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토) 오후 9시 경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를 발사했다. 시민들은 시청에서 인간 띠 잇기 집회를 가진 후 광화문 정문에서 노숙 농성 중인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사진=지유석 기자 |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어느 덧 1년을 맞았다. 참사 1주기 당일인 4월16일(목)엔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마치 하늘이 아이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우리 사회는 1년 동안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참사 직후 말은 무성했다. 대통령이 먼저 나서 국가를 개조하겠다고 했다. 그럼에도 성남 판교 테크노밸리 환풍구 붕괴 사고, 용인 교량상판 붕괴사고 등 대형 사고가 이어졌다.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책임을 물어 해양경찰청을 해체한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뒤이어 옛 안전행정부의 안전본부와 해양경찰청을 합친 국민안전처가 출범했다. 정부는 국민안전처가 재난 콘트롤 타워 기능을 할 것이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이 같은 출범취지가 무색하게 이곳 직원들은 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은 정황이 드러나 검찰 수사선상에 올랐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시민들은 대거 서울시청 광장에 운집했다. 참사 1주기 “4.16 약속의 밤” 추모문화제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추모문화제는 무난하게 진행됐다. 그러나 문화제를 마친 시민들이 광화문 광장으로 향하려 하자 경찰들은 경찰버스를 동원해 아예 도로를 차단했다. 이날 동원된 경찰병력은 120개 중대 1만 명, 경찰버스 300대였다. 시민들이 몽둥이나 화염병을 든 것도 아니었다. 이들의 손에 들려진 건 고작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국화꽃 한 송이가 전부였다. 시민들은 문화제 후 광화문 광장에서 헌화할 예정이었다. 시민들은 경찰에게 거세게 항의했고, 종각 인근에서는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이러자 경찰은 캡사이신을 뿌렸다.
경찰의 이 같은 모습은 새삼스럽지 않다. 지난 해 5월 일군의 신학생들이 서울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상을 기습 점거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요구하자 경찰은 이들을 곧장 연행했다. 이어 8월엔 목숨을 걸고 40일 가까이 단식하던 ‘유민아빠’ 김영오 씨가 청와대로 향하자 건장한 체구의 경찰들이 뛰쳐나와 에워싸는가 하면, 광화문 광장에서 기도회를 하려던 수녀와 사제들의 발걸음을 막아서기도 했다. 서서히 침몰해가던 세월호를 수수방관하다시피 한 공권력이라고는 전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일사불란하게 대응했다.
기독교계, 공동체 아픔에 여전히 무감각
▲18일(토) 오후 9시 경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를 발사했다. 시민들은 시청에서 인간 띠 잇기 집회를 가진 후 광화문 정문에서 노숙 농성 중인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사진=지유석 기자 |
기독교계라고 예외일까? 분명하게 ‘아니오’라고 답할 수 없다. 세월호 참사 직후, 기독교계는 조광작-김삼환 등 몇몇 유력 목회자들의 망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런 이면에 참사 직후부터 사고 발생지점인 진도 팽목항에 상주하다시피 하면서 상처 입은 가족들을 보듬은 기독교인들도 있었다. 또 부활절 직전 고난주간을 즈음해 침몰지점을 찾아 실종자들의 조속한 기원을 바라는 기독교인들도 있었다.
그러나 참사 직전 불거진 몇 가지 일들은 여전히 기독교계가 참사의 아픔을 제대로 느끼고 있는지 의문을 갖게 했다. 이 가운데 한 가지 해프닝을 짚어보고자 한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예장통합) 이홍정 사무총장이 교단지인 <기독공보> 4월11일(토)자에 세월호 침몰지점을 ‘집단살해의 현장’이라고 적었다. 이를 두고 교단 내부에서 표현이 너무 과하지 않느냐는 지적이 일었다. 교단의 스펙트럼이 넓어 이 같은 표현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는 목소리도 제기됐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심하다. 세월호 참사를 집단살해라고 표현한 것이 누군가의 심기를 건드렸을 수는 있다. 또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 진보-보수의 스펙트럼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도 인정한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는 배가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고, 따라서 충분히 구조할 시간이 있었음에도 해경 등 관계당국이 총체적 난맥상을 드러내 벌어진 사건이다. 세월호 참사를 해상사고라고 하든, 집단살해라고 하든, 표현과는 무관하게 이런 사실은 절대 불변이다. 이 나라에서 장자교단이라고 자처하는 예장통합 교단에서 세월호 1주기가 임박한 시점에, ‘집단살해’라는 표현을 둘러싸고 이러쿵저러쿵 했다는 사실은 교단을 이루는 목회자들이 진정 공동체의 아픔을 제대로 느끼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럽게 한다.
세월호 1주기 날 밤, 아이 잃은 유가족들은 노숙을 했다. 경찰이 화장실 사용조차 막아 유가족 엄마들은 간이 화장실을 만들어 용변을 해결해야 했다. 한편 이날, 대통령은 진도 팽목항을 찾아 “정부는 실종자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다해나갈 것이다. 필요한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해서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선체 인양에 나서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논란이 일고 있는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법 시행령안’에 대해 명확한 입장표명은 없었다. 그리곤 홀연히 남미로 떠났다. 정부와 집권여당은 17일(금)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에 파견하는 공무원 규모를 줄이는 방향으로 ‘4·16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시행령안’을 수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래서 진상규명을 제대로 하겠다는 건지 안하겠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다. 일각에서는 4.29재보선을 앞두고 여론 무마용이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304명의 희생을 치르고도 우리 사회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위기라는 뜻의 영어 단어 ‘Crisis’의 어원은 그리스어다. 원래 그리스어 단어가 가진 뜻은 ‘하나님의 심판’이다. 즉,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상황이 곧 위기라는 뜻이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는 이 나라는 진정 위기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