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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양심적 병역거부, 기독교 신앙과 어긋날까?

법원의 양심적 병역거부자 무죄 판결 단상

양심적 병역거부는 기독교 신앙과 어긋날까? 법원이 병역법 위반으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도 3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는 소식을 접한 뒤 든 의문이다. 
종교와 관계없이 대한민국 성인 남성은 병역의 의무를 짊어져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기성교회들은 이에 대해 문제의식이 아예 없어 보인다. 오히려 공공연히 군 입대를 장려하고, 신앙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로 여기는 분위기다. 교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청년부를 담당하는 목회자들이 담당해야 하는 사역 가운데 하나는 군 입대를 앞둔 청년들을 위해 축복하는 일이다. 심지어 어떤 교회에서는 군에 입대하는 청년들을 강단에 세우고 안수기도를 하며, 이들을 위해 파송성가를 불러주기도 한다. [기자 역시 군 입대 전, 담임목사님이 직접 가정을 방문해 안수기도를 해줬다]
보수 기독교계는 법원의 무죄 판단에 대해 드러내놓고 불편한 심기를 표출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한국교회언론회(언론회)는 법원 결정이 나온 바로 다음 날인 5월13일(수) 약속이라도 한 듯 논평을 내고 법원 결정을 비판했다. 한기총은 “양심적 병역 거부는 잘못된 종교적 신념에 의한 행동”이라며 “병역의 의무는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져야 할 책임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법원의 판단으로 인해 자유와 의무의 균형이 깨어질 수밖에 없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법원 결정에 대해선 “사회적 합의도 없고, 이미 판례도 유죄인 상황에서 종교적 신념에 의한 양심적 병역거부를 무죄로 판결한 것은 개인의 자유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처사”라고 지적했다. 
언론회 논평은 더욱 원색적이다. 언론회는 “우선은 용어의 혼선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 자신의 특정 종교의 신념 때문에 병역을 거부하는 것이 ‘양심적 병역 거부’라면,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수고하고 고생하면서 국민의 4대 의무인 ‘병역의 의무’를 다한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비양심적 세력으로 보아야 하는 것인가?”하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어 “병역의무는 국가 공동체의 생존을 위해서 공동체원들이 반드시 감당해야 할 의무다. 소위 말해서 양심에 따라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사항이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특정 종교의 ‘종교적 신념에 의한 병역 거부’로 규정하는 것이 맞다. 특히 우리나라는 남북이 첨예한 대치상태에 있어서, 국가 안보를 위해 ‘국민 개병제’를 택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언론회는 더 나아가 “일부 법관들의 엇나간 판결이 국가와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법관의 국가관과 안보관은 무엇인가? 법관은 어느 나라 국민이며, 누구를 위해 공무를 수행하는가?”라며 재판부의 사상을 검증하는 듯한 태도마저 보였다. 
이 대목에서 다시 한 번 의문이 든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기독교 신앙과 어긋날까? 먼저 한기총과 언론회의 주장이 타당한지 따져보자. 두 단체 공히 병역의무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언론회는 국가 안보를 상당히 강조했다. 사실 국가안보와 병역의무는 상통하는 개념이다. 남북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는 젊은이들의 희생을 요구할 수밖엔 없어서다. 
그러나 현재 남한의 국력은 북한과 비교할 바 아니다. 특히 북한은 1990년대부터 식량 부족에 허덕여왔고, 이 같은 식량난은 북한 체제의 존립기반인 군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미 1990년대부터 주한미군은 북한군 전력 저하를 감지했다. <워싱턴포스트>지 특파원을 지낸 돈 오버도퍼는 자신의 책 『두 개의 한국』에서 1997년 존 틸러리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이 자신에게 “물자 부족 등 북한 내 전반적인 사정 악화로 북한의 군대가 퇴화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확신했다는 말을 건넸다”고 적었다. 
최근 들어 상황은 더욱 심각해 보인다. 지난 해 12월, 북한군 병사들이 굶주림에 허덕인 나머지 민간인을 살해하고 식량을 탈취해가는 일이 횡행한다는 사실이 공중파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반면 남한은 첨단 무기체계를 갖춘 데다,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 있다. 물론 남북한 군사적 긴장이 언제 어디서 위기상황을 연출할지는 예측불허다. 그러나 현 전력상 북한의 돌출행동에 따른 충격은 얼마든지 상쇄가 가능하다. 즉, 국방의 의무를 넓게 해석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말이다. 법원도 무죄판결을 내리면서 국방의 의무를 “전투원뿐 아니라 경찰·재해방지업무, 공익근무, 사회복무 등 대체복무를 포함한 의미”라고 규정하며 “대체복무를 수용하면서 그 기간과 근무여건 등의 부담형평성을 고려한다면 악의적 병역 기피자를 가려낼 수 있다”고 명시했다. 
늑대가 새끼 양과 어울리는 곳이 하나님 나라 
▲지난 2009년 서울 연지동 기독교회관에서 열린 '기독교신자 하동기씨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선언 기자회견'에서 당시 연세대 신학과에 재학 중인 하동기씨가 병역거부 선언을 하고 있는 모습. 하씨 오른쪽은 연세대 신과대 학생들. 상기 사진은 위 기사와 직접적으로는 관련이 없습니다. ⓒ베리타스 DB

