습니다. 요나를 부르실 때 하나님은 그의 관심이 이스라엘이 아닌 앗수르의 구원에 있음을 분명하게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네가 망하기를 원하는 니느웨를]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욘4:11). 니느웨는 그 당시 “악의 축”이었습니다. 또 하나의 “악의 축”이었던 애굽과도 이스라엘이 교류하고 함께 세상의 복이 되는 날이 온다고 예언했습니다(사19:23-25).
신약의 복음도 분명히 “주변 지향적”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건강한 사람들이 아닌 병든 사람들과 의인들이 아닌 죄인들을 부르러 세상에 오셨다고 말씀했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9:12,13).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전파하실 때 지역적으로는 갈릴리와 사마리아와 욥바와 가이사랴와 안디옥을 통해 소 아시아와 마게도냐 등 주변과 이방으로 퍼져나가게 하셨고, 사회적으로는 중심에서 소외된 버림 받은 죄인들과 병자들과 이방인들에게 전파하셨습니다. 산에서 내려와서 제일 먼저 복음을 전하신 사람은 저주 받았던 병자들과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의 문둥병이 깨끗하여진지라”(마8:3).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가로되…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마8:10).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마8:16). 예수님의 마지막 분부들도 “주변 지향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19,20).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행23:11). 십자가 복음은 물론 부활 복음의 특성도 “주변 지향적”이었습니다. 결국 베드로와 바울은 땅끝까지 주변 세계로 향해 달려간 이방의 사도들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행13:46).
기독교의 복음 선교도 “주변 지향적”이었습니다. 기독교 선교는 “십자군적 정복”의 죄악을 저지른 때도 없지 않았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패트릭의 아이랜드 선교, 보니페이스의 독일 선교, 프랜시스의 이방인 선교, 브레이너드의 인디언 선교, 벨츠와 진젠돌프의 남미선교, 아펜셀라 언더우드 마펫 등의 조선 선교는 모두 “주변 지향적”이고 봉사적인 사랑의 선교였습니다. 벨츠의 이방인 선교를 비난하는 독일 보수주의 신학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선한 사마리아인과 같이 이웃을 돕는 것이지 잃어버린 자를 찾아 멀리 가는 것이 아니오. 미국으로 가겠다는 말이요? 그곳은 너무 멀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너무 야만스럽지 않소?” 한국의 무디 이성봉 목사님은 민족 복음화를 강조하는 신현균 목사님에게 민족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넘어서서 예수의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충고하시곤 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눈은 물론 그의 자녀들을 향하고 계시지만 그보다는 “주변”과 “땅끝”과 “이방”을 바라보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인종적 정치적 불의와 죄악이 가득한 주변에서 신음하는 잃은 양들을 향하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정치 사회 인권 개혁도 중요하지만 복음과 사랑을 품고 그저 주변과 이방으로 찾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주변 지향적”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십자가 복음의 특성 세 가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십자가 복음의 특성은 “약함”과 “착함”과 “주변성” 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저는 이와 같은 십자가 복음적인 삶을 가장 모범적으로 산 사람들 중의 대표적인 사람이 성 프랜시스와 한경직 목사님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성 프랜시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고 한경직 목사님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실수가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빌리 그레함 박사님은 한경직 목사님을 “가장 존경하고 사모하는 분”이라고 하면서 이런 말을 한 일이 있습니다. “저는 한 목사님과 같이 있으면 부족한 부분들을 많이 느꼈기에 그 분을 닮게 해 달라고 기도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이상 세 가지 십자가 복음의 특성과 관련하여 한경직 목사님의 삶의 특성들은 간단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복음 삼도”의 삶을 사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한경직 목사님은 “약함”의 사람이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젊은 시절부터 한 평생 수 많은 고난을 겪으면서 인간의 연약함과 무력함을 절감한 분이었고 또 자기 자신이 얼마나 연약하고 무력한 존재임을 체험한 분이었습니다. 