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본훼퍼와 헤른후트 로중①

홍주민(한국디아코니아 상임이사)

▲본훼퍼.
“아우슈비츠와 세월호 이후의 교회이야기-디아코니아를 통한 재구성”이란 글을 얼마 전 세월호 참사 1년 되는 즈음에 몇몇 신학자들이 한권의 책으로 엮은 『남은 이들의 신학-세월호의 기억과 분노 그리고 이후』(동연, 2015)에 기고한 적이 있다. 지난 4월 중순, 세월호 유가족 분들을 모시고 출판기념회를 하는 자리에서 나는 개신교 역사상 가장 오래된 말씀 묵상집인 『헤른후트 로중』 (이하, 로중) 80권을 유가족 분들께 드렸다. 그 날이 우연히도 디트리히 본훼퍼가 70년 전에 처형당한 날이라서 그 책의 의미가 더했다. 본훼퍼는 처형당한 날 아침까지 이 로중의 말씀을 하루의 슬로건으로 삼고 살아왔다. 사형수로서 죽음을 기다리면서 본훼퍼가 의지하고 힘을 얻고 지탱하게 해준 힘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었던 것이다. 한국역사의 제로지대에 선 세월호 참사를 당한 유가족분들께 『로중』이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이 글은 본훼퍼가 평생 자신의 삶의 슬로건으로 삼고 애독한 『로중』과 본훼퍼 목사와 관련된 이야기다. 이 묵상집은 2009년부터 이제 7년째 매년 『말씀 그리고 하루』(한국디아코니아연구소, 2009-2015)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왔다. 현재 50여개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어 285년 째 한해도 빠짐없이 출간된 『로중』이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적 도관이 되기를 소망한다.  
전 역사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고자한 본훼퍼의 바램은 그의 모친과 보모였던 마리아 호른이 가졌던 헤른후트 영성과 긴밀한 관련이 있다. 그의 모친 파우다 본훼퍼는 슈레지쉬 헤른후트 형제단이 운영하는 학교를 졸업했다. 보모인 호른 역시 헤른후트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었기에 본훼퍼의 유년기에 종교적 영향을 상당히 주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호른은 1908년부터 결혼하기 전 1920년대까지 본훼퍼의 집에서 가족처럼 지냈다. 디트리히 본훼퍼의 쌍둥이 동생인 자비네 라이프홀츠는 호른을 통하여 헤른후트 형제단에서 나온 노래를 배웠던 것을 기억한다. 그녀에 의하면, 모친이나 자신이나 집에서 헤른후트 형제단의 영성을 접하였지만 당시 집에서는 『로중』을 읽지는 않았다. 때문에 본훼퍼는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에 『로중』을 이용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분명한 것은 디트리히 본훼퍼가 1930년대에 규칙적으로 『로중』을 읽는 독자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본훼퍼는 국가사회주의가 개신교를 차츰 점령하는 것에 대항한 고백교회에 처음부터 가담한다. 교회의 투쟁기에 『로중』은 고백교회의 구성원들에게 큰 힘을 주었다. 『로중』은 교회와 개인의 결정적인 물음에 방향을 주었고 고백교회 구성원간의 결속을 공고히 하고 신앙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이를 통하여 매일 올바른 인식 속에 용감하고 분명하게 머물 수 있도록 했다. 그는 1942년 1월 14일 집단수용소 다하우에 수용되어 있는 마르틴 니뭴러의 생일날, 나중에 감독이 되는 뮌헨의 요한네스 노이호이슬러에게 다음과 같이 글을 남긴다. “시편 116,3 ‘죽음의 올가미가 나를 얽어매고, 파멸의 공포가 나를 엄습합니다.’ 자신의 몸과 삶이 위험에 처하고 구원을 발견했던 이는 더 확실하고 따뜻하게 곤경에 빠진 이에게 커다란 도움을 줄 이에게 의지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과 고백교회의 투쟁이 진행되는 이 시기에 전쟁이후 『로중』의 개선 행렬을 위한 기반이 놓였다. 애초에는 형제단의 친구들과 구성원들을 위한 기도서였지만 오늘날까지 독일 개신교에 있어서 가장 많이 확산된 기도서로 발전되어 온 것이다.   
신학교 학장으로서 
본훼퍼에게 있어 『로중』은 1935년 슈테틴 근교 휜켄발데의 고백교회 신학교 학장이었을 때 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비록 2년 후인 1937년에 비밀경찰이 휜켄발데를 점령했지만, 고백교회 신학교는 처음부터 불법적인 것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로중』은 점점 더 본훼퍼와 목사후보생들간에 유일하게 연결하여 남은 고리의 역할을 하였다. 에버하르트 베트게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휜겐발데와 본훼퍼에게 있어 『로중』은 괴벨의 감독아래 감시당하고 위험에 처한 이들에게 아주 근본적인 연결을 시켜주는 역할을 하였다.” 매일 아침 동일한 성서구절을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것을 아는 것은 내적인 힘의 원천이 되었다. 더 나아가 본훼퍼는 휜켄발데에서 성서본문을 통해 매일의 묵상을 이어나갔다. 이러한 실천은 이미 목사임직을 받은 이전의 휜켄발데 목사후보생들에게도 계속 이어졌다. 이를 위해 묵상본문은 그때그때 분기마다 이전의 목사후보생들에게 편지로 전달되었다. 국가의 억압 때문에 더 이상 편지로 전달할 수 없는 경우를 대비하여 매일 묵상할 때 『로중』 아래 주어진 성서본문으로 되돌아가는 것에 합의하였다. 이러한 방식으로 미래에도 동일한 본문으로 묵상할 수 있었다. 에버하르트 베트게는 다음의 내용을 전한다. “본훼퍼와 다른 이들은 이러한 상태를 준비하는 데 있어 다음 분기의 묵상본문이 사라질 가능성이 있을지라도, 묵상은 계속되어져야 하고 『로중』 본문에 따라 매일 묵상하고 중보기도를 해야 하는 것을 굳게 약속했다.”  
히틀러에 극렬하게 저항하는 가운데 
신학교가 폐쇄되고 히틀러에 대한 저항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면서 본훼퍼는 그의 개인적인 경건생활에 『로중』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된다. 공동체 생활과 예비목사 모임이 중단된 뒤에도 휜켄발데 형제의 집 사람들 및 예비목사들과 함께 계속 묵상을 이어가면서, 그는 『로중』을 더 가까이 하였다. 본훼퍼는 이제 『로중』을 그가 이전에 공동체에서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살아오면서 했던 것보다 더 많은 논쟁을 매일 하면서 『로중』의 말씀을 하루의 슬로건으로 삼게 되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을 묵상할 여유와 힘이 거의 없어지게 되었을 때, 본훼퍼는 『로중』을 결정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 기도의 근거와 영적인 사고를 위한 추동요인으로 새로이 규정하였다. 그러한 사실은 1939년 그가 미국 여행 중에 기록한 일기장에, 특히 종전이후 에버하르트 베트게에 의해 출간된 그의 『저항과 복종』이라는 유고집과 체포이후 보낸 편지글과 기록에서 발견된다. 『로중』은 본훼퍼의 마지막 나날동안 더욱 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여기에서 그는 종교개혁에 기원을 둔 개신교적 영성의 근본적인 바탕, 다시 말해, 가정과 일상에 스며든 경건과 찬양과 성서경구를 통한 경건으로 돌아갔다. 나치의 파편화 시도와 위협에 직면하여 현실로부터 멀어져버린 신학적인 이상을 부여잡기보다는 매일의 말씀에 대한 묵상을 통해 경건생활을 이어가게 된 것이다. (2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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