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자(양심상의 이유로 징집을 거부하는 사람)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면서 미묘한 파장이 일고 있다. 광주지방법원은 5월12일(화) 병역법 위반으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도 3명에 대해 “헌법에 국방의 의무보다 양심의 자유가 우선하는데도 조치를 취하지 않아 불가피한 선택을 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무죄선고를 내리면서 판결이 미칠 영향을 의식한 듯 “이번 판결의 작은 불씨가 사회에 큰 변화의 불씨를 일으키기 바란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현행법상 양심적 병역거부는 불법이다. 병역법 88조는 “현역입영 또는 소집 통지서(모집에 의한 입영 통지서를 포함한다)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일이나 소집기일부터 다음 각 호의 기간이 지나도 입영하지 아니하거나 소집에 응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물론, 예외는 없지 않았다. 2004년 서울 남부지법, 2007년 청주지법 영동지원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그러나 이 같은 예외는 1심에 그쳤고 상급심에선 줄곧 유죄로 결론이 났다. 또 2004년과 2011년 두 차례에 걸쳐 병역법 88조에 대한 위헌제청이 제기됐었으나 헌법재판소는 잇달아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 같은 선례에 비추어 볼 때, 광주지법의 판결도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지난 2009년 서울 연지동 기독교회관에서 열린 '기독교신자 하동기씨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선언 기자회견'에서 당시 연세대 신학과에 재학 중인 하동기씨가 병역거부 선언을 하고 있는 모습. 하씨 오른쪽은 연세대 신과대 학생들. 상기 사진은 위 기사와 직접적으로는 관련이 없습니다. ⓒ베리타스 DB |
그러나 이번만큼은 그냥 넘길 수 없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무죄를 선고한 바로 다음 날인 13일(수) 인권NGO인 국제앰네스티는 「감옥이 되어버린 삶: 한국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란 제하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국제앰네스티는 이 보고서를 통해 “매년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사상ㆍ양심ㆍ종교 또는 신념의 자유를 행사했다는 이유로 수감 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613명 이상이 수감돼 있다. 이외에 예비군 훈련 거부자(현역 복무를 마친 뒤 예비군 훈련을 거부하는 사람)도 약 80명 이상 존재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에 “군복무 수행을 거부할 권리를 행사했다는 이유만으로 수감된 모든 사람을 즉시 무조건적으로 석방하고, 이들의 전과기록을 말소하고 적절한 배상을 제공하고, 국제 기준에 부합되도록 국내법을 개정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인정되고 병역거부자가 군복무를 완전히 면제받지 않는 경우 이들이 민간 통제를 받고 군복무와 기간이 유사한, 순수히 민간 성격의 적절한 비처벌적 대체 복무를 선택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런 가운데 보수 기독교단을 대표하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이영훈 대표회장)와 한국교회언론회(이하 언론회, 유만석 회장)는 13일(수) 일제히 법원 결정을 비판했다. 한기총은 “양심적 병역 거부는 잘못된 종교적 신념에 의한 행동이다. 병역의 의무는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져야 할 책임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법원의 판단으로 인해 자유와 의무의 균형이 깨어질 수밖에 없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고 논평했다. 언론회는 “병역의무는 국가 공동체의 생존을 위해서 공동체원들이 반드시 감당해야 할 의무다. 소위 말해서 양심에 따라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사항이 아니다”라면서 “그렇지 않다면, 특정 종교에 의한 ‘종교적 신념에 의한 병역 거부’로 규정하는 것이 맞다. 특히 우리나라는 남북의 첨예한 대치 가운데 놓여 있어서, 국가 안보를 위해 ‘국민 개병제’를 택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