그는 두려워하고 절망했으며 때로는 넘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연약함이 오히려 그를 진정한 목회자로 만든 비결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한경직 목사님이 17세 되던 1919년 평양 영성소학교 교사로 봉직하고 있던 때 일본 고등계 형사들의 혹독한 고문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고문 당한 후 두려움과 무서움에 떨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자신의 무력함을 비관하기도 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이 27세 되던 1929년 프린스턴 신학교를 졸업하고 예일 대학 박사과정에 진학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 때 폐결핵 3기라는 진단을 받고 그는 또 한번 인간의 연약함과 무력함을 절감했습니다. 진학은 물론 인생 자체를 포기해야 할 지도 모른다는 절망감과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의지도 건강도 아무 것도 믿을 것이 되지 못한다는 절망감을 경험한 것이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이 신의주 제이교회와 영락교회의 목회 시절에도 약함을 드러냈고 6.25 전쟁 중에도 약함을 드러냈고 군사독재 시절에도 약함을 드러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그의 생애의 마지막 2년 동안 노환으로 많은 고난과 약함을 체험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어느 대담에서 괴로운 일이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일생을 연약한 몸으로 살아온 것이 제일 괴로움이었지요." 라고 대답한 일이 있습니다. 마지막 2년 동안 두 다리를 수술하는 고통도 겪었고 말을 잘 하지 못하는 답답함도 당했습니다. 특히 마지막 6개월 동안은 가래가 너무 끓어서 목에 구멍을 뚫고 지내는 극심한 괴로움도 겪었습니다. 한 목사님은 저의 손을 붙잡고 "늙는 것이 재미 없어!" 라고 그의 노약의 서글픈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이 1969년 8월 3일에 행한 "약한 데서 온전하여지는 능력" 이란 제목의 설교에서 수 많은 사람들의 예를 들면서 약함을 통해서 주어지는 은혜를 간증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한 평생 자기 자신의 약함과 민족의 약함을 절감한 사람인 동시에 그 약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깊은 은혜를 체험하고 간증한 사람이었습니다. 1972년 4월 23일에 행한 "약할 때에 강하니라"란 제목의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인간이 약할 때는 흔히 겸손하여 집니다. 건강하던 이가 중병에 걸려 약해지면 겸손하여 집니다. 교만은 만죄의 어머니라고 합니다. 둘째, 인간이 약하여 질 때에 그 생각이 깊어집니다. 인생의 깊은 문제를 탐구하게 됩니다. 셋째, 우리가 약할 때에 기도를 더하게 됩니다. 벌써 오래 전에 내가 미국 뉴멕시코주 알바컬키라는 도시에 있던 요양원에 입원하여 있을 때, 제가 폐가 약하여 약 2년간 입원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때에 병석에 고요히 누워서 '약할 때에 강하니라' 하는 성구를 묵상하는 가운데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여러분, 약할 그때에 그리스도의 능력이 온전히 나타납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내가 약할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 외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한경직 목사님은 “착함”의 사람이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말이나 지식으로 설교하고 목회하신 분이 아니라 “착한 삶”으로 설교하고 목회하신 분입니다. 조향록 목사님은 한경직 목사님의 설교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것은 말이 설교하는 설교가 아니고 겸손과 기도의 인격이 설교하는 설교이기 때문이라고 정확하게 분석했습니다. 영락교회의 집사인 이우근 부장판사도 한경직 목사님의 설교는 삶으로 설교하는 설교라고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사자 후 같은 명 설교도 가슴을 쥐어뜯게 하는 감동적인 웅변도 할 줄 모르던 그는 그저 바보처럼 자신의 몸으로 자신의 손과 발로 그렇게 자신의 삶으로 설교하고 선포했을 뿐입니다. 그는 바보처럼 살다 가셨습니다. 가장 좋은 옷을 입고 가장 멋진 자동차를 탈 수 있었는데도, 그는 바보처럼 좋은 옷 대신에 소매가 닳아 빠진 옷을 입었고 멋진 차 대신에 버스를 타거나 남의 차를 빌려 타곤 했습니다. 가장 안락한 아파트에 살 수 있었는데도, 바보같이 그것을 마다하고, '월셋방에 사는 교인들이 얼마나 많은데..' 하면서 산꼭대기 20평짜리 교회사택에 들어갔습니다."
시인 고훈 목사님은 한경직 목사님을 기리며 "가난한 목자, 사랑의 목자, 작은 예수"라고 목이 메어 불렀습니다. "한 사람을 만인만큼 소중하게 만인을 한 사람 대하시듯 어떤 요구에도 거절 못하시고 누구의 의견에도 손들어주시고 단 한 사람에게도 섭섭함 주신 일 없으신 한국의 성자여 한국의 작은 예수여. 모든 것 가지고도 아무것도 없으신 가난한 목자, 아무 것도 없으면서 모든 것 다 가지신 사랑의 목자여. 우리가 오늘 여기 이토록 슬픈 것은 아무리 둘러봐도 당신 같은 목자는 하나도 없는 이 텅 빈 세상이 너무 슬퍼서 입니다."
김용기 장로님은 한경직 목사님의 인격을 높이 존경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뒤에서 욕하고 흉보는 일은 소인배가 하는 일이다. 또 정부의 잘못이 있을 때 의의 병기를 가지고 강단에서 내려치거나 사회인들이 욕하고 나무랄 때 덩달아 그들의 비위를 맞추어가며 은연중 '나만이 의인이다' 하는 식의 만용을 피우는 것도 소인배의 즐겨하는 짓들이다. 그리스도인은 사회의 소금이 되고 빛이 되어야 할 터인데 그 길은 한경직 목사님이 걸어오신 발자취에서 찾아야 할 것으로 믿는다."