이제 신앙적 차원을 논의할 차례다. 남북간 군사대치로 젊은이들이 군대에 가야 하는 상황이라면 교회는 이 같은 긴장의 해소에 앞장서야 한다. 그것이 교회된 도리다. “늑대가 새끼 양과 어울리고 표범이 숫염소와 함께 뒹굴며 새끼 사자와 송아지가 함께 풀을 뜯으리니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는 이사야서 11장 6절 말씀(공동번역)은 굉장한 평화의 메시지다. 새끼 양, 숫염소, 송아지는 각각 늑대, 표범과 사자의 먹잇감이다. 그러나 이사야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는 양과 늑대가 어울리고, 표범이 숫염소와 함께 뒹군다. 이뿐만 아니다. 새끼 사자가 소의 먹이를 먹는다. 이사야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는 약육강식의 법칙이 초월되고, 강자와 약자가 서로 조화를 이루는 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라는 것이다. 이런 나라 건설에 기독교인이 앞장서야 하는 건 당연한 의무다.  
젊은이들이 2년간 복무해야 하는 병영 현실은 어떨까? 한 마디로 위험천만이다. 매년 세월호 희생자보다 더 많은 젊은이들이 군복무 중에 목숨을 잃는다. 특히 선임병사들의 가혹행위로 숨지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지난 해 한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윤 모 일병 구타사망사고가 대표적이다. 더욱 심각한 건, 이 같은 대형 사고에도 별반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 4월 강원도의 한 포병부대에서 이 모 일병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모 일병은 선임병사들로부터 가혹행위를 당했고, 이를 이기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 모 일병이 남긴 노트엔 선임병사들이 뺨을 때린 후 실수라고 둘러대는가 하면, “군대만큼 자살하기 좋은 곳이 어딨어, 얼른 자살해”는 식으로 괴롭힘을 가한 사실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었다. 이렇게 억울한 죽음을 당했어도 군 당국은 묵묵부답이다. 군 당국은 사고가 불거지면 은폐하기 급급하고, 모든 책임을 죽은 병사에게 전가시키는데 사력을 다한다. 만약 군 당국의 주장대로 죽음을 당한 병사가 군 조직에 적응이 어려운 부적격자라면, 징병검사 과정에서 반드시 걸러내 문제의 소지를 없앴어야 했다. 그러나 군 당국은 출산율 저하에 따른 입대자원 감소를 이유로 징병검사 기준을 지속적으로 완화해 왔다. 그나마 이런 기준이 공평하게 적용되면 다행이다. 판·검사, 재벌, 고위공직자 및 그 자녀들은 지위와 재력을 이용해 징집을 피하고 힘없는 집 아들들만 끌려가다시피 입대하는 게 지금 이 나라 현실이다. 
다시 한기총과 언론회로 눈을 돌려보자. 징집된 젊은이들이 선임 병사들의 가혹행위나 다른 석연찮은 이유로 죽어갔을 때 한기총과 언론회가 나서 이들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고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한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사회 고위층들의 병역면탈에도 한기총과 언론회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런 단체들이 양심적 병역거부에 발끈하고 나선 모습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한기총과 언론회에 한 가지 당부하고 싶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는 7개월 군 복무 후 의가사 제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세 아들들은 미국 영주권 취득을 이유로 군 복무 면제 처분을 받았다. 한기총과 언론회가 조 목사 일가의 병역면탈 과정에서 불법은 없었는지 면밀히 조사하고, 그 다음 혹시 다른 대형교회 목회자에게서도 유사 사례는 없는지 철저하게 추적해 주기를 당부한다. 그런 다음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주기 바란다. 그게 신앙인, 아니 인간된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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