김준곤 목사님은 한경직 목사님에 대한 존경과 고마움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분에게서 발견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따사로운 햇볕 같은 온화하고 인자한 인간성이다. 신현균 목사님도 한경직 목사님에 대한 존경과 고마움의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1977년 8월 14일 오후 내 영혼이 몹시 시장해 있던 때라 한경직 목사님을 뵙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감격의 눈물이 내 볼을 적셨고 또 내 손을 잡고 위로하는 말씀 한 마디에 내 심령은 크게 위로 받았으며 한없는 용기가 샘솟았다. 한경직 목사님은 생각의 폭이 크고 넓은 분이다." 정진경 목사님은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그 분은 어떤 물욕이나 명예욕이나 사사로운 욕심도 없는 깨끗하고 청빈한 삶을 사셨습니다.” 손봉호 교수는 “한경직 목사처럼 청렴하고 철저하게 절제하는 성화된 삶을 산 사람은 전 세계 역사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고 평했습니다. 평신도인 박호성 장인숙 부부는 한경직 목사의 청빈한 삶의 모습을 바라보는 숙연한 행복감을 이렇게 피력했습니다. "남한산성에서 뵈올 때에는 팔목이 헤진 쉐터를 입고 계셔 가난한 할아버지를 뵙는 것 같아서 그 검소함에 머리가 숙여졌습니다. 목사님을 생각만 해도 행복했습니다."
셋째로, 한경직 목사님은 “주변성”을 지니고 사신 분이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처음부터 가난한자 병든 자 소외된 자들을 찾아가는 “주변지향적” 삶을 살았습니다. 성 프랜시스의 영향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1932년 귀국 후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신의주를 첫 목회지로 선택했고 1933년 신의주 제2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하면서부터 가난하고 약한 자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나타내 보였습니다. 그는 1936년경 고아원을 설립하여 고아들을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1939년에는 고아들과 노인들이 함께 기거할 수 있는 ‘보린원’을 만들었습니다. 정진경 목사님은 약한 자들과 함께 한 한경직 목사님의 삶을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그의 삶의 자세는 예수님과 같이 눌린 자의 편에 섰고, 가난한 자의 친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사회에서 버림받은 자, 소외되고 병든 자, 외로운 자의 벗이 되어 사셨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인생의 삶을 지탱해 주는 세 가지가 믿음 소망 사랑이라고 항상 강조하면서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가난하고 약한 자 그리고 원수들에게까지 사랑을 베풀며 사는 것이 인간의 가장 가치 있고 보람된 삶이라고 강조하며 그렇게 살았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의 관심과 사랑은 민족과 나라에 국한하지 않고 일본과 북한과 아프리카를 포함한 세계에 미쳤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평생 한국 나라와 한국교회를 사랑하고 봉사한 분이었지만 동시에 민족주의나 국가주의를 넘어서서 세계를 품고 사랑하며 봉사한 분이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1957년 3월 3일에 행한 "성서적 애국심"이란 제목의 설교에서 “예수님도 애국자이십니다” 라고 말하여 나라 사랑을 강조하면서도 성서적 애국심이란 민족주의나 국가주의를 넘어서서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우선적으로 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한 가지 우리가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 성서적 애국심은 혹 우리 사회에서 가끔 듣는 민족지상주의나 국가지상주의는 절대로 아닙니다. 성서가 가르치는 애국심은 민족을 우상화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국가가 귀하지마는 국가를 우상화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 것은 민족과 국가가 아무리 귀하다고 하더라도 하나님 위에 있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지상입니다. 애국심이 잘못되어서 변태적으로 발전되게 되면 독재주의가 생기는 것이고 배타주의가 생기는 것입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1958년 4월 27일에 행한 "우주시대와 신앙생활" 이란 제목의 설교에서 우주시대의 신앙생활은 민족이나 국가를 초월한 세계적인 종교가 되어야 한다고 다음과 같이 설교했습니다. "우주시대의 종교는 먼저 민족이나 국경을 초월한 세계적인 종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는 이와 같은 종교는 전 인류를 포섭할 수 있는 사랑의 종교,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사랑의 종교이어야 될 것입니다. 셋째는 이와 같은 종교는 죄인을 구원할 수 있는 속죄, 구령의 종교이어야 될 것입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주변성”을 지니고 사시고 목회하신 분이었습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너무 높은 수준의 십자가 복음적인 삶을 살았는데 우리는 너무 낮은 수준의 세속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너무나 주님 닮은 십자가 복음적인 삶을 살았는데 우리는 너무나 주님 닮지 않은 세속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저는 한경직 목사님의 삶을 살피고 나서 처절한 고뇌와 절망적인 부끄러움을 느꼈고, 성 프랜시스의 글을 읽고 나서 무한한 충격과 감동을 느꼈습니다. 저도 한경직 목사님과 프랜시스처럼 주님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리며 “약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도 주님 사랑 때문에 모든 사람들과 모든 피조물들을 사랑하며 “착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도 주님 사랑 때문에 가난과 고통을 짊어지고 가난과 고통이 되면서 “주변성”의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들에게 사도 바울에게 임했던 성 프랜시스에게 임했던 그리고 한경직 목사님에게 임했던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이 몇 십 분의 일이라도 아니 백분의 일이라도 임하기를 소원하며 기도합니다. 그래서 “악함”과 “착함”과 “주변성”을 몸에 지니고 주님 닮은 사람을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살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은혜가 충만한 그래서 사랑의 손길을 펴는 선